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거미줄 위에서 춤을 (4)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호진은 눈앞에 뜬 상태창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끝났…… 네?”
자신이 해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호진은 자신이 쥐고 있던 막대기를 내려다봤다.
평범하디 평범한 나무 막대기다.
칠흑색 개미의 몸을 베기는커녕 흠집조차 내기 어려운.
‘이렇게 이길 줄은 몰랐는데.’
개미의 약점 부위를 노린 것은 맞지만, 이렇게 손쉽게 이길 줄은 몰랐다.
못해도 수십 번은 내리쳐야 신경이 끊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승리에 호진은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훌륭하구나.”
울타가 감탄하며 호진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호진의 질문에 울타가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표정을 굳히며 되물었다.
“……알고 한 게 아니었다고? 그럼 어째서 혼자 달려든 것이냐?”
“그저 될 때까지 두들겨보려고 했을 뿐입니다만.”
“…….”
호진의 대답에 울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 분명 이번 시험의 난이도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었거늘.”
울타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준비된 보상을 툭툭 던져주던 상태창은 명백히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보상을 미루고 있었다.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아마 빼앗겼던 힘 중 일부를 돌려받을 거란다. 그 정도 보상이 아니라면 인과율이 무너질 테니까. 아무래도 그녀가 눈치챈 모양이다.”
힘을 돌려받는다는 말에 기뻐하기도 잠시, 호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
“시험이 어려웠다면 어째서 이렇게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울타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그러기도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호진의 궁금증에 답을 해줬다.
“답은 진기란다.”
“진기라면……?”
처음 듣는 말에 호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울타는 이젠 포기했다는 듯 답했다.
“그래, 진기. 인간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기운. 신격이나 내공을 쌓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한 기운이지.”
“…….”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호진도 슬슬 되묻기가 민망해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울타는 그런 호진의 상태를 이해했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종의 생명력을 빼내어 쓰는 것이니만큼, 위험하고 반동으로 탈력감도 올 거란다.”
“하지만 저는 몸에 이상이 없습니다.”
“아이야. 그건 네가 아주 미세하게 힘을 뽑아내 휘둘렀기 때문이다. 벤다는 개념의 형상화를 보조하는 역할로만 사용했더구나. 그건 분명 마법의 경지였다.”
마법이란 언령을 다루는 것.
말에 힘을 구체화하고 현상화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론 언령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말의 뜻과 완벽히 일치하는 동작을 통해 마법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호진은 벤다는 행위를 완벽하게 더할 나위 없는 동작으로 해냈다.
그리고 그 개념을 검에 담아, 미세한 진기로 형상화하였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
미세한 진기만으로 검에 의념을 담아 참격이라는 개념을 구현할 수 있는 필멸자가 이 세계를 통틀어 몇이나 될까.
호진 본인이 스스로 격을 가졌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호진의 미친 듯한 재능과 그동안 쌓아 올린 경험의 산물이었다.
정작 본인은 모르는 듯했지만…….
“……?”
호진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울타를 보며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이에 울타는 고개를 눈을 가늘게 떴다.
볼 때마다 자신을 놀라게 하는 이 봉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가 다르게 격을 쌓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가도, 어떨 때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이 걱정됐다.
그런 울타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호진은 그저 상태창을 보며 보상을 기다릴 뿐이었다.
‘힘의 일부를 돌려받는다, 라.’
어떤 힘을 돌려받을지 기대가 됐다.
무엇을 받느냐에 따라 다음 시험의 공략도 매우 달라질 터였다.
때마침 상태창이 떠올랐다.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건…….”
호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양손을 내려다봤다.
그곳엔 사라졌던 방어구와 옷가지 그리고 익숙한 검이 손에 들려있었다.
“인벤토리.”
호진이 중얼거리자 평소와 같이 검은색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벤토리 항목을 살피자 빠짐없이 물건들이 수납되어 있다.
“…….”
기쁘긴 하다.
성유물부터 각종 무기와 생필품까지.
인벤토리엔 호진이 그간 모아온 모든 것들이 전부 담겨 있었기에,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이점이었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스탯이나 신격인데 말이지.’
스탯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들기조차 어려울 테고, 신격이 없다면 권능이나 성유물의 사용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군.”
호진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울타도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구나. 앞으로의 시험이 그리 순탄치는 않겠어.”
“어쩔 수 없지요.”
호진은 묵묵히 보상받은 무구들을 착용했다.
그러고는 인벤토리의 보상들을 꼼꼼히 살폈다.
평소라면 무리 없이 사용하던 아이템들도 지금의 상태로는 못 다루는 게 태반일 테니까.
예컨대.
“형……. 이것 좀 인벤토리에 넣어주라.”
지금의 용재처럼 말이다.
그는 잔뜩 울상을 지은 채 보상으로 돌려받은 도끼를 가리키며 말했다.
용재가 애용하는 리자드맨 치프의 황금 도끼.
스탯이 사라지자 들어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호진은 피식 웃으며 용재의 도끼를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일단 이거라도 쓰고 있어라.”
호진은 인벤토리에서 도끼 하나를 꺼내 던졌다.
나무를 벨 때 쓸 법한 종류의 양손 도끼였다.
“오 괜찮은데?”
그것을 받아든 용재는 그 자리에서 도끼를 들고 붕붕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사실 검이라면 더 좋은 것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용재는 그간 꾸준히 도끼를 써온 만큼 검보다는 도끼가 편할 터였다.
호진은 용재에게서 시선을 돌려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 씨도 이리 주시죠.”
그가 들고 다니는 핸드건은 도저히 일반인이 다룰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박격포를 들고 쏘는 격일 터.
하지만 도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문제없다. 필요하면 말하도록 하지.”
핸드건을 한 손에 들고 휙휙 휘두르는 도훈.
그 모습에 호진은 할 말을 잃었다.
전에 군인이었다더니.
도훈은 스탯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초인적인 근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강한 것은 도훈 씨일지도 모르겠군.’
호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에 용재와 도훈도 준비됐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럼 다시 가볼까요.”
호진이 나무 문의 문고리를 잡던 순간이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울타가 다가와 호진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이쪽이 아니다.”
“예?”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길잡이를 해주겠다고.”
울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아오르더니 입구도 출구도 아닌, 평범한 벽으로 향했다.
─탁 탁 타닥
잠시 그 앞에서 멈춰선 울타는 돌연 부리로 벽을 쪼아댔다.
아무리 흙벽이라도 부리로 쪼아서야 안 아플 리가 없었다.
“울타 님, 뭐 하시는 겁니까. 그만…….”
─우웅
호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울타가 쪼던 흙벽돌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스르륵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건 나무로 된 허름한 문짝 하나뿐이었다.
오랜 기간 이용되지 않은 듯 낡아빠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울타가 말했다.
“따라오너라. 아이야.”
“……감사합니다.”
왠지 민망해진 호진은 잡고 있던 나무 문의 문고리를 놓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
“통로?”
호진은 석문 넘어 나타난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끝이 보이지 않게 길게 이어진 통로.
은은한 빛이 통로를 비추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창백한 빛이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자아내고 있었다.
“뭐야, 괴물은?”
용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통로 저 멀리까지 노려봤다.
“없는 것 같아.”
어둠을 꿰뚫어 보는 힘을 잃은 호진의 눈에는 용재와 다름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지나갈 법한 통로는 어떤 특징도 없이 길게 이어질 뿐이었다.
그때 두 사람의 앞으로 도훈이 나섰다.
호진은 거침없이 통로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며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잠깐……!”
그러나 도훈은 몸을 돌려 호진에게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댔다.
그러기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바닥을 발로 탕탕 구르거나 벽면을 손을 두드렸다.
이내 그는 뭔가를 찾은 듯 허리춤에 있던 수통을 풀러 가볍게 던졌다.
다음 순간.
─파팍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 두 개가 공중에서 수통을 꿰뚫었다.
꿰뚫린 수통은 울컥 물을 쏟아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
이를 지켜보던 호진과 용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트랩이다. 아무래도 이번 시험은 함정인 것 같군.”
도훈은 끊어진 가느다란 실을 손가락으로 집은 채 말했다.
수통이 허공에서 부딪힌, 방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가느다란 실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재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원래 군대에 가면 저런 것들도 배워?”
“아니.”
호진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하지만 용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형이 의경이라서 못 배운 거 아니야?”
“…….”
호진은 그 말을 애써 무시하고 도훈에게 다가갔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일단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뒤는 몰라도 이 앞의 트랩들은 간단한 원리로 된 장치들이니까. 다만 해제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군.”
“……우선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에 호진은 잠시 멈칫했지만, 어떤 함정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무작정 달려들 수는 없었다.
도훈은 그 뒤로도 꼼꼼히 벽과 바닥을 살피거나, 벽에 귀를 가져다 대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가 지나간 자리로 빗나간 화살들이 무수히 바닥을 뒹굴었다.
“예은이 누나가 왔으면 좋아했겠다.”
화살이 바닥에 굴러다니니 예은이 있었다면 아까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호진은 괜찮아 보이는 화살들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으면서도,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3개인가.’
다음 순간 정면에서 화살 세 발이 날아들었다.
“발목, 가슴, 목.”
호진이 낮게 읊조리는 순간 도훈이 들고 있던 타워 실드에 차례대로 화살이 꽂혀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용재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알았어?”
“……나도 궁금하군.”
도훈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눈에 놀람이 깃들 정도였다.
이에 호진은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괜찮을 것 같은데.”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호진.
이를 지켜보던 도훈이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기다려라. 그 앞엔…….”
─팅
호진은 귀에 스치는 미세한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초인 같은 스탯이 없어도 집중하면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화살을 쏘아내는 소리가 화살보다 빨리 호진의 귀에 꽂혀 들었다.
‘흉부에 두 발, 머리 한 발. 허벅지와 종아리 순서대로 한 발씩.’
호진은 눈을 부릅뜨고 날아드는 화살의 궤도를 살폈다.
‘지금.’
저 멀리 뭔가 보인다 싶은 순간 호진은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형태와 궤도를 파악하려고 하면 늦는다.
─틱 티 틱
날아든 화살들이 휘둘러진 검에 가로막혔다.
조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아 궤도를 간신히 비트는 수준이지만, 다행히 모두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용재와 도훈은 어이없다는 듯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