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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204화 (203/241)

204화. 일인군단 (3)

“이거 참…… 반가운 얼굴들이네요.”

호진은 회의실에 모인 면면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게…….

“호진님!”

강화도부터 함께한 군 측 인사 주 대위.

리자드맨 공략전을 함께한 30여단 연대장 김정연.

샴 처치를 지휘한 수도방위사령부의 이하균 중장까지.

“오랜만입니다, 주 대위님.”

“앗, 이제 대위가 아니라…… 아니 됐습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이후로 2계급이 더 올라 중령이라 불러야 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연대장이었던 김정연도 소장이.

이하균 중장도 대장이 됐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는 많은 이들의 자질을 시험했고, 증명하지 못한 이들은 나가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수많은 경질 끝에 지금 군의 요직은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꿰차게 됐다.

“일부러 자네와 안면이 있는 분들로 모았네.”

“협회장님.”

호진은 옆에 서서 인사를 기다리던 협회장과 악수를 나눴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령관님은?”

호진의 물음에 이하균이 민망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

“저입니다. 지금은 지상 작전 사령부의 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 축하드립니다.”

호진은 진심으로 그 사실을 기뻐했다.

사령관이랍시고 자신과 또 기 싸움을 하려 드는 인물이 나왔다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여차하면 실력행사를 조금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힘을 뺄 필요는 없을 듯했다.

호진은 거두절미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사령관은 곧장 호진을 지도 앞으로 안내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이곳 의정부를 시작으로 몇 겹에 달하는 북부 방어선을 형성했습니다. 그중 가장 최전선은 이곳들이죠.”

파주, 연천, 철원, 양구, 고성까지.

길게 늘어진 방어선에 붉은 점들이 위치해 있었다.

병력들이 밀집해 있는 부대들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방어선을 급하게 구축하긴 했지만, 결코 허술하지는 않았는데…… 괴물들이 저희의 예상을 크게 상회했습니다. 설마하니 수 킬로미터에 깔린 지뢰밭을 그렇게 넘어올 줄은…….”

“지뢰밭을요?”

호진의 물음에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싼 사령관이 말을 이었다.

“예, 놈들은 마치 아프리카의 누 떼가 강을 건너듯 지뢰밭을 건넜습니다. 선발대가 말 그대로 자신을 희생해 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 남하한 겁니다. 단순히 지성이 없는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더군요.”

부산에서도 그랬지만, 놈들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전술을 사용할 줄 알았다.

고통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말 그대로 불사의 군세.

호진도 놈들의 무서움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방어선 중 가장 위험한 곳은 어딥니까?”

“사실 전부가 간신히 틀어막고 있는 격이긴 합니다만…… 그중 가장 위험한 곳은 철원입니다.”

“철원이요?”

호진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분명 가장 먼저 방비를 시작해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했다던 곳이었기에.

“그렇습니다. 북한의 경계를 뚫고 그들을 유린했다던 놈들이 그쪽으로 내려온 모양입니다. 손쓸 새도 없이 밀려버린 바람에 방어선을 복구하기 위해 지원군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호진은 침묵했다.

곧장 강화 캠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 했는데, 상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그때 호진의 고민을 눈치챈 협회장이 입을 열었다.

“강화도 캠프 사람들도 철원으로 향했네.”

“지원군으로 말입니까? 누가 지시한 겁니까?”

호진은 놀라기도 잠시 불쾌한 기운을 슬며시 드러냈다.

이야기에 따르면 철원은 사지였다.

그런 곳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밀어 넣었단 말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에 당황한 협회장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지시한 게 아니네. 그들이 자처했어. 우리만큼이나 전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더군. 위성이라도 갖고 있는 건지. 원. 흠흠.”

호진은 금세 기세를 가다듬고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오해했네요.”

잠깐이었지만 그가 흘린 기운에 협회장은 물론 다른 이들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측정 불가.

그들은 호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호진은 그들로서는 감히 예단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간단하군요. 저희가 먼저 철원으로 가서 구출작업과 방어선 구축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이쪽도 준비되는 대로 움직이지. 안 그래도 지금 이곳으로 병력들을 집결시키고 있네. 부산 대표는 물론이고 경호차장과 흑색 창부대 그리고 A급 헌터들 대부분이 이곳으로 모일 걸세. 드루이드 이 양반은 이럴 때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협회장의 말에 호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런, 제가 깜빡하고 말씀을 안 드렸네요. 드루이드님이라면 저와 함께 왔습니다.”

“뭐? 어디서 뭘 하다가…… 아니, 고맙네. 이제 한숨 돌리겠군.”

협회장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의자에 늘어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이 크게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전장의 흐름을 바꾸는 건 자신이 아닌, 눈앞의 남자일 터.

협회장은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군대와 헌터들을 이끌고 그를 조력하는 것.

그것이 이번 방어전에서 그가 해내야 할 일이었다.

협회장은 호진과 눈을 마주치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하네.”

"맡기십시오."

이에 호진은 이에 옅게 웃음 지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것뿐이었지만 회의장에 모인 모두는 더없이 든든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

“생존자 구출 완료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합류한 병력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서의 질문에 부관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C급 B급 헌터 삼십여 명과 군인 이백여 명이 새로 합류했습니다. 포대도 두 군데 되찾아서 전선은 빠르게 안정화가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기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과감하지만 강화도 지원군은 놈들의 허리를 끊고 들어가 최전선을 복구했다.

대부분의 견인포와 자주포 그리고 전차들이 전선에 밀집해 있기도 했고, 끝도 없이 내려오는 놈들을 저지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생존자들은 슬슬 한계였을 테니까.’

기서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보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른 지원군들이 남쪽에서 올라올 때까지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포위될 수 있는 양상이지만…….’

기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강화도에서 키워온 힘은 이곳에서도 충분히 통했다.

일반 골렘 500기, 수비에 특화된 미들급 골렘 T형 100기와 공격에 특화된 A형 50기.

무엇보다 A급 헌터도 애먹는 거인을 일격에 으깨버린 타이탄 1기가 있다.

게다가 15개의 조로 이루어진 헌터들은 이미 모두 B급 수준의 실력에 다다랐고, 뭉쳐서 싸운다면 능히 A급에 달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늑대에 기승한 감시단 30명도 전장을 누비며 정보를 수집하고 게릴라전을 펼쳐주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헌터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자를 모아놓은 1조.

자신을 포함한 그들은 이제 A급의 헌터로 보아도 무방했다.

그중 조장인 기서는 특히 실력이 뛰어났고 말이다.

그게 끝이 아니라 수십 대의 전차들과 1개 여단급 병력이 그들을 지원했다.

규모만 보면 강화 지원군이 그들을 지원하는 꼴이었지만, 명백히 탈환 작전의 핵심과 주력은 지원군 쪽이었다.

아니, 누가 주력이냐 그런 문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찌 됐든 작전은 잘 통했고 이제 버티기만 하면…….’

기서가 간절한 마음으로 북쪽 너머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지직

거친 소리를 토하는 무전기가 정적을 깼다.

[……단 ……여기는 감시단. 들리나?]

“들린다. 보고하도록.”

지금 감시단에서 연락이 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전 너머의 목소리가 잔뜩 긴장했기 때문일까.

기서는 왠지 꺼림칙한 느낌을 느끼며 무전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남쪽 경계 근무 중인 감시단 인원들의 연락이 끊겼다. 12명 모두. 남은 감시단 인원들을 모두 모아 상황을 파악도록 하겠다. 정찰 허락 바란다.]

감시단과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집단이지만, 어찌 됐든 이번 지원군의 책임자는 기서다.

그렇기에 감시단 조장은 그것을 배려해 연락해 왔지만, 만약 기서가 불허한다고 해도 움직일 게 분명했다.

‘그래, 이렇게 일이 쉽게만 풀릴 리가 없지.’

기서는 한숨을 가볍게 내쉰 후 무전을 했다.

“……감시단의 정찰 요청을 허락한다. 단,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말고 뭔가 발견한다면 그 즉시 보고하도록. 이해했나?”

[……그렇게 하지.]

그것을 마지막으로 무전이 끊겼다.

감시단은 자신들의 부단장인 도훈을 빼다 박은 듯 무뚝뚝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맡은 바 임무를 결코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모두 연락 두절 됐다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부관 헌터 1조를 소집해 주세요. 타이탄 1기와 미들급 골렘 A형 50기도 함께 후방으로 이동시켜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불안한 표정으로 무전을 듣던 부관은 즉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기서는 한숨을 쉬며 무기를 정비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

─사그락 사그락

풀을 헤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잔뜩 곤두세운 신경 탓에 마치 천둥 벽력이 치는 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에 즉시 멈춰선 감시단 조장이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리자, 뒤따르던 병사들이 멈춰 섰다.

그 즉시 핸드건을 빼 들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이들.

물이 흐르듯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좌측 풀숲 너머다.’

소리가 나는 위치를 파악한 조장은 늑대에서 내려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감시단들은 그의 수신호에 따라 절반은 남고, 절반만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떨어진 낙엽들을 밟고 지나가면서도 조그만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감시단의 훈련이 은신과 정찰 그리고 기습에 특화된 까닭이다.

소리를 지우는 것은 그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기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점점 커지는 바스락 소리.

하지만 정작 조장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약간 맥이 빠졌다.

‘생명체가 내는 소리가 아니군.’

풀잎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그네가 흔들릴 때처럼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에 쓰레기라도 매달린 건가?’

조장이 그런 생각을 하며 시야를 가리는 풀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장면.

그 모습을 보고, 조장은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끼익

밧줄에 묶인 물체가 좌우로 흔들린다.

마치 메트로놈의 추와 같이.

똑딱 똑딱.

그것의 발아래로 흘러내린 선혈이 떨어지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익숙한 복장이다.

그야 당연했다.

짙은 군청색의 코트는 공방에서 만들어낸 감시단만의 정복이었으니까.

그러나 밧줄이 매인 목 위에 모습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곳엔 그들이 기승하는 회색 늑대의 머리가 내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으득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장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누가 이런 짓을…….’

언제나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는 감시단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견디기 힘든 충격.

머리가 뜨겁게 달궈지던 그 찰나, 조장은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바닥에 떨어진 피들이 응고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바람조차 불지 않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죽은 감시단이 매달린 것은 조금 전이고, 그 말인즉슨 매단 이가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유인당했다.’

조장은 머리에 냉수를 들이부은 듯한 충격과 함께 몸을 일으키며 뒤돌아섰다.

그는 볼 수 있었다.

감시단원의 목을 들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피에 젖은 괴물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 정도의 인원이 당하는 동안 그 어떤 소리도 말이다.

도망치기란 불가능.

조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다.

“여기는…… 꾸륵.”

그러나 그가 무전을 하려는 그 순간, 무언가가 목을 꿰뚫었다.

목구멍에서 쏟아진 피가 폐에 차올라 자꾸만 꾸륵거리는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조장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척추에서부터 목을 관통한 붉은 색의 말뚝이 자신을 몸채로 들어 올린 것이다.

‘보고를…….’

아득해지는 정신 속 무전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직

[무슨 일입니까. 조장, 대답하세요.]

무전기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 그것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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