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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208화 (208/241)

208화. 신화 속 결투 (2)

「체력이 2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스킬 광전사의 분노가 활성화됩니다.」

「일정량 이상의 피를 쏟았습니다. 스킬 전쟁의 신의 부름이 활성화됩니다.」

「흥분으로 인하여 고통 내성이 활성화됩니다」

「출혈 내성이 활성화됩니다」

「자연치유가 활성화됩니다.」

─우득 지직

용재의 몸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부러진 뼈가 이어져 붙고, 찢어진 근육이 복구된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분노가 뇌를 엉망진창으로 휘저어놓았지만, 이에 휩쓸리면 그냥 짐승이 될 뿐이었다.

분노가 가져다주는 힘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만 했다.

머리를 식히며 용재는 괴물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랑

녀석의 주먹을 막아낸 용재의 도끼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보인다.’

아까와는 달리 놈의 움직임이 조금은 눈에 익었다.

신체 능력이 향상되었고, 무엇보다 놈의 속도가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용재의 움직임이 의외였던 건지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재차 소나기 같은 연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쩌정 쩡

용재의 악문 이 사이에서 침과 피가 흘러내렸다.

가끔 막지 못한 주먹과 발길질이 팔과 다리를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살이 터지고 뼈에 금이 갔지만 그 정돈 괜찮았다.

다만 실수로 정타를 허용한다면 아까와 같은 경직이 발생할 거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얼마큼의 공격을 막아냈을까.

상대는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반면 용재의 팔다리는 누적된 충격에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더 이상 얻어맞았다간 반격을 해보기도 전에 질 것이 뻔했다.

‘해보자.’

용재는 이를 악물고 발에 기를 집중했다.

─스슥

다음 순간 상대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보법을 밟은 용재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상대의 뒤쪽으로 빠져나갔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호진의 환령보를 용재 나름대로 개량한 보법이었다.

‘됐다!’

용재는 기뻐하기도 잠시, 있는 힘껏 무방비한 상대의 등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도끼가 놈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덥썩

놈의 등에 위치한 팔 중 하나가 도끼가 채 뻗어지기도 전에 정확히 잡아낸 것이다.

‘어떻게?’

용재는 놀라 중얼거렸지만 금방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뒤룩

놈의 어깨에 눈꺼풀을 끔뻑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알 하나가 보였다.

아니, 자세히 보면 하나가 아니었다.

몸 이곳저곳에서 눈들이 뒤룩거리며 상하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애초에 놈에겐 사각 따위가 존재하질 않았던 것이다.

여섯 개의 팔은 사위의 모든 방향에서 공격과 수비가 가능했으며, 몸 이곳저곳에 박힌 눈동자는 주변의 시야를 한 치의 사각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 괴물이…….”

용재의 중얼거림은 놈의 발차기에 끊겼다.

도끼조차 놓친 용재는 간신히 양팔을 교차해 놈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양팔의 뼈가 부러졌지만 말이다.

이를 지켜보던 드라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법이었지만…… 이제 끝이군.”

몸은 망신창이에 사용하던 무기조차 잃었다.

결투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 했다.

첫 번째 결투의 승자는 자신들의 것이 분명했다.

승리를 확신한 드라칸이 고개를 돌려 호진 쪽을 바라봤고,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웃어?’

드라칸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였다.

“아오. 아파라.”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는 용재가 우득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무기도 잃었고 몸은 자신의 피로 피칠갑을 했다.

그럼에도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 상황에서 웃는다고? 허세인가?’

그건 아니었다.

수천 년간 인간의 죽음을 목도해 온 드라칸이 허세를 구분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용재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모조리 힘을 짜냈음에도 상대가 되지 않는 상대를 만난 것이 신나고 신나서.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전투가 너무나 즐거워서.

용재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피로 피를 씻고, 강철을 휘둘러 피에 젖은 모래를 털어낸다.

상대와 목숨을 건 대결이야말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수라장을 헤쳐 나오며 완성한 용재의 근원.

죽이지 못한다면 죽으리라.

그것은 분명 결투의 형태를 닮아 있었다.

“투신전(鬪神殿).”

용재가 사납게 말을 씹어뱉는 그 순간.

하늘에서 거석들이 떨어져 내렸다.

용재와 괴물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싸며 떨어져 내린 거석들.

하나하나가 고층 빌딩에 맞먹는 거대한 거석에는 수많은 전사와 괴물들의 조각들이 자리해 있었다.

“이건 혹시……?”

드라칸이 눈을 잘게 떨며 떨어진 거석들을 바라보자, 호진이 입을 열었다.

“저곳은 용재의 성역.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전장이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그 말대로였다.

드라칸조차 투신전의 안을 바라보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안쪽에는 조금도 간섭할 수 없는 강제력이 느껴졌다.

어둑해진 투신전의 내부.

─화륵

거석에 달린 넓은 접시 모양의 화로에서 푸른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총 여덟 개로 이루어진 거석에 모두 불이 피어오르자 내부가 환하게 빛났다.

그 찬란한 빛 아래에서 용재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어떤 사람이 그 당당한 걸음걸이를 보고 그가 수세일 거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육비의 괴물은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듯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이내, 용재를 향해 마주 걸어 나갔다.

“투귀라고 불렸다고?”

용재가 피식 웃으며 이어 말했다.

“첫 손님으로 더할 나위 없네.”

“…….”

투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뻗을 뿐.

─스슥

용재의 신형이 일렁이며 주먹을 흘렸다.

이에 투귀는 움찔하기도 잠시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무슨 일일까.

한 번, 두 번.

투귀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나중에 이르러서는 일전의 소나기 같은 주먹의 연격이 쏟아졌으나 결과는 같았다.

용재는 무수히 쏟아지는 공격을 가볍게 흘리거나 스텝을 밟아 여유롭게 공격을 피해냈다.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움직임에 드라칸은 침음을 흘렸다.

“……힘을 숨겼었나?”

“그럴 리가.”

호진은 고개를 저어 답했다.

“성역 투신전. 나조차 저 성역 안에선 긴장을 풀 수 없어.”

호진은 일전에 용재의 부탁으로 대련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힘과 속도 모두 이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해졌던 기억이 났다.

원래 작든 크든 자신의 성역 안에서 신들은 강해지기 마련이었다.

용재는 그 정도가 큰 편이었고 말이다.

대답을 들은 드라칸은 인상을 찡그리며 재차 물었다.

“왜 진작 쓰지 않은 거지?”

“사용조건이 까다롭거든.”

용재의 ‘투신전’은 상대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만한 대적자라고 판단이 서야만 발동이 가능한 것으로 추측되는 성역이었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용재 자신은 어쩐지 확신하는 듯했다.

***

용재는 짜릿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이거지!’

고개를 젖히자 투귀의 주먹이 그 자리로 뻗어졌다.

공기가 찢어지고 터지며 그 저릿한 감각이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투신전이라 해도 용재를 무적으로 만들어주진 못했다.

지금 피해내고 있는 주먹 한번, 발길질 한 번에 생명이 오고 간다는 말이다.

그 사실이 용재를 더 흥분되게 만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격을 피하며 용재가 주먹을 뻗었다.

─퍽

붉고 단단한 근육질의 피부를 때린 용재는 웃음을 터트렸다.

단단했다.

철을 때려도 이보다 단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용재는 좌절하기보단 즐거움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공격이 닿았다는 것이었으니까.

─움찔

투귀도 여섯 개의 팔을 뚫고 자신의 몸에 공격을 꽂아 넣은 용재에게 놀라 잠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미한 피해에 비릿하게 웃음 지으며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얼마든지 더 때려보라는 듯.

“난 한 대라도 맞으면 죽지만, 정작 상대는 얼마나 때려야 죽을지 모른다, 라…….”

잠시 중얼거리던 용재의 고개가 비딱하게 꺾였다.

“재밌겠는데?”

그 말과 동시에 신형이 흐릿해진 용재는 어느새 투귀와 가까워졌다.

투귀가 채 반응하기도 전 두 번의 주먹을 투귀에게 꽂아 넣었다.

그러나 역시 피해는 미비, 투귀의 여섯 개의 팔이 목표를 포착하고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이에 용재는 빠르게 움직이며 연격의 범위를 피하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팟 파밧 퍽

대충 수십의 주먹을 피하고 흘리면 한두 번의 주먹이 투귀의 몸에 꽂혔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투신전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놈의 주먹은 여전히 빨랐고 여섯 개의 주먹이 한 지점을 때리기 시작하면 그 속도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 소나기 같은 연격을 피하면서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용재가 투귀를 때리기 위해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연격의 범위에서 벗어나야 했다.

‘움직여. 계속. 빠르게.’

발이 땅의 모래를 박찼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타고 들어가 뜨거운 공기가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온몸이 달궈진 쇠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느새 용재의 피부색도 투귀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붉게 타올랐다.

‘더 빨리.’

심장의 박동이 더 가파르게 속도를 높였다.

엔진이 돌아가듯 가속화된 심장은 끊임없이 피를 온몸의 근육으로 전달시켰다.

그러나 이걸로도 모자랐다.

이미 놈이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 용재의 주먹은 여러 번 놈의 몸을 때릴 정도로 속도가 올라갔지만, 피해는 여전히 미비했다.

“더!”

그리고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용재는 몰랐지만, 고도로 집중된 감각과 타오르도록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을 내리던 뇌가 각성한 까닭이었다.

주마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몰아라고 부르기도 하는 현상이었다.

고도의 집중 끝에 다다른 신비의 영역.

용재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각성 이후 짐작조차 가지 않았던 스킬, 무극(武極).

‘지금이라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용재는 느리게 뻗어지는 투귀의 주먹들의 궤도를 피해 놈의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공격을 피하는 것은 쉬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관조다.

모든 게 느릿하기 때문일까? 마음이 한층 여유로웠다.

지금이 목숨을 건 생사결 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몸에서 일주천한 기운이 어디로 흘러야 하는가.

처음에는 다리다.

대퇴근을 타고 내려간 기운이 발끝에서 터져 나오며 지면에 거목처럼 우뚝 자리했다.

앞으로 튀어 나가려던 몸이 우뚝 선 다리로 인해 관성의 힘이 작용했다.

그 힘을 조금도 흘리지 않고 끌어모은 용재는 상체를 가속시켰다.

허리가 돌아가며 뒤로 젖혀졌던 어깨와 상체가 탄력적으로 당겨졌다.

그것은 이미 주먹이 아닌 거대한 기가 휘몰아치는 폭탄.

“발경(發勁).”

용재는 주먹을 투귀에게 뻗으며 기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무극의 힘을 빌려 그것을 자신만의 기술로 채화해냈을 뿐, 그건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었으니까.

그리고…….

─쩌엉

용재의 주먹이 휘둘러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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