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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76화 (175/241)

176화. 지원 요청 (2)

“서둘러 올라타라. 부관, 현재 상황은?”

“헌터 2조부터 15조 준비 완료됐습니다! 감시단 30명도 도착했습니다.”

“골렘 부대는?”

“미들급 골렘 150기 공방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타이탄급 1기는 수송차량에 옮기는 중이랍니다!”

“타이탄급 도착하는 대로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한다. 보급 물품도 철저히 챙겨라.”

“넵!”

현재 상황을 확인한 헌터 1조 조장 기서는 몸을 돌렸다.

이 정도 대규모 출병은 처음인 만큼 요새 안의 긴장감은 팽팽하기 그지없었다.

성문 안쪽을 가득 메운 트럭과 수송차량 그리고 장갑차들.

군에서 지원해준 탱크 수십 대도 요새밖에 대기 중이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게이트 발생 초기의 김포 정도는 쓸어버리고도 남을 거다.

문뜩 예전을 떠올린 기서는 쓰게 웃었다.

‘그분에게 구원받은 것도 벌써 꽤 예전 일이군.’

자신보다 어리지만, 그에게 존칭하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그야 처음 봤을 때부터 호진은 자신과 가족들의 구원자였으니까.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몰려오는 감염자들과 맞서 싸운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애기 아빠’라 불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수백의 헌터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섰다.

‘이젠 내가 사람들을 구원할 차례겠지. 근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럽다.

기서는 상념에서 깨어 고개를 들었다.

마침 부관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대장……님?”

“어어, 그래. 공방에서 보낸 것들이 도착했나?”

“아니, 그게…….”

“……?”

부관의 시선은 한쪽을 향해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떨리는 동공과 목소리가 그가 느끼는 당황을 고스란히 전해줬다.

‘도대체 뭘 보았기에…….’

성문으로 시선이 향한 기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랜만입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곳엔 늘 위험에서 자신들을 지켜주었던 영웅이자 구원자가 서 있었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 이렇게 완벽하게 맞춰 돌아오실 줄이야.

기서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호진 님.”

***

“굉장하네.”

호진은 창 넘어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문 앞에서 광장까지 늘어선 병력은 자신이 떠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비약적인 아니,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당장 헌터 1조는 정부의 최정예라 불리던 흑색 창부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뭐 그쪽도 더 강해졌겠지만…….’

그저 호진이 작게 읊조린 소리에,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 찼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호진이 형!”

“호진 님!!”

서로 질세라 밀치며 문으로 들어오는 박 순경과 오주호.

“이놈, 오주호! 안 비켜? 나 요새 관리자야!”

“그게 여기서 왜 나와요! 호진이 형 방금 봤죠. 이 아저씨 권력 남용하는 거?”

“하하하하…….”

그 모습에 기서는 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호진 또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기억과 모든 게 바뀐 것 같아 어색했었는데,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여전하네. 다들.’

그것이 왠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고생은 박 순경님이 하셨죠.”

캠프의 성장이 기대 이상이다.

이젠 캠프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분명 그 성장에는 박 순경의 피와 땀이 녹아 있으리라.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박 순경님에게 믿고 맡기길 잘했습니다.”

“아니, 뭐……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박 순경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훈훈한 분위기 속 호진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근데, 저 병력들은 다 뭡니까?”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 물자를 나르고 차량에 올라탄 병사들.

단순히 훈련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 차원 문 앞을 지키던 병사는 정부에서 지원 요청이 왔었다 했다.

그것에 대한 준비인 걸까.

호진의 의문 어린 시선에 박 순경은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급박하니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우선 호진 님이 차원문을 넘어가시고 나서 이쪽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장 큰 위협이었던 샴이 호진의 손에 죽었다.

이후 두 달은 게이트 사태 이후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 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뿐만이 아닌, 세계 각국이 빠르게 몬스터들에게서 빼앗긴 땅을 수복하며 평화를 찾았다.

헌터들도 점점 힘을 쌓았고.

인류는 늘 그렇듯 혼자가 안 되면 둘이, 둘이 안 되면 열이, 열로도 부족하다면 수백이 모여 몬스터들을 물리쳐나갔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정상급 헌터들의 집단 린치를 버텨내지 못했다.

그러나.

“저희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2달간의 평화는 평화가 아닌, 폭풍 전의 고요였음을. 새로운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부……의 위협?”

호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호진 님은 혹시 ‘불사의 신’에 대해선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

호진은 대답 대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으니까.

호진의 표정을 본 박 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군요. 설명하기가 빠르겠습니다. ‘불사의 신’ 그 미친 종교가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게이트 발생 이후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 나갔기 때문일까.

불멸을 약속하는 수상쩍은 종교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놈들은 진짜로 죽은 사람들을 되살릴 힘이 있었으니까.

“죽은 가족, 친구, 연인이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썩어 문드러진 괴물이 아닌,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지닌 사람으로요.”

그것을 눈으로 본 사람들 중 누가 그 종교에 홀리지 않을까.

‘불사의 신’을 믿는 신도들은 광적이고 맹신적이었다.

아무리 이상한 교리라 해도 그들은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손에 죽은 이들도 모두 불멸을 얻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순교자라고 부르더군요. ‘불사의 신’을 믿으며 자폭 테러를 감행하는 이들을요. 죽음으로써 불멸을 얻으리라 믿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큰일이군요.”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닙니다.”

박 순경은 지도를 펴며 붉게 표시된 곳들을 가리켰다.

“불사의 신의 군세. 그것들이 한 달 전쯤부터 세계 각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도 몬스터도 죽은 자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흡수하면서 빠르게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선 그것들이 ‘불사의 신’ 신도들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불사의 군세가 캠프를 습격할 때면, 늘 타이밍 좋게 불사의 신을 믿는 광신도들이 테러를 감행했다.

그러자 아무리 준비가 잘된 캠프라 할지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관계가 있겠죠.”

호진의 머릿속에는 이런 일을 벌이고도 남을 녀석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여태까지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정말 위험해지셨습니다. 다음엔 꼭…… 데니토께 당신을 바치겠습니다.’

‘놈이다.’

하얀 가면.

김포에서 이어붙인 왕을 만들어낸 녀석.

공왕을 조종하여 시리온을 멸망시켰으며, 무엇보다 강화도 캠프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장본인.

분명 녀석이 이 일에 연관되어있을 거라는 직감이 왔다.

박 순경은 어두운 얼굴로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 불사의 군대 중 꽤 큰 세력을 지닌 무리가 만주를 거쳐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더군요.”

“그럼 그쪽으로 지원을 가는 겁니까?”

이에 박 순경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북한에선 한국의 지원을 거절했습니다. 정부에서 요청한 것은 혹시 모를 서울의 방비입니다. 부산에서도 지원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그쪽은 거절했습니다. 동시에 두 곳을 모두 돕기는 무리니까요.”

“부산이요?”

호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곳엔 S랭크 헌터인 부산 대표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남쪽의 몬스터들은 거의 다 박멸한 걸로 알고 있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울산 캠프 상태가 좋지 않거든요. 불사의 신의 광신도들 때문에요. 거기 피난민들을 부산에서 수용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입니다.”

“……쉽지 않겠군요.”

광신도들을 겉으로 봐서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부산도 골치를 앓을 만했다.

“아, 한 가지 걸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 순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확실치는 않은데…… 울산 쪽에서 하얀 가면을 쓴 자가 그곳에 나타났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

호진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산에 다시 연락해주십시오.”

“예?”

“제가 부산으로 지원을 가겠다고요.”

차갑게 가라앉은 호진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이곳이 뚫리면 정말 끝이다.”

“……넵!”

헌터들의 목소리는 결의로 가득 찼으나,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울산 대표 A급 헌터 지훈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다.

한숨도 안 자고 적들에게 쫓긴 지 이틀이 넘었다.

‘모든 게 너무 늦었다.’

부산으로 피난민들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시간은 충분할 것이라 믿었다.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며 울산 캠프의 유지는 어려워졌지만, 그것이 목숨의 위협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피난민의 3분의 2 정도가 부산으로 이동한 시점이었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안개가 낍니다!”

냉기를 품은 짙은 안개가 주변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코트를 뚫고 서늘한 냉기가 몸에 스며들었다.

─쩌적

푸릇하게 돋아난 잡초가 얼어붙어 퍼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4월에 접어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추위에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놈들이 온다!”

지훈이 이를 악물며 소리치자, 헌터들이 무기를 바로 잡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월! 월월!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그 소리에 지훈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럴 수는 없어.’

자신이 도망친다면 수백 명의 일반인들이 무참히 살해될 것을 알았기에.

“부산 캠프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2시간 정도만 가면 됩니다.”

“젠장 다 왔는데, 이제 와서…….”

지훈이 힐끔거린 뒤에는 사람들이 피신한 체육관이 보였다.

이곳에서 잠시 쉰 것이 문제일까.

‘아니, 놈들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놓친 적이 없다.’

지금까지 힘이 빠지길 기다렸을 뿐.

시대착오적인 말발굽 소리와 말의 투레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안개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신형들이 흘긋 보인다.

불사자의 군세라고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말을 타고 산 자를 사냥하는 사냥꾼들.

‘유럽에서는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지.’

빌데야크트.

지훈은 예전에 정부 쪽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곱씹으며 안개 너머를 노려봤다.

그래봤자 불사자 무리라고 웃어넘겼던 과거의 자신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저건 몬스터 따위가 아니다.

저건…….

─푸욱

“어……?”

지훈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창날을 보며 두 눈을 깜빡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들어온 공격.

“데니토에게 영광을. 대장도 곧 저에게 감사하게 될 겁니다.”

누구보다 자신과 오래 함께한 헌터가 자신을 보며 빙긋 웃음을 짓고 있다.

“……하.”

지훈은 인상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창을 찌르고 있던 헌터의 머리가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불사의 신께 영광을!”

주변이 소란스럽다.

수십의 광신도들과 일반 헌터들이 뒤엉켜 무기를 주고받고 있다.

광신도는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기습에 피해가 컸다.

─콰직!

그때 죽은 자들의 군세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아아악! 대장. 사…… 살려…… 커억.”

“막아! 막으라고! 여기가 마지막…… 끄륵!”

자신과 함께해온 헌터들이 허무하게 무너져갔다.

이렇게 죽을 애들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이 개새끼들이…….”

지훈이 이를 악물며 손가락을 튕겼다.

뼈를 달그락거리는 기사의 머리가 투둑 소리를 하며 떨어져 나가고, 시체 말들이 바닥으로 꼬꾸라지며 목이 부러진다.

그를 A급 헌터로 만들어준 바람 마법이 안개를 뚫고 사납게 터져나간다.

‘죽을 때 죽더라도. 네놈들은…….’

지훈이 이를 악물며 손가락을 재차 튕겼다.

하지만 원하던 소리는 끝내 울리지 않았다.

“……이건 너무하잖아.”

지훈이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잘려 나간 손가락과 동시에 머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의 시야에 자신을 지나쳐 걸어가는 사람이 들어왔다.

하얀 가면.

그것이 지훈이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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