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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66화 (165/241)

166화. 거미줄 위에서 춤을 (6)

나무 문을 열자 이전과는 다른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가 덜 끝난 듯, 색이 칠해지다 만 벽면과 튀어나온 못.

마치 시공 중인 건물 안을 걷는 느낌이었다.

이를 두리번거리던 울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피식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구나.”

“……?”

호진이 그런 울타를 의아한 듯 바라보자, 울타가 이어서 말했다.

“세계의 견고함이 이전만 못 하다는 말이다. 지금 이 공간은 굉장히 불안하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호진도 왠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공간에선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시험은 어려울까요?”

급하게 준비한 시험이다.

호진을 떨어트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시험들을 모두 깨부수고 달려온 지금, 제대로 된 시험이 준비되어 있을지 의문이었다.

예상대로 울타는 고개를 저었다.

“강력한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신력을 소모해야 가능한 일이다. 단기간에 만들어내는 건 더더욱 어렵고. 아마 그리 어렵진 않겠지.”

“흠…….”

호진은 그 대답에도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느껴졌던, 몸을 점점 옥죄는 감각은 옅어졌다.

그 감각은 시험이라는 이 함정에 빠졌기에 느꼈던 것이었으니까.

다만, 뭐랄까.

“시선이 느껴지네요.”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힐끔거리던 시선이, 지금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원래 그녀의 관심과 시선은 난쟁이들의 수도를 향해 있었을 터다.

수천 년의 봉인을 깨고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다.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둥지에 들어온 먹잇감을 얕봐서는 안 되었다.

정신을 차리니 턱밑까지 도달한 호진들은 더 이상 장난감도, 훌륭한 먹잇감도 아니었다.

─스륵

호진은 자신을 향한 시선에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위험함을 경고하는 몸의 신호였다.

노골적인 악의에 찬 시선은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뒤섞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호진은 더더욱 확신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순간이라고.

‘후회할 거다.’

호진은 자신을 한낱 먹잇감으로 생각했을 그녀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뭘 할 수 있는지.

호진은 싸늘하게 웃으며 닫힌 석문 앞에 섰다.

준비는 끝났다.

일행들을 돌아보자 두 사람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습의 효과는 예상치 못한 순간, 상대가 준비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상대의 혼란은 더더욱 극대화될 터.

호진은 거침없이 석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세 번째 시험 공간.

그것을 마주한 호진의 감상은 지극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긴…….”

그 풍경은 잊을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을 기억 속 장소였다.

도훈과 용재도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곳이 어딘지 깨닫고 중얼거렸다.

“강화도?”

어두운 밤하늘과 불타는 대교.

그리고 처참하게 부서진 부대시설들까지.

처음 신의 사도와 조우한 순간의 밤이 호진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만들어진 세계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세계.

호진은 그날의 밤공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요.”

“네가 위협적이라는 증거다. 다른 시험들을 하나로 통합했구나. 둥지의 종착점을 이곳으로 모두 이어냈어.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이야.”

울타는 당황하며 답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그녀의 말이 무엇인지 되묻기도 전, 허공에서 익숙한 문들이 생겨났다.

여태 호진이 밀고 들어왔던 석문들.

그것이 밀려나며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진 씨?”

“귀공!”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예은과 에우리우스를 포함한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어……. 여긴?”

“뭐야? 방금까지 괴물과 싸우고 있었는데?”

문에서 나온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완전히 처음 보는 지구인들로 추정되는 사람들까지.

족히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호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인과율과 신격을 아끼기 위해 시험들을 합친 거다.’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던 시험들을 하나로 모았다.

힘을 집중한 만큼 정교한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고 호진이 혼자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이도는 여러 사람들의 동시 참가로 인과율을 맞췄다.

그 해결할 수 없는 난이도의 정체는 보나마나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어둠 저편에서 이젠 익숙한 포효가 들려온다.

소름 끼치는 하이톤의 주파수가 고막을 흔들고 본능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을 심어준다.

짙은 안개를 헤엄치며 거대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심연을 유영하는 자, 샴.”

신의 사도가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시험은 레이드인가 봅니다.”

호진은 쓰게 웃으며 사람들을 돌아봤다.

이미 일반인들은 두려움에 젖어 다리가 풀린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아까보다 수가 줄어든 기사단들조차 긴장한 채 검을 빼 들었다.

상대는 신의 사도.

만약 그 힘마저도 이전과 같다면, 이곳의 모인 이들이 힘을 아무리 그러모아도 쓰러뜨리긴 어렵다.

호진은 손에 쥔 검을 만지작거리며 샴을 바라봤다.

녀석이 지닌 힘과 격. 분명 진짜였다.

격도, 스킬도 지니지 않은 채로 녀석을 상대해서 이길 가능성?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혹여 가능하다고 해도 싸움 끝에 신을 상대하러 갈 정도의 체력이 남아 있을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누구도 죽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긴 한데…….’

고민 끝에 호진은 울타에게 물었다.

“울타 님, 지금 이 공간은 어떤가요? 견고한가요, 아니면 불안정한가요?”

“견고하다. 하나, 급하게 합친 만큼 마감이 허술하기는 하구나.”

그거면 충분했다.

복도에서 느껴졌던 위화감.

호진은 그것을 찾기 위해 감각을 집중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도박이라면 성공했을 때 유의미한 쪽에 거는 것이 좋으리라.

샴과의 싸움은 이긴다고 해도 이긴 게 아닐 테니까.

성공적인 기습은 의외성에서 오는 것.

호진은 울그렉 이후트가 들이민 선택지 중에서 답을 고를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함정들을 통과할 때의 감각을 되살렸다.

천천히 걸어가던 호진의 감각 끝에 어느 부분이 걸렸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텐트.

하지만 호진은 그곳에서, 어설픈 복도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아니, 마음먹은 이상 해내야만 했다.

호진은 천천히 검을 뽑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 기행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런 호진을 향해 쏠렸다.

“저 사람은 뭐야?”

“미친 건가?”

호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호진을 아는 사람들조차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호진을 향해 물었다.

“형……?”

“호진 씨?”

하지만 호진은 천천히 호흡을 갈무리할 뿐이었다.

지그시 감았던 눈이 천천히 반개한다.

스탯을 되찾고 돌아온 몸의 감각을 관조하며, 시험 동안 얻은 깨달음을 검의 끝에 담아본다.

검을 휘둘러, 벤다는 개념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짙은 안개를 보며 에우리우스가 소리를 높였다.

“귀공! 서둘러야 할 것 같네.”

“…….”

그러나 이미 호진의 귀에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집중력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

검이란 사물을 베는 도구.

호진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벤다.’

그것을 구체화하고 현상화하는 법은 알고 있다.

이미 한 번 해본 것이다.

호진은 긴장감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검을 가볍게 내리긋자, 검의 끝에서 공기가 갈라졌다.

─스르르륵

어느새 검은 텐트에 닿았다.

그리고 텐트는 저항 없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안쪽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안의 공간은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갈라진 텐트의 안쪽에는 시험의 끝에서 늘 그들을 기다리던 나무 문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 시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자,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시험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문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로지 호진만이 예측했다는 듯 나무 문으로 다가가 문을 걷어찼다.

그러자 문이 부서지기도 잠시, 익숙한 상태창이 호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접근 불가 지역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문의 안쪽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에 호진은 한 발 물러서는가 싶더니 재차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챙강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상태창이 반으로 양단되었다.

정확히 대각으로 갈라진 창은 깨진 유리창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호진의 걸음을 막아서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호진은 납도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곳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진의 일행들과, 이게 당최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사람들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들어가시죠. 시험은 끝났습니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위협적으로 다가오던 검은 안개도.

하늘을 물들인 밤과 강화도의 바다 냄새도.

모조리 형체를 유지하지 못해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호진은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익!

그때 무너져가는 몸을 이끌고 샴이 이쪽을 향해 돌진해왔다.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공격.

그럼에도 그 공격을 허용한다면 이곳의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칠 것이다.

호진은 납도한 검의 자루에 손을 올렸다.

다음 순간.

─……?

이곳을 향해 돌진해오던 샴이 멈칫했다.

호진이 이질감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콰직

샴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쏟아진 피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빛으로 화해 공중으로 사라졌다.

간신히 샴의 형태를 이루고 있던 신격은 힘을 잃고 흩어져 사라졌다.

“완전히 돌아왔군.”

호진은 그런 샴을 보지도 않고, 다시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시험을 끝낸 순간 잃어버렸던 모든 것이 돌아왔다.

신격도, 스킬도.

모든 것이 돌아왔기에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만큼이나 성장한 것인지를.

이곳에서의 경험은 무척 험난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진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제 시험을 빙자한 이 질 나쁜 장난질은 끝났다.

더 이상 준비해 놓은 시험이 있을 턱이 없었다.

호진이 그렇지 않냐는 표정으로 울타를 바라봤다.

이에 울타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 왔다. 이 앞이구나.”

더 이상 호진을 가로막을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걸리는 게 있다면…….

호진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생존자들을 바라봤다.

분명 지구에서 이곳으로 불려왔을 그들은 호진이 괴물을 베어낸 게 맞는지, 자신들의 편이 맞긴 한 건지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데리고 가야 하나?’

아니면 이곳에 내버려 두고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호진은 그들도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 두고 간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기왕이면 눈앞에 있는 편이 지키기 쉬울 것이다.

호진은 생존자들을 향해 천천히 자신을 소개했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다행히 사람들도 호진의 말을 잘 따랐다.

호진을 신뢰한다기보다는 거부할 용기가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결과만 좋다면 상관없었다.

호진은 가장 앞장서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래 걸렸다.’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말려 올라간다.

긴 시험의 끝을 맞이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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