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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화 (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 레빗토끼

<천마님 안마하신다 1화>

- 프롤로그 -

무(武)와 협(俠)이 아직 세상의 이치였을 무렵.

그 땅 위에 천마라 불렸던 한 남자가 있었다.

일컫기를, 그의 힘은 일당천에 달하며.

일컫기를, 그의 주먹은 능히 하늘을 뚫는다하였다.

그 힘은 기세만으로 바위를 깨부수고,

한 걸음의 보법만으로도 가히 천리를 달리니.

무림의 규칙에서 벗어나 홀로 고고하게 선 지존을,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두려움과 경의를 담아 불렀다.

천마(天魔)라고.

···허나, 그토록 위명을 떨쳤던 천마는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어디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로 천 년도 넘는 시간이 흐르고.

무와 협이라는 말이 닳고 닳아, 그저 몽상 속의 헛소리처럼 취급되는 시대에.

“앗 선생님, 잠시만, 잠시만요!”

“어허. 가만히 있으라 하였다.”

“끄, 끄하아앗!”

한 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천마, 강태한.

갑작스레 무림에 떨어졌다가 다시 현대로 돌아온 그는, 대한민국 제일의 안마사로 그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 * *

“···으음?”

강태한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

눈에 익은, 허나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천장이 보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있는 하늘빛 천장.

그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커다란 얼룩을 멍하니 쳐다보다, 강태한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설마··· 돌아왔다는 건가? 다시?”

강태한은 기억을 더듬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백운산의 절벽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여긴··· 원래 자기가 살았었던 방이다.

무림의 천마 강태한이 아니라, 평오대 스포츠의학과 4학년생 강태한이 살았던 방.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광경이 보였다.

싸구려 테이블, 먼지 쌓인 모니터, 큰마음 먹고 샀던 중고 게임기, 구석에 쌓인 빨랫감, 그리고 저녁에 먹으려고 남겨뒀던 치즈피자까지···

이제는 기억도 닳아 꿈속에서도 흐릿하게나 보이던 곳이었는데, 여긴 자신이 사라진 순간부터 1초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그대로였다.

‘환각은··· 아니군.’

정신은 탁한 기색 하나 없이 맑다.

꿈을 꾸거나 환각에 빠져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

강태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득 평소와 다른 이질감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몸 또한 그 때 그대로였다.

천마 강태한이 아닌, 원래 강태한의 몸.

극한까지 단련된 몸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어느 순간부터 바닥을 보이지 않게 된 단전 또한 텅텅 비어있었다.

“허어··· 지금이 꿈이 아닌가 하였거늘.‘

천마였던 자신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래서야.

오히려 그동안의 일들이 꿈이었던 셈이지 않은가.

느닷없이 무림의 세계에 떨어진 뒤 어언 육십 년.

기연으로 얻은 재주 하나로 아득바득 살아남으며 생사의 경지를 수백 번 넘어섰고, 그 흔적들은 그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있었다.

헌데 그 흔적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오른손 한복판에 박혔던 관통상의 흔적도, 가슴팍에 새겨진 검성의 검흔도, 낙인처럼 흉측하게 남아있던 단전의 흉터까지도···

그의 사투들을 증명하던 온갖 흉터들이 모조리 사라져있었다.

“후후, 하하하···”

돌아왔다는 기쁨보다도 허무함이 앞섰다.

그동안의 고생들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느낌을 받은 탓이다.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무얼. 가는 것이 갑작스러웠으니 돌아오는 것도 갑작스러웠을 뿐이다. 그 뿐인 게지.”

허나, 수차례의 주화입마도 뚫고 나왔던 몸이다.

강태한은 한 번 웃음을 터트리는 걸로 머릿속의 잡념들을 날려버렸다.

어쨌거나, 이건 그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다.

원래 시대로 돌아오는 것.

강태한은 현대의 사람이다.

아무리 무림의 세계에 적응하고 주변에서 천마랍시고 떠받드는 위치까지 올라섰다지만, 그에게 그곳은 이계(異界)였고 그는 이방인(異邦人)이었다.

초창기에는 매일 밤 ‘눈을 뜨면 침대 위이기를’ 기도해왔고, 나름 고수의 반열에 든 뒤부터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화등선의 전설을 쫓았다.

물론 이제 와서,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귀환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어찌됐건 자신이 원래 살아가야했을 세상은 여기였다.

‘힘이야 다시 단련하면 그만.’

어찌 보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환골탈태, 반로환동, 혹은 회춘.

그딴 전설 속의 헛소리들을 쫓다가 허송세월을 보낸 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지금 자신은 말 그대로 회춘을 이뤄낸 셈이었다.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가부좌를 틀었다.

‘으음···’

그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희소하긴 하지만, 없는 건 아니군.’

자연 속에서 부유하는 기(氣).

이것을 몸 안에 받아들여 심법으로 갈무리하고, 단전에 쌓아두면 그것이 곧 내공(內功)이 된다.

비록 무림의 세계에 비하면 느껴지는 기가 턱없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니 실망하기엔 이르다.

애초에 여긴 도시 속 자그마한 방 한 켠에 불과하기도 했으니.

“···쯧. 아무래도 불편하긴 하군.”

가부좌를 풀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잠시 집중했을 뿐인데, 벌써 체력이 뭉텅 깎여나간 것이 느껴진다.

이런 꼴이라면 제대로 된 내공운용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먼가.

강태한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나왔다.

- 위이이잉···

그때, 책상 위에서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이 울리는 진동 소리.

···이 소리도 참 오랜만이다.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으며 강태한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강태한님. 교통대금 입금지연으로 미결제시 교통 이용제한이 될 수 있습니다.]

“허어.”

뒤늦게 떠올랐다.

당시 자신의 재정상황이 상당히 여의치 않았다는 것을.

해당 문자는 체크카드의 잔액이 부족하여 당장 대중교통비도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그뿐인가.

그 위에는 집주인의 문자다.

저번 달 월세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확인을 부탁한다는.

“음. 이 또한 하나의 여흥인가.”

순간 동요했지만, 천마답게 한 번 웃음으로 머릿속의 잡념들을 털어냈다···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잔고가 메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할까.

적어도 당장 어떻게 할 계획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원래는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만, 육십 년도 더 지나간 일인데 무슨 생각이 남아있겠는가.

“음?”

카톡!

순간 스마트폰에서 청아한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의 카오스톡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다.

[태한아 오늘 올 거냐 말 거냐 빨리 말해주라]

성현이로 저장되어있는 이름.

누구인지는 금방 기억이 났다.

최성현.

고등학교 3년을 함께 지내고 대학까지 같은 과로 진학한 오랜 친구다.

카오스톡의 스크롤을 올려 그 전에 오갔던 내용들을 살폈다.

[야 너 안마사 아르바이트 좀 해볼 생각 있냐?]

[실장님이 일손 모자라니 좀 구해보라드라고 ㅋㅋ]

[괜찮아 막말로 어깨 주무르는 것 밖에 모르는 애들도 가끔 온다니까? 우리는 관련 학과 다니지, 자격증도 있지, 완전 고급인력이다 ㄹㅇ]

···기억이 났다.

자기가 아는 찜질방에 안마샵이 있는데, 혹시 괜찮으면 거기서 아르바이트 할 생각이 있냐는, 그런 이야기였다.

시급에 성과금도 있어 꽤 짭짤하다고.

‘안마라···’

아마 대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이었을 거다.

본래 맹인에게만 허가됐었던 안마사 자격이 일반인들에게도 허가되었고, 강태한은 그때부터 삼 년가량을 준비해 자격증을 취득해뒀었다.

그러니 최성현의 말대로, 거기서 일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리라.

하지만.

강태한은 잠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피를 묻혀왔던 손이다.

천마에게 안마라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소박하고도 이질적인 단어였다.

강태한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뭐,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자리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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