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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7화 (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7화>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강태한은 아버지의 양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앞서 서울에서 봤던 손님들과는 다르다.

정도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 때 만났던 세 명 모두 생기(生氣)가 과하게 축적되고 순환이 되지 않아 해가 된 경우였다.

쉽게 말해 몸이 기름지고 불순물이 많았다.

그럴 땐 아예 강한 힘으로 압박하여 혈도를 막은 탁기(濁氣)를 분쇄하고, 굳어있던 근육들을 직접 자극시켜 깨워놓는 것이 효율적이다.

허나 강호연의 경우는 다르다.

체내에 있는 생기(生氣)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수준.

근육은 깨어있으나, 생기가 부족한 탓에 전체적으로 탄력과 활력이 떨어진다.

굳이 비교를 들자면 마른 나뭇가지.

여기에 강한 힘을 가하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며, 심한 경우에는 찢어지거나 끊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나이도 있으시니.’

이럴 때는 딱딱한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켜놓는 것이 최우선이다.

강태한은 손에 힘을 빼고, 바깥쪽 어깨부터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손에 힘은 빠졌지만, 그렇다고 대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쪽이 더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힘의 비중이 줄어들은 만큼 순수한 기술의 영역이기 때문.

가장 먼저 어깨 바깥쪽의 견정(肩井), 견우(肩髃).

그리고 안쪽에 있는 대저(大杼), 곡원(曲垣), 그 사이에 있는 다른 주요 혈자리들까지.

열 개의 손가락을 각각 움직여, 각 혈자리를 적절한 힘으로 동시에 압박하고, 누르고, 주무른다.

“어어?”

“아프세요?”

“그게 아니라··· 흠.”

강호연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대학에서 배워서 그런가, 손맛이 다르··· 허어어.”

강호연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말을 얼버무린 것이 아니라, 풀어진 어깨를 타고 전해지는 감각에 탄성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뭐지, 이게?’

순간적으로 어깨에 피가 쫙 흘러들어오는 느낌.

우스운 말이다.

마치 그 전에는 어깨에 피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들리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느낌을 옮길만한 표현이 그것밖에 없었다.

어깨를 타고 팔뚝으로, 손목으로,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

단지 피가 통하는 그 느낌일 뿐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신경을 자극하는 쾌감이 된다.

허나 어깨뿐만이 아니다.

목, 등, 허리.

척추를 따라 강태한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강호연은 온몸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원하세요?”

“그래··· 시원하구나···”

강호연이 기분 좋게 노곤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그는 테이블 위에 상반신을 엎어놓고 있는 상태였다.

‘좋아.’

마지막으로 허리까지 끝마친 다음, 전체적인 몸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효과가 있었는지, 방금 전과 같은 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탄력과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일시적인 것.’

근육은 부드럽게 이완되었고 혈도도 숨구멍이 트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치.

지금처럼 체내에 생기(生氣)가 부족하다면, 금방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 뻔하다.

그러나 생기를 단기간에 보충하기는 힘들다.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서서히 차오르는데, 이렇게 거의 바닥이 드러난 정도라면 그마저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허나 지금은 다른 방법이 있다.

강태한에게는 아까 전에 손님들에게서 흡수해뒀던 여분의 내공, 즉 기(氣)가 있었으니까.

‘아르바이트를 다녀오길 잘했군. 그야말로 조막막한 내공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슨 단전을 복구시키거나 혈을 되살리는 것도 아니고, 한 명의 신체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데에는 충분한 양이다.

물론 지금 강태한의 내공이 빈말로도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고, 이런 조막만한 내공이라도 중요했지만···

강태한의 행동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최대한 자연의 기(氣)와 비슷한··· 순수한 형질로.’

하단전의 내공을 중단전으로 필요한 만큼 끌어올리고, 순수한 형태로 되돌리는 공정을 거친다.

혈연의 관계인만큼 형질의 차이로 반발이 일어날 위험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는 법이니까.

‘좋아.’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강태한은 조심스레 강호연의 등 위, 신주(身株)혈의 자리에 손을 올렸다.

가슴팍과 비슷한 높이로 등에 위치한 신주혈.

그 위치에 걸맞게 폐(肺)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혈자리다.

강태한은 손안에 모은 기를 그곳에 천천히 불어넣었다.

외부의 기를 체내에 받아들이는 기초적인 방식은?

바로 호흡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기를 전달할 때에 가장 반발이 적은 방식 또한 폐를 통해 불어넣는 방식이다.

강태한은 강호연의 혈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섬세히 조절해가며 천천히 기를 불어넣었다.

“어, 어어···”

신주혈로 흘러들어온 기(氣)는 잠시 단전에 모였다가, 생기의 형태로 변형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혈도를 따라 곳곳으로 흘러들어가는 생명의 기운.

메말라있던 몸이 적셔지는 이 느낌은, 그야말로 쾌감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감각이었다.

“으하아아아···”

길게 빠져나오는 긴 숨.

온몸의 힘이 빠지고, 마치 가슴 속에 쌓여있던 한숨들이 녹아 새어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허나 힘이 빠지는 것은 그저 느낌일 뿐.

윤기를 잃었던 피부에는 점점 탄력이 돌아오고, 말라붙어 힘이 없던 근육에는 활력이 흐른다.

비록 규모는 자그맣지만, 과장을 좀 보탠다면 회춘이라 부를만한 광경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바로 오른쪽 어깨.

수술의 후유증이 남은 채로 굳어버린, 그 자리.

허나 지금은 근육도 부드럽게 풀려있고, 생기도 혈도를 따라 충분히 흐르고 있다.

준비는 충분한 상태.

강태한은 수술자국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혈도를 엄지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리고 힘을 실어 양쪽 모두 강하게 자극했다.

“윽?”

순간 강호연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프세요?”

“아니, 갑자기··· 좀 놀랐구나.”

차마 아팠다고 말하지 못하는 강호연이다.

강태한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한 델 눌렀나봐요. 조심해야겠네.”

물론 거짓말이었다.

강호연이 움찔거리며 자연스레 으쓱였던 오른쪽 어깨.

이는 곧 강태한의 생각대로 일이 잘 풀렸다는 뜻이었다.

‘오늘 당장 효과가 나오진 않겠지만···’

아마 당장 내일,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확연한 효과가 나타나리라.

강태한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다음 날.

부자는 오랜만에 함께 집을 나섰다.

강호연은 출근하러 가게로.

강태한은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목적지는 달랐지만, 중간까지 가는 길은 같았다.

“그것 참, 신기하구나.”

걷는 동안 강호연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몸이 찌뿌둥하고 피곤했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그 뿐인가.

평소와 다르게 오른쪽 팔이 자연스레 어깨 위까지 올라갔다.

어깨 수술 이후 오랫동안 달고 다녔던 지병.

원래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움직여야 겨우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쉽게 휙휙 팔이 올라갔다.

“몸이 막 엄청 가벼운 게, 마치 젊어진 것 같아.”

“다행이네요.”

“안마라는 게 이렇게 효과가 좋았던가···? 아니면 역시 대학에서 배우는 건 다른 건가?”

“아버지가 안마가 잘 받는 체질이신가 보죠.”

강태한이 웃으며 말했다.

확 밝아진 아버지의 안색이 보기만 해도 기쁠 뿐이었다.

“근데, 수타면은 다시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수타면?”

“어제 보니까 면치던 곳은 아직도 비워두셨던데.”

주방에서 가게 입구 쪽으로 크게 뚫려있는 유리창.

강호연은 거기에 커다란 반죽대를 놓고 수타면을 치고는 했었다.

그 자체가 꽤 볼만한 구경거리였고, 그걸 본 손님이 한 명이라도 더 찾아왔었으니까.

물론 이젠 옛날 일이고, 간판에 걸려있던 수타면 글자도 뺐지만···

여전히 반죽대는 남아있었고, 미련이 남았는지 그쪽 유리창만은 투명하게 닦여있었다.

어쨌거나 수타면은 태한반점의, 아니, 중화요리사 강호연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다. 하지만···”

“오늘 한 번 쳐보세요.”

“···괜히 유난 떠는 게 아닐까?”

“유난 좀 떨면 어때요. 어제 보니까 가게에 손님도 별로 없더만.”

“이놈이··· 하긴, 네 말도 맞다.”

강호연은 짐짓 화난 척 목소리를 내다,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강태한의 말마따나 손님 수가 확 줄어든 지 오래라 뭐라도 해봐야 할 시점이었다.

아니, 그걸 다 떠나서 본인도 다시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한때 자신의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이었던, 수타면을.

“그럼 가볼게요, 아버지.”

“그래. 다음에 또 와라.”

어느새 도착한 갈림길.

강태한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강호연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딱 하루 지났을 뿐인데, 부자의 관계는 전보다 돈독해져 있었다.

“또 어깨 주물러드리러 올게요.”

“어이구, 조심히 가기나 해.”

강태한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강호연은 제자리에 서서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아버지!”

조금 멀어진 강태한이 뒤로 돌며 외쳤다.

“오래오래 건강히 지내셔야 합니다!”

“···허허. 가기나 해, 이놈아.”

어서 가라고 재촉하듯 손을 휘젓는 강호연.

하지만 그의 입 꼬리는 한껏 치솟은 채로 내려오질 않았다.

안색이 밝아진 덕일까.

강태한이 그동안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 중에서 가장 기뻐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하구나.’

이것만으로도 무림에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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