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일인군단 (2)
“정신 차리고 포대 사수해! 여기가 무너지면 전부 무너진다!”
악을 쓰듯 소리를 지르는 대대장을 향해 한 병사가 울먹이며 되물었다.
“이거 안 됩니다. 대대장님. 저 진짜 살고 싶…….”
병사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콰직
멀리서부터 날아든 바위 하나가 병사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으깨진 고기 조각만이 겨우 병사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대대장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 해조차 나지 않은 어두운 새벽일 터지만, 조명탄과 라이트들이 파주의 임진강 유역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차라리 조명탄을 쏘지 말 걸 그랬군.’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괴물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군인들은 자리를 이탈해 도망을 쳤고, 남은 이들도 그저 눈앞의 괴물들을 향해 총을 쏘기 바빴다.
이미 자신의 목소리는 저들에게 닿지 않았다.
닿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타다다당
총구에서 뿜어지는 불길이 실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밤이기에 차갑게 식어가는 총구가 더더욱 눈에 띄었다.
강 유역에서부터 하나둘 사라져가는 불꽃들.
이곳 포대가 무너지면 끝이다.
포대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방위선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터였다.
그렇기에.
“조금만, 좀만 더 버텨라! 곧 지원군이 온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희망을 부르짖으며 군인들을 격려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헛된 희망일지라도.
어느새 들려오는 총소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포대와 그 주변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게 전부.
“아.”
대대장은 포대를 넘어서 뻗어오는 손을 보며 입을 벌렸다.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손.
저것이 수십의 곡사포와 포대를 무너트린 바위 세례의 주인공일 터다.
거인.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이들.
성인 남성이 종아리에도 못 미칠 덩치의 괴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상실케 했다.
─덥썩
거인은 곡사포 한 문을 장난감처럼 낚아채더니 곧장 대대장을 향해 내던졌다.
‘끝이다.’
대대장이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쿵
무언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대한 팔과 몸은 거인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무슨…….”
대대장은 아연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기도 잠시, 문득 교전 전 사단장에게 무전으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조금만 버텨! 강화도에서 지원군이 온다고 했으니까.’
“물러나세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대장은 화들짝 놀랐다.
처음 보는 초록색 롱코트를 입은 남자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누구냐고 물으려던 그 순간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타이탄은 아직 실험 중입니다. 정교함이나 숙련도가 부족해요.”
“예? 그게 무슨…….”
─끼이이이이익 푸슉!
대대장의 목소리는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타이탄이라 불린 거체가 돌연 증기를 내뿜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을 내뻗어 거인을 타격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져나가는 거인을 보며, 대대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곡사포에도 꿈쩍하지 않던 괴물이 무른 호박처럼 으깨진 것이다.
당연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대대장은 다급하게 남자에게 소리쳤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미 늦었습니다.”
손을 쓰기에는 적들이 너무 깊숙하게 들어오게 뒀다.
자신들이 물러난다면 임진강을 따라 형성한 북부 방어선도 무너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탈환하더라도 지금은 물러날 시간이었다.
봐라. 저 끝도 없이 몰려오는 괴물들을.
불사의 신의 군세.
거인은 물론이고 인간과 짐승의 형태를 한 것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괴물들이 빼곡하게 이쪽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타이탄…… 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강력한 병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의 병력 차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대장이 대답을 기다리던 그때, 남자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늦었군요. 아니, 타이탄이 조금 빨랐나. 다음에는 조절해야겠습니다.”
“……?”
대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 찰나 대대장의 뒤쪽에 음영이 드리워졌다.
그제야 들리는 소음들.
─철그럭
그것은 무수한 철들의 행군 소리.
“미들급 골렘 T형 1진 전진.”
─키이잉
일렬로 선 철의 방벽이 살아 움직인다.
적의 살과 뼈를 분쇄하는 거대한 철벽을 보며 대대장은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뒤로 창과 방패로 무장한 수백의 인원이 뒤를 따랐다.
그들을 향해 남자가 무전으로 명령을 내렸다.
“레기온들 좌익 우익 전개. 집어삼킨다.”
─척
한순간 기계처럼 전진 방향을 바꾼 방패병들은 무서운 기세로 움직였다.
그들은 눈앞을 가로막는 덩치 큰 놈들에겐 수십 개의 투창을 날렸고, 작은 놈들은 방패로 내리찍었다.
그들의 창과 방패 아래 괴물들은 제대로 공격 한번 못 해본 채 쓰러져갔다.
어디서 이런 헌터들이 튀어나온 걸까.
아니, 이들을 헌터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군단…….”
자신들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군율이 몸에 밴 움직임을 보자 군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대장의 혼잣말을 들은 남자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대대장은 그제야 자신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떻습니까. 퇴각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요?”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대대장은 매우 놀랐지만, 그럼에도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
그것이 상관들이 모두 죽는 동안 그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였다.
이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슬슬 때가 됐을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남자의 무전이 지직거리며 울렸다.
[여기는 레기온 좌익. 진형 구축 완료.]
{여기는 레기온 우익. 이쪽도 완료됐다. 포격 지원 바란다.]
“확인. 입력된 좌표로 포격을 실시.”
남자의 명령이 떨어진 그 순간.
─쾅 콰과광!
어둠 속에서 시뻘건 불이 뿜어졌다.
새롭게 구축된 방어선 너머로 굉음을 울리며 포탄들이 떨어져 내렸다.
전방에 모든 땅을 평평하게 만들 기세로 쏟아붓는 포들을 보고 대대장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많던 괴물들이 완벽히 무력화된 것이다.
‘이게 일개 캠프의 지원이라고?’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지원군을 보냈다고 하면 납득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다고 한들 이와 같은 위용을 보이긴 어렵겠지만.
“화망 구축할 수 있겠습니까?”
“해, 해보겠습니다.”
대대장은 다급히 남은 군인들과 포들을 재확인했다.
군인들의 수는 많이 줄었지만, 불행 중 다행이랄까 포들은 아직 무사했다.
포대와 그 주변이 가장 깊숙이 위치한 까닭이었다.
“좌표는 고정된 위치로. 포격 개시한다!”
대대장의 명령에 멈췄던 포들이 다시 임진강 너머를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휼륭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부관 현재 상황은?”
“이쪽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괴물들의 수도 크게 줄어서 기존의 군대만으로 전선 유지 가능합니다.”
그 말에 남자, 아니 헌터 1조 조장 기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서의 얼굴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전장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겠지.’
예상보다 적들의 공세가 거셌다.
이에 북부 방어선은 시작부터 휘청이기 시작했다.
아마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울이 위험해질 터.
서울까지 밀린다면 그건 이겨도 이긴 싸움이라 할 수 없다.
“다음 전장은?”
“……철원입니다.”
“철원?”
기서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이에 부관은 덤덤하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너무 빨리 밀려버리는 바람에 병력 일부가 고립됐다고 합니다. 그들을 구출하며 밀린 방어선을 복구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어야겠네요.”
기서는 쓰게 웃음 지었다.
가장 준비가 철저했던 지역 중 하나인 철원이다.
그곳이 한순간에 밀린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정체 모를 위험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유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적들의 진격을 늦출 수 있다면…….
‘그분이 온다.’
그렇다면 분명 희망은 남아 있었다.
***
“도착이다.”
완전히 해가 뜬 아침.
짧지만 꿀 같았던 휴식을 취한 일행들은 새벽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끝내 북부 방어선의 시작이자 마지노선인 의정부에 도착했다.
탄탄한 방비가 되어 있는 시설들을 보며 일행들이 감탄을 흘리던 그때.
“우에에엑.”
청랑 위에서 급하게 뛰어내린 가을은 시원하게 토를 게워냈다.
도훈이 얌전히 자라고 했음에도 이동하는 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끝내 멀미가 온 것이다.
비단 힘든 건 그녀만이 아니었는지, 드루이드도 파리해진 얼굴로 흙바닥에 드러누웠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호진은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S급이라는 분이 고등학생이랑 똑같으시면 어떡합니까?”
“원래 나이가 차면 체력이 아이 같아지는 법입니다. 호진님도 나이 들어 보십시오.”
“……그거참.”
아직 젊은 이상 할 말은 없다.
호진은 뺨을 긁적이며 하야에서 내렸다.
그나마 상태가 좋아진 것은 용재와 도훈 그리고 자신뿐이었다.
“그럼 쉬고 계십시오. 저희 먼저 이야기 좀 듣고 있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우웁. 감사하죠.”
호진은 토기가 올라오는지 입을 틀어막는 드루이드로부터 재빨리 멀어졌다.
지금부터 분명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야 할 텐데, 토를 묻히고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 같아선 곧장, 강화 캠프 지원군이 있다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우선은 자신들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전황에 대해 전해 들을 필요가 있었다.
“정지. 정지!”
부대 초입에 선 병사 둘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전시에 걸맞게 날이 바짝 선 모습이었다.
이에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호진이라고 합니다.”
“이호진? 그게 누구……!”
암구호도 대지 않고 이름을 밝히자, 군인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측정 불가…… 이호진 님 맞으십니까?”
“네, 그렇겠네요.”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군인들의 입이 벌어져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이에 잠시 기다리던 호진은 재차 그들을 불러야 했다.
“저기…….”
“시, 실례했습니다! 팬입니다. 아니, 이게 아니라. 그 협회장님과 사령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령관?
호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협회장이야 기다릴 거라는 걸 알았다.
애초에 출발하기 전에 연락을 하고 왔었으니까.
하지만 사령관이라니.
‘엄청 높은 거 아닌가?’
“…….”
전 직업군인 출신 도훈의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확실히 높은 계급이긴 한 모양이다.
뭐 자신이야 의경 출신이라 잘 실감은 안 나지만 말이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앞서 자신을 팬이라 소개한 군인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경계 근무 중에 안내를 해도 괜찮을 걸까.
뭐 호진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