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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231화 (231/241)

231화. 죽음을 먹는 신 (3)

“오랜만입니다.”

호진은 담담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지켜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도 그렇긴 하구나.”

─호오우

그녀의 어깨에 앉은 이카루스가 그녀에게 머리를 비볐다.

이카루스는 울타의 봉사자.

그녀의 눈이자 귀이며 입이다.

이카루스가 호진과 함께한 모든 순간은 울타가 호진과 함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둘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호진은 침묵을 깨며 물었다.

“어째서 답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녀를 본 순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울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카루스에게 뭔가 변화나, 그녀가 내려주던 권능에 이상이 생겼을 터.

실상은 울타가 호진의 응답에 답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물론 그녀의 침묵이 호진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기는 동안 울타는 호진의 위기를 방관했다.

“제가 뭔가를 잘못한 겁니까.”

“……흠.”

울타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눌러쓴 로브 밖으로 흘러나왔다.

울타는 짐짓 미안해하며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었단다. 아이야. 일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서 말이지.”

“예상?”

호진은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예상. 첫 번째는 네 성장 속도란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괴물 같은 성장세로구나.”

“……저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당신입니다.”

호진이 차갑게 답하자 울타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단다. 네가 진정으로 여신을 죽이리라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말대로다. 나는 지구 측에 힘이 되어줄 신격의 탄생을 원했지만, 적어도 수백 년은 더 이후일 것이라 생각했단다. 지구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그래야 균형이 잡힐 테니.”

“…….”

호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타의 말은 이해가 어렵지 않았지만, 그녀의 진의는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로, 무엇을 위해서.

호진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응시하자 울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돌렸다.

“네게 기대한 역할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여신을 죽이긴 해야 했다. 그것이 지구와 이 세계의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니까. 난 그것이 죽음을 먹는 신, 얀일 것이라 생각했단다.”

울타는 이미 사라진 얀이 있는 방향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도망쳤으니 이제 그 역할은 네 것이다. 아이야.”

호진은 침묵했다.

여신을 만나러 가는 것의 목표는 여신을 죽이는 것.

그 이유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검신입니까? 여신이 집어삼킨 신격이.”

호진의 질문에 울타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이제 와 숨길 것도 없겠지. 용케 그 결과까지 잘 도달했구나.”

호진은 그 정답에 도달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제껏 들은 말들과 지표들이 그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또 혹자는 선신들이 검신을 봉인했다고도…….’

‘정작 릴리 그 아이는 너무 욕심을 내서 잡아먹혀 버린 듯하지만.’

검의 교단 초대교주 게일,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먹는 신 얀과의 대화.

그리고 광증으로 미쳐가는 여신의 신도들까지.

여신이 먹었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신격은 고대신 따위가 아니었다.

한때 그 무엇보다도 강했고, 그렇기에 같은 선신들에게까지 두려움을 샀던 존재.

그럴 존재는 봉인된 검신뿐이다.

그리 생각하던 중이었다.

“미안하구나.”

돌연 울타가 침묵을 깨며 사과를 건넸다.

이에 호진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울타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자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녀는 호진의 한계를 예단했고, 호진의 역할을 마음대로 설정했다.

다만.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

호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며 답했다.

그녀가 자신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울타가 여신을 만나야 한다는 목표를 세워 준 것도, 죽을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해준 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에 울타는 잠시 멈칫하며 호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야 너는……정말 사람을 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그녀는 곤란하다며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단다.”

“……?”

호진의 시선에 울타는 로브를 눌러썼다.

그녀의 그런 행동들과 목소리에선 미안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울타는 고민 끝에 다소 간절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두 번째는 네 목표의 변화란다, 아이야. 이전까지 네 목표는 지구를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세계의 사람들까지 돕고자 합니다.”

호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목표를 답했다.

“그래. 그것이 문제란다.”

울타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자세한 건 말해주기 어렵지만, 지켜져야만 하는 균형이 존재한단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온기가 있으면 냉기가 있듯이. 선함이 있으면 악도 있는 법이다.”

“……그 말은?”

호진은 불안한 느낌을 받으며 답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여신을 죽이고 차원 간의 연결을 끊거라, 아이야. 여신을 죽인 힘이라면 그건 어렵지도 않을 게다. 다만, 이 세계에서도 군림하려고 한다면 난 너를 도울 수 없단다. 그건 균형에 어긋나는 일이니.”

울타는 호진에게 이 세계를 포기하라고 하고 있었다.

호진이 이 세계를 포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시리온도.

신 아쉬나학도.

바락크툼과 동부왕국은 물론 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들과 필멸자들에게 고통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호진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본 울타는 변명하듯 말했다.

“예상만큼 끔찍한 시간은 아닐 게다. 선신들이 등장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지 않느냐. 언젠가 선신들이 힘을 되찾고 나면 그때는…….”

“그때는 다시 살기 좋은 때가 온다고요?”

호진은 울타의 말을 끊었다.

울타는 더 말하지 않고 호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다시 고대신들이 이 땅을 지배하고요. 계속해서 반복될 겁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죽어가겠죠.”

“…….”

울타의 입은 풀로 붙인 듯 열릴 줄 몰랐다.

호진은 그런 그녀를 향해 흔들림 없는 말투로 말했다.

“그리 두지는 않을 겁니다.”

울타는 잠시 그런 호진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가. 하긴 그게 너답긴 하구나. 아이야.”

그게 전부였다.

울타는 그대로 신기루처럼 일렁이며 모습을 감췄다.

무슨 의미일까.

잠시 그리 생각하던 호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명확했으니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

거기엔 지구니 이세계니 하는 조건은 붙지 않았다.

“형, 이야긴 끝난 거야?”

용재였다.

에우리우스의 치료를 끝마친 용재와 도훈은 호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 끝났어.”

“뭔가 심각해 보이던데?”

“별거 아냐. 그냥…… 이제 끝이 가깝다는 것 같네.”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용재는 씨익 웃었고 이에 호진도 마주 웃었다.

그러곤 도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밖으로 나가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조건은 전부 충족되었다.

이제 그동안 미뤄뒀던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었다.

***

─뿌우우우우우

시끄러운 금속 나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대열 정비! 앞 열부터 채워라!”

투구에 색달린 깃발이 달린 백인장 이상의 지휘관들이 목이 터지라 소리를 높였다.

이에 갑옷을 챙겨 입은 병사들이 차례로 배에서 내려 진열을 맞춰 섰다.

하선한 병사들이 해안가를 가득 메우고 제국을 상징하는 제국기가 사납게 펄럭였다.

─푸르릉

배로 수송해온 말들은 이미 땅에 내려 컨디션을 회복한 지 오래였다.

투레질을 하는 말의 머리 위로 마구들이 씌워지고 그 위로 하나 둘 기사들이 올라섰다.

그런 기사들의 앞으로 한 갈색 머리를 한 기사가 섰다.

사자 갈기 같은 풍성한 머리와 수염을 휘날리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좌중을 훑었을 뿐인데 기사들의 몸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주목!”

─찌릿

그 쩌렁거리는 외침에 말들이 놀라 몸을 떨었다.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푸른 사자 기사단.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단장 푸른 사자 기사단장이 바로 그였다.

“놈들은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가하고 아직도 무단으로 제국의 땅을 점거하고 있다.”

지난 대치 때 소문의 난쟁이들의 영웅왕, 떠오르는 동부 왕국의 신성 아르바흐 왕의 사자가 전한 이야기가 있다.

일주일.

그것이 제국군이 기다려주기로 약속한 기한이었다.

하지만 칠 주야가 지나고 날이 밝은 오늘날까지도 놈들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건방진……소문도 믿을 게 못 되는군. 고작 저 정도 병력으로 건방이나 떨다니.’

기사단장은 표정을 일그러트리기도 잠시 크게 소리쳤다.

“약속한 기한이 지났다! 하지만 놈들이 이 땅에 남아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뿐.”

그의 목소리에 거친 야성과 서늘한 살기가 깃들었다.

병사들은 연설을 듣기만 해도 피가 끓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수백의 전장을 내달린 노장의 포효였다.

“제국은 철과 피로 말한다! 황제 폐하께 영광을!”

“영광을!”

기사들이 절도 있게 발검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날이 선 검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고 그들의 기세는 그 무엇도 꺾을 수 없을 듯 보였다.

제국군의 진형이 움직이려는 그때였다.

─크르르릉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낮고도 깊은 짐승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병사들의 발을 붙잡았다.

검은색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를 지나 날아갔다.

“저게 소문으로 듣던 그 고룡인가.”

기사단장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제국군의 머리 위를 통과해 시리온의 병사들이 모인 곳까지 날아간 용은 가장 선두에 내려앉았다.

그 용의 등을 타고 한 존재가 내려섰다.

“영웅왕 아르바흐.”

키는 작지만 커다랬다.

잘 단련된 근육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존재감이 그랬다.

“아주 허명은 아니었나.”

기사단장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르바흐는 강자의 반열에 오른 자가 분명했다.

그 특유의 기운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싸워 보고 싶군.”

오랜만에 보는 강자였기에 기사단장은 호승심이 일었다.

하지만 개인의 무력과는 별개로 그의 판단력에는 깊은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 어리기 때문인 걸까.

완전히 잘못된 선택을 했다.

‘전력에서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이쪽은 제국군의 극히 일부.’

10개의 군단으로 이루어진 제국군, 그중 제4군단.

상비군 오천에 징집병 일만 오천으로 이루어진 이 정예 병력은 제국의 입장에선 잃어도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병력이다.

만약 4군단이 패퇴한다 해도 그 뒤를 이어 재차 병력들이 파견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병력은 시민들까지 가까스로 끌어모아 일만이 될까 말까였다.

하물며 공성전을 해도 이길까 말까 한 승부에서 야전이라니.

자존심이 판단을 망친 걸지도 몰랐다.

기사단장은 멍청한 상대의 판단에 김이 새버렸다.

그때였다.

아르바흐의 뒤로 푸른 게이트 하나가 일렁이며 생겨났다.

“저건 또 뭐야.”

그러고 보니 난쟁이들과 시리온에서 게이트를 사용하여 오고 간다는 첩보를 들었다.

신들의 권능이라 볼 수 있는 게이트를 이용한다는 그 말에 반신반의했거늘.

그걸 눈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건가?’

기사단장이 긴장하며 게이트를 노려보던 그 순간 그곳에서 5명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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