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짧은 휴식 (2)
“무…… 물러서!”
“가서 대표님을 불러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헌터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
소란스러웠던 탓일까.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뒤로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헌터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랐다.
“으아아악!”
“으앗, 깜짝이야!”
놀라기도 잠시 겨우 진정한 헌터들은 인상을 팍 구겼다.
“뭐야? 일반인? 위험하니까 빨리 물러…….”
화난 듯 소리치던 헌터가 돌연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미간을 살짝 모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얼굴 어디서…….”
“측정…… 불…… 가?”
불현듯 떠오른 단어를 주워섬기는 헌터의 말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늘어졌다.
이에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헌터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섰다.
그 누구도 호진과 일행들을 막아서지 못했다.
호진은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 고요해진 헌터 무리를 가로질러 폐허에 다가섰다.
그곳엔 한 남자가 멍하니 서 있었다.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단검을 든 채로.
남자의 근처에 있던 헌터들의 시신은 여전히 눈도 감지 못한 채 싸늘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흐음.”
미친 듯이 날뛴 남자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군.’
잠시 멈춰서 이를 지켜보던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랑!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아직 어둑한 새벽의 어둠을 뚫고 붉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미동도 않던 남자는 폭풍 같은 기세로 호진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댔다.
─카강 카가가강!
호진이 이를 어렵지 않게 받아내며 뒤로 물러나자 어느 순간 남자는 뚝 공격을 멈췄다.
그러더니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상하네.”
호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에 용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저 사람 그 사람이지? 조…….”
“조성준.”
자신들을 광신도들의 집회로 안내했던 B급 헌터 조성준.
이젠 싸늘하게 식어 불사의 신의 봉사자가 되어 버린, 분명 그가 맞았다.
비록 아내를 껴안으며 짓던 행복한 미소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텅 빈 공허한 눈은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모르겠고, 축 늘어진 팔은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과 같다.
그런 그를 바라보기도 잠시, 용재는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근데 뭐가 이상한데?”
호진이 턱을 쓸면서 입을 다물고 있자, 어느새 무기를 꺼내든 도훈이 대신 입을 열었다.
“전보다 강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용재는 손뼉을 주먹으로 탁하고 치며 중얼거렸다.
B급의 헌터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움직임이다.
‘최소 A급…….’
아니, 호진을 공격하던 움직임만 놓고 보면 S급이라 보아도 손색이 없었다.
도훈은 그 이유를 추측하며 동시에 이어 답했다.
“저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왜죠?”
“그건…….”
도훈이 대답하지 못하자, 이번엔 반대로 침묵하던 호진이 입을 열었다.
“벗어날 수 없거나. 아니면…… 벗어나지 않는 거겠지.”
호진은 성준의 뒤, 정확히는 건물의 잔해 속에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호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순간 일렁이는 감정은 동정 그리고 약간의 분노였다.
“여긴 제가 하겠습니다.”
호진이 앞으로 나서자 두 사람은 무기를 집어넣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핏 새어 나온 호진의 감정이 용재와 도훈조차 긴장하게 만든 것이다
“……당신은.”
호진은 죽어서까지 이용만 당하는 성준을 보며 연민을 느꼈다.
처음엔 그를 좋게 보지 않았다.
광신도의 집회로 꼬드겼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게 나쁜 의도였을까?’
어쩌면 그는 정말 호진에게 구원을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신부가 말한 그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인이었으니까.
‘착하지만…… 멍청했어.’
자신 탓에 아내를 잃었다.
얼마나 죄책감이 컸을까.
그가 되살아난 아내를 보며 짓던 미소를 기억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지는 미소.
그 미소에 호진은 가슴이 아팠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런 결말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호진은 갈 길 없는 분노를 삭이며 걸음을 내디뎠다.
“적어도 이제 평안한 안식을 찾으시길.”
호진은 낮게 읊조리며 격을 끌어올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걸로는 안 돼,’
자신의 신격은 평안한 안식과는 거리가 있다.
단련하고 베는 것.
오직 상대를 단죄하는 신격이 자애와 자비를 품을 리가 없었으니까.
‘가장 잘 어울리는 건…….’
호진은 인벤토리에서 낡아 부러지기 직전인 성검을 꺼내 들었다.
여신을 섬기는 교단의 기사들이 사용했다던 검은 이제 그 원본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반쯤 빠진 가드는 덜그럭거렸고, 폼멜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보이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아!”
호진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여명이었다.
이가 잔뜩 나간 검의 날이 어느새 빛나며 빛을 뿜어내더니, 다음 순간 거대한 황금색의 빛이 성준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파슷
성준은 거대하게 몰려드는 빛에 휘감겼다.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순간 텅 비어 공허하던 성준의 눈에 이채가 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기도 잠시 빛에 휩싸인 성준의 몸은 한 줌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
“…….”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황금색의 빛무리가 죽은 자를 흙으로 되돌리는 광경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헌터들은 물론이고, 호진이 일으키는 이적에 익숙한 용재와 도훈마저도.
─저벅 저벅
호진은 바스러지는 검을 손에서 놓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성준이 굳건하게 선 자리 바로 뒤.
그의 아내가 곱게 두 손을 모은 채 뉘어 있었다.
호진이 이를 묵묵히 바라보던 그때, 무언가 그녀의 손에서 도르륵 굴러떨어졌다.
“……이건.”
호진이 별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 올린 순간이었다.
“크으윽!”
그는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비틀거리며 물러나야 했다.
저릿한 통증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꿰뚫었다.
머릿속엔 견디기 어려운 혼란과 소란스러움이 들어차고 메스꺼움이 일었다.
“도대체…… 뭔.”
「중급 내성이 정신오염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일부 실패합니다.」
「상태 이상 혼란, 분노, 슬픔, 좌절, 절망에 걸립니다.」
‘상태 이상?’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인 상태 창을 확인한 호진은 표정을 구겼다.
자신의 내성을 뚫고 이 정도의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띠링
「신에게 기도 올리는 돌」
「종류: 재료」
「정보: 무엇으로 만들었을지 모를 돌은 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워 담는다.」
“고대신들뿐이지.”
호진은 낮게 중얼거린 후 혀를 찼다.
불쾌한 감각이 아직도 몸을 뒤덮고 있었다.
혼란, 분노, 슬픔, 좌절.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몸을 뒤덮은 감정들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찝찝한 느낌이라고 할까.
호진은 떨어트린 돌을 천천히 다시 주워들었다.
아까와 같은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워 담는다, 라.’
호진은 검게 물든 돌이 원래부터 검은색이 아니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검은색은 불사의 신이 원하는 무언가일 터.
그것이 돌을 검게 물들인 것이다.
호진도 자신의 감정을 거세게 뒤흔들었던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다만, 이 돌이 머금고 있던 것은…….
‘토악질 나올 정도로 어두운 원념과 한. 부정의 감정들이다.’
단순히 그 사람들의 감정만이 담긴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영혼들을 붙들어두고 있는 것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해서 만들어낸 물건이라는 점이다.
직감이지만 성준을 강하게 만든 것은 이것일지도 몰랐다.
이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라면 성준의 실력이 이상하리만치 성장한 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하지만 이걸 만들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한 것일까.
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에 깃든 부정의 기운을 몰아냈다.
─후우욱
손안에 황금색의 빛이 터져 나오더니 검은색 연기가 씻겨 나갔다.
‘요령을 대충 알겠어.’
호진이 여태까지 다룰 수 있던 신격은 울타와 자신의 것뿐이었다.
하지만 늘 가까이에서 또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다름 아닌 시스템이었다.
즉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고 계약이 끝난 후에도 은총을 거두지 않았던 여신의 기운이었다.
‘따라 하는 건 무리가 없네.’
비록 더 이상 격을 가져다 쓸 수는 없지만, 기운을 흉내 낼 순 있었다.
해보진 않았지만 울타의 격도 따라 할 순 있을 것이다.
여신의 격은 성스럽고 자애로운 반면, 울타의 격은 신비롭다.
격을 흉내 낼 수 있다면 더 다양한 형태의 격의 활용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직까지는 막연하지만…….’
호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부정의 감정이 사라진 돌을 들어 올렸다.
회백색의 돌은 어딘가 텅 빈 듯 공허해 보였다.
호진은 그것을 우선 챙겨두기로 했다.
“끝난 거야?”
“어, 잠시만. 저기요.”
호진은 용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후 옆에 헌터를 불렀다.
자신이 불릴 거라 상상도 못 하고 있던 헌터는 화들짝 놀랐는데, 호진은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부디 이분의 장례를 치러주실 수 있을까요?”
호진은 성준의 아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군가를 추모하고 묘지 하나 만드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
그래도 호진은 그녀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다.
“무, 물론입니다.”
부탁을 들은 헌터가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이자, 호진은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곤 몸을 돌려 용재와 도훈에게 말했다.
“시간이 지체됐네요. 서두르겠습니다.”
“얼마든지.”
“준비됐다.”
부산에서의 승리는 머리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만약 자신들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성준이 겪은 불행과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질 터였다.
수많은 사람이 무력함과 공포 속에서 죽어가게 둘 순 없었다.
새롭게 의지를 다진 호진과 일행들이 캠프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머리 뒤로 희미한 빛이 쏟아졌다.
작지만 따스한 아침의 햇살이 그들의 등을 밀어주는 듯했다.
***
“젠장. 설마하니 세종 대표가 그리울 줄은…….”
“……그러게요.”
청양만큼이나 세종 캠프에게 시달렸던 예산 대표의 말에, 주변의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충청도에 속한 캠프의 대표들이었다.
벌써 3개월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들은 아직까지도 세종 캠프 대표라면 치를 떨었다.
관련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그들의 폭거는 쉽게 잊힐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들이 지금은 반쯤 진심으로 세종 대표가 그립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예산 캠프의 대표는 한숨과 함께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측정 불가 급이라 불리던 괴물이 죽은 후, 캠프들은 한동안 평안한 시기를 보냈다.
군소 세력을 흡수하던 세종 캠프는 측정 불가 급과의 전투에서 힘을 상실한데다가, 협회에서 지원 나온 헌터들이 복잡한 일들을 수습해준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웬 괴물들이 바다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미 태안은 손조차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인근 모든 캠프 대표들이 한곳에 모인 것이다.
위기가 찾아오고야 세종 캠프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누가 뭐라 해도 S급과 A급 헌터들을 보유했던 세종은 이들을 다 합친 것보다 강했으니까.
그때 예산 캠프 대표의 눈에 누군가가 띄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그만이 유일하게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으니까.
“뭔가 방법이 있습니까? 청양 대표님.”
그는 바로 얼마 전에 A급이 된 청양 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