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신앙과 의식 (1)
청양 대표는 원래 B급의 헌터로 대표들 중에서 결코 강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3개월 전.
서울에 다녀온 그는 스스로 세종 캠프와 병합하길 희망했다.
그러곤 무서운 기세로 던전들을 돌더니 끝내 A급 헌터가 됐다.
주변의 여러 캠프가 모여든 세종 캠프 내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젠 이곳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을 지닌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분이 오고 계십니다.”
“그분?”
“아침에 협회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아, 지원이라면……그…….”
예산 대표를 비롯해 몇몇 대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가능하면 정부 소속 S급 헌터, 경호차장이 이끄는 흑색 창부대가 왔으면 했다.
사태만 본다면 그 정도 지원이 오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
소문은 무성하나 정작 본 사람이 없는 인물인 것이다.
“서울 쪽 헌터들은 무슨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신봉하더군요. 하지만 다들 너무 과장이 …….”
“측정 불가 급이라니……허허 참.”
대표 몇몇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표정들은 좋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하하하!”
청양 대표가 웃음을 터트리자, 다른 대표들의 표정이 굳었다.
“……갑자기 뭡니까?”
그 질문에 청양 대표는 웃음을 뚝 그쳤다.
그 변화에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긴장되어 마른침을 삼켰다.
“그날 전 거기에 있었습니다.”
“…….”
다른 이들은 그제야 떠올렸다.
청양 대표가 측정 불가 급과의 싸움이 있던 그날, 그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그분이 오셔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그냥 포기하시는 게 좋습니다.”
청양 대표는 단호함을 담아 입을 열었다.
“그때는 이 나라…… 아니, 세계가 멸망하는 날일 테니까요.”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왜일까,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막사 안에는 숨 막힐 것 같은 적막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때마침 밖에서 누군가 문을 급히 두들겼다.
“무슨 일이지?”
“급보입니다!”
근처에 있던 대표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땀에 젖은 헌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하십니다! 저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정부에서 지원을 오셨다는 분이…….”
“아, 드디어 오셨군요.”
청양 대표가 반색하자, 헌터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 아뇨. 그게…… 그냥 지나가셨습니다.”
“……예?”
“바쁘시다고…….”
“…….”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청양 대표에게 쏟아졌다.
허나, 청양 대표도 이것까진 예상치 못했기에.
그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
“우리 이렇게 바로 와도 되나?”
용재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에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겐 뒷일을 부탁하면 돼.”
헌터들과 정부의 군대는 태안을 포기한 채, 서산에 집결해 방어망을 형성했다.
호진과 일행들은 그곳을 그대로 지나쳐 태안으로 달린 것이다.
‘지금은 1분 1초가 아쉬워.’
이럴 때 각종 절차와 의견의 조율, 쓸데없는 기 싸움에 힘을 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미 협회 측을 통해 이야기도 전달해 놨다.
호진의 목표는 간단했다.
이틀 안에 이곳의 문제를 해결하고 곧장 북쪽의 위협을 제거하러 가는 것이다.
“우선은 이곳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겠는데…….”
이미 불사의 신의 봉사자들의 일부는 서해를 건넜다.
애초에 호진이 이야기를 전달받은 시점의 일이다.
그 말은 지금부턴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음?”
생존자들이 있다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
호진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희미하지만 멀리서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야겠네.”
호진은 재빨리 하야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
“안으로 피해. 어서!”
“서,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헌터잖아. 걱정 말고 다들 옥상으로 가!”
김 선생의 말에 학생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끄덕이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학생들이 모두 피하자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엿 됐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눈앞은 흐렸다.
뭔가 했더니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끝이라고 생각했더니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다.
학생들 앞과는 전혀 다른 꼴불견인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당연히 허세지.”
무서운 게 당연하다.
헌터라고 해 봤자 D급의 헌터고 기껏해야 게이트 사태 초기에 우연히 괴물 한 마리를 잡아본 게 전부다.
충청도, 특히 태안 쪽은 게이트 수가 워낙 적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안면도의 경우는 아예 게이트 청정 지역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어.’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따로 캠프를 만들지도 않았고, 헌터들의 수도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다.
측정 불가 급 괴물이 죽었다는 이야기에도 완전 다른 세계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감상이라고 해봐야 ‘아, 곧 일상으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정도.
실제로 2개월 전부터 학교가 재개하며 고등학교 교사였던 자신도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괴물들의 습격이 시작된 거다.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사람들에게 바다는 의심할 여지없는 안전구역이었다.
안 그래도 안일하던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기습을 받았다.
몇 없던 헌터들과 군대가 폭풍 앞에 모래처럼 쓸려버린 건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아니, 남 욕할 것도 없나.’
자신도 안일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김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오오오오오오오
바다를 건너온 까닭일까, 몸에 해초를 매단 불어 터진 괴물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한 것도 있지만, 사람이라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거나 비루한 것도 있었다.
혹은 짐승이나 책 속에서나 볼법한 것들도 눈에 띄었다.
“아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이미 작은 비명에 가까웠다.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 반쯤은 몸이 시키는 대로 문을 걸어 잠갔지만, 희망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애들을 버리고 도망친다면 살 수 있을까?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김 선생이 다급히 고개를 흔들어 각오를 다지던 그 순간.
─챙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몸이 기우뚱하고 흔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문 밖에서 움직이는 시체가 자신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키이이이익!”
불어 터지고 툭 튀어나온 눈.
이 사이에 붉은 고기 조각이 흉하게 끼어있다.
“아?”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김 선생은 멍하니 괴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딱딱 딱
자신을 잡아당기며 입질을 하는 시체.
놈의 벌어진 아가리에서는 생선이 썩은 듯한 비린내가 풍겼다.
웃기게도 그 지독한 냄새 덕분에 지금 이 상황이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그제야 김 선생은 비명을 내지르며 있는 힘껏 시체의 팔을 내리쳤다.
“놔, 놔! 이 새끼야!”
몇 번 더 내리치자 자신을 잡은 놈의 팔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좋아. 이대로 몇 번만 더…….’
─덥썩
다시 내리치려던 손은 허공에 멈춰 세워졌다.
차갑고 축축한 고무 같은 질감에 소름이 돋았다.
무엇보다 붙들린 손이 마치 못 박힌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큰 손바닥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창문 너머에 손을 붙들고 있는 것은 어금니가 툭 튀어나온 괴물로 게이트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오크라는 녀석이었다.
놈의 힘이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한다는 정보를 머리에 떠올릴 때쯤이었다.
─꽈드드득
놈이 자신의 팔을 물에 젖은 빨랫감처럼 쥐어짜자, 너무나 쉽게 뚝 하고 부러져버렸다.
"끄아아아아악!"
뇌가 하얗게 타오르는 것 같은 통증이 휘몰아쳤다.
입에선 쉴 새 없이 침이 흘렀고, 의미도 모르는 말들이 주절주절 흘러나왔다.
“살려, 살려 주세요.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들리는 말의 의미를 곱씹은 후에야 자신이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말이 통할 리가 없는데.
왠지 이 상황이 우스웠다.
어느새 놈의 지척까지 질질 끌려간 그는 자신을 향해 입 벌리는 괴물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쪽이다. 이 대머리야!”
“크륵?”
김 선생을 먹으려던 괴물은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퍼억!
육중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져나갔다.
누군가 던진 팩스기가 정확히 놈의 머리에 떨어진 것이다.
‘팩스기? 아, 얼마 전 고장 난 걸 옥상에 치워놨는데 그거구나.’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보며 팩스기의 출처를 떠올렸다.
“……젠장!”
그러기도 잠시,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김 선생은 재빨리 죽어버린 오크의 손을 떨쳐냈다.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몸에 힘이 돌아온 것이다.
─지직
하지만 여전히 시체가 자신의 옷깃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뒤론 셀 수 없이 무수한 시체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
“되는 게 없네…….”
한숨이 터져 나오려던 그때, 뒤에서 소화기 하나가 날아들더니 이번엔 시체의 머리통이 작렬했다.
뒤이어 학생이 나타나 손을 뻗는 시체들을 향해 냅다 소화기를 분사해대곤 김 선생의 팔을 잡아끌었다.
“서문은 부서졌어요. 중앙 계단으로 가요.”
“누구야! 내가 숨어 있으랬잖아!”
어차피 죽겠지만, 얌전히 숨어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 수 있을 텐데.
김 선생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보다도 자신을 구해준 학생에 대한 타박이 먼저 튀어나왔다.
실제론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학생은 그런 선생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오, 쌤 저도 각성했어요!”
“……너 김가을이지.”
소화기 분말 속을 헤치고 나오자 노란색 긴 머리가 눈앞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엥,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너밖에 없어.”
“그러니까, 대충 제가 특별하다는……?”
고개를 돌린 가을은 부러져 덜렁거리는 김 선생의 팔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을 지키다 다친 그를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일었다.
정작 김 선생은 죽다 살아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엔돌핀 때문인지 고통을 못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왜? 뭘 그렇게 빤히 봐?”
“……그게.”
가을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얼굴이 웃겨서.”
“뭐?…… 아니 이건…….”
김 선생은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깨달았다.
민망함에 얼굴에 묻은 눈물 자국과 침 자국을 닦아내려 했지만, 가을은 그런 그의 손을 계속해서 잡아당겼다.
“그건 나중에 하고! 서두르지 않으면 중앙 쪽 문도…….”
─콰아아앙!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중앙 문이 종이 쪼가리처럼 찢겨 나갔다.
김 선생을 잡아끌던 가을은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망했네. 쌤, 이제 어떡해요?”
“……일단 반으로 들어가자.”
학생들이 다급히 도망치며 닫지 않은 탓에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김 선생은 재빨리 빈 반의 문을 열고 가을을 잡아끌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잠시.
─저벅 저벅
복도에 걸음걸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김 선생과 가을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문을 바라봤다.
─뚝
하지만 상대는 정확히 둘이 있는 반의 문 앞에 멈춰 섰다.
이에 김 선생은 눈을 질끈 감으며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찾았다.
‘제발. 제발 지나가라. 신이시여. 제발.’
그러나.
─드르륵
그런 그의 간절한 기도가 무색하게 문이 조금씩 열렸다.
이렇게 된 이상 학생만이라도 살려야 한다.
‘창문 쪽이라면 아직…….’
선생이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열린 문에서 들려온 건 짐승의 그르렁거림도, 시체의 입질 소리도 아니었다.
“아. 다행이다. 무사하셨구나.”
그건 예상치 못했던 구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