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원정대 (2)
“도착했습니다.”
호진 일행의 눈에 저 멀리 누에고치를 연상케 하는 돔형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실로 촘촘히 감싸진 구조물.
그 구조물의 입구에서는 쉴 새 없이 거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성을 지키는 대신 공격하는 선택이 옳았군.”
끊이질 않는 거미들의 행렬에 호진은 가볍게 혀를 찼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만약 성에 남았다면 끝내 거미들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호진이 고개를 돌리자 반쯤 쓰러져가는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다는 호진의 말에 일행들은 일제히 숨을 거칠게 토해내는 중이었다.
하루가 넘도록 쉬지 않고 달리듯 이동했다.
기를 운영할 줄 아는 사람들조차 숨을 가파르게 내쉴 정도.
아직 기를 익히지 못한 예은은 얼굴이 파랗게 질릴 지경이었다.
“괜찮습니까?”
“…….”
호진의 물음에 예은은 대답 대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당장 정찰을 부탁할 순 없을 것 같다.
“도훈 씨.”
“불렀나?”
호진의 부름에 도훈은 젖은 앞머리를 넘기며 답했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지만 표정은 여느 때와 같이 덤덤하다.
“우회해서 방비가 약한 곳을 찾을 생각입니다. 정찰을 부탁하겠습니다.”
“바로 가지.”
도훈은 대답과 함께 곧장 떠났다.
조금은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호진이 오면서 본 거미들의 군세는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난쟁이들만으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터.’
그렇기에 서둘러야 했다.
시간은 분명 거미들의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적의 군세를 헤치며 역주행할 생각은 없었다.
가능할지라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터였다.
그렇기에 호진은 방비가 가장 약한 곳을 찾을 생각이었다.
급할수록 확실하고 정확하게.
그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휴식을 가졌을 때 도훈이 돌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상황은 어떤가요?”
호진의 물음에 도훈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
“잘 모르겠다.”
“네?”
예상치 못한 말에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내 진정하고 구체적으로 다시 물었다.
“방비가 약한 곳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도훈은 군인임과 동시에 훌륭한 사냥꾼이다.
적들의 진형에서 어디가 허술한지, 어디를 노려야 쉽게 무너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방비가 잘 되어있는 걸까.
호진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묻자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다. 입구를 제외하면 구조물을 지키는 적들이 없다.”
“…….”
도훈의 대답을 들은 호진은 머리가 굳는 기분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
이유가 뭘까.
구조물이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자신감?
아니면 뭔가의 함정?
잠시 머리를 굴리던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주어진 정보들만으로는 추측이 무의미했다.
“가보죠.”
정보가 없다면 그저 부딪쳐볼 뿐이다.
호진과 그 일행들은 입구에서 떨어진 한적한 장소까지 우회해서 이동했다.
도훈의 말대로 가는 길에는 어떠한 방해나 위험 요소가 없었다.
이를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미묘한 기분이었다.
어느덧 구조물의 지척까지 다다른 용재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생각보다 작네.”
“……동감이야.”
크기로만 치면 고작 축구장만한 크기의 구조물.
수만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괴물들을 쏟아낸 본거지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이 작았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공간이든 시간이든 아니면 어떠한 상식이든.
앞으로 상대해야 할 존재가 인지와 상식을 비틀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호진에게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 말은…….
‘신에 가까운 존재라는 말이니까.’
호진은 슬그머니 내려앉는 근심을 억지로 떨쳐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보다.
상대가 예상보다 격이 높은 존재라는 사실만을 받아들이면 충분했다.
불안과 근심은 판단과 움직임을 둔하게 할 뿐이다.
‘그 아들인가 뭔가 하는 놈은 별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구조물을 향해 다가가던 호진이 걸음을 멈췄다.
일행들은 그런 호진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이제 어떻게 하나?”
도훈의 물음에 호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뭘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이.
“길을 만들 생각입니다.”
“잠깐…….”
도훈은 호진이 하려는 행동을 깨닫고 손을 뻗었다.
이 정도 크기의 구조물에 구멍을 뚫는데 소란이 안 날 수가 없다.
특히나 지금 같이 기습을 할 때는 더 신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악
종잇장을 커터 칼로 자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얇은 실로 층층이 쌓은 구조물이 검흔을 따라 갈라졌다.
그 틈으로 어둑한 내부의 모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도훈은 멈추라고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켜야만 했다.
‘하긴 단장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그동안 아르바흐를 띄워주기 위해 얌전히 다녀서 잠깐 잊고 있었다.
“쉽네요.”
호진이 휘두른 검은 마치 의사가 메스를 긋는 것과 같이 섬세했다.
그마저도 너무도 빨랐기에 본 사람은 몇 안 되었지만, 그 일격을 본 이들도 어이없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들어가겠습니다.”
호진이 그 틈으로 몸을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딱 딱
갑자기 날아든 이카루스가 호진의 머리를 쪼았다.
마치 무엇인가를 경고하듯이.
“이카루스?”
호진은 의아해하기도 잠시,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경고를 흘려들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위협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들어가지 말라는 거야?”
“호오.”
이카루스는 날개를 펄럭거리며 울었다.
잠시 고민하던 호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와서 돌아갈 순 없어.”
그 단호한 대답에도 이카루스는 한참이나 더 그 앞을 가로막다가, 끝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가겠습니다.”
호진은 지체 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실내는 밖에서 보던 대로 어둑했다.
뭐 하는 용도로 쓰였는지 알 수 없는 작은 방.
그곳엔 약간의 음식과 담요가 있었다.
그건 명백히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 온 건 우리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각을 이어가던 중 호진에 뒤를 이어 도훈과 용재가 따라 들어왔다.
사건은 예상치 못하게,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졌다.
“어어?”
─우직
기사단원의 당황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좁아진 입구가 용재 뒤에 붙어 들어오던 기사의 다리를 으스러트렸다.
“끄아아아악.”
“이런 미친…….”
용재와 도훈이 황급히 그를 잡아 빼냈지만, 그의 허벅지 아래는 이미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였다.
“지혈을……!”
용재가 재빨리 피가 쏟아져 내리는 허벅지의 단면을 막고서는 기사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일찍이 기를 통해 생명력을 흡수하거나 나눠줄 수 있게 된 용재의 능력이다.
도훈과 호진도 재빨리 붙어서 기사의 몸을 고정하고 허벅지에 천을 감았다.
하지만.
─툭
노력이 무색하게 기사는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고통으로 활짝 열린 동공은 빛을 잃고 텅 비어있었다.
“어째서……?”
용재가 허탈하게 중얼거리던 그때 눈앞에 익숙한 창 하나가 떠올랐다.
「동시 입장은 3명까지 가능합니다.」
“상태창?”
호진의 황당해하는 음색이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분명 지겹도록 보아온 상태창이었다.
용재는 물론이고 도훈마저도 드물게 당황하며 호진을 바라봤다.
그들도 같은 것을 본 것이 틀림없다.
“이게 무슨…….”
“잠깐. 밖에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먼접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
상태창을 본 것이 자신들뿐이라면 밖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호진은 당황을 억누르며 자신들이 들어왔던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게 베어진 벽.
그러나…….
그 밖에 보인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공간.
적어도 자신들이 들어왔던 곳이 아닌 건 분명했다.
그와 동시에 상태창이 하나가 새롭게 떠올랐다.
「접근 불가 지역입니다.」
그 말 그대로 새하얀 공간으로는 뭔가에 가로막힌 듯 나아갈 수 없었다.
상태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분명했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나가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벌어진 벽은 순식간에 다시 아물었다.
“되돌아나가는 것도 안 되나.”
호진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검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쓰러진 기사단의 시체를 껴안고 있던 용재가 그를 조심스레 바닥에 뉘며 물었다.
“호진이 형, 여긴 도대체……?”
“…….”
호진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우선 지금까지 주어진 정보들은 한정적이었다.
3명을 초과해서 동시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
이곳에 온 사람은 자신들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마지막은…….
「앞으로 나아가 두려움과 직면하십시오. 시험은 총 여섯 단계입니다. 무운을 빕니다.」
‘상태창이 이 사태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
호진은 새롭게 떠오른 상태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준비된 것 같은 상황에 불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함정에 당한 것만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태창이 말한 대로 시험에 가깝나.’
상태창을 뚫어져라 살피던 호진은 뭔가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질감의 정체를 찾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존의 상태창과는 폰트도, 전체적인 모습도 미세하게 달랐다.
‘기존의 상태창과는 다른 건가?’
확실할 순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동시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굳이 사람이 죽은 뒤에 보여줬어.’
여신의 권능이었던 상태창과는 다르다.
저 상태창에서는 어딘가 악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이라도 해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아직은 정보들이 너무 부족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우선은 시키는 대로 해보자.”
이곳은 분명 준비된 함정이자 시험장.
하지만 여기 머물러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곳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든 파훼하기 위해서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용재는 닫힌 벽과 문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에 호진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최선은 그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서 입장해서야 피해 규모만 키울 뿐이었다.
이것이 함정이라면 그 예상을 뛰어넘고 파훼할 만한 의외성과 힘을 지녀야 한다.
미안하지만 남은 사람들에겐 그럴 만한 실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들어온다고 하면…….’
3명을 초과해서 동시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
그 규칙을 다른 일행들이 최대한 빨리 깨닫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좀 꼬인 것 같지만 우리 목표는 하나야. 울그렉 이후트를 쓰러트리는 것. 그것만 기억해.”
“……그래.”
또다시 눈앞에서 기사단원의 죽음을 본 용재는 힘들어했지만, 끝내 의지를 굳히며 몸을 일으켰다.
도훈은 이미 장비를 재확인하고 방 안을 훑어보더니 식량 일부를 배낭에 챙겼다.
‘문제없겠군.’
고작 이 정도 시련에 무너지기엔 그간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
어떤 시련과 함정이 준비되었더라도 상관없다.
그게 무엇이든 베고 나아갈 뿐이다.
호진은 굳게 닫힌 나무 문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