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짧은 휴식 (1)
부산 캠프 C 게이트 책임자인 B급 헌터 인철.
그는 어둠을 뚫고 등장한 생존자 무리를 보며 이마를 탁하고 짚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 수백.
‘도대체 저런 숫자가 어디서 또…….’
광신도 문제는 물론 물자까지 부족한 캠프에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인원이었다.
더군다나 낮에는 헌터 협회 부산 지부가 의문의 습격을 받으며 반파.
천만다행인 건 죽은 줄 알았던 부산 대표가 폐허 속에서 몇 시간 만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괴한의 습격을 받고 기절해 있었다고.
‘대표는 아이큐가 오랑우탄과 동급으로 의심되는 인간이지만 엄연한 S랭크다. 그를 제압할 정도의 적이 내부에 있다면…….’
부산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제 몸도 못 가누는 상황인데 새로운 생존자들을 수용한다는 것은 언어도단.
‘나중에 어떤 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저 인원을 수용하는 것은 무리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지켜야 했다.
결정을 내린 인철은 휘하의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무기 챙겨!”
“예? 생존자인데요?”
“수용은 없다. 전부 돌려보낼 거니까. 무기들 챙겨!”
“아니…….”
당황하던 헌터들은 단호한 인철의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주섬주섬 무기들을 챙기고 문을 열었다.
그들을 발견한 생존자들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깁니다! 여기요!”
그런 생존자들의 반응에 헌터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생존자들도 하나둘 흔들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
“…….”
어느덧 대화가 통할 정도의 거리가 되자 헌터들은 생존자들의 앞길을 막아선 채 입을 다물었다.
미안함과 어색함이 뒤섞인 표정.
그것을 본 생존자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헌터들 사이에서 인철이 걸어 나왔다.
“죄송하지만, 부산 캠프는 더 이상 피난민들을 받지 못합니다.”
인철의 말에 생존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니, 그럴 수가…….”
“저희 울산 캠프 사람들입니다. 간신히 여기까지 왔어요!”
“울산 캠프……?”
인철의 표정이 미묘해지던 그때였다.
생존자들의 선두에 있던 남자 하나가 인철을 향해 물었다.
“누구 마음대로 안 받는다는 겁니까?”
이에 인철은 표정을 구기며 답했다.
“그야 당연히 부산 대표…….”
“부산 대표는 피난민들을 더 받는다고 했었는데요.”
─움찔
남자의 단호한 음성에 인철은 그만 입을 닫고야 말았다.
인철은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살폈고 이내, 그 사람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너……! 어제 그?”
“맞습니다.”
사납게 소리치는 인철에게 호진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유로움에 한층 더 열 받은 인철은 호진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섰다.
“내가 사고 치면 좋은 꼴 못 본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셨죠.”
인철은 호진의 뒤에선 생존자들을 훑어보고는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차라리 잘됐군. 의심스러운 네놈들 때문에라도 저들을 합법적으로 쫓아낼 수 있게 됐으니.”
“음,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딱히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말이네요.”
“…….”
호진의 반박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인철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희번덕거리는 눈을 치켜올렸다.
“그래, 그런데 뭐. 불만이라도 있나? 내가 B급 헌터라고 말 안 했던가?”
“아뇨, 그게 아니라…….”
호진이 말꼬리를 흐리자 인철의 입에서 비웃음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럼 그렇지.’
패용하고 있는 검을 보면 밖에서 꽤나 힘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B급 헌터인 자신과 비교할 수는 없으리라.
“알았으면 이만 저 생존자들 데리고 꺼져…….”
인철이 우월감을 만끽하며 호진을 향해 손을 휘젓던 순간, 호진이 무언가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어라, 여기쯤 넣어놨는데. 아닌가?”
‘……미친놈인가?’
잠시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던 인철은 표정을 와락 구기며 소리치려 했다.
“안 되겠군. 아무래도 맞아야 정신을…….”
“아 찾았다.”
호진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굉장히 눈에 익으면서 어딘가는 이질적인 물건.
인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물건을 바라봤다.
“헌터 라이센스…… 측…… 정 불가?”
협회에서 공식으로 발급했음을 알리는 인장이 찍힌 카드 한 장.
카드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측정 불가라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정부에서 인정한 측정 불가 급은 단 한 명뿐.
“저는 이런 사람인데요. 부산 캠프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요청을 받고 온 겁니다.”
“…….”
“아마 B급 헌터이신 것은 알겠는데, 그쪽의 권한을 조금 벗어난 일인 것 같은데요.”
호진의 말에 머리가 하얘진 인철.
그의 낯빛은 머릿속과 마찬가지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
─쾅!
테이블이 산산조각 나도록 부숴버린 부산 대표는 눈앞에 무릎 꿇은 남자를 쏘아보았다.
그 시선에 남자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고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넌 선을 넘었다. 게이트 책임자 자리를 박탈하고 두 달간 근신을 명한다.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떠나라.”
“너무합니다! 저는…….”
─콰드득
이번엔 애꿎은 의자의 팔걸이를 가루로 만드는 대표의 모습에 인철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핏기가 사라진 인철은 그대로 다른 헌터들의 손에 이끌려 나가야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진은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과한 거 아닙니까?”
“저는 그에게 피난민들을 수용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힘들더라도 서로 고생 좀 한다면 못 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놈은 결국 자신만 편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쓰게 웃은 부산 대표는 웃음기를 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령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게 잘못된 명령이라 할 지라도요?”
호진은 인철이라는 헌터의 판단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됐기에, 부산 대표의 판결이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부산 대표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캠프 대표라는 자리는 유명무실해지겠죠.”
“……그렇군요.”
호진의 그룹은 상하관계보다는 동료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결과와 신념이 옳다면 동료들의 자의적인 선택도 존중받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조직체계에서는 자칫하면 조직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사태가 될 수 있다.
호진은 그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곳은 부산 캠프, 그리고 지도자는 눈앞의 대표였다.
그의 판단에 자신의 이념을 들이밀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청소는 끝난 겁니까?”
호진은 분위기를 환기할 겸,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이에 부산 대표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말씀해 주신 위치로 정예들만 데리고 가서 소탕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정확하더군요.”
호진은 그간 자신이 알아냈던 강당과 게이트 위치, 나아가 그곳에 참여했던 인원들의 명단까지 훔쳐 대표에게 넘겨줬다.
그 결과 부산 캠프 내부에 있던 광신도들은 모조리 뿌리 뽑을 수 있었다.
“잘됐군요. 이제 부산 쪽은 한동안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호진님 덕분입니다.”
둘이 화목하게 덕담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사이.
부하들, 정확히 말하자면 부산의 헌터들은 죽을 맛이었다.
테러, 광신도, 의문의 게이트와 외부와 통하는 배수로.
근방에 갑자기 등장한 감염자들은 물론 대거 등장한 울산 생존자들까지.
헌터 협회 건물이 무너지며, 임시 건물에 자리한 그들은 쉴 새 없이 터진 일들을 처리하느라 잠은커녕, 끼니조차 제때 못 챙기고 있었다.
“불쌍하군.”
“어쩌겠어요. 그래도 살았잖아요.”
도훈과 용재는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일하는 협회 직원들을 바라봤다.
부산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는, 정확히 호진과 자신들밖에 모를 것이다.
“우리가 이 정도 해줬으면 이젠 본인들도 고생 좀 해야죠.”
“그런가.”
이번 일을 초석으로 삼아 부산은 한층 더 약점을 보완하고 성장할 터다.
고생도, 성장도 살아남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즐기죠.”
“좋다. 근데 왜 여기서 쉬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바쁜 걸 보니까 뭔가 마음이 편해져요. 뭐랄까 비 오는 공강 일에 침대에 누워 강의 들으러 가는 다른 학생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뭔지 알 것 같다.”
두 사람은 협회에서 잡아준 병원에 가지 않고 호진을 따라오더니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실컷 늘어진 자세로 누워서 음식을 실컷 먹고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왜 여기서…….’
협회의 직원들은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그런 그들을 힐끔거릴 뿐이었다.
***
“일어나.”
호진이 곤히 잠든 용재를 툭 하고 건드리자, 용재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해조차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이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미 일어나 짐을 정비 중인 도훈과 무장을 마친 호진의 모습에 용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야? 왜?”
용재의 물음에 호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우리 생각이 짧았어.”
“뭔 소리야 그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호진은 거칠게 머리를 헝클었다.
흔치 않은 호진의 짜증에 용재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에 짐을 챙기던 도훈이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북한이 무너졌다.”
“엥? 설마, 불사의 신의 세력이? 며칠 전에 만주 쪽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용재가 인상을 구기며 묻자 호진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발 빠른 일부가 기습적으로 움직였나 봐. 경계선이 뚫렸다는 모양이야.”
“그럼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네?”
“시간문제지. 허물어진 경계선이 복구가 안 되고 있어. 아래쪽 도시들을 휩쓸고 있으니 보급이나 지원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호진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용재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놈들이 우리 경계선을 공격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은 거래?”
“넉넉하게 잡으면 3일.”
“충분하네.”
긴장했던 용재가 안도하던 그때 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바로 가면 그렇겠지.”
“……?”
“우린 지금부터 태안으로 간다.”
호진의 말에 더더욱 기묘해진 용재의 표정은 호진의 이어지는 말에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놈들 중 일부가 서해를 건넜거든.”
“……뭐?”
그들이 막아야 할 곳은 육로뿐만이 아니라는 말이었으니까.
용재는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더니 재빨리 짐을 챙겨 들었다.
준비를 마친 일행들이 임시 협회를 빠져나와 게이트로 향하던 그때.
어디선가 소란이 일었다.
호진은 꽤나 떨어진 거리임에도 소란이 일어나는 곳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특정할 수 있었다.
불사의 신의 사제, 그러니까 리치가 포교하던 그 강당이다.
이미 한번 기습적인 소탕이 있었던 탓에 반쯤 폐허가 되어버린 곳인데.
헌터들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모여들고 있었다.
“야, 여기 뭐가 있는데? 시체?”
“잠깐, 함부로 가까이 가면…….”
─서걱
푸른 새벽의 적막을 깨고 날카로운 절삭음이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남자의 입에서 의문이 담긴 단말마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는 헌터들의 표정들만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 뿐이었다.
“전부 무기 들……!”
누군가 명령을 내리려던 그 찰나.
다시 한번 예리한 칼날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허공을 갈랐다.
차가울 정도로 기계적이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단검의 궤도.
짙은 군청색의 하늘 아래 거뭇해 보이는 선혈들이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후두둑 소리를 내려 떨어져 내렸다.
텅 빈 공허한 눈을 가진 검의 주인.
그는 일찍이 호진 일행을 강당으로 안내했던 사내.
“조…… 성준?”
그가 폐허를 딛고 묵묵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