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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78화 (177/241)

178화. 광신도의 믿음 (2)

“미친.”

용재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뛰쳐나가려 하자, 호진이 붙잡았다.

“말리지……!”

“가만히 있어. 저 사람 멀쩡하니까.”

그 말을 들은 용재는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쳐다봤고 이내 깨달았다.

성준은 단검의 등으로 여자의 목을 그었고, 그녀의 목은 당연히도 멀쩡했다.

다만 여자는 자신이 베였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단검을 거둔 성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입니다. 또 소란을 떠신다면 다음에는 진짜로 베겠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후 바닥에 주저앉았고, 주변엔 싸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지금 이 상황에 더 소란을 피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시 후, 적막을 깬 것은 재단 위에 선 신부였다.

“고맙습니다. 성준 형제님. 그래도 너무 난폭하게 대하시면 안 됩니다. 다 저희의 형제자매가 되실 분들이신걸요.”

“죄송합니다. 신부님. 용서해주십시오.”

성준은 퍽 소리가 나게 바닥에 무릎 꿇었다.

살의로 차갑게 굳었던 표정은 애절하고 처량하게 변한 지 오래.

그는 신부를 향해 용서를 갈구했다.

“제가 오늘만을 너무 기다려서 그럽니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이에 신부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일어나라 손짓했다.

“이해합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형제님. 이리로 오시죠.”

“아아……!”

그 말에 성준은 눈물을 흘리며 단상으로 올라섰다.

신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성준 형제님은 B급 헌터로 게이트 발생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오신 의인입니다.”

B급 헌터.

헌터 협회에 가봤기에 안다.

B급 헌터는 결코 흔한 전력이 아니었다.

그처럼 힘이 있는 헌터가 무엇이 두려워 신부의 말에 벌벌 떠는 것일까.

호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신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한 달 전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를 상대하며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사이, 자신의 아내를 잃고 말았습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이 지키려 하던 사람의 손에 의해서.”

─뿌드득

성준은 이가 부서질 것처럼 악물었다.

한껏 분노한 그의 표정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신부는 한껏 고양되고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서야 되겠습니까? 그게 정녕 신과 하늘의 뜻이란 말입니까? 옳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부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희열이었다.

“성준 형제는 상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에게 상을 주지 않으니, 제가 우리 신의 이름으로 그에게 보답하겠습니다. 아아, 불사의 신이시여. 그를 가엽게 여기고 굽어살피소서.”

신부는 하염없이 흐느껴 우는 성준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모셔오세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관 하나를 단상 위로 올렸다.

반쯤 세워진 관 뚜껑을 열자 그곳엔 창백하게 식은 여성의 시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미 썩고 부패한 시체는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헛구역질을 하고 뒤로 흠칫 물러서는 동안 성준만은 그녀를 향해 기듯이 다가갔다.

“아아……. 미안해, 내가…….”

열린 관을 향해 기어가는 성준을 보며, 신부가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경건한 자세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 엄중하면서도 숙달된 기도에 장내는 순간 고요해졌다.

“데니토 ■■여. ■■ ■■■ 하니 기도를 들어주소서.”

귀에 익은 기도문.

잊혀진 고대신들의 언어.

하지만 이전과 달리 그 의미가 중간중간 들려왔다.

분명 저번 보상의 영향일 터.

‘그나저나 역시 데니토인가…….’

불사의 신이라고 할 때부터 감은 잡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놈들이 사태의 주범이다.

기도는 짧았다.

데니토를 예찬하는 듯한 내용의 기도를 고작 1분 남짓 한 게 전부였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한 듯했다.

“말도…… 안 돼.”

시민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관 속의 여성이 기도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생전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피부는 여전히 창백했지만, 썩고 부패했던 피부는 매끈해졌고 상처들도 모두 아물었다.

그리고 끝내…….

─스륵

눈을 뜬 그녀가 자신의 아래 엎드린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아……. 여보.”

그런 그녀의 손길에 성준은 구원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그에게는 분명 구원 이상일 것이리라.

이를 뿌듯하게 지켜보던 신부는 벙찐 시민들을 향해 말했다.

“보이십니까! 진정한 신이란 이런 것입니다. 자신을 섬기는 자를 굽어살피는 자 말입니다. 불사의 신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그러고는 성준을 향해 다가가 이어 말했다.

“저번에도 설명드렸지만, 아직 아내분의 혼이 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같이 이야기하고 추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믿음을 더 보이셔야 합니다.”

“하겠습니다! 무엇이라도! 그것이 저의 죽음일지라도!”

“그럴 리가요. 성준 님에게 앞으로 죽음이란 없습니다. 불사의 신의 총애 아래 성준 님은 불멸을 얻으실 테니까요.”

“아아, 믿습니다.”

성준은 신부의 발에 입을 맞췄다.

그것은 마치 경전에 나오는 삽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이건 끝났군…….”

호진은 미간을 가볍게 좁혔다.

‘사람들이 홀릴 수밖에 없겠어.’

이 정도 퍼포먼스에 넘어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장 용재와 도훈조차 넋을 놓고 있다.

아무리 몬스터니, 상태창이니 하는 게임 같은 일이 만연한 지금 세상에도 죽은 사람의 부활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이내 성준은 비척이는 아내의 손을 이끌고 단상을 내려왔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그를 뒤따랐으며, 몬스터 특유의 공격성도 보이지 않았다.

땋은 머리와 깔끔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그저 병약한 여인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그녀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보일 터였다.

하지만…….

─띠링

「걸어다니는 시체」

「불사의 신의 봉사자」

「종족: 언데드」

「특징: 술자에 의해 되살아났지만, 생전의 격이 낮아 지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호진의 눈에는 너무나 명확하게 그녀의 상태가 보였다.

성준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그녀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한다.

지금은 신부라 불리는 사내가 그녀의 공격성을 억제하고 있을 뿐, 결코 그녀는 김포에서 보았던 감염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시스템의 설명대로라면, 격이 높으면 지성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 같지만…….’

아직까진 그런 존재를 보지 못했다.

호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성준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들어 호진과 눈을 마주쳤다.

성준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여서 호진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호진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성준은 아내를 데리고 강당의 문으로 향했고, 문을 닫았던 이들도 그는 막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문을 막을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 모인 모두는 신부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단상으로 몰려들었으니까.

“진정하십시오. 여러분. 불사의 신께서는 자애로우십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모든 이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다만…….”

신부는 안타까움을 담아 그들에게 말했다.

“그분께서도 지금은 힘이 부족하십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이들이 그분을 섬기고 따라야 합니다.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

사람들은 다들 홀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포교하고 그분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성준 님이 그러했듯 교단과 저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분들은 더욱 빨리 구원을 받게 되실 겁니다.”

“……뭐,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누군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때그때 다릅니다만…… 하나는 꼭 아셔야 합니다. 가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불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적막이 흐르기도 잠시.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며 신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할 수…… 할 수 있습니다.”

“뭐든 시켜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그 뜨거운 열기에 신부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쉬잇 소리를 냈다.

그러자 사람들이 뚝 하고 소음을 멈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강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저 학생처럼요.”

신부의 손가락이 혼자 동떨어져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성준에게 당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던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C급 헌터라고 하셨죠? 축하드립니다. 다른 분들보다 빨리 기회를 얻으시겠군요. 달리 헌터이신 분이 더 계실까요?”

그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호진이 손을 들었다.

눈치를 보던 용재와 도훈도 마찬가지.

이에 신부는 반색하며 일행들에게 물었다.

“오오. 이번엔 용감한 신도분들이 많으시군요. 그쪽 분들은……?”

“저와 이분은 C급 헌터. 이 아이는 B급 헌터입니다.”

“세상에나! 훌륭합니다.”

신부는 크게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네 분은 이따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신부의 말에 호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왜 나만 B급이야? 내가 요즘 그렇게 세졌던가?”

용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호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호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대지. 도훈 씨나 나는 힘을 숨기는 데 익숙한데, 넌 아니잖아.”

“…….”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용재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근력 스탯만 미친 듯이 찍은 용재로서는 그 힘을 숨기는 게 어려울 것이다.

일단 보이는 근육부터 사람보다는 고릴라에 가까웠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지막 신도까지 빠져나가자 신부는 활짝 웃으며 강단에서 내려와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거,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호진은 겸손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흡족했는지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하시기만 하실 뿐만 아니라, 인성도 훌륭하시군요. 분명 불사의 신께서도 총애하실 게 분명합니다.”

“영광입니다. 그럼 저도…… 불사를 얻을 수 있는 겁니까?”

호진의 질문에 신부의 눈은 잠시 놀란 듯 커졌다가 이내 초승달처럼 휘었다.

분명 아까와 같이 웃고 있음에도 어딘가 비릿하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아하. 형제님은 그쪽이셨습니까? 이거야 원. 솔직하셔서 좋습니다. 불사라……. 저도 이해합니다. 그 얼마나 훌륭한 울림입니까.”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신부의 언행에서 아까보다 훨씬 진솔함이 묻어났다.

분명 방금의 문답으로 호진에게 호감과 신뢰를 품은 게 분명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조건은 필요하겠죠.”

“그게 뭐죠?”

호진의 물음에 신부는 용재와 도훈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신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건…… 순교입니다.”

“순교……?”

불사와는 아득히 멀어 보이는 단어를 곱씹으며 호진이 표정을 일그러트리자 신부는 핫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호진의 언짢아 보이는 표정마저도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거 죄송합니다. 놀라셨겠군요. 표현이 그럴 뿐이지, 꼭 죽으셔야 하는 건 아닙니다. 성준 님도 순교자의 길을 한 차례 걸으시고도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설령 죽으신다 해도 불사자의 은총 아래 되살아나실 뿐입니다. 그땐 정말 불멸의 삶을 얻으시겠죠.”

신부는 호진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으며 말했다.

─움찔

호진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고 말았다.

신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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