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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6화 (6/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6화>

돌이켜보면,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가정폭력을 당했다던가, 청소년 시기에 방황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바빴고, 강태한은 얼굴도 보기 힘든 아버지와의 연(緣)보다 다른 걸 우선시했을 뿐이다.

얼굴도 하루에 한두 번 밖에 못 보는 사이.

언젠가부터 말을 거는 게 어렵게 느껴졌고, 대화는 자연스레 끊어졌다.

가끔 인사정도만 오고가는,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참으로··· 서툴렀지.’

나 자신도, 그리고 아버지도.

그때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말이 줄어든 이유를.

매일 밤늦게 가게에 남아계셨던 이유를.

그럼에도 자신은 아버지와 마주하는 걸 피해왔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말해도 되니까.

아버지는 항상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고, 자신을 기다려줄 거라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뒤늦게 깨닫는 실수이자 착각.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행운인 것은, 강태한은 그걸 깨달을 나이가 지난 후에 되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 있을 때로 말이다.

“여기는 좀 달라졌군.”

버스에서 내린 강태한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대전 동구의 복합터미널.

서울 자취방 인근의 풍경은 기억 그대로였지만, 여긴 기억과 달리 처음 보는 간판들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림에서의 육십년을 제외하더라도, 대전에는 오랜만에 돌아온 것이었기 때문.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 처음 돌아온 거였다.

‘여기 카페는 절대 안 망할 줄 알았는데··· 음? 이 가게가 대전에도 들어왔단 말인가.’

눈을 감아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길.

허나 기억과 조금씩 달라진 부분들을 짚어가며, 강태한은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큰 길에서 작은 길로, 작은 길에서 골목으로.

그렇게 걷다보면··· 낡은 간판만큼 오래된 중식집 하나가 나타난다.

태한반점.

무엇을 숨기랴.

저 간판의 두 글자는 강태한 본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강태한은 한동안 제자리에서 간판을 쳐다보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 왔습니다, 아버지.”

“···그래. 왔냐.”

둘러보니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주방에서 아버지의 짧은 대답이 들려왔을 뿐.

강태한은 주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은 먹고 온 거냐.”

“아뇨.”

“그럼 밥부터 먹거라.”

무심하게 대답한 강태한의 아버지, 강호연은 조용히 불을 피우고는 그 위에다 팬을 올렸다.

* * *

식용유를 두르고 그 위에다 돼지고기를 볶는다.

고기에 색이 얼추 올라오면, 양파를 넣고 함께 볶으면서 간장과 굴소스로 밑간을 잡는 동시에 향을 돋운다.

고기가 볶아지며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여기에 양파가 갈색으로 익으며 달달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나머지 채소들과 미리 볶아둔 춘장을 넣고 자작하게 볶는다.

입맛을 당기는, 짭조름하면서 달콤한 짜장의 냄새.

이제 각각의 채소에 윤기와 색이 골고루 밸 때까지 볶아주고, 자작하게 볶아진 소스를 면 위에 부으면, 완성이다.

“간짜장이네요?”

“네가 좋아하잖냐.”

“···그렇긴 하죠.”

강태한은 앞에 놓인 간짜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랫동안 무림, 즉 중국에 머물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그리워했던 음식은 중식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갓 볶아준 이 간짜장.

이 간짜장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강태한은 말없이 간짜장을 비비고 한 젓가락 크게 들어올렸다.

맛깔나게 비벼져 윤기가 흐르는 면발.

강태한의 젓가락이 곧장 입 안으로 향했다.

“입에는 좀 맞냐?”

“···예. 맛있습니다, 아버지.”

“최근에 춘장을 바꿨는데 다행이구나.”

접시에 김치를 담아오며 강호연이 말했다.

그는 말없이 아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봤고, 강태한은 순식간에 간짜장 한 그릇을 바닥까지 비워냈다.

“···너, 어디서 굶고 다니냐?”

“그런 건 아니고, 워낙 오랜만에 먹는지라.”

“서울에는 간짜장이 없나보구나.”

과장 없이 육십년 만에 먹는 간짜장이었지만, 그런 걸 강호연이 알고 있을 리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강태한은 그저 씩 웃었다.

“서울에 아무리 중국집이 많아도 아버지가 갓 볶아주는 간짜장은 먹을 수가 없죠.”

“···서울로 가더니 말재주가 늘었구나.”

퉁명스레 답했지만 강호연의 입 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옛날이었으면 눈치도 못 챌 미세한 변화였지만, 지금의 강태한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뿐일까.

가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 고개도 내밀지 않으셨지만 아버지가 화색이 되신 것도, 짜장을 볶는 동안 연신 입 꼬리가 씰룩이셨던 것도 강태한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진즉에 찾아뵈어야 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뭔가 그럴듯하고 거창한 성과라도 거두고 나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단지 아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밥 한 끼 먹이는 것만으로도 이리 기뻐하시는 것을.

강태한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어?”

“별 일 없어요. 그냥 아버지가 좀 보고 싶어서.”

강태한의 낯선 대답에 강호연의 입 꼬리가 한 번 더 꿈틀거렸다.

이번에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반응이었다.

“···이 놈이. 어디 아프냐? 무슨 일 있어?”

“아뇨? 왜요.”

“아니··· 이상하잖아.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요?”

“맨날 아빠라고만 불렀지 아버지라고 불린 게 두 번 뿐이다. 너 첫 휴가 나왔을 때, 그리고 첫 휴가 끝나고 복귀할 때.”

“그랬···었나?”

듣고 보니 그랬었던 것 같다.

허허. 강태한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요 몇 십 년 동안에 가장 머쓱한 기분이었다.

“뭐··· 별 일 없다면 됐다.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니.”

강호연은 말을 마치고 괜히 물을 들이켰다.

표정을 감추려는 목적이었다.

“얼마나 있다 갈 거냐?”

“내일 아침 일찍 나가요. 내일 일이 있거든요.”

“그럼 자고 가겠구나.”

“왜요. 싫으세요?”

“싫다고 한 적 없다. 오히려···”

큼.

뭐라고 말을 하려던 강호연은 헛기침과 함께 말을 삼키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강태한의 입 꼬리가 괜스레 씰룩거렸다.

“그보다 아버지, 등 좀 돌려보세요.”

“등은 왜.”

“나도 남들 하듯 아버지 어깨 좀 주물러 보게요.”

“허허, 참···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강호연은 그러면서도 천천히 등을 돌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가는 강태한.

순간 그의 얼굴에 씁쓸한 기색이 드러났다.

‘···아버지.’

오랫동안 고된 주방 일로 다져진 몸.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한 신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외견일 뿐.

안쪽 내부는 이곳저곳 뭉친 채로 굳고 생기를 잃어 쇠약해진지 오래다.

‘서울에서 봤던 것과 정반대의 경우군···’

충분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생기가 돌지 못하고 제자리에 고여 몸을 망치지만, 반대로 필요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활력이 점점 고갈되어 생기가 마르게 된다.

강호연의 상태는··· 마치 마른장작과도 같은 모습.

이건 이미 활력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오랫동안 혹사가 이어져, 아예 몸이 거기에 적응을 한 상태로 굳어버린 것이다.

겉으로만 단단하고 속은 메말라버린 그 몸은, 그 자체로 그동안의 아버지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홀몸으로 자신을 기르고, 묵묵히 일만 해왔던.

‘예전에는 직접 수타로 면도 뽑으셨는데.’

어렸을 적 아버지의 가게에선 항상 수타면을 뽑는 소리가 탕, 탕 크게 울렸었다.

그 소리에 길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곤 했었고, 가게도 손님으로 가득 찼었다.

‘···언제부터 간판에서 수타면 글자가 사라졌더라.’

아마 우측 어깨 수술을 받으신 이후였던 것 같다.

어깨 힘줄이 많이 닳아 아예 끊어질 수도 있었다고 했던가.

수술은 잘 끝났다지만, 그 이후 한 번도 수타면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땐 잘 몰랐지만, 분명 가게의 매출에도 큰 영향이 있었으리라.

수타면이 특징이었던 집에서 수타면이 빠지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한숨도 잦아지셨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버텨 오셨던 것이다.

강태한은 강호연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예전에 강호연이 수술을 받았던 자리.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안쪽 칼자리를 기준으로 양쪽 근육의 연결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갑자기 큰 힘을 주거나 팔을 크게 들어 올릴 때 장애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정도 균열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이 되기 마련이지만···’

회복기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생기만 꾸준히 공급되었다면 복구되었을 상처다.

허나 강호연은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드물었고, 결국 회복기를 놓친 상태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후유증이 남아버리고 만 것이다.

‘이 정도면 오른손으로는 프라이팬만 들어도 통증이 있으셨을 텐데···’

억지로 고통을 참고 계신 걸까, 아니면 이젠 익숙해져서 통각이 무뎌지신 걸까···

강태한의 가슴 한 켠이 쓰릴 정도로 저려왔다.

강호연이 이런 고통을 감내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강태한, 자기 자신이었을 테니까.

“아 참. 그러고 보니, 학과에서 마사지 같은 것도 배운다고 했었지?”

“···예.”

“대학 보내길 잘했구나. 이렇게 아들놈이 어깨도 다 주물러주고.”

허허허.

강호연이 소탈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강태한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자주 주물러드릴게요, 아버지. 저 이래 뵈도 자격증도 있어요.”

“어이구, 그럼 솜씨도 좋겠구나.”

“그럼요. 조만간 수타면도 뽑을 수 있으실 걸요.”

강태한이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로 말했다.

그의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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