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역병 (4)
“……도훈 씨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죠?”
데미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절정에 달한 자신과 용재조차 버티기 힘겨운 이곳에서 도훈이 태연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도훈이 늘 그렇듯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덕분이지.”
도훈은 자신의 방독면을 가리켰다.
이에 데미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벽에 몸을 기대고 그대로 주르륵 쓰러지듯 앉았다.
“허무하군요.”
“싸움이 늘 그렇지.”
도훈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쓰러졌던 용재가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빨리 죽이지 않고 뭐 해요.”
“잠깐 기다려라.”
도훈은 손을 뻗어 용재를 저지했다.
그러곤 곧장 손에 쥔 방독면을 용재에게 뒤집어씌웠다.
이에 용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 빨리 데미안을 마무리해야죠.”
“데미안은 이미 늦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데미안은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그는…….”
도훈이 이어 말하려 하는 순간이었다.
데미안이 후후 웃으며 도훈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도훈 씨. 나머진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설명은 무슨. 그냥 죽어.”
“어차피 나는 죽어, 용재야. 그 전에 꼭 전달해야 하는 말이 있어.”
“뭐? 지랄하지 마. 설명하라고 할 때는 칼부림이더니 그새 맘이 바뀌셨나?”
한껏 비아냥거렸지만 정작 기분은 더욱 불쾌해질 뿐이었다.
그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
얼굴을 일그러트린 용재가 차갑게 말했다.
“더 듣고 싶은 말은 없어. 그냥 죽어.”
“아까는 내가 너와 도훈 씨를 죽일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러나 반대로 죽음을 앞둔 데미안은 아까와 달랐다.
아까까지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하던 데미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창백하긴 했지만, 설핏 입가에 맴도는 미소는 평소의 인자하던 데미안의 모습이었다.
“그딴 표정으로 소름 끼치는 말을 잘도 하네.”
용재가 경멸하며 말하자 데미안은 더더욱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지. 그래도 나는 막아야 했어. 이 미친병이 퍼져나가는 것을.”
“…….”
금방이라도 도끼를 휘두를 셈이었던 용재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흥분이 가라앉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지 데미안이 한마디 했을 뿐이지만, 그제야 사건의 전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2주 전에 기사 중 하나가 경비를 서던 와중 다른 기사를 죽이고 도망치는 사고가 있었어. 다행히 추적에 성공해 금세 붙잡아 돌아왔지.”
“녀석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니. 왕성으로 가야 하는데 다른 기사가 방해했기 때문이라더군. 이미 대화가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지. 그래서 난 녀석을 처형하기로 결정 내렸어.”
데미안은 그때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 결정을 내릴 때 까지만 해도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임무 중 동료들이 미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어도, 이 정도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동료였던 이를 베어야 했으니까.
그랬기에 자신은 몰랐다.
진짜 불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그 순간이었어. 주변의 단원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모두 병에 걸렸다가 나은 녀석들이었지. 목덜미엔 뱀 모양의 문신이 있었어.”
용재는 텅 빈 눈동자로 데미안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독 연기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 데미안은 몇 번이나 내장이 섞인 피를 토해냈다.
폐에도 피가 차는 듯 숨을 쉴 때마다 물이 보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데미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구멍 뚫린 내장을 기로 지혈해가며 말을 이어갔다.
용재는 그런 데미안의 말을 거짓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사실상 병에 걸려 누워있던 인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녀석들이 이미 그런 상태였다. 나는 금방 깨달았지. 지금 병에 시달리는 녀석들도 모두 이렇게 변하리라는 걸. 하지만…… 난 녀석들을 죽일 수 없었어. 대신, 멀쩡한 몇 명과 문을 틀어막고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결국 데미안은 병상에서 일어나 덤벼드는 단원들을 차례로 베어냈다.
멀쩡했던 단원들조차 하나둘 병에 걸려 쓰러졌고, 데미안은 끝까지 남아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단원들마저 모두 베어야만 했다.
“볼프강만 죽이고 나도 자살하려고 했다. 나도 이미 걸려버렸거든. 그 빌어먹을 역병에.”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났다.
“그건 바로…….”
“우리의 등장이라는 거군.”
도훈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이에 데미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도훈 씨도 용재도.”
병의 전염조건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순순히 죽어달라고 죽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죄를 짊어지기로 하고 둘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
용재는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용재를 보며 데미안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염치없지만 부탁이다. 용재야. 최소 몇 주간 이곳에서 머무르며 증상을 지켜봐 줘. 그래도 멀쩡하다면 얼마든지 밖으로 나가. 하지만…….”
데미안은 이젠 정말 한계인 듯 눈이 뒤집혔다가, 겨우 정신을 붙잡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곳에서…… 끝내야 해.”
“…….”
용재는 데미안을 바라봤다.
데미안도 자신의 부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안다는 듯, 동공이 흔들렸다.
여태껏 전염율이 100%였다.
피해간 단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곳에서 몇 주씩이나 머무르고 경과를 봐달라는 부탁은 죽어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좋아. 그렇게 할게.”
용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데미안은 그렇게 원하던 대답임에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용재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설명을 듣고 납득했을 뿐이야. 다만 조금 섭섭하네.”
용재는 자신의 도끼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처음부터 이렇게 부탁했으면 싸울 필요도 없었을 거야.”
“아아……. 미안하게 됐네.”
데미안은 민망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재밌지 않았나?”
“응, 재밌었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조금이라니……. 도훈 씨만 아니었으면 내 승리였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야. 그렇게 알려준 건 너잖아, 데미안.”
“그건 그렇긴 하지. 아무튼 즐거웠다.”
“나도.”
나지막하게 답한 용재는 들어 올렸던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데미안의 몸이 가볍게 떨리다 이내 축 늘어졌다.
용재는 그렇게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기도 잠시 용재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독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방독면을 썼다지만 1층에 계속 있어서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병에 걸리기도 전에 뒈지겠네. 2층으로 올라가죠. 아저씨.”
“그래, 그래야지.”
도훈은 평소답지 않게 데미안에게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용제에게도 그랬듯.
기사단에서 머무를 때, 데미안은 도훈의 좋은 술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도훈은 그런 그의 죽음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동료들을 비롯한 죄 없는 자신들까지 죽이려 들었다.
그 행동들이 모두 옳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도훈은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겨우 돌려 위층으로 향하던 용재의 뒤를 쫓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용재가 독을 많이 들이켠 걸까.
더 이상 피를 토하면 위험할 텐데.
도훈이 걱정하며 용재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용재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
도훈은 그제야 깨달았다.
기침을 한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젠장.”
도훈은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었다.
***
호진은 곧장 왕궁을 향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무언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알아차리는 것이 너무 늦었다.
비명도 소음도 없다.
발걸음 없는 죽음은 고요하게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아직까지도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갑판을 치우는 상인들과 삼삼오오 손을 잡고 귀가하는 도시민들까지.
“……미치겠군.”
그리고 그들 중간중간에 뱀 문신이 새겨진 사람들이 버젓이 돌아다녔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수현은 도시민 전부를 통제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수백 명 중 굉장히 많은 수가 감염이 됐고, 일부는 숙주가 되어 멀쩡한 행태로 병을 전파하고 다녔다.
‘이미 많이 늦었어.’
호진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한번 세차게 흔든 뒤 재차 왕궁으로 향했다.
치료할 방법이 있을 터였다.
수현은 자신의 캠프에 속한 아이다.
이런 곳에서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호진이 왕성 문 앞에 다다르자 경비들이 호진을 막아섰다.
“이곳은 왕궁입니다.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나는 이호진. 이곳의 귀빈이다. 갈리온 왕을 만나러 왔…….”
호진은 말을 하다 말고 경비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경비들의 목에 모두 뱀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아득
호진은 조용히 자신의 어금니를 악물었다.
경비들이 모두 감염자일 확률?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심증이 더욱 부풀어 오르는 계기가 됐다.
왕이 왕국의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을 확률.
이런 시기에 커다란 야시장 같은 축제를 벌일 확률.
그리고 경비들이 모두 감염자일 확률.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비켜.”
호진이 말하자 경비들이 창을 호진에게 겨누며 위협스럽게 말했다.
“물러나라. 이방인. 한 발만 더 다가오면 후회하게 될 거다.”
이에 호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경고를 무시한 채 그들을 향해 걸어 나갈 뿐이었다.
“죽여라!”
경비대장의 명령에 경비들이 일제히 호진을 향해 창을 내찔렀다.
그러나 창끝이 호진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의아해하기도 잠시, 경비들은 성냥처럼 짧아진 창대들을 발견했다.
그것을 확인한 경비들은 일제히 맨손으로 호진에게 달려들었다.
“확실히 정상들은 아니군.”
호진은 그런 경비들을 보고 기분 나빠하며 중얼거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떠한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그 모습은 광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말을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호진은 일찍이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불사의 신의 봉사자들.’
다른 점도 많았지만 비슷한 면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나 말이다.
호진은 검집을 휘둘러 달려드는 이들의 팔다리를 부러트렸다.
병에 걸린 이들을, 숙주가 되어버린 이들을 베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회복될 것이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쿵 끼익
호진은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기어오는 녀석들의 턱을 걷어찬 후, 왕궁의 문을 열었다.
통철로 된 왕궁의 문은 성인 10명이 매달려도 열리지 않겠지만, 호진은 가볍게 문을 밀고 안으로 향했다.
이전에 왔던 기억을 되짚어가며 호진은 방을 찾았다.
왕성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렇게 걸어가기도 잠시, 이전에 갈리온을 알현했던 방 앞에 도착한 호진은 지체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