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거미줄 위에서 춤을 (1)
나무 문 너머로는 어두운 통로가 이어졌다.
호진은 신중히, 그러나 신속하게 움직였다.
‘서둘러야겠어.’
밖에 남겨진 일행들과 지금쯤 한창 수성 중일 난쟁이들의 목숨은 호진에게 달려있었다.
다행히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석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 이건…….”
용재가 도끼를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래, 첫 번째 시험이겠지.”
상태창이 말했던 여섯 단계의 시험.
그 첫 번째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문이 분명했다.
작금의 사태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지금껏 쌓아 올린 감이 말하고 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압박감이 호진을 조여 오고 있었다.
이 너머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랐다.
“바로 간다. 긴장해.”
호진은 말과 동시에 문을 밀었다.
─드르르륵
돌이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통로에 비하면 밝은 빛이 석문 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호진은 약간 눈을 찡그리며 천천히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소 좁아진 시야 사이로 문 안쪽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까 전 휴게실보다는 넓지만, 생각보다 좁은 공간.
흙으로 된 방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호진은 안 그래도 찡그려진 미간을 더욱 일그러트렸다.
그곳에 있던 건 다름 아닌…….
─차칵 차칵
커다란 개미 한 마리였으니까.
“이게…… 뭔.”
호진이 말을 잇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뒤에서 고개를 내민 용재가 개미를 보고는 소리쳤다.
“어! 저건 검도장에서 봤던 그……?”
“맞아.”
호진은 여전히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E급 던전 ‘노예 개미굴’.
호진이 최초로 클리어한 던전에서 나왔던 몬스터다.
‘분명 그때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강했지만 지금은…….’
호진이 시험의 처참한 난이도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였다.
“으, 다시 봐도 징그럽네. 저 때 생긴 흉터가 아직도 있다니까. 가끔 꿈에도 나와.”
“……잠깐 뭐라고?”
“어? 뭐가?”
“아니, 네가 그랬잖아. 꿈에도 나온다고.”
“어, 맞아. 악몽처럼 쫓기는 꿈을 지금도 꾼다니깐.”
“……그거다.”
호진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태창은 두려움에 직면하라고 했어.”
“그렇군.”
도훈도 이해가 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재만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자, 도훈이 한숨을 쉬곤 설명을 이어 나갔다.
“네가 꾼다는 그 악몽은 너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두려움이 나타난 거다.”
“그리고 저 괴물은 분명 내 두려움이 형상화된 거겠지.”
─차칵 차칵
개미는 연신 턱을 부딪치며 위협적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호진은 그것을 보며 혀를 찼다.
누군가의 두려움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잘못 생각했나?’
울그렉 이후트는 분명 신 행세를 하는 가짜라 생각했거늘.
눈앞의 광경은 도저히 가짜가 해낼 수 있는 수준의 짓거리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녀석을 진짜배기 고대신이라 가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큰일 났군.’
호진은 쓰게 웃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아직은 이르다.
자신의 검은 신에게 닿기에는 너무나 미숙하다.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호진은 깊은 늪에 빠진 듯 사고가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이놈이 이렇게 작았었나.”
어느샌가 앞으로 이동한 용재가 개미를 번쩍 들어 올렸다.
개미가 턱으로 깨물었지만 용재의 갑옷에는 흠집조차 나질 않았다.
사실 맨살을 깨물었어도 이제는 뚫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호진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자신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두 번 죽이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만.”
용재는 중얼거리며 개미의 목을 비틀었다.
장작이 부서지듯 우지끈하는 소리가 방 안에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방 안에는 고요한 적막이 감돌았다.
잠시 후.
“흐……!”
그 침묵을 깬 것은 호진의 웃음소리였다.
바람 빠지는 듯 피식하고 웃음을 흘린 호진.
용재와 도훈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호진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또다시 실재하는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뻔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그동안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
‘언제는 내 예상대로 흘러간 적이나 있었나?’
생사가 걸린 일이라니.
이제 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또다시 상태창이 떠올랐다.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낡은 단검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그걸 보기도 잠시, 용재와 도훈과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시험을 통과하니 보상을 주는 것까지 제법 기존의 상태창과 많이 닮았다.
“옛날 생각나네.”
호진은 떨어진 낡은 단검을 발로 걷어찼다.
멀리 날아가 쨍강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단검.
호진은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며 새롭게 생겨난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보자고. 우리한테 추억을 선물해준 놈이 어떤 낯짝을 하고 있나 구경은 해봐야지.”
그 걸음걸이는 어느새 한없이 가벼워져 있었다.
***
「다섯 번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
“……뒈지는 줄 알았네.”
호진은 거칠게 숨을 내쉬는 용재의 말에 조용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컥울컥
목이 반쯤 잘려 나간 샴의 세 번째 머리.
다섯 번째 시험은 다름 아닌, 호진과 격렬하게 맞붙었던 기사 형상의 사도였다.
‘설마 이런 것까지 구현할 줄이야…….’
시험에서 다른 신의 사도를 구현해 내다니.
이제껏 만난 어떤 신도 이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능력이 있다면 어째서 이런 곳에 봉인되어 웅크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세 번째 머리의 힘은 진짜였어.’
무기도 쓰는 힘도 정확히 기억과 일치했다.
만약 이런 녀석이 동시에 여럿이 달려들었다면?
살짝 자신이 없었다.
물론 한 마리 정도라면 한번 상대해본 녀석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용재와 도훈이 주도해서 녀석을 제압했는데, 아마 좋은 경험이 된 듯했다.
싸움의 말미엔 두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니까.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시험을 주관하는 존재.
즉 울그렉 이후트의 정체였다.
도대체 뭘 하는 녀석이기에 이런 것까지 구현이 가능한 걸까.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능력이었다.
“분명 뭔가 있는데…….”
호진의 중얼거리던 그때 재차 보상이 주어졌다.
허공에서 떨어진 평범한 롱소드 하나.
그것을 집어 든 호진은 감시자의 눈으로 검을 살폈다.
「롱소드」
「종류: 양손검」
「정보: 공방의 밸런스가 우수하여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검입니다.」
“역시나.”
호진은 한숨을 쉬고는 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검은 보이는 그대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기였다.
즉, 사도를 잡고 주는 보상이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보상은 단계별로 고정인 듯싶습니다.”
지난 시험들에서 나왔던 단검, 투구, 갑옷, 방패 다시 롱소드.
다 합치고 보면 평범하게 한 사람이 착용하기 좋은 세트가 된다.
아무것도 없던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눈에 찰 리가 없는 보상들을 보며 호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이상해.’
분명 살아만 남을 수 있다면 이 시험은 참가자를 강하게 만들어주긴 했다.
그러나 괴랄한 난이도에 비해 주어지는 형편없는 보상.
들쭉날쭉한 난이도.
플레이어를 강하게 만들고자 했다면 보상도 난이도에 맞춰서 해줬어야 하고, 시험의 난이도 역시 점차 어려워지는 방식으로 했을 터다.
그렇다고 참가자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 볼 수도 없었다.
만약 그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거칠 것 없이 그저 처음부터 강력한 적을 배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시험의 목적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끝엔 뭐가 있을까.
호진은 말없이 다음 시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다음 시험만 통과하면 모두 알게 될 테니까.
─드르륵
석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난다.
그리고 여섯 번째 시험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뭐야?”
용재가 호진의 심정을 대변하며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불어온 거친 바람.
갑자기 나타난 푸르른 하늘이 눈을 시리게 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그 위로 징검다리가 하나 있었다.
어떤 원리인진 알 수 없지만, 허공에 놓인 돌판들이 의미하는 바는 꽤나 분명했다.
“이번 시험은 여길 건너는 건가.”
확실히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는 심리적으로 움츠러들기는 했다.
하지만 징검다리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마음만 먹는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이번 시험은 꽤나 쉽겠네요.”
호진은 안심하며 뒤를 돌아봤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 시험은 참가자들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도훈은 닫힌 석문을 다시 당기고 있었다.
용재는 멍한 눈으로 바닥에 모래알을 세고 있었다.
“이런.”
아무래도 이번 시험은 두 사람에게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다.
호진은 한숨을 쉬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
“으아아아악!”
“…….”
용재의 비명이 협곡 사이로 길게 울려 퍼졌다.
초반에 격렬하게 저항하던 도훈은 그대로 기절해 축 늘어져 있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호진은 두 사람을 양쪽 어깨에 메고 징검다리를 내달렸다.
시간을 아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의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시험 자체는 단순하고 쉬운 편이었다.
호진은 징검다리를 한 번에 3~4개씩 뛰어넘으며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목적지점에 도착하려던 그때였다.
징검다리 위에 놓인 검은색 물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호진은 어렵지 않게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운동화?”
그것도 익숙한 모습과 형태를 한 운동화에는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발견하자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았다.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저런 게 이곳에……?’
호진은 운동화를 지나치며 인상을 찡그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호진은 메고 있던 두 사람을 내려놓으며 뒤돌아서서 방금 보았던 운동화를 되돌아봤다.
나동그라져있는 운동화 한 짝.
호진들을 제외한 지구의 인간이 이곳 난쟁이 왕국의 지하에 봉인된 울그렉 이후트의 거처까지 왔을 가능성?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이 호진의 뇌리를 스쳤다.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 떠올린 그 가설은 점차 그 실체를 띠었다.
호진은 이를 악물었다.
「여섯 번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보상을 계산 중입니다.」
“끝난 거야?”
용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말대로 시험은 끝난 듯했다.
이제 어떻게 될까.
호진은 머릿속을 메우던 가설을 억지로 지워내며 다음에 일어날 일을 대비했다.
시험을 통과했으니 시험의 출제자를 만날 수도, 아니면 보상을 받고 밖으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호진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태창은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결과를 내렸다.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에 참가했습니다.」
「시험을 재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