<천마님 안마하신다 8화>
“···허허.”
강호연은 한동안 제자리에 멈춰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윽고 점이 되었을 무렵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저렇게 훌쩍 커버린 건지, 원···’
예전에도 또래에 비해 성숙한 편이긴 했었다.
제 앞가림은 자기가 알아서 해왔었고,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로는 용돈 달라는 말도 한 마디 안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단순히 그 정도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성숙을 넘어 원숙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몇 십 년은 더 나이를 먹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애비보다 훨씬 잘 컸어.’
당연하게도, 서먹한 부자(父子)관계는 강호연에게도 마음의 짐이었다.
다만 서투른 탓에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도 몰랐을 뿐.
마음속으론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고, 칭찬도 해주고 싶건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왜 그렇게 말문이 막히는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들이, 태한이가 먼저 살갑게 말문을 튼 것이다.
분명 본인한테도 나름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단지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대견할 뿐이었다.
“게다가··· 안마도 기깔나게 잘하고 말이야.”
강호연은 오른쪽 어깨를 서너 차례 돌리며 중얼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좀 시원한 정도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마치 부러진 나사를 새 걸로 교체하고 기름칠도 다시 싹 해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단지 안마 한 번 받은 효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탁월했다.
‘하긴 기분 탓이겠지.’
태한이가 어깨를 주물러 준 게 얼마만이더라.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거의 10년만이다.
그 정도면 아픈 곳도 안 아픈 기분이 될 만도 하다.
실제로 그 정도로 기쁘기도 했고 말이다.
자신의 어깨는 안마 몇 번에 나을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 강호연도 알고 있었다.
분명 플라시보인가 뭔가, 그런 거겠지.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가게에 도착한 강호연은 여느 때처럼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뭔가 달랐다.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강호연은 이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주방에서 일을 해왔다.
그렇기에, 언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릴지 대충 알 수 있다.
특히 혼자 가게를 보는 요즘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일들이 금방금방 끝났다.
식재를 운반하는 일도, 가게를 청소하는 일도, 재료를 손질하고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전부 해치워버린 상황.
그런데도 몸의 컨디션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마치 방금 집에서 가게로 온 것마냥 쌩쌩했다.
“이게··· 왜 이렇게 된다냐?”
원래는 시간도 훨씬 더 걸리고, 끝내고 나면 물이라도 한 컵 마시면서 잠시 숨을 골라야했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어깨를 한참동안 스트레칭으로 풀어줘야 했다.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숨이 거칠어지지도 않았고, 어깨의 고통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운이 넘쳐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만간 수타면도 뽑을 수 있으실 걸요.’
문득 태한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젠 농담도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빈 말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의 시선이 주방 한 켠으로 향했다.
바깥을 향해 크게 창이 뚫려있는 공간.
큼직한 반죽 도마가 놓여있는 그곳은, 한때 강호연이 매일같이 수타면을 쳐댔던 곳이었다.
원래 이 가게의 상징과도 같았던 공간.
그리고 어깨에 후유증이 남은 이후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던 공간.
그럼에도 미련이 남았는지, 차마 치우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버려두고 있었다.
‘···한 번, 해보기나 할까.’
시간이 많은 남은 탓일까.
기운이 남아도는 탓일까.
강호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죽도마로 향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뭔가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하게 손이 움직였다.
탕, 탕, 탕.
이윽고, 수타면 뽑는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 * *
아버지와의 재회를 마친 후, 강태한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찜질방으로 향했다.
집에서 잠도 잘 잤겠다, 곧바로 일을 시작하려는 심산이었다.
[ 좀 더 일찍 나와도 되냐고? 당연히 되지! ]
다행히 황 실장 쪽에서도 이를 반기는 눈치였다. 강태한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올라갔을 정도.
일손이 부족하다더니 그 때문인 걸까.
아니, 그건 혹시라도 부담이 될까봐 최성현이 꾸민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만큼 손님들의 평이 좋았다는 뜻이리라.
‘하긴, 효과는 탁월했을 테니.’
굳어있던 근육들을 깨우고, 막혀있던 혈도에 숨통을 뚫어놓았으니, 당연히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마치 새 몸으로 갈아 끼운 듯한 느낌이 들었으리라.
이건 자만이 아니라 지극히 객관적인 효과였다.
‘평가가 좋아서 나쁠 건 없지.’
어쨌거나 강태한에겐 반가운 이야기였다.
내심 이 아르바이트가 수지타산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으니까.
일단 최성현의 말마따나 페이도 제법 괜찮았고, 손님에 따라선 치료의 일환으로 흡성대법(吸星大法)을 통해 내공도 얻어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일석이조.
물론 페이만 감안하면 더 좋은 일자리도 있겠지만, 돈과 내공 모두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것보다 나은 일거리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는 편이 이득이다.
평이 좋아지면 손님이 늘 것이고, 그리 되면 성과금도 늘고,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함께 늘어나게 될 테니까.
“···후후. 참 소박한 이야기군.”
강태한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마라 추켜세워지던 몸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스케일이 작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무림에선 더 이상 적이 없어진 이후로 권태감마저 느끼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오히려 이런 소박한 하루하루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하지만.
강태한의 소박한 하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은 덜 소박하고, 바쁜 하루가 되었다.
“지금 안마 좀 받고 싶은데요.”
“예. 혹시 찾으시는 분은 계신가요?”
“강태한 선생님으로 좀···”
“아···”
황 실장은 말을 흐리며 옆머리를 볼펜 꽁무니로 긁적였다.
그는 앞에 놓인 메모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기엔 대여섯 명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있었다.
“지금 이게 다 태한 씨 웨이팅이거든요.”
강태한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후, 강태한을 찾는 손님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이건 황 실장의 역할도 컸다.
좀 중요한 손님이다 싶으면 강태한을 붙여놓았던 것이다.
처음 온 손님부터 상대하기 까다로운 손님까지.
특히 까다로운 손님을 맡겼을 때의 효과가 탁월했는데, 진상 수준의 손님도 강태한에게 안마를 받고 나오면 거짓말처럼 ‘선생님’자를 붙이게 되는 것이다.
어느 장사건, 까다로운 손님은 만족시키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부류가 한 번 만족하면 금방 단골로 자리를 잡는 부류이기도 하다.
그 결과, 강태한만 찾는 손님의 숫자가 순식간에 불어난 것이다.
“여기 이 사람들이 전부요?”
“예. 위에 좀 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셋이나 남아있어서.”
“으음···”
남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듯 했으나, 이내 깊은 아쉬움이 얼굴을 덮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기다리면 얼마나 걸릴까요?”
“어디보자···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리겠는데요.”
“그럼 세 시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네?”
순강 당황한 황 실장이 되물었다.
자기 사업을 낮출 생각은 없지만, 막말로 찜질방에 붙어있는 안마샵이다.
이런 반응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안 되나요?”
“···아뇨, 됩니다. 당연히 되죠.”
황 실장으로선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금방 정신을 차린 황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의 이름과 번호를 받아 적었다.
“이야···”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최성현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왜? 무슨 일 있어?”
그 감탄소리에, 마침 한 타임 마치고 쉬러 나왔던 강태한이 물었다.
“아니, 내가 혹시 터무니없는 인재를 발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충격과 기쁨이 머릿속에서 막 뒤섞이고 있다고.”
“뭔 이상한 소리냐?”
“그보다··· 넌 지치지도 않냐?”
최성현이 강태한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강태한은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지금까지 밥 먹는 시간과 약간의 휴식시간을 빼면 쉬지 않고 손님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안마라는 거 자체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부모님 어깨만 주물러도 5분이면 팔이 뻐근한데, 본격적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몇 십분 동안 주무르는 일이니까.
괜히 성과금을 챙겨주는 게 아니다.
‘대전에서 산삼이라도 캐먹고 왔나···’
그런데 이 녀석은, 방금 1시간 동안 안마를 하고 왔는데도 지친 기색은커녕 숨마저도 고르다.
그나마 이마에 맺혀있는 땀방울들이 인간다운 면모였다.
하지만 강태한은 뭔 소리를 하냐는 듯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지치지. 그래서 이렇게 쉬러 나왔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됐다. 이따 밥이나 사라.”
“저녁? 좋지. 뭐 먹을래.”
“국밥이나 한 그릇 하자. 네가 사는 걸로.”
“왜 자꾸 보채. 누가 안 사준 댔냐?”
최성현은 대답 대신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나 무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아무래도 쓸 데 없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