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사막의 황제 (5)
“……아르바흐. 방금 뭐라 했는지 들었나?”
“그, 라멜의 사도 ‘샴’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헛것을 들은 게 아닌 모양이군.”
두 난쟁이는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기도 잠시, 구르드는 이내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지르더니 손을 마주쳤다.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블러핑이다.”
구르드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호진 님은 상대의 평정심을 흔들 셈이야. 그것에 우리까지 속아 넘어가다니.”
“아, 역시 그렇군요.”
아르바흐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던 그때였다.
“아뇨, 호진 님은 정말로 샴을 잡았습니다.”
“……?”
예은의 대답에 두 난쟁이는 이번에야말로 잘못 들었다는 듯 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 난쟁이들에게 예은은 또박또박 설명했다.
“검은 안개를 타고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 형상의 괴물. 호진 님이 종종 그 괴물을 ‘샴’이라고 불렀죠. 놈은 분명 호진 님의 손에 죽었습니다.”
“……???”
아르바흐와 구르드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눈과 입을 점점 벌릴 뿐이었다.
신의 사도.
경전에 나올 법한 그 존재들은 살아 숨 쉬는 신화들이었다.
너무나 강한 그 영향력으로 인해,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온 세상이 시끄러워질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존재들.
무엇보다 그들은 강하기만 할 뿐 아니라 각 신들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신성을 지닌다.
악신들의 사도일지라도, 저주받은 옛것이라 불릴지라도.
사도는 무릇 필멸자가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아르바흐와 구르드는 그 상식을 진리처럼 여기던 곳에서 살아왔다.
그들이 알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잡았단 말인가?’
아르바흐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전율에 떨었다.
그들의 세상은 이미 넓어진 지 오래였다.
차원을 넘어 다른 세계를 접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짧은 사이 많은 일들을 겪고 성장한 그들은 유연한 사고를 지니게 됐다.
“정말로 잡으신 거군요. 필멸자의 몸으로 사도를.”
“그래, 그런 거 같구나.”
“그렇다면 어쩌면 정말…….”
아르바흐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호진에게 ‘울그렉 이후트’를 함께 처치해 달라 부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울그렉 이후트’란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괴물이자 신이었으니까.
한데, 호진은 그에 준하는 존재를 정말로 죽였다고 한다.
‘정말로 무찌를 수도 있다.’
막연하기만 하던 목표에 빛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몸에 활력이 끓어 넘쳤다.
아르바흐의 심장에서 희망의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믿을 수 없다.”
갈리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호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샴’은 융성했던 옛 제국을 무너트린 신화 속의 괴물이다.
무엇보다 갈리온은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건 인간의 몸으로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게 진실이니까.”
호진은 담담한 표정을 답했다.
이를 지켜보던 갈리온의 표정은 더더욱 혼란에 빠져들었다.
‘거짓말 같지는 않다.’
왕의 자리에 오른 갈리온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던 능력 중 하나가 참과 거짓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갈리온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사람을 보는 눈을 길렀다.
그렇지 못했더라면 진즉에 왕좌에서 끌어내려졌으리라.
문제는 그렇게 힘겹게 얻은 능력이 지금 호진의 말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 순간, 갈리온의 머리엔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네놈도 사도인가?”
호진은 신을 불러내고 있었다.
그 정도의 총애를 받는 존재들은 사도 후보 혹은 사도밖에 없었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니, 난 사도가 아니다.”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울타와 계약을 맺은 많고 많은 봉사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물론 울타 뿐만이 아니라 여신 릴리의 은총을 공유하고 있고, 스스로도 신격을 지녔다.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사도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호진은 진실을 말하는 만큼 당당했다.
그럴수록 갈리온의 혼란은 더더욱 가중됐다.
“사도…… 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대체……?”
갈리온의 저변이라 할 수 있던 상식의 틀이 무너져 내렸다.
그로서는 호진의 말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갈리온은 처음으로 눈앞의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팔 한쪽을 잃었을 때조차도 이런 기분을 느끼진 않았다.
자신은 신의 힘을 다룰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상대가 이미 그런 신의 힘을 다루며, 그 힘을 다루던 존재를 쓰러트려 봤다면?
심지어 그 힘의 끝이 뭔지 알 수조차 없는 존재라면?
‘전혀…… 모르겠다.’
미지란 두려움과도 같은 말이다.
우주, 심해, 죽음과 같이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그 시작은 늘 작은 의심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나 어두운 옷장 속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 작은 의심이 점차 커져 두려움을 낳는다.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
의심이 생기면 없던 귀신도 만들어낸다.
지금 갈리온의 상태가 딱 그 모양이었다.
갈리온의 내면에서 호진은 점차 그 크기를 키워 두려움의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하얗게 질린 갈리온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기도 잠시 뭔가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더,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신이 되어야만 한다며 중얼거리던 녀석은 왕좌를 지나쳐 뒤편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막다른 곳이었기에 호진이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갈리온이 뭔가를 손대자 벽이 소리를 내며 지하로 가는 계단이 생겨났다.
‘비밀공간인가.’
갈리온은 기대 이상으로 충분히 흔들렸다.
지금 녀석은 허점투성이다.
빠르게 다가가 목만 베면 되는 상황.
보아하니 뭔가 남은 수단이 있는 모양인데,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좋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말 왕궁 밖의 사람들의 힘마저 모두 흡수한다면, 녀석이 위험해지는 건 둘째치고 도시 밖이 아수라장이 될 터.
호진이 갈리온을 공격하려는 순간,
[기다리거라.]
익숙한 목소리가 호진을 불러 세웠다.
“울타 님?”
호진은 자신이 강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구나.]
어느새 나타난 이카루스, 아니 울타가 호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호진은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려다, 다급히 말했다.
“울타 님, 지금 제가 좀 바쁩니다. 죄송한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에 울타는 섭섭하다는 듯 답했다.
[……무슨 상황인지는 잘 안다. 아이야. 너무 눈치 없는 늙은이 취급은 말아다오.]
“예? 아, 그런 게 아니라…….”
호진은 멀어져가는 갈리온과 섭섭해하는 울타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울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껏 울타의 말은 모두 옳았으니까.
이유 없이 호진을 막아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례했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고맙구나.]
그런 호진의 마음을 읽은 울타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너를 말린 이유는 간단하단다. 이미 늦었기 때문이니라.]
“그게 무슨 말씀인지?”
[놈이 이 상황에 흥미를 느껴버렸다. 깊은 잠에 빠졌던 은둔자가 깨어났다는 게지.]
“……!”
호진은 울타의 말에 의미를 깨닫고 흠칫했다.
울타가 말한 은둔자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시칸의 은둔자 라멜.
그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계단 아래에서 녀석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구나. 필시 놈의 신체(神體)가 있는 거겠지.]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벗어날 수 있습니까?”
호진의 물음에 울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녀석과의 조우는 피할 수 없겠구나. 지금 저 인간을 베어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느니라.]
“……그렇군요.”
갈리온이 숨겨둔 수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울타가 말하는 것을 보니 그 끝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고대신과 얽힌 자들의 말로.
그것은 시리온 왕국에서 ‘얼굴 없는 자’를 통해 이미 보았다.
호진은 쓰게 웃으며 천천히 지하를 향해 걸어 나갔다.
흘깃 뒤를 살피니 예은과 난쟁이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위압감으로 인해 다가오지 못했다.
오히려 그편이 다행이었다.
상대가 고대신인 이상, 호진도 그들을 신경 써 줄 여유가 없었으니까.
호진은 그들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뒤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내려갔을까.
지하에 도달하자 평평한 길 끝에 두꺼운 철문이 보인다.
갈리온은 문을 닫을 정신도 없었는지 활짝 열어놓은 채로 방 한복판에 서 있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제단.
그곳에는 말라비틀어진 뱀의 허물 같은 것이 있었다.
아니, 그건 분명 팔뚝만 한 크기의 허물이었다.
“설마, 저게…….”
[놈의 신체지. 어리석은 것. 저 인간은 저걸 통해 라멜의 힘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로구나.]
울타의 말을 들은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이 갈리온으로 하여금 라멜의 권능과 힘을 마음대로 다루게 해준 수단이 분명했다.
“힘을…… 더 강한 힘을 내놓아라.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내 모든 걸 주마.”
갈리온은 허물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꿈틀
호진은 말라비틀어진 허물이 꿀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 뭔가…….”
[온다.]
울타가 읊조리듯 경고했다.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갈리온만이 그 이질감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그도 곧 그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꿈틀꿈틀
허물이 점점 생기를 머금고 눈에 띄게 꿀렁거렸으니까.
“오오, 드디어 응답하는…….”
─콰직
살이 뜯겨나가는 소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했다.
“음?”
갈리온은 두 눈을 끔뻑였다.
자신이 들고 있던 허물이 바닥을 기며 계속해서 꿀렁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허물이 자신의 떨어져 나간 팔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
─와그작. 와그작.
허물은 마치 과자라도 씹듯 팔을 집어삼켰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갈리온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으으윽…….”
고통이 얼마나 심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악물은 입술이 짓이겨져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기도 잠시 갈리온은 정신을 추스르곤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팔을 주마. 아니, 내 국민들을 전부 주마! 그러니 이제 나에게 힘을 다오! 어서!”
양쪽 팔을 모두 잃은 갈리온의 눈은 광인처럼 번뜩였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라멜의 은총뿐이었다.
허물은 그런 갈리온의 모습에 팔을 먹던 행위를 멈췄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이 흘렀다.
눈이 없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라멜이 갈리온을 응시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허물은 진동하듯 떨리며 아이처럼 천진한 말투로 답했다.
[싫은데.]
다음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갈리온의 몸이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