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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44화 (144/241)

144화. 망나니 왕자의 귀환 (2)

성문과 절벽의 단층.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곳에서 쇠뇌를 겨눈 난쟁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진은 조용히 기감을 흘려 난쟁이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완전히 둘러싸인 형세다.

“포위됐네요.”

호진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상황을 파악한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당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온한 반응에 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행들 중 이 정도 습격에 당할 사람은 없었다.

그 순간, 성문 위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며 외쳤다.

“정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고슴도치로 만들어주마!”

“…….”

일행들이 호진을 바라봤다.

그러나 호진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은 후, 아르바흐를 바라봤다.

이번 일은 아르바흐에게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이번엔 일행들의 시선이 아르바흐를 향했다.

아르바흐가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기도 잠시, 그는 호진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곤 화들짝 놀랐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에서 떨어질 듯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 사이 위에선 재차 소리쳐댔다.

“이곳은 그쉬 나학! 이 앞으로는 바락크툼의 영지다. 정체와 방문 목적을 밝혀라!”

허나 누구도 대답지 않자, 골짜기 안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르바흐는 자신의 등에 비수처럼 꽂히는 시선들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땀으로 등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기에.

아르바흐는 천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무리의 책임자가 직접 답해라!”

아르바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려던 순간, 상대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상대는 아르바흐가 책임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소심해 보이는 태도 때문일까,’

호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사막을 건너오며 몸에 둘렀던 복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천을 잔뜩 뒤집어쓴 아르바흐는 인간 무리에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호진이 아르바흐에게 조언을 하려던 그 순간.

─스륵

아르바흐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두건을 풀었다.

두건을 푼 데 이어 몸에 걸친 천을 걷어내는 아르바흐.

그 안에는 고급스러운 철갑이 협곡의 그늘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을 뿌렸다.

“난쟁이……?”

상대는 아르바흐의 정체를 깨닫고 멈칫했다.

그 틈에 아르바흐는 등에 메고 있던 망치를 풀어 들어 올렸다.

이를 지켜보던 상대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전부 사격 준비!”

─철컥

난쟁이들은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쇠뇌를 겨눴다.

그러나 아르바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말했다.

“내 이름은 아달바흐의 아들 아르바흐.”

“……무슨?”

“정통한 아울레의 핏줄이자, 왕가의 혈통을 잇는 자!”

“……!!!”

협곡을 타고 아르바흐의 목소리가 웅혼하게 울려 퍼졌다.

이에 멍청하게 서 있던 난쟁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아울레 아누 아르바흐. 그것이 내 이름이다. 문을 열어라, 바락크툼의 수호자들이여!”

“와, 왕자…….”

수비대장으로 보이는 상대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럼에도 확신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아르바흐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곤 들고 있던 망치로 땅을 짚듯이 섰다.

가볍게 내려놓았지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협곡이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호진조차 놀란 그 위력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적막을 깬 것은 아르바흐 본인이었다.

“그대들이 왕국의 아들들이라면 이 망치를 몰라보진 않을 터이다!”

“황금망치 크잣티라엘. 울그렉 이후트의 다리를 부서트렸다는 그…….”

잠시 홀린 듯 망치의 광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수비대장.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서둘러 소리쳤다.

“개문! 문을 열어라! 왕자님을 모셔라!”

“개문!”

병사들이 복창하자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모래먼지와 함께 거대한 소음을 내며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이윽고 모습을 성문이 열리고 문 안쪽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바흐는 망치를 어깨에 걸치며 호진에게 말했다.

“가시죠. 호진 님.”

“잘하셨습니다.”

“예? 저는 그저…… 제 지위를 이용했을 뿐인걸요.”

호진의 칭찬을 받은 아르바흐는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르바흐는 지위의 힘을 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늘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허나, 호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결과다.

아르바흐는 어떠한 갈등도 없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했다.

“충분히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이 전해지는 칭찬에 아르바흐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진이 다소 진중하게 말했다.

“저와 약속하셨죠. 저는 울그렉 이후트를 처치하는 데 도움을 드리러 왔습니다.”

“……저는 왕국의 일을 처리하고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여주시죠.”

호진이 엷게 웃자, 아르바흐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앞서 말을 몰았다.

성문을 가장 먼저 지나가는 이는 그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이 무리의 지도자는 아르바흐, 그였기에.

“자네는 아르바흐가 해낼 수 있다고 보나?”

어느새 다가온 구르드는 걱정 반, 흐뭇함 반이 담긴 시선으로 아르바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호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웃고 있네요.”

“음?”

구르드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호진은 피식 웃으며 고삐를 당겼다.

호진은 봤다.

걱정된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아르바흐의 올라간 입꼬리를.

그 미소에는 감출 수 없는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

─띠링

「여신에게 향하는 길」

「1─3. 라멜의 사도 ‘심연을 유영하는 자 샴’의 서울 침공 저지하기.」(완료)

「2─1. 대사막 ‘시칸’ 횡단하기.」(완료)

「2─2. 릴리온 성국에서 교황과 만나기.」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자 연계 퀘스트의 성공을 알리는 상태창이 떠올랐다.

‘역시 끝이 아니네.’

보상은 없고 그 대신 새로운 퀘스트가 주어졌다.

퀘스트의 이름 그대로 점점 여신에게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끝낼 수 있는 건가?’

울타는 여신을 죽여야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래야 지구와 이쪽의 세계가 분리되고 비틀린 순리를 되찾을 수 있다고.

문제는 고대신들의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막을 건너며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의 화신들이 이 땅을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서둘러야 해.’

모든 상황과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했다.

이대로 난쟁이들의 땅을 지나쳐 성국으로 향한다고 해도 호진은 여신을 벨 수 없으리라.

호진은 애써 고개를 흔들어 걱정을 떨쳐냈다.

어찌 됐든 지금은 주어진 문제에 충실해야 했다.

울타도 격을 쌓아 올리라고 하지 않았나.

자신은 잘하고 있을 터였다.

관문 안으로 들어서자, 단단히 무장한 난쟁이들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그 시선에는 경계와 호기심 두 가지의 감정이 엿보였다.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군.’

예상했지만, 아르바흐는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왕자가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호진이 걱정스레 아르바흐를 바라봤으나, 정작 아르바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드워프 전사가 50여 명, 순찰자가 30여 명인가…….”

아르바흐가 혼자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그때, 관문의 계단을 누군가 서둘러 뛰어 내려왔다.

“왕자님!”

자신들과 대화했던 수비 대장이었다.

“어째서 이곳에! 선대를 찾으시려다 실종되셨다 들었습니다.”

수비 대장의 말을 들은 아르바흐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호진과 눈을 마주쳤다.

이에 호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마주 끄덕여줬다.

‘아르바흐의 주장이 맞았군.’

호진은 이곳에 오기 전 아르바흐와 이야기를 나눴었다.

아르바흐는 왕위를 찬탈당해 쫓기던 몸이다.

이대로 왕국으로 돌아가 봤자 곧바로 병사들에게 붙잡히지 않겠냐는 게 호진의 주장이었다.

하나, 아르바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찬탈자에게도 명분은 필요하다 말했다.

그의 삼촌 울그바흐는 기습적으로 왕성을 차지했을 뿐, 모든 난쟁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 상황에서 아르바흐가 울그렉 이후트의 군대에게 쫓기다 실종됐다.

울그바흐는 손에 피를 안 묻히고 왕좌를 얻은 셈이었다.

삼촌이 자신의 실종을 왕국 전역에 알렸을 것이라는 게 아르바흐의 주장이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왕위가 자신의 손에 떨어질 테니까.

그리고 지금 수비대장의 반응을 봐서는 그것이 사실인 듯했다.

“울그바흐 놈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을 테지.”

옆에선 구르드가 클클 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만나고 이렇게 신나 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죽은 줄 알았던 조카가 등장하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군요.”

“내 평생에 안줏거리가 될 거라고 장담하지.”

구르드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빛났다.

그동안 말을 아꼈지만 쌓인 게 많은 듯했다.

“아니, 우선은 따라오시죠. 영주님에게 모시겠습니다.”

수비대장은 앞장서서 일행들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걷기도 잠시, 수비대장은 돌연 거대한 바위 앞에 멈춰 섰다.

“뭐 하는 겁니까?”

영주에게 가려면 우선 이 협곡을 벗어나는 게 먼저 아닐까.

설마 저 바위가 영주라는 건 아닐 거고.

호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아르바흐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바룩크툼으로 향하는 길은 단 두 가지뿐인데, 그중 하나가 이곳 관문의 수호자 쉴드락의 영지입니다.”

“통로요? 통로가 어디에…….”

호진은 질문하던 입을 다물었다.

수비대장이 눈앞의 바위에 손을 얹고 무어라 중얼거리자 바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윽고 바위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옆으로 밀려나고, 장정 대여섯도 너끈히 지나갈 만한 거대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기술이 발달한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네.”

일행들은 그 모습에 기가 차 중얼거렸다.

“이쪽 세계에는 유독 이런 장치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호진의 말에 구르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왜 그렇죠?”

딱히 설명을 바랐던 게 아닌 호진은 살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구르드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지하도시, 숨겨진 공간. 이런 것들이 많은 이유는 간단하지. 살아남기 위해서야.”

“적으로부터 말입니까?”

“지금은 그럴지도 하지만 지어진 목적은 그게 아니네.”

구르드는 고개를 단호히 젓고는 불편하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들 때문이야.”

“……?”

“이런 장치들이 지어진 시기는 우리 필멸자들이 아직 고대 신들의 노예였을 때라고 전해지네. 신들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피난처라 볼 수 있지.”

호진은 그제야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과 그를 따르는 괴물들을 피해 지어진 땅굴이라는 말이다.

위장과 도망.

이 장치들은 맞설 힘이 없던 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흔적이었다.

“말이 길었군. 들어가세.”

이미 선두의 수비대장과 아르바흐는 통로로 들어선 지 한참이었다.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그들의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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