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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201화 (200/241)

201화. 무녀와 신 (6)

희한한 장면이었다.

결코 빠르지도 강력하지도 않은 검이었다.

하지만 호진은 그런 움직임으로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듯 화려하게 움직이면서 그 속에 예리함을 감췄다.

빨라지는가 싶으면 느려지고.

화려하다 싶으면 단조로웠다.

호진은 종잡을 수 없는 자신만의 템포로 리듬을 타며 상대를 압박했다.

이를 지켜보던 도훈은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힘도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상대가 쩔쩔매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호진의 검술 실력이 상대보다 훨씬 위에 있다는 의미였다.

“굉장하시군요. 존자께서는.”

그때 옆에서 그 장면을 함께 바라보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이에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해냈지.”

그리고 그런 호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신도 변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앞서 나가는 그를 뒤쫓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런 도훈을 잠시 바라보던 노인은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부탁하신 대로 시간은 벌어드렸습니다.”

호진과 노인의 주위에 그려진 오행진 하나.

시체들은 더 이상 도훈과 접근하지 못한 채 주변을 서성일 뿐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안 보인다는 듯.

덕분에 여유가 생긴 도훈은 숨을 고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단장이 노인에게 말했듯, 지금은 우세해 보여도 시간문제다.’

호진이 가을의 몸에 머물 시간이 길 리도 없을뿐더러, 단검의 힘도 점차 돌아오고 있었다.

호진이 하얀 가면을 쓰러트릴 수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쓰러트려야 한다.’

도훈은 끊임없이 상대의 움직임을 눈에 담으며 동시에 기억을 더듬었다.

말을 포함한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안다면 놈의 약점도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선, 도훈의 공격이 놈에게 가로막힌 이유는 간단했다.

단검에서 나온 검은색 불꽃의 장막.

그것을 뚫을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도훈은 어떤 상대라도 유연하게 상대할 수 있는, 소위 유틸리티가 뛰어난 타입이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뛰어난 장점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특히나 부족한 것은 치명적인 필살기.

즉, 공격력이다.

도훈은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대신, 주력으로 다루는 무기가 없기에 실력에 비해 강력한 한방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 단점을 핸드건 같은 화기로 대체하고 있었지만,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강한 한 방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는 도훈의 머릿속에 아까부터 맴돌던 장면이 있었다.

‘이런…… 개 같은. 있는지도 몰랐던 버러지 년이.’

가을이 던진 책에 맞고 격렬하게 흥분했던 녀석의 모습.

검은색 장막은 저절로 주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놈이 인지하는 공격에만 반응한다.

그렇기에 놈이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가하는 게 핵심이었다.

마지막으론 놈이 뒤에 다가올 때까지 자신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은신에 탁월하거나 상대의 인식을 피하는 기술이 있는 듯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정보는 충분히 모였으니 남은 것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뿐이다.

도훈은 침착하게 자신이 지닌 능력과 무기들을 점검했다.

‘도훈 씨는 기의 조작이 믿을 수 없이 섬세하네요. 저도 그렇겐 못 하겠어요.’

천재인 호진조차 혀를 내두르는 세밀한 기 조작 능력.

그리고 최근에 얻었지만 이미 수족처럼 다루고 있는 은빛의 실.

이 두 가지로 승부를 보아야 했다.

만약 이것으로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이건 도훈의 최선이었다.

‘해 보자.’

도훈은 차분하게 실들에 기를 흘려보냈다.

하나둘 일어난 실들은 곧 수십, 수백으로 불어났다.

─스르르륵

천천히 움직이던 실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나선으로 몸을 포개며 날카로운 송곳의 형태를 취했다.

압축하고 비틀어 더욱 단단하게 조인다.

그 속에 기를 응집시키고 천천히 회전시키자 나선모양의 송곳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더 빠르게.

송곳의 한가운데에 폭풍이 깃들기 시작했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기회를 기다리는 것뿐.

훌륭한 사냥꾼은 때를 아는 법이다.

그렇기에 인내심이야말로 사냥꾼의 가장 큰 덕목.

도훈은 침착하게 호진의 싸움을 지켜봤다.

그리고 기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

─서걱

“크아아아악! 시발! 씨바아알!”

하얀 가면의 왼팔이 허공을 날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호진의 절 베기가 놈의 팔을 앗아간 것이다.

보통이라면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호진은 여태 놈과의 싸움에서 오직 환령보와 이화접목만을 이용해 싸웠다.

마치 그것밖에 못 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놈은 방심했다.

하지만 호진에게는 한 줌의 신력이 남아 있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한참을 허공에 욕지거리를 내뱉던 하얀 가면은 씨근덕거리며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놈도 아는 것이다.

호진, 아니 가을에게 남은 힘이 없다는 것을.

“죽인다.”

낮게 읊조린 녀석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도훈에게 사용했던 은신 능력을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놈의 짐작은 정확했다.

가을의 몸에서 호진의 존재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의 절 베기는 정말로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결과였다.

“……으.”

신내림이 풀린 가을은 치미는 두통에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무방비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지금이다.’

상대가 분노로 판단이 흐려졌고 동시에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순간.

지금만큼 완벽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도훈은 공중으로 섬광탄 하나를 집어던졌다.

─파앗

빛이 터져 나오며 은밀히 움직이는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궤도 고정, 가속, 회전, 압축.’

송곳을 쏘아냈다.

─파직

송곳은 분명 빨랐다.

하지만 그보다 하얀 가면이 조금 더 빨랐다.

검은 화염의 장막이 송곳을 막아선 것이다.

놈이 한참 전부터 도훈의 존재를 의식하고 예측했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버러지 주제에…….”

놈이 뭐라 더 말하려는 그 순간 우지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놈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뻥 뚫린 장막과 강당의 바닥을 꿰뚫은 나선모양의 투사체.

그리고 피가 솟는 배를 매만지는 하얀 가면이 있었다.

잠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던 놈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러곤 광인처럼 도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정도론 안 죽어 씨발! 너 새끼만큼은 내 손으로……!”

“아직 안 끝났다.”

다음 순간 수십 개의 창이 땅에서 솟아올라 놈의 몸을 꿰뚫었다.

“꺼억…….”

그중 한 창이 놈의 뒤통수를 꿰뚫으며 산산조각 난 가면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플레이어의 격이 매우 크게 오릅니다.」

「특정한 조건과 조우합니다.」

「전직에 성공하였습니다.」

「순찰대(Rangers)」

「등급: 레전더리」

「순찰대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 할지라도 그들의 땅일지니. 그들과 싸우게 됐다면 먹어서도 잠들어서도 안 될 것이다. 안전하다고 느낀 그 순간 죽음이 찾아올 테니까.」

「획득 스킬: 숙련된 사수/ 손을 떠난 투척, 투사 무기는 반드시 적을 꿰뚫습니다.」

「획득 스킬: 천태만상의 주인/ 어떠한 무기도 수족처럼 다룰 수 있습니다.」

「획득 스킬: 미스틸테인(Mistelten)/ 신격을 무력화하는 신살의 창을 쏘아냅니다.」

「획득 스킬: 소리 없는 죽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냅니다.」

「직업 획득 조건: 자신보다 압도적인 강자를 기습하여 쓰러뜨리기(1/1)」

“끝났군.”

도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본인이 해놓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투둑

그때 하얀 가면이 들고 있던 검은색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단검치고는 커다란 폼멜 부분에는 검은색 돌이 박혀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손대면 안 될 듯 생겼다.

‘저건 단장에게 맡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보다 손녀를 이리로 좀 데려와 줄 수 있겠습니까?”

힘겹게 대답하는 노인의 얼굴이 거뭇했다.

한눈에 봐도 괜찮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그것은 죽음이 드리워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인 후 노인의 부탁을 들어줄 뿐이었다.

“걸을 수 있겠나?”

“네…… 니요.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요. 숙취가 심할 때랑 비슷해요.”

“네가 숙취를 어떻게…… 아니, 됐다. 멀쩡한 것 같군.”

도훈은 그녀를 둘러메고는 곧장 노인에게 갔다.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노인은 반응하지 않았다.

피가 모자라 눈이 안 보이는 것이다.

“데리고 왔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도훈이 입을 열고서야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노인과 나란히 벽에 기댄 가을이 그녀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할머니, 조금만 참아. 금방 도와줄 사람이 올 거야. 할머니는 못 봤겠지만, 학교 쪽에도 굉장한 사람이 있거든. 막 부러진 팔도 뚝딱 붙인다니까.”

가을의 말에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재라면 올 수 없다.

호진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지키라고 했으니까.

학교에는 용재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럴듯한 무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렇기에 용재는 오지 못한다.

“그 사람이 와서 고쳐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

“그래, 알았다. 고맙구나.”

노인은 그런 가을의 말에 그저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노인은 망설이다 입을 뗐다.

“……미안하구나.”

“갑자기 뭐가?”

“네가 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구나.”

“어? 할머니 혹시 나 스무 살 되면 튀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아까 서울로 튀려 했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구나.”

노인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몰랐지만,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었다. 난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길 바랐거든.”

“뭐? 처음 듣는 얘긴데? 난 할머니가 무당 시키려고만 하는 줄 알았지!”

가을이 억울하다는 듯 말하자, 노인은 옅게 웃으며 그런 가을의 손을 토닥였다.

“어찌 됐든 이렇게 돼서 미안하구나. 부디 의식을 끝까지 마쳐다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쉬어. 말 좀 그만하고. 힘 빠져.”

“오냐. 좀 쉬마.”

노인은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스륵

정확히는 감으려고 했다.

“잠깐, 스탑! 딱 멈추세요. 거기 할머니. 눈뜨세요, 눈!”

“……?”

방금까지 평안한 기분으로 눈을 감으려던 노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나쁘지 않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거늘.

어디선가 들려온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죽는 것조차 마음 같지가 않군.’

노인이 한숨을 짧게 내쉬려던 그때, 알 수 없는 따스한 기운이 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러곤.

“아니, 이게 무슨……?”

노인은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암전되었던 시야가 돌아오며 눈앞이 보인 것이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한 젊은 청년과 그 청년의 손에서 흘러 들어오는 밝은 빛.

“할매, 내가 말했지? 굉장한 사람이 올 거라고.”

그리고 가을의 환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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