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광신도의 믿음 (1)
“징그럽다. 징그러워.”
용재는 질렸다는 듯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싸늘하게 식은 몬스터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걸 못 기다리고 먼저 출발했나 싶었더니, 이러려고 그랬구만.”
“몇 군데나 들른 거냐.”
도훈도 궁금하다는 듯 호진을 향해 물었다.
이에 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지도 하나를 내밀었다.
지도엔 강화에서 부산에 이르기까지 10곳 정도에 X자 표시가 그어져 있었다.
“많이는 아니고, 박 순경이 알려준 가장 큰 곳 위주로 돌았습니다. 그런데도 레벨은 하나밖에 안 올랐네요.”
“……형 레벨이 너무 높은 거야.”
도훈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강화에 온 시기는 호진과 고작 한나절 정도밖에 차이가 나질 않았다.
한데, 두 사람이 호진을 쫓아 내려오는 사이 호진은 국내의 굵직굵직한 게이트를 닫으며 내려온 것이다.
“근데 이렇게 닫을 수 있었으면, 진즉에 닫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다른 헌터들이 성장을 못 하잖아.”
“……그것도 그러네. 근데 지금은 왜 닫은 거야?”
“불사의 신의 군세가 몬스터들까지 흡수해 덩치를 키우고 있으니까. 적이랑 싸우기 전에 불안 요소들은 미리 정리해야지.”
호진의 말에 용재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엎어진 하야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빠르게 몰았으면 몇 날 며칠을 달려도 지치지 않는 하야가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다.
“수고했어. 이만 쉬어, 하야.”
“크릉.”
평소라면 들어가기 싫어할 하야가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지금부터는 걸어서 캠프로 이동하죠.”
“왜?”
용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호진은 뭔가 비릿하게 웃으며 답했다.
“먹이를 낚으려면 그렇게 하는 쪽이 좋거든.”
“뭔 소리야?”
“알 거 없고 이거나 입어.”
호진은 인벤토리를 열고 뭔가를 꺼내 용재와 도훈에게 건넸다.
***
부산 캠프의 C 게이트.
그곳의 책임자 B급 헌터 김인철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또 인가.”
짐을 한가득 싸든 허름한 차림의 피난민들이 게이트 앞을 기웃거렸다.
흉흉한 소문이 돌자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이 한가득하다.
이 근처에서 그나마 상황이 좋은 곳은 이곳 부산 캠프뿐이었으니까.
‘지금만 해도 캠프 사정이 엉망인데…….’
한번엔 급증한 피난민들은 수용 가능 인원을 가볍게 초과했다.
잠자리도, 음식도, 물도 모든 게 부족했다.
캠프에는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 간의 갈등도 끊이질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울산 캠프를 무너트렸다는 광신도들이 피난민 사이에 얼마나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 받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부산 대표의 의지가 너무 확실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피난민들을 받습니까. 전부 수용합시다!’
인철은 한숨을 푹 내쉬며 문 앞의 피난민들에게 다가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질문에 가장 앞에선 남자가 피곤한 표정으로 답했다.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이런.”
인철은 말과는 달리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남자 3명으로 이뤄진 피난민이라니 조금 이상한데…….’
표정도 뭔가 다 무뚝뚝한 것이 무언가 의심스러웠다.
“잠시 짐 좀 봅시다.”
“……그러시죠.”
남자들은 자신들이 들고 온 짐들을 풀었다.
옷가지와 음식들, 그릇을 비롯한 생필품들이 가득했다.
딱히 의심될만한 건 없는 상황.
이후로도 몇 가지 더 질문을 했지만,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다.
“하아…… 쯧.”
차라리 뭐라도 하나 걸렸으면 마음 편하게 내쫓았을 텐데.
노골적으로 그런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쉰 인철은 그들에게 손짓했다.
“따라오십시오. 절대 사고 치지 말고. 만약 그러면 날 다시 보게 될 겁니다.”
인철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심하겠습니다.”
‘대답은 잘하는군.’
인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피난민 수용소로 안내했다.
이미 포화상태였기에 겨우 그들이 몸을 누일 만한 공간이 주어졌다.
인철은 인사도 없이 곧장 몸을 돌려 사라졌고, 이를 지켜보던 일행 중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거 너무 싸가지가 없는데.”
“저 정도면 일 잘하는 거지. 지금 같은 상황엔 저런 사람도 필요해.”
씨근거리는 용재를 보며 호진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호진은 진심이었다.
오히려 너무 쉽게 통과시킨 감이 있다.
‘이래서는 광신도들을 전부 다 통과시켰겠군.’
가만히 둔다면 부산도 울산 꼴을 피하지 못할 게 뻔했다.
호진은 오는 길에 보았던 울산 캠프를 떠올렸다.
연락이 끊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미 폐허뿐이었다.
대규모의 인원이 급하게 피난한 흔적은 있지만,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흔적이 끊겼다.
‘아마 살아있을 확률은…….’
호진은 씁쓸하게 얼굴을 쓸었다.
고작 하루 정도의 차이다.
구하지 못한 목숨들을 떠올리자 입이 썼다.
사태는 정부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한참이나 위험했다.
북쪽의 군세에 눈이 팔려있는 동안 악성 종양은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퍼질 것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광신도들을 막아내는 게 호진의 역할이었다.
“근데, 정말 이러고 있는 걸로 충분할까?”
용재는 여전히 짜증난다는 듯 툴툴거리며 물었다.
이에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최대한 피곤하고 슬픈 표정을 지어. 화난 표정도 좋겠지.”
“어렵군.”
도훈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훈 씨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도훈은 평소에도 어딘가 감정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호진은 그런 도훈의 얼굴을 참고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짐을 풀고 있는 호진들을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서른 중 후반이 되어 보이는 남자.
그는 누가 보아도 호감을 가질 만큼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누구시죠?”
호진은 표정을 구기며 까칠하게 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앗, 죄송합니다. 너무 갑자기 인사를 드렸죠? 피곤하실 텐데.”
“…….”
호진이 대답 대신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조성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메고 있던 가방을 통째로 내밀었다.
그 기세에 호진이 그것을 떨떠름하게 받아들며 경계하듯 물었다.
“이게 뭐죠?”
“모포랑 약간의 식량입니다.”
“이걸 왜……?”
“같은 피난민끼리 돕고 살아야죠.”
“……감사합니다.”
호진이 한풀 누그러트리며 인사하자 뒤에 있던 용재와 도훈도 작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성준이란 소개한 남자는 그 모습에 활짝 웃음 지으며 별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기도 잠시 그는 뭔가 망설이듯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근데…… 혹시 여러분도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으신 걸까요?”
“……그걸 어떻게?”
호진이 인상을 쓰며 묻자 남자는 황급히 답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이 수용소 C동 자체가 몬스터들에게 가족을 잃은 분들이 많이 오시거든요.”
“…….”
“이런, 제가 또 실수를 했네요.”
성준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기도 잠시 자리에 앉으며 호진에게 말을 건넸다.
“저도 아내를 잃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거든요.”
성준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에는 정말 근심 한 조각 느껴지지 않는 티 없이 맑은 미소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맑아질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었나요?”
호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묻자, 성준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제가 힘들 때 저를 도와주신 분이 계십니다. 다음에 함께 가시겠습니까? 마침 좋은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럼,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성준은 미련 없이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일행들은 급하게 얼굴을 숙여야 했다.
그들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걸려 있었으니까.
“이게 정말 되네.”
용재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에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만큼 파고들기 쉬워 보이는 상대도 없겠지.”
최근에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를 잃은 이들.
실제로 불사의 신을 따르는 광신도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니.
고통에 빠진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해결책 아닌가.
그렇기에 호진은 몬스터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은 피난민을 연기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는 보기 좋게 그런 호진의 미끼를 물었다.
“그럼 바로 내일 놈들 본진을 찾아가 다 때려 부수면 되나?”
“아니.”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영입한 자신들을 광신도들이 신뢰할 리가 없다.
내일 성준이라는 남자를 따라간다 해도 결국은 놈들의 모임 중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진짜 목표는 그 위.
이 종교를 전파하기 시작한 몸통을 잡아내는 것이다.
‘하얀 가면을 잡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겠지.’
물론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
다음 날.
호진의 예상대로 일행들이 불려간 곳은 캠프 내에 위치한 평범한 건물의 지하였다.
탁 트인 강당처럼 생겼는데, 예전에 체육관으로 쓰였는지 호진이 다니던 검도장과 유사해 보였다.
‘이런 곳에 중책을 맡은 자가 있을 리 없지.’
호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살피던 중이었다.
자신들을 초대한 성준은 어제보다 더욱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에 호진은 다시 까칠함을 연기하며 물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럼요. 여러분과 이렇게 함께하는데 기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구원을 받는 날이니까요.”
“……구원이라니, 잘못 찾아온 것 같군요.”
호진이 수상쩍은 표정으로 몸을 돌리려 하자, 그가 호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잠시만요. 지금 시작합니다.”
그의 말과 함께
강당의 문이 닫혔다.
순식간에 내부가 어둑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 불이 켜져 있는 단상을 향한다.
이윽고 한 사제복을 입은 한 중년의 남자가 단상으로 올라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의 인사에 절반 정도는 거의 절을 하다시피 몸을 숙였고, 나머지 절반은 의심과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새로 온 사람들이 거의 절반이군.’
그 말은 그들이 얼마나 왕성하게 포교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신을 신부라 소개한 중년 남성.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신도들의 눈빛은 일개 신부가 아닌 전능한 신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조금 이색적인 부분이라면 그 와중에 소란이 일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도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리는 내지 않았다.
‘가능한 이목을 피하고 싶은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시민 중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미친……. 이런 곳이었어? 설마 당신네들 소문의 그 광신도들 아니야?”
그녀의 발언에 다른 시민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그녀를 향해 누군가 다가섰다.
‘조성준?’
호진 일행을 이곳에 불러온 그였다.
그가 다가서자 여자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소리쳤다.
“뭐야, 나 C급 헌터야. 다치기 싫으면…….”
여자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어느새 단검을 뽑아 든 성준이 그녀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