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신앙과 의식 (2)
“이쪽으로…….”
“예.”
호진은 주춤거리면서도 길을 안내하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남자 옆에 있는 학생은 호진을 자꾸 힐끔거렸다.
‘경계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을 뻔했던 만큼 긴장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이름과 이곳에 온 목적을 이야기한 상태.
뭘 더 말할까 고민하던 호진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보단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소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곤 당황하며 대답했다.
“전 이곳 수학 교사입니다. 편하게 김 선생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선생님. 그럼…….”
호진이 뭔가 더 물으려던 그때 옆에 있던 학생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전 김가을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가을은 호진의 인사에 눈이 동그래지더니,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말이 그게 뭐예요. 한참 연상인 것 같은데. 말 편하게 해요.”
“……그래. 고맙다.”
호진은 떨떠름하게 답하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꺼칠한 피부의 느낌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왔다.
머리도 덥수룩하고.
아저씨처럼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을 터다.
‘어쨌든 다행인가.’
생각보다 가을은 호진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아까 전에도 경계보다는 호기심에 힐끔거렸던 듯하다.
“아저씨가 밖에 괴물들 다 처리한 거예요?”
“응.”
“엄청 센가 봐요?”
“몸 지킬 정도는 돼.”
“계속 단답만 하시네요? 만화 주인공 같다.”
“…….”
“……큽.”
호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뒤에서 따라오던 용재와 도훈은 힘겹게 웃음을 참았다.
“저 방금 각성했는데, 이거 좀 봐봐요.”
가을은 이번엔 허공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에 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시스템 창이라면 본인 것밖에 못 봐. 상태창이라고 하면 다른 게 뜰 거야.”
“상태창? 와앗. 깜짝이야!”
가을은 갑자기 나타난 상태창에 화들짝 놀랐다.
그 탓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던 그때.
호진이 가을의 팔을 붙잡아줬다.
“그리고 걸으면서 보지 말고.”
“휴, 죽을 뻔했네. 진짜 그래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가을은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호진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친화력이 용재 이상으로 좋은 애였다.
그렇게 느낀 건 비단 호진만이 아니었는지 도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용재 같군.”
“그게 누군데요?”
가을의 질문에 도훈이 옆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가을은 대놓고 질색하며 되물었다.
“저 아저씨요? 어떻게 꽃다운 여고생에게…….”
“거기 잠깐 스톱! 나 이제 스물하나야. 아저씨는 아니지.”
“…….”
잠시간의 정적 후, 가을은 어색하게 뺨을 긁으며 물었다.
“……사실 아저씨도 나보다 어리다던가?”
가을의 질문에 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난 스물다섯. 도훈 씨는 서른이 넘었고.”
“아하. 다행이네요. 아저씨들은 오히려 동안이실지도?”
“고맙다.”
다들 화목하게 돌아온 분위기 속 용재만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용재에게 다가간 가을이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면도하고 이발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오빠.”
“역시 그렇지?”
가을의 말에 용재는 순식간에 회복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부자연스럽게 용재의 시선을 피했지만 말이다.
아마 거짓말을 잘 못 하는 모양이다.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질 무렵, 일행들은 옥상에 도착했다.
“어? 선생님이다!”
“가을아!!”
그러자 호진들을 발견한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가을이가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사이, 김 선생은 호진에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시다시피 대부분이 학생들입니다.”
“그렇군요.”
설명대로 대다수가 학생이었지만, 어른들도 있었다.
“선생님. 이쪽 분들은……?”
마침 그중 몇몇이 이쪽으로 다가와 경계하는 표정으로 호진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호진이 아닌, 호진이 들고 있는 검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헌터들이십니다. 그것도 협회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뭐요? 그게 참말입니까, 선생님.”
“아이고 살았네. 이제 살았어!”
그들이 호들갑을 떨며 다른 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달려가자, 호진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정확히는 협회 소속은 아닙니다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죠. 저분들은 피난민들이겠군요.”
“네, 주변에 계시던 시민분들입니다.”
“수가 적네요. 이분들이 생존자 전부인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잠시 이쪽으로.”
김 선생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호진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옥상의 구석진 자리.
그곳엔 넋이 반쯤 나간 군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총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해안가 부대에서 이곳까지 도망쳐오신 분입니다.”
“……용케 살았군요.”
“소대원 전부가 함께 도망쳤는데 혼자 도착하셨답니다.”
“이런…….”
“그래도 저분이 이곳 상황과 피난민들 위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호진은 김 선생에게 감사를 표하곤 군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
호진을 흘깃 바라본 군인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더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듯 작았고, 말하는 도중에도 몸을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호진은 정보가 필요했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혹시 현재 상황과 생존자 위치를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
군인은 호진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다 죽어서…… 가 봤자 또 죽어요.”
“다 죽었다고요?”
호진의 물음에도 군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점차 목소리를 키웠다.
“……고, 찔리고, 베이고, 물리고, 으깨지고, 산 채로 으적거리고!”
광기 어린 외침에 주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불안 어린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흠.”
호진은 곤란하다는 듯 군인을 바라보다가 검을 뽑아 들었다.
이에 김선생은 화들짝 놀라 호진을 만류했다.
“자, 잠깐 진정, 진정하세요.”
만류에도 호진은 군인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군인은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기만 했다.
이윽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호진은 그런 군인을 향해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꺄악!”
이를 지켜보던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군인의 단말마도, 절삭음도 아니었다.
─태엥
검이 머리와 부딪치며 맑은 쇳소리가 허공에 떨리며 울려 퍼졌다.
검은 부산에서 휘둘렀던 것처럼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여신의 신격을 흉내 내본 것이다.
자애로움과 따듯함을 담은 기운.
그 기운이 군인의 정신을 혼탁하게 하던 이질적인 두려움을 씻은 듯 녹여냈다.
“……아.”
초점이 흐렸던 군인의 눈이 점점 이채를 띄었다.
“……나, 난. 도대체.”
“혼란스러우신 거 압니다. 하지만 이제 대답해 주시죠.”
호진은 재차 다른 생존자들의 생존 여부를 물었고, 이에 군인은 더듬거리며 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생존자라면…… 분명 태안 군청 쪽에 많이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그쪽을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어요.”
다행히 그리 멀진 않았다.
심지어 군인의 말로 미루어볼 때 적지 않은 숫자가 살아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도심지역에 모여 생활했기에 원활한 피난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생존자들은…….’
그들의 운에 맡겨볼 수밖에.
호진이 그들을 전부 구하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들은 어떻죠? 대략적인 숫자라거나 놈들을 지휘하는 녀석이라던가 그런 건 없었습니까?”
군인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다시금 불안에 떨며 입을 열었다.
“괴물 녀석이 있어요…… 군대도 헌터도 한 놈에게 당했습니다.”
“놈이요?”
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하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으니까요.”
“하…… 얀 가면…….”
호진은 인상을 구겼다.
여기서 또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그 모습에 김 선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상대가 누군지 아십니까?”
“어느 정도 짐작은 갑니다.”
호진은 가볍게 끄덕이곤 군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마주 인사한 군인은 다시금 구석에 가 쭈그려 앉을 뿐이었다.
정신은 어느 정도 돌아왔으나, 절망감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진은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무기와 짐을 챙겼다.
“어디 가십니까?”
김 선생의 질문에 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들을 구해와야죠.”
“예? 하지만 혼자 어떻게…….”
“아뇨, 도훈 씨도 함께 갈 겁니다. 이곳엔 용재가 남아서 지킬 거예요.”
호진의 말에 사람들은 불안한 듯 세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하지만 도훈도 용재도 그저 호진의 말에 따를 뿐이었다.
그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가을이었다.
“저도 갈래요.”
“안 돼.”
호진이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하자, 가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며 말했다.
“그냥 따라가겠다고 떼쓰는 게 아니에요,”
“……뭔데.”
호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묻자 가을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첫째로 제가 거기까지 가는 길을 잘 알아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길이라…….’
호진은 턱을 매만졌다.
도훈을 데려가려던 이유도 길 때문이었다.
그리 큰 도시는 아니다 보니 군청을 찾는 게 어렵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길을 헤매냐 아니냐는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단순하지만 확실히 필요한 일.
호진은 계속 해 보라는 듯 가을을 바라봤다.
그러자 호진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 답했다.
“둘째는…… 그게,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뭐?”
어째서 대답이 의문으로 끝나는 걸까.
“생각을 안 해 봤는데. 그냥 아저씨들한테 좀 배우고 싶달까요. 언제까지 여기서 지켜주실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첫째라든가 둘째라든가. 왜 이유가 여러 개인 거처럼 말한 거야.”
“말하다 보면 생각날 줄 알았죠.”
호진은 그런 가을의 대답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심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호진은 가을의 그런 태도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가만히 숨죽이고 위기가 지나가길 기도하는 건, 자신의 삶과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행위니까.
“좋아.”
“제발, 다시 한번만 생각을…… 네? 정말요?”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가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호진은 벌써 후회되는 기분이었지만, 말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대신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아싸, 감사합니다!”
그런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 선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진심으로 학생을 걱정하는 표정이다.
보기 드문 선생님이라고 할까.
“……좋습니다. 대신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제 말에 따르셔야 합니다.”
“네, 물론입니다.”
김 선생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아까 부러진 선생의 팔이 눈치 없이 덜렁거렸다.
그 모습에 이마를 탁하고 짚은 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용재야, 우선 저것 좀 고쳐드려라.”
왠지 벌써부터 기운이 빠지는 호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