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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79화 (178/241)

179화. 광신도의 믿음 (3)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강당.

불이 모두 꺼진 강당은 아까와 달리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달칵. 달칵. 달칵.

사제복을 입은 신부는 입을 다문 채, 손가락을 까닥이며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런 그를 향해 옆에 서 있던 신도 하나가 물어왔다.

“어째서 그들에게 그런 임무를 주신 겁니까?”

“음? 뭔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신부의 물음에 신도는 급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웠다.

하지만 질문엔 착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오늘 처음 온 자들에게 그리 중요한 임무를 맡기시다니요.”

신부는 그 대답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겠습니까. 당신이 하실 겁니까?”

“……그건.”

“어차피 전부 죽을 겁니다. A급 던전입니다.”

어지간한 B급들은 떼로 몰려가도 닫을 수 없는 것이 A급 던전이다.

이곳에 모인 신도들 중에선 신부 말고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일.

그 대답에 신도는 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들은 등급을 속이고 있으니까요.”

“……?”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B급 헌터가 아닌 C급 헌터가 그룹을 대표할까요.”

“그건 조금…….”

“억지처럼 보일 수도 있죠. 그걸 확인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시험을 통과한다면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증거가 될 터.

신부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비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때였다.

─끄륵…….

강당에 창고로 쓰이는 방 안에서 희미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에 신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로 다가섰다.

문밖으로 끈적한 액체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쯧, 지저분하게…….”

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신부는 그것을 피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곳엔 뒤엉킨 두 인형이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남자와 그 위에 올라탄 여자.

“형편없는 여자로군요. 기껏 되살려드렸더니 겨우 인간의 살을 탐하시다니.”

─콰직 아드득

살이 찢어지고 피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남자는 울컥거리는 피를 뱉어내며 신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죽여, 줘……. 부탁…….”

신부는 그런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성준 님. 제가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성준 님에게 죽음이란 없다고.”

“……끄륵. 끅.”

성준은 자신의 피에 천천히 익사하며 눈을 까뒤집었다.

“딱 알맞게 문을 열었군요.”

신부가 흡족하게 미소짓는 동안, 여자는 아직 배고프다는 듯 성준의 목을 재차 물어뜯었다.

이를 지켜보던 신부는 혀를 차며 여자의 머리를 걷어찼다.

─펑

굉음과 함께 여자의 머리가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시체 위로 시체가 포개져 쓰러졌다.

“분명 성준 님은 훌륭한 종이 될 겁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신부가 즐겁다는 듯 흥얼거리자, 이를 지켜보던 신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

‘미치겠군.’

호진조차 속고 말았다.

「리치」

「불사의 신의 봉사자」

「종족: 언데드」

「특징: 생전 전설적인 마법사가 불사의 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깨어났습니다.」

설마하니 신부가 몬스터였다니.

만약 감시자의 눈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 신부는 누가 보기에도 사람이었으니까.

‘리치라…….’

여태껏 만난 불사의 신의 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인육을 탐하는 괴물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 신부가 그렇듯 특정한 조건이 맞는다면, 인격의 유지도 가능한 듯 했다.

상대가 단순히 인육을 탐하는 짐승이냐, 사람을 흉내 내는 괴물이냐는 난이도가 천지 차이다.

‘어디까지 파고든 걸까.’

놈들이 다른 캠프 곳곳에 파고들었다면, 정부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물론 저 신부 수준의 괴물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찌 됐든 이 추세라면 부산도 한 달은커녕 보름도 버티기 힘들겠지.

“던전…… 던전인가.”

그때 옆에 있던 용재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대로라면 그리 멀지 않군. 심지어 캠프의 안쪽이야. 이런 것을 방치해 두고 있었다니.”

호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부산 캠프의 대표가 아닌 종교 단체에서 던전 클리어를 의뢰하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근데 왜 던전이지?”

“…….”

용재의 의문에 도훈과 호진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놈들의 목적은 다른 사례들을 보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캠프들의 파괴와 세력의 확장을 통한 신도들의 확보다.

그게 던전이랑 연결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호진은 팔짱을 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던전 속 몬스터 사체들을 확보하려는 걸까?”

“가능성은 있다.”

도훈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게이트 속에 있는 몬스터를 비롯한 각종 세력은 각자 섬기는 신들이 있다.

리자드맨들이 아난타를, 난쟁이들이 이자리온을 섬겼듯이 말이다.

그런 그들을 입맛대로 다루기 위해선 우선 시체로 만들 필요가 있을 터.

“그것들만으로 캠프를 무너트리긴 어렵겠지만,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하겠죠.”

“그 타이밍에 적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끝이군.”

도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를 들여다봤다.

이에 용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럼 던전을 클리어하면 안 되는 건가?”

“아니.”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계획은 진행될 거야. 우린 예상치 못한 전력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이건 시험의 성격이 크겠지. 놈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선 우리가 해결해야 해.”

신부는 호진의 예상외로 거물이었다.

하지만 놈을 잡는 것으론 만족할 수 없다.

울산을 무너트리고 흡수한 세력은 저 밖에서 여전히 캠프를 노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신부쯤 되는 녀석이 이곳의 수장이라면, 밖에서 본대를 이끄는 녀석은 더 거물이겠지.’

어쩌면 이곳이 놈들에게 중요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하얀 가면이 직접 나올지도…….’

놈을 만날 생각에 호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저기요.”

약간 불안한 표정의 여자가 호진을 불러 세웠다.

‘음? 이 사람은…….’

성준에게 당한 C급 헌터.

그녀는 내내 얼빠진 표정으로 신부의 말을 듣다가 호진 일행과 같은 임무를 맡게 됐다.

솔직히 호진은 그녀를 데리고 가기 귀찮았다.

“안녕하세요. 분명 이름이…… 한주미 씨?”

호진은 익숙하게 본심을 숨기며 사람 좋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에 그녀는 불안한 눈빛을 조금은 누그러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 그럼 이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왠지 대학교 조별 과제 같군.’

아니, 생각해보면 정말 조별 과제와 다를 바가 없긴 했다.

이미 친한 세 사람, 그것도 고인물들 사이에 끼게 된 그녀의 처지가 돌연 안타까워졌다.

‘나도 복학했으면…….’

분명 모르는 신입생들과 타과생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해야 했겠지.

“저, 저기요?”

‘아, 대화 중이었지.’

잠시 딴생각을 하던 호진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계획은 이미 있습니다.”

“네?”

“지금 이대로 던전으로 가서 클리어하는 겁니다.”

“……네에에?”

그녀는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확히 말하면 경계심을 내려놓았다기보다는 호진을 미친놈 보듯 보고 있었지만…….

당분간 같이 다닐 사이인데 딱딱한 것보단 이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놀랄 일이 많을 텐데,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혹시 제대로 들으셨어요? 그 던전 C급 이상이라고……. 어쩌면 B급일지도 몰라요.”

“물론입니다.”

제대로 들었다.

아마 B급은커녕 A급 정도는 될 거다.

그래야 부산 캠프 내부에서 소란을 제대로 일으킬 수 있을 테니.

원래라면 절대 클리어가 불가능한 난이도.

놈이 호진들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뻔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죽으면 죽는 대로 우릴 되살려 병력으로 쓸 테니 손해도 없을 거고.

“근데 그걸 우리끼리 지금 들어가겠다고요?”

“싫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저희끼리 가는 수밖에.”

떨어져 나가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호진은 제발 그래 주기를 바라며 더 미친놈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끝내 입술을 짓씹으며 답했다.

“……아뇨, 같이 가죠. 저도 꼭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호진은 곧장 답하지 못하고 멈칫하고 말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다.

분명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일 터.

하지만 그 끝에 기다리는 건 결코 그녀가 원하던 조우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지금 진실을 이야기해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원래라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그녀를 도울 수는 있으리라.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호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주미는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잘 부탁드려요.”

“…….”

익숙한 주미의 표정에 호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마치 혈기 넘치는 신입생을 바라보는 복학생의 표정이랄까.’

신입생이 팀에 걸렸을 때, 제발 1인분만 하는 친구였으면 하는 내 표정이 딱 저랬다.

‘신입생 취급이라니 신선하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어디 가서 뉴비 취급은 받은 적이 없었던 만큼 신선한 기분이다.

도훈과 용재도 뭔가 재밌어하는 표정이었다.

이등병으로 위장한 말년병장이라고 할까.

‘하긴 재밌긴 하겠지.’

신선한 뉴비와 함께하는 던전 클리어다.

조별 과제라면 모를까 게임에 대입해 보면 이만큼 재밌는 것도 또 없다.

게이트 이후, 호진 일행은 헌터와 플레이어를 막론하고 최고의 고인물이라 할 수 있었으니.

“그럼 가볼까요?”

호진은 웃으며 앞장서서 걸어 나갔고, 그 뒤를 죽상의 주미가 뒤따랐다.

조별 과제든 게임이든 무슨 상관이랴.

호진은 그녀가 상처 하나 입지 않게 버스를 태워줄 자신이 있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호진들은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 도착했다.

“호오, 이런 곳에…….”

확실히 이런 곳이라면 남들 눈에 안 띌 만했다.

게이트는 반쯤 폐허가 된 빌라의 가정집 옷장 안에 위치해 있었다.

옷장 안이라니.

‘왠지 말하는 사자가 반겨줄 것 같네.’

실없는 생각도 잠시, 호진은 생각을 이어갔다.

몬스터가 먼저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헌터들도 이런 곳까지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광신도들이 관리를 하는 건가?’

게이트가 생겼는데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은 드물다.

광신도들이 따로 관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는 것도 관리의 차원일지도 모른다.

놈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먹이를 넣어주는 형식으로 말이다.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 말은 이전에도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거니…….

놈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호진이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구기자, 이를 다르게 해석한 주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역시, 이대로 들어가는 건 조금 무리죠? 오늘은 위치도 확인했으니까, 제대로 준비를 해서 내일…….”

주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내가 1등!”

바람처럼 그녀의 옆으로 누군가 달려 지나갔으니까.

고개를 돌린 그곳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용재 대신 게이트가 일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

“음…….”

잠깐의 정적 후 호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들어갈까요?”

“네에에…….”

힘없이 축 늘어진 대답을 하는 주미의 눈가는 묘하게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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