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광신도의 믿음 (7)
‘이놈의 하수도…….’
호진은 썩은 내로 진동하는 하수도를 걸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지금 부산 캠프는 전시와 동일한 수준의 경보 조치가 발령된 상태다.
놈들이 어떻게 외부로 나갈지 궁금했는데, 하수도를 잊고 있었다.
게이트 발생 이전부터 도시 지하에 넓게 퍼져 있던 하수도들은 작금에 이르러 유용한 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써먹을 때는 좋았는데.’
막상 적들이 이용하니 골치가 아팠다.
이전에는 기껏해야 길을 잘못 든 몬스터 몇 마리가 기어 나오는 정도였는데, 놈들은 이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앞으로는 이런 상하수도에도 경계 및 대비책을 세워 두어야 한다는 것.
호진이 인상을 쓰고 있자 앞서가던 신부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그저 냄새가 좀…….”
“하하. 하긴 감각이 뛰어나시니 고생이 더 심하시겠습니다.”
실제로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기에, 호진은 곧바로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이에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올해는 봄이 찾아왔지만, 유난히 비가 적게 내렸다.
사람들이 물을 쓰지 않으니 하수도 안에 온갖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하수도의 시체 썩는 냄새는 몇 번이나 경험했음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금방입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걸은 지 수십여 분.
호진은 의외의 공간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지하철 정거장이었다.
“이건…….”
지하철 내부로 들어선 호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텅 비어 있어야 할 지하철이 그 어느 때보다 북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염자.
정확히 말하자면 불사의 신의 봉사자들이 호진과 일행들을 맞이했다.
이제껏 감염자들이라면 질리도록 보아 왔던 일행들조차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로 많은 숫자다.
“이게…… 전부?”
용재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린 그 말에 신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럴 리가요. 눈에 보이는 건 일부입니다.”
“그 말씀은 다른 정거장에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합니다. 못해도 수천은 될 겁니다.”
“…….”
왜 캠프나 정부에서 이들을 찾지 못했는지 알 만했다.
‘지하로 이동했던 거다. 그것도 인간들의 문명을 이용해서.’
정부의 패착은 놈들을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몬스터라고 여긴 것이다.
놈들은 단순한 몬스터들이 아니다.
지도자의 명령을 받는 군단이었다.
호진은 최대한 표정을 숨기며 신부의 뒤를 뒤따랐다.
감염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뒤룩
번뜩이는 시선들.
감염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만큼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말이다.
호진은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을 느끼며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마치 눈만 움직이는 마네킹 사이에서 걷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비단 호진만 느낀 것이 아닌지, 용재와 도훈의 표정도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를 힐끗거린 신부는 옅게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표정들이 좋지 않으시군요?”
“아무래도 이건 좀…… 놀랐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천천히 익숙해지시면 됩니다.”
다행히 신부는 그런 호진들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겼다.
잠시 후, 뭔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던 신부는 이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쯤 계셔야 하는데…… 이거 아무래도 사냥을 나가셨나 봅니다.”
“사냥?”
“예, 필멸자 사냥. 이곳의 인간들은 빌데야크트라고 부르더군요.”
“…….”
너무나 당당한 개소리에 호진이 눈살을 찌푸리자 신부는 급히 말을 정정했다.
“잘못하시면 오해하시겠군요. 어디까지나 이교도들을 개종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미친놈.’
이교도라면 사냥을 해서 개종시켜도 된다는 투였다.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호진은 그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에 신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역시 형제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호진은 신부가 자신에게 보내는 신뢰를 피부로 느끼며 살짝 당황했다.
‘이거 생각보다 내가 많이 마음에 들었나 본데?’
“아 참, 그러고 보니 슬슬이겠군요. 형제님이라면 믿고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
“……?”
신부는 잠시 보여줄 것이 있다며 호진을 이끌었다.
호진에게 길을 안내하는 신부는 마치 장난감 자랑을 하는 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신부를 따라 도착한 곳엔 한때 사람들을 태우고 날랐을 열차가 자리하고 있었다.
─꿈틀
비록 지금은 살아 있는 것처럼 살점으로 뒤덮여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끔찍한 것을 본 호진은…….
‘찾았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신부와 만나고서부터 찾아왔던 것.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반면 용재와 도훈은 뒤에서 소리 없이 표정을 구겼지만, 다행히 신부는 못 본 듯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호진에게 감상을 물어왔다.
“어떻습니까?”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호진은 그냥 솔직히 대답하기로 했다.
“이건…… 뭐랄까. 애벌레, 아니 사람의 장기 같군요.”
살색과 분홍색이 뒤섞인 길쭉한 고깃덩어리는 사람의 내장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신부는 호진의 대답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내장이라. 아아.”
황홀하다는 듯 몸을 떤 신부는 열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찌꺼기들을 모아 유용하게 쓰는 곳이니.”
“…….”
호진의 의아한 표정에 신부는 비릿하게 웃으며 열차의 문을 열었다.
경련하듯 꿈틀거리던 살점이 서서히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
호진을 비롯한 일행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외부와 마찬가지로 고깃덩어리로 뒤덮인 열차의 내부에는 수백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부의 얼굴을 보곤 하얗게 질려 물러났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밟고 누르며 비명을 질러대기도 했다.
일행들이 모두 얼어붙은 그때, 신부가 즐겁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들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태하겠죠.”
이제껏 보였던 거짓된 인자함이 사라지자, 그곳에 자리 잡은 것은 광기뿐.
호진은 신부의 진실된 모습을 보며 머리가 더욱 차갑게 식었다.
기계적으로 입꼬리를 올린 호진은 신부에게 질문했다.
“이 사람들은?”
“울산에서 사로잡은 인간들입니다.”
그 대답에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살아 있었다.’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당장에라도 신부의 목을 날리고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호진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아직 신부가 말하는 ‘신관’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호진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감정을 억누르며 질문을 던졌다.
“불사의 신께서는 필멸자들을 아끼시는 게 아니셨습니까?”
눈앞의 작태는 아무리 봐도 신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짓거리.
보나 마나 이들을 제물 삼아 또 뭔가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다행히 신부는 그 질문을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십니다. 사랑하시죠. 필멸자들의 불멸이야말로 불사의 신의 뜻입니다. 하나, 그분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공평하지 않다?”
호진의 의문 신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멸자라고 모두가 같을 순 없습니다. 어찌 스스로 그분께 귀의한 이들과 강제로 귀의한 이들이 같을 것이며. 도움이 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같은 취급을 받겠습니까.”
“…….”
호진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말에 심취한 신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 점에서 형제님은 그분의 총애를 받을 자격이 넘치십니다. 스스로 귀의하신 데다가, 뛰어난 무력과 능력을 지니셨죠. 분명 저와 같은, 아니 저보다 강한 힘을 얻으실지도 모릅니다!”
들떠 소리치던 신부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에 반해 저것들은 쓰레깁니다. 강제로 잡혀 왔고 지닌 능력도 한미하죠.”
신부가 말을 잇던 순간, 열차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신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됐습니다. 나가셔야 합니다.”
“시간이라니…….”
─우직
호진은 말을 끝내기도 전 열차 내부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단순히 꿈틀거리는 게 아닌 열차 내부가 좁아지고 있었다.
“여, 열차가……!”
“으아아아악!”
사람들도 이내 그것을 눈치챘는지 공포에 질린 비명들을 내질렀다.
공간이 계속해서 좁아진다면 그 끝이 어떨지는 뻔했으니까.
호진이 그것을 보고 가만히 서 있자, 신부가 고개를 갸웃하며 호진을 불렀다.
“형제님?”
“…….”
“아, 설마 측은지심이 드시는 겁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들도 끝내는 불사의 신께 봉사하게 될 겁니다. 그분 앞에서 죽음이란 무의미하니까요.”
신부는 호진에게 싱그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호진은 그런 신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좁아지는 열차를 조용히 지켜봤다.
신부의 표정이 점점 미묘해지기도 잠시, 호진이 입을 열었다.
“연기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자.”
“……예?”
신부가 고개를 갸웃하던 순간 무엇인가 그의 목을 강타했다.
─콰직
튀어 오르는 선혈과 빙글 돌아가는 시야.
바닥을 구르는 신부의 눈에 들어온 건, 검은색 도끼창에 묻은 피를 털어 내는 용재였다.
“와 씨 개소리도 이쯤 되니까. 역겹더라.”
그러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신부의 머리에 발을 올렸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신부가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트리며 중얼거렸다.
“……날 속였다고? 언제부터?”
“처음부터죠.”
호진은 그 물음에 싱긋 웃으며 신부를 내려다봤다.
그에게 처음으로 보이는 진짜 미소였다.
이에 신부는 이를 갈며 물었다.
“부산 캠프 대표는…… 뭐였지?”
“뭐였을까요?”
호진이 대답 대신 한층 더 웃음을 띠자 신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러던 신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
“속이려면 끝까지 속였어야지. 난 불사의 신의 축복을 받은 불멸의 몸이거든.”
이에 호진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아니죠. 정확히는 죽이기 까다로운 거죠.”
“……뭐?”
신부의 표정이 재차 구겨졌다.
“근원을 파괴하면 죽겠죠. 마침 가까이 있기도 하고.”
호진은 신부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신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리치는 본인의 근원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의 근원을 계속해서 찾았는데, 설마하니 신부가 직접 알려줄지는 몰랐다.
“…….”
신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간신히 진정한 신부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띠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라이프 베슬은 불사의 신의 권능의 일부. 인간 따위가 부수기에는 무리다.”
호진은 조용히 신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부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착각 중이시지만 가장 기분 나빴던 것만 말씀드리자면…….”
호진은 천천히 허리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올렸다.
가죽으로 덮인 검의 손잡이가 느껴진다.
익숙한 까끌거림이 기분 좋았다.
“후우.”
호진은 가벼운 호흡과 함께 카타나를 출수했다.
─스륵
간만에 깔끔하게 펼친 절 베기에 호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이상적인 절 베기에 스킬 레벨이 상승하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절삭음.
좁아지던 열차는 반으로 갈라져 꿈틀대고, 비명을 질러대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런 열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리고 신부의 머리는 바스러지듯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호진은 미소 지었다.
“저는 지금도 당신보다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