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5화>
‘너무 힘을 줬나.’
첫 손님, 남우현이 방을 나서고, 강태한은 뒷정리를 하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집중을 해버렸군.’
원래는 처음 알려줬던 매뉴얼에 따라 적당히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와 남자의 상태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어디가 문제인지, 어디를 어떻게 봐야할지.
대략적인 그림이 전체적으로 움직였고, 그 그림을 따라 손이 움직였다.
거기에만 집중하느라 중간부터는 말투도 신경 쓰지 못했다.
···아니, 중간부터가 아니라 처음부터였나.
원래라면 이 정도는 가뿐한 일이겠지만, 아무래도 몸이 되돌아오면서 집중력도 함께 떨어진 모양이다.
‘잘못하면 클레임이 들어올 수도 있겠군.’
손님한테 반말을 하는 서비스업자라니.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육십년 동안 무림에서 머물렀던 강태한도 기억하고 있는 상식이다.
“잠깐만, 태한 씨!”
뒷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로비에 서있던 황 실장이 강태한을 불러 세웠다.
얼핏 보기에는 표정이 굳어있는 것이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무슨 일? 있지! 하하하.”
하지만 다음 순간, 황 실장의 양쪽 입 꼬리가 히죽 올라가더니 털털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태한 씨 실력이 장난이 아닌가봐? 아까 손님이 태한 씨 이름을 물어보더니 가게 명함까지 집어가고, 아주 그냥 단골이 될 기세였다고!”
굳이 가게 명함을 집어가는 것.
그리고 담당자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
두 가지 모두 재방문 의사가 높다는 신호이며, 이번 방문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까놓고 말해 사우나에 딸려있는 안마샵이다.
대부분 사우나를 받으러 왔다가 들르는 손님들이고, 꾸준히 방문하는 손님을 확보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첫 방문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 것이다.
말 그대로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솔직히 조금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봐. 다음에도 이렇게만 해줘요.”
“알겠습니다.”
강태한도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나름 걱정을 했었는데, 잘 되었다고 하니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자기를 추천해준 최성현의 체면도 세워준 셈이고 말이다.
“이런. 이거 피곤한 사람을 괜히 세워두고 있었네. 들어가서 쉬어요.”
황 실장이 갑자기 미안해하며 말했다.
강태한이 방금 일을 마치고 나왔다는 걸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그럼 들어가 있겠습니다.”
“그래요~”
강태한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대기실로 향했다.
황 실장은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조그맣게 감탄을 터트렸다.
“이야. 성현이랑 동갑이 맞나? 학생 같지가 않네.”
사우나에서 일을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고, 자연스레 사람을 파악하는 눈썰미도 대강 생기기 마련이다.
황 실장도 조금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는데···
저 강태한이라는 학생은 뭐라 딱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깊이가 다르다고 할까,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고 할까.
어느 쪽이건 간에 그냥 대학생의 인상은 결코 아니었다.
* * *
“후우우.”
한편, 대기실로 들어선 강태한은 탈의실 안쪽의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댔다.
이 안에서는 여기가 가장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슬슬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되겠군.’
강태한은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양손은 가볍게 무릎 위로.
두 눈은 솜털이 내려앉는 것처럼 천천히 감고, 의식은 신체 내부에 집중한다.
남우현의 하단전에 차있던 과도한 양의 생기(生氣).
순환이 되지 않아 한 곳에 고여, 혈류를 방해할 정도로 쌓여있던 그 생기는, 현재 강태한의 단전 안으로 옮겨져 있었다.
흡성대법(吸星大法).
상대방의 기를 흡수해오는 무공으로, 강태한이 무림에서 처음으로 얻은 기연이자,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무공이기도 했다.
‘이걸 다시 쓰게 될 줄이야.’
흡성대법은 내공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다.
아니, 오히려 내공이 없을수록 사용이 용이하다.
애당초 자신의 단전을 비우고 그 압(壓)의 차이를 통해 상대의 기를 빨아들이는 원리니까.
다만, 흡성대법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기를 흡수해올 뿐이다.
흡수해온 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흡수한 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칫 탈이 날 수 있고, 상성이 극도로 안 맞을 경우에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기에 운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뭐, 한때 툭하면 겪어왔던 일이다.
강태한은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체내의 기를 양손으로 흘려보냈다.
오른손에는 중단전으로 옮겨뒀던 자신의 내공을.
왼손에는 하단전에 빨아들인 남우현의 생기를.
양손으로 기가 채워진 것을 느낀 후, 각각 크게 호를 그어 태극무늬를 그리며 가운데로 손을 모은다.
그리고 천천히, 완전히 힘을 뺀 상태에서 두 손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만으로 손을 합쳐, 자연스레 합장의 형태를 완성시킨다.
무당파의 태청심공(太淸心功).
소림사의 역근경(易筋經).
강태한이 두 심법의 원리를 활용하여 만들어낸, 체내의 내공을 정순하게 갈무리하는 내공운용법이다.
양손에 모인 두 기운은 태청심공의 원리를 통해 조화를 이루고, 몸의 중심에서 역근경의 묘리로 정순하게 정돈된 후, 합장을 통해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정리된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흘려보내면, 마무리.
강태한은 그때까지 감고 있었던 눈을 천천히 떴다.
“후우우.”
강태한은 긴 숨을 내쉬었다.
기껏해야 2분.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강태한의 온몸이 땀으로 젖고 기력도 쇠해있었다.
만약 흡수한 양이 두 배 정도만 되었어도 도중에 탈진으로 쓰러졌으리라.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성과다.’
남우현으로부터 흡수해온 기.
물론 무림에 있던 시절에 비하면 모래 한 알에 겨우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허나 지금의 강태한에게는 그야말로 포식이었다.
단전에 쌓이다 못해 혈류에 영향이 갈 정도의 생기.
일반인의 단전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냐만, 그래도 지금 강태한이 갖고 있는 내공의 얼추 1.5배 정도에 해당되는 양이었다.
물론 흡수 과정에 손실도 있고, 오랫동안 고여 있어 기운이 탁해진 것도 감안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강태한의 내공은 단숨에 두 배가량 불어나 있었다.
“안마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현대는 영양(營養)이 넘치고 다이어트가 덕목이 되어있는 시대.
방금 전과 같은 손님들만 있진 않겠지만, 보기 드물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공을 쌓을 기회도 적지 않을 터.
돈 받고 내공도 쌓고. 꿩 먹고 알도 먹는 셈이다.
“야 태한아! 여기서 뭐하냐?”
그때 탈의실 문을 열고 최성현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대기실에 없더니, 최성현도 안마를 마치고 이제 막 들어온 참인 모양이다.
“쉬고 있었지.”
“밖이 시원한데 나와서 쉬지 왜 여기 있어.”
“스마트폰을 옷에 넣어놓고 나왔더라고.”
강태한은 옆에 둔 스마트폰을 들고 흔들며 말했다.
방금 떠올렸지만 썩 나쁘지 않은 핑계였다.
* * *
아르바이트는 최성현이 말했던 대로 나쁘지 않았다.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자잘한 일거리가 생기면 좀 도와주고, 손님이 밀려 차례가 오면 나가서 안마를 하고 돌아온다.
이것의 연속.
“선생님. 계속 여기에 계시나요? 그럼 다음에도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습니다만···”
“여태 받아본 안마 중에 단연 최고였습니다.”
강태한은 그 뒤로 두 명의 손님을 더 받았는데, 손님들의 만족도는 전체적으로 괜찮은 느낌이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말투가 도중에 하대로 바뀌었음에도 말이다.
‘왠지 안마 전후로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이었지.’
안마사 치곤 나이가 어린 탓일까.
처음 강태한이 들어서니 못마땅한 안색을 비친 손님이 있었다.
헌데 안마를 마치니 ‘선생님’이라고 자연스레 존칭을 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 아니었다.
오늘 받았던 세 명의 손님 모두 안마 후에 미묘하게 공손해진 인상을 받았다.
‘뭐··· 클레임이 들어온 것도 아니니 상관없나.’
어쨌거나 별 문제 없이 끝났으니 괜찮겠지.
강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퇴근할 시간이 된 것이다.
“고생했다, 성현아.”
“하하, 오늘은 고생 좀 했죠.”
“손님이 많긴 했지. 그럼 고생한 김에 저녁타임도?”
“에이··· 그건 아니죠.”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이 바로 손을 내저었다.
그 반응에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때요. 태한 씨는 저녁타임 생각 없어요?”
“저는 가볼 곳이 있어서요.”
“음··· 저녁까지 하신다고 하면 제가 시급도 좀 더 올려드릴 수 있는데.”
“어, 진짜요?”
“너는 말고.”
“아··· 왜요!”
은근슬쩍 딜을 걸어봤으나, 거기엔 강태한이 아니라 엉뚱한 최성현만 걸렸다.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만, 오늘은 정말 일이 있습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시죠.”
“알겠습니다. 오늘 고생 많이 하셨고··· 여기, 오늘 성과금입니다.”
황 실장이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바로 현금으로 주시는 겁니까?”
“하하. 원래 첫 날 성과금만 이렇게 드립니다.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미에서요.”
강태한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봉투를 받았다.
성과금이 꽤 짭짤하다더니, 손에 짚이는 두께가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잘 됐네.’
대중교통비도 아슬아슬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바로 현금으로 준다면야 고마울 따름이다.
“어때, 일 해본 소감은?”
“나쁘지 않네. 오길 잘했다.”
돈을 받고 밖으로 나가는 길.
최성현의 말에 강태한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하, 그치? 너한테 잘 맞을 줄 알았다. 황 실장님도 처음에는 좀 불안해하더니 완전히 마음에 든 모양이더라.”
최성현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양새에 강태한도 미소를 지었다.
“어? 너 집으로 안 가냐?”
“어디 좀 들렀다가 가려고.”
지하철 호선에 따라 갈라지는 갈림길.
강태한의 대답에 최성현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
“아아, 그러고 보니 일이 있다 그랬지.”
“그럼 뻥인 줄 알았냐?”
“원래 일하는 데서 그렇게 말하는 건 쉬고 싶다는 뜻이잖냐. 뭐 어쨌거나, 그럼 내일 보자고.”
최성현은 손을 흔들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강태한은 그 뒷모습에 두어 번 손을 흔들고 뒤로 돌았다.
문득 앞에 지하철 노선도가 있어 슬쩍 쳐다보았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이 쪽이 맞네.’
여기서 타는 게 맞나 긴가민가했는데, 노선도를 보니 다행히 기억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부디 무탈하시길··· 아니, 바뀐 건 없겠구나.’
그럼에도 내심 걱정되는 마음.
이곳의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강태한으로서는 육십 년 만에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