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거미줄 위에서 춤을 (5)
된다.
호진은 쥐고 있던 검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해내고 나니 짜릿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머리에 피가 돌며 엔돌핀이 쏟아져 나오는 기분.
긴장이 주는 짜릿함과 성취감이 몸을 뜨겁게 달궜다.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이 앞으로는 제가 나서죠.”
“위험하지 않겠나.”
도훈이 걱정된다는 듯 미간을 살짝 모으며 말했다.
이에 호진은 싱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방금 느낌이 왔습니다.”
“……?”
도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동안, 호진이 거침없이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살들이 정면에서 쏘아졌다.
하지만 호진은 그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가볍게 베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방금 전과는 달리 완벽하게 흘려낸 화살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호진은 멈추지 않고 묵묵하게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화살이 날아오면 흘려내고, 다시 걸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지금 호진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화살을 쳐내는 것이 기예에 가까운 행위인 것은 둘째치고, 화살을 하나라도 맞는다면 목숨이 위험하다.
조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날아드는 화살을 계속해서 쳐내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할 터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화살에 맞든 아니면 지쳐 쓰러지든 했을 것이다.
‘믿기지가 않는군.’
도훈은 그런 호진의 뒤를 따라가며 표정을 굳혔다.
도훈은 호진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에겐 운도 따라주었다고 생각해왔다.
애매한 직업과 능력으로 각성한 자신과 달리 호진은 굉장한 능력들과 희소한 직업을 지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굉장한 것은 직업이나 능력이 아니라 이호진이라는 사람 그 자체라는 사실을.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호진이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
도훈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
호진의 좌우에서 창이 튀어나왔다.
“흡!”
호진은 숨을 들이켜며 동시에 검을 좌우로 휘둘러, 정확히 창날이 연결된 창대의 머리 부분만 잘라냈다.
그러자 뭉툭해진 나무 봉이 뻗어 나와 호진의 가슴과 목을 가볍게 두들겼다.
정확히 폐와 목을 노린 함정.
다치진 않았지만, 그 살의가 가득히 느껴지는 함정에 호진은 이마에 땀을 훔쳤다.
“처음 보는 패턴이네요.”
호진이 도훈을 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도훈은 그제야 깨달았다.
“설마 아까 전의 화살들도 패턴을 전부 외운 건가?”
“얼추 패턴이 비슷하더라고요. 규칙성도 있고요.”
“……위험한 방식이다.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도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 화살들을 쳐내고 있는지 궁금한 참이었다.
눈으로 보고 베기에는 화살들이 점점 빨라지고 많아졌다.
그럼에도 호진이 무리 없이 계속 화살을 쳐낼 수 있었던 건, 함정에서 일종의 법칙이나 패턴을 파악한 덕이었다.
문제는 호진이 예측한 패턴이 모두 맞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특정한 함정에 비슷한 패턴의 공격이 온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앞으로는 무리였다.
도훈이 파악하기로만 화살 함정에 수십 가지의 패턴이 있었고, 방금 창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이 추가됐다.
그것을 다 외우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앞으로도 또 어떤 패턴들이 추가될지 모른다.
계속해서 맨몸으로 나아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도박수였다.
그러나 호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죠.”
“기회?”
“한 번이라도 방금처럼 유효타를 내주면 얌전히 말을 따르겠습니다.”
호진은 자신의 목과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호구를 두른 가슴과는 달리 나무 봉에 맞은 목 부위가 붉게 부어올랐다.
이를 본 도훈이 혀를 찼다.
“방금 죽을 뻔했다는 걸 알 텐데.”
“아직 살아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농담조로 말하며 웃은 호진은 천천히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이번엔 창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하나 호진은 예상했다는 듯 멈춰서 여유롭게 창을 피했다.
물론 동작이 여유로웠다는 말이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갔다면 창이 호진의 몸을 꼬챙이처럼 꿰었을 것이다.
도훈이 이를 질렸다는 듯 바라보자 호진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아까 못다 한 말을 이어 했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목숨은 계속 걸고 있었습니다.”
“……약속이나 지켜라.”
“물론입니다.”
도훈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허락에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그렇게 호진은 무수한 화살들을 쳐내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창들을 베어냈다.
점점 많아지고 빨라지는 함정들에도 호진은 거침이 없었다.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갈 뿐.
‘느껴진다.’
튀어나온 창대가, 날아오는 화살이 검의 어느 부분과 어떤 순간에 부딪힐지.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 모든 게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것은 잠시 뒤 모두 현실로 이루어졌다.
일종의 미래 예지에 가까운 감각.
‘이렇게까지 집중을 해본 적이 있던가.’
호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었다.
그저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모든 감각을 활성화했다.
청각으로는 소리를, 시각으로는 형태를, 촉각으로는 진동과 손을 타고 전해져오는 감각을 느낀다.
주변의 모든 것이 느껴진다.
굳이 보지 않아도 뒤에서 날아드는 창과 화살을 벨 자신이 있었다.
검이 닿는 그 모든 공간만큼은 오롯이 호진의 공간이었다.
‘이것이 검이 유효한 거리, 검의 권역인가.’
호진은 또 다른 깨달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전율을 느꼈다.
스킬 창도 없지만 호진은 새로운 기술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진기와 의념의 활용, 나아가 검의 권역까지.
호진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스탯도 스킬도 신격도 없음에도, 호진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더 이상 이곳의 함정들은 호진에게 위험을 가할 수가 없었다.
─서걱
호진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창과 날아드는 화살 수십 개를 눈 깜짝할 사이에 베어냈다.
“믿기지가 않는군.”
“사람이 맞긴 한가?”
도훈과 용재는 그저 허탈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복도는 그 끝을 드러냈다.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잘했다.”
울타는 멈춰선 호진의 머리 위에 내려앉으며 칭찬했다.
이에 호진은 깊게 파고들었던 내면세계에서 천천히 의식을 끌어올렸다.
잠시 어리둥절한 듯 주변을 살피던 호진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끝난 건가요?”
“그래. 고생했구나. 아이야.”
“아, 감사…….”
호진은 그 말과 함께 주르륵 몸이 허물어졌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호진을 덮쳤다.
“……끄윽!”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격통에 호진은 그대로 바닥을 기었다.
“형?”
용재와 도훈이 놀라서 달려왔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울타를 바라봤다.
하지만 울타는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몸으로 행할 수 없는 것들을 행했다. 저 정도 반동이야 당연한 것이지.”
화살과 창이 언제 어디서 올지 알고, 어떻게 휘둘러야 막을 수 있는지 알더라도 그것을 동작으로 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진기를 뽑아 쓴 것만으로도 탈력감이 몰려올 텐데, 하물며 일반인의 근육과 뼈로는 견디기 어려운 동작들을 욱여넣듯이 하여 검을 휘둘렀다.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이미 땀으로 젖어 축축하던 옷 위로 식은땀이 배어났다.
“흐읍…….”
호진이 통증에 이를 악물자 울타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버텨라, 아이야. 이번 시험의 보상은 분명 확실할 테니까.”
“그게…… 무슨?”
호진은 고통으로 흐려진 의식 속에서도 보상이라는 말에 힘겹게 입을 뗐다.
그 광기에 가까운 성장에 대한 집착에 울타는 흠칫하면서도 호진을 안심시켰다.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시험을, 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보상이 후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 말을 증명하듯 한쪽에 떠오른 창이 점멸하며 번쩍였다.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호진은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붙잡으며 보상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악
순식간에 통증이 가라앉았다.
흐릿하던 정신이 물을 끼얹은 듯 명료해졌다.
“돌아왔다.”
호진은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키며 손을 쥐었다 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상태창을 읊조렸다.
사라졌던 상태창이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스킬 창만큼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지만, 스탯은 모두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호진은 다시금 이전과 흡사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호진이 자신도 모르게 흡족한 웃음을 흘리자, 옆에서 호진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도훈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웃는 거 보니 멀쩡한 것 같군.”
이에 호진은 자신이 일행들을 걱정시켰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는 멋쩍게 뺨을 긁었다.
“죄송합니다. 안 다치겠다고 말해놓고는…….”
“괜찮다. 단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도착하진 못했겠지.”
도훈은 고개를 돌려 한쪽 벽을 바라봤다.
통로의 끝.
통로보다 약간 넓은 공간에는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다음으로 넘어갈 나무 문이 있었다.
그리고 도훈은 다시 반대편을 바라봤다.
그곳엔 호진이 뚫고 지나온 통로가 있었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온갖 부러진 창과 화살들이 바닥에 낙엽처럼 깔려 있었다.
호진이 아니었다면 못 해도 지금의 몇 배는 더 시간이 걸렸으리라.
그런 도훈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울타가 말했다.
“빠르게 돌파한 것은 잘한 일이란다. 그녀가 당황한 게 여기까지 느껴지는구나. 분명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게지.”
울타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부리를 까딱거렸다.
그러기도 잠시 눈을 뜨며 확신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가까워졌다.”
그 말을 들은 호진은 일행들과 눈을 마주쳤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씨익 웃음을 띠었다.
“생각보다 빠르군.”
“어쩌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원정대로 따라온 에우리우스와 예은.
그리고 지금쯤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을 난쟁이들까지.
서둘러야 할 이유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가시죠.”
호진은 몸을 일으키며 나무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용재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방금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던 호진이 벌떡 일어나 다시 움직이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용재의 물음에 호진은 쓰게 웃었다.
‘조금 힘들긴 하네.’
초인적인 체력과 근력이 돌아오며 찢어졌던 근육이나 상처들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하지만 실신 직전까지 갔던 탈력감은 쉽사리 사라지질 않았다.
정신적인 피로도도 상당했고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나아갈 때야.”
울타가 말했지 않은가.
이곳의 신 울그렉 이후트조차 호진의 움직임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다.
‘지금이다.’
호진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를 물어뜯을 절호의 기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