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광신도의 믿음 (6)
─탁 탁 탁
주미는 주변을 둘러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잔뜩 긴장한 채 입술을 잘근거리는 그녀.
‘한시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이 소식을 전해야 했다.
만약 늦는다면 부산 캠프 자체가 무너져버릴 것이다.
‘주미 씨는 저들과 함께하며 저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해주기만 하시면 됩니다.’
인자한 표정을 지은 신부의 말이 다시금 머리를 스쳤다.
주미는 신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들의 다음 순교의 목표를 듣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 대표의 암살이라니……. 절대로 막아야 해.’
걸음을 재촉하던 그녀의 앞에 드디어 애타게 찾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 협회 부산지부.
부산 캠프의 실질적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건물의 경비는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보자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고작 총과 같은 화기로는 도저히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빠르게 협회로 들어선 후, 곧장 부산 대표가 있는 집무실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그러자 2층에 있던 경비들이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막아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에 주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품 안에서 종이 하나와 라이센스를 꺼내 내밀며 말했다.
“헌터 협회, 특무팀 B급 헌터 한주미입니다. 이쪽은 협회장님이 보내신 서신입니다.”
“협회장님이라니…….”
라이센스와 서신을 번갈아 보던 경비 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둘러주세요.”
본인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경비는 급히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잠시 뒤 돌아온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인됐습니다. 들어오시랍니다.”
주미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곤 3층으로 뛰다시피 올라갔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호진과 그 일행들이 얼마 후 이곳을 급습할 테니까.
─똑똑똑
주미는 문을 거의 두드리듯 거칠게 노크랬다.
이에 안쪽에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임무를 하다 오며 가며 멀리서나마 보고 들었던 부산 대표의 목소리였다.
아직은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주미는 서둘러 문을 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저는 헌터 협회, 특무팀 B급 헌터 한……”
하지만 소개가 끝나기도 전 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다.
돌처럼 굳은 채 입을 뻥긋거리는 그녀를 부산 대표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나?”
“아니, 그게…….”
주미는 대답을 하면서도 대표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대표의 맞은편 소파에 앉은 인물을 향해 못 박히듯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옅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이런 곳에서 다 뵙고. 신기하네요. 주미 씨.”
“…….”
이호진.
정체불명의 A급 실력자.
어떻게 그가 이곳에 있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부산 대표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
정신을 차린 주미가 목숨을 각오하고 부산 대표에게 경고를 하려던 그때였다.
“오, 호진 님이 아시는 분입니까?”
“그렇게 잘은 아니지만요. 오늘 처음 본 사이입니다.”
“……?”
주미는 그제야 둘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듯한 훈훈한 분위기.
이에 주미가 멍하니 서 있자 호진은 웃으며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렇게 서 계시지 마시고 자리에 앉으시죠.”
“예? 예에…….”
삐걱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주미는 엉거주춤하게 호진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젠…… 이젠 나도 몰라.’
자신이 감당할 수준은 오래전에 지났다.
하루에 몇 번이나 죽을 뻔했고, 지금도 어쩌면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이로서 그녀는 다짐할 수 있었다.
‘이번 일만 무사히 끝나면…… 사직서 내야지.’
***
‘……힘들었나 보네.’
호진은 고장 난 듯 공허한 눈빛을 한 주미를 보며 쓰게 웃었다.
호진도 그녀가 이곳에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특무팀에서 왔다는 사람의 이름이 같아서 우연이다 싶었는데, 설마 본인이 올 줄이야.
그녀도 정부에서 잠입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만약 알았더라면 귀띔이라도 해줬을 텐데.
그녀가 얼마나 놀랐을지를 생각하면 약간 미안해졌다.
그때 부산 대표가 계속해서 하던 이야기를 이어 했다.
“그래서 지금 놈들이 제 목을 가져오라 했다 이겁니까? 그리고 호진 님은 놈들을 지휘하는 녀석을 잡기 위해 그것을 수행해야 하고요?”
“정확합니다.”
호진의 대답에 부산 대표가 고민스럽다는 듯 답했다.
“이해는 하지만…… 죽어드릴 수는 없고, 팔 한 짝으로는 안 되겠습니까?”
대표는 팔을 걷어붙이며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대표를 지켜보던 주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호진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호진의 대답에 두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호진은 인벤토리에서 투명한 플라스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은색으로 출렁이는 부정형의 액체가 들어있었다.
“그건…….”
“도플갱어의 핵이라는 겁니다.”
호진은 싱긋 웃어 보이며 답했다.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써먹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용인 쪽을 지나며 들렀던 B급 게이트 ‘은색 수정 갱도’.
그곳의 보스 몬스터인 도플갱어를 잡고 얻은 보상이었다.
“잠깐 손톱이랑 머리카락 좀 주실 수 있습니까?”
“뭐 어렵지 않죠.”
부산 대표가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 약간과 손톱을 잘라 종이 위에 올려 내밀었다.
이를 받아든 호진은 플라스크를 열고 쓸어 넣었다.
─꿈틀
그것들을 받은 액체는 살아있는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호진이 그것을 바닥에 쏟아내기도 잠시, 액체는 순식간에 수십 배로 부풀어 올랐다.
이내 조금씩 사람의 형태로 변한 액체는 이목구비가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된 순간, 대표와 주미는 동시에 감탄을 흘렸다.
“이야아, 이건 저희 어머니가 와도 못 알아볼 것 같습니다.”
“세상에나. 똑같아요.”
늘 싱글벙글한 대표의 표정과는 달리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이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점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같았다.
그렇게 도플갱어를 감상하던 대표는 돌연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며 호진에게 물었다.
“근데 도플갱어라면 그거 아닙니까? 마주치면 본체를 죽이려고 든다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건 도플갱어의 부산물이라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그냥 외관만 따라 하는 인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누군가의 대역조차 할 수 없는 처참한 성능이다.
무엇보다 1회용이고, 심지어 사용조건도 대상의 신체 일부를 필요로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호진은 이것을 일찍이 쓰레기로 분류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보다 유용할 수가 없지.’
아까 전 던전의 보상도 그렇고 오늘은 왠지 운수가 좋은 듯하다.
호진이 기분 좋게 웃던 그때 부산 대표가 다음 계획을 물어왔다.
“이제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우선 주미 님은 이곳에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왜…….”
“뒤를 밟히셨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놈들도 주미 님이 이곳으로 곧장 온 사실을 알고 있겠죠.”
“……!”
호진의 말에 주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에 호진은 그녀를 달래듯 말을 꺼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대표님과 함께 죽은 척 숨어계시면 됩니다.”
“아아, 네. 감사합니다…….”
시무룩한 표정의 그녀를 뒤로하고 호진은 부산 대표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표님은…….”
그러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뺨을 긁적이며 부산 대표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이 건물…… 얼마까지 부숴도 됩니까?”
“예?”
호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은 대표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협회의 3층에서 먼지와 불이 솟구쳐 올랐다.
“모두 밖으로!”
“헌터들을 소집해! 습격이다! 정신 차려, 새끼들아!”
비명과 욕설 그리고 명령이 협회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사무직으로 일하던 직원들과 일반인들은 서둘러 건물에서 멀어졌고, 헌터들과 군인들 역시 건물을 빠져나와 밖에서 건물을 포위했다.
“돌입은 안 합니까? 안에 협회장님이 계신다고…….”
“미쳤어? 건물 상태 안 보여? 곧 무너진다고!”
그 말대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굉음 끝에 건물은 끝내 성냥으로 쌓은 건물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먼지구름이 자욱한 가운데 요란하던 전투음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들어간다! 모두 긴장해!”
A급 헌터의 명령에 사람들은 천천히 무너진 건물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원하지 않던 장면을 봐야만 했다.
“미친…….”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헌터는 멍하니 피 묻은 하와이안 셔츠를 바라봤다.
부산 대표가 자주 입는 하와이안 셔츠 차림의 시체 한 구가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 깔려있었다.
목 위가 잘려 나간 채로 말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경보를 울려. 전시 태세로.”
부산 캠프가 유례없던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
─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엥
캠프 전체엔 적의 습격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이는 교단이 위치한 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성공했다고?”
신부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히고 호진 일행 세 사람이 강당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그들을 본 신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어서 오십시오. 형제님들!”
“…….”
호진은 대답 대신 신부의 앞까지 거침없이 걸어가 보자기 하나를 내밀었다.
비릿한 혈향이 올라오는 보자기에선 아직도 미지근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신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풀어헤쳤다.
그러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머리는 부산을 대표하던 이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렇게…… 이렇게 훌륭할 수가!”
신부는 감격에 겨운 소리를 내지르며 호진의 손을 맞잡았다.
호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조금 위험했습니다. 그리고 이거.”
호진은 신부에게 피 묶은 옷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신부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자신들을 속이고 있던 골칫덩어리의 옷이었다.
‘설마하니 협회로 쪼르르 달려가다니, 너무 방심했지.’
호진은 그런 신부의 반응을 살피며 잘됐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전에 저희를 따라왔던 그 신도. 첩자였던 모양입니다. 협회에 습격하러 갔더니 이미 안에서 협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그럼……?”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신이 인도한 사람, 신의 안배가 분명합니다.”
이미 호진을 바라보는 신분의 눈빛에선 꿀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부하들의 무능함에 시달리던 사람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신부에게 호진은 하늘에서 떨어진 금덩이와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그분에게 향하는 길은 좁고 험합니다. 하지만 그대들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셨습니다.”
세 사람은 자격을 얻은 것이다.
불사의 신을 섬기는 진정한 신관을 영접할 자격을 말이다.
“따라오시죠. 그대들에게 불멸을 안겨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