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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32화 (132/241)

132화. 역병 (3)

창 넘어 달빛에 드러난 얼굴은 너무나 익숙했다.

푸른 늑대 기사단의 휘장이 박힌 망토를 두른 기사.

기사단의 부단장 데미안.

그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용재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용재……?”

“데미안! 이게 무슨…….”

데미안에게 다가가던 용재는 문뜩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데미안 뒤에 있었다.

번쩍이는 예리한 칼날이 데미안의 목을 노리고 떨어졌다.

용재가 경고를 위해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서걱

데미안이 순식간에 몸을 돌려 상대의 팔을 잘라냈다.

건틀릿 채 잘려나간 팔이 금속음을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데미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망설임 없이 상대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이런, 미친 악……마 놈이.”

검에 찔린 이가 힘겹게 말을 토해냈다.

“볼프강 아저씨?”

용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검에 찔린 이의 얼굴 또한 눈에 익었다.

사교성이 좋았던 볼프강은 용재와 가장 친했던 기사 중 하나였다.

용재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용재와 눈이 마주친 볼프강은 발악하듯 소리를 내뱉었다.

“도망…… 쳐라! 용재야! 부단장은 미쳐…… 꺼억.”

그 말을 듣고 있던 데미안이 가슴에 꽂아 넣었던 검을 더 깊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볼프강이 기포 끓는 소리를 내며 피를 한 움큼 토하곤 절명했다.

“드디어 죽었나.”

데미안은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볼프강의 몸에서 검을 뽑아냈다.

이를 지켜보던 용재는 도끼를 꼬나 쥐며 물었다.

“……뭐 하는 짓이야. 데미안.”

“아드리안, 지크, 가르시아…….”

데미안은 용재의 대답에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름들을 외웠다.

모두 기사단원들의 이름이다.

“뭐 하는 짓거리냐고 물었어. 지랄하지 말고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해.”

용재는 씹어 뱉듯이 말을 토해냈다.

입가에서 뜨거운 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도끼로 데미안의 머리를 쪼개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체인버, 테키, 데이비드…… 그리고 볼프강. 길었군. 겨우 다 죽였다.”

“설…… 명을 해.”

이에 너무 힘을 주고 말한 탓에 잇몸에 피가 흘렀다.

용재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데미안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뒤돌아선 데미안의 눈빛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내가 모두 죽였다.”

데미안의 덤덤한 말에 용재의 머리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기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명령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거대한 황금색의 도끼가 벼락같은 속도로 데미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동시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도훈이 핸드건을 당겼다.

오랜 기간 맞춰왔기에 가능한 완벽한 합이었다.

─쾅

망루 안이 가볍게 진동할 정도의 폭발.

조각조각난 내장과 살점들이 안개처럼 공중에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에 도훈은 물러나며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실패했군.”

데미안은 너무나 멀쩡했으니까.

도훈이 쏜 핸드건은 볼프강의 시체에 가로막혔다.

데미안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 보지도 않고 바닥에 있던 볼프강을 도훈 쪽으로 내던진 것이다.

그리고 벼락같이 떨어지던 용재의 도끼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걸 어떻게……?’

너무나 익숙한 기술이다.

호진이 애용하는 기술, ‘이화접목’이 데미안의 검에서 펼쳐진 것이다.

이런 용재의 의문을 눈치챈 듯 데미안이 말했다.

“호진 님이 이걸 익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화접목은 애초에 기사단의 검술.”

말을 하던 데미안의 검이 용재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가볍게 찌른 것 같지만 빠르고 예리했다.

만약 그의 실력을 몰랐다면 눈 뜨고 당했을 정도로.

용재가 그것을 막으며 간신히 뒤로 물러나자 데미안이 말을 이었다.

“진짜를 보여주마.”

데미안의 검에 푸른색 기운이 감돌았다.

완전한 검기가 흔들림 없이 검을 타고 흘렀다.

모든 걸 절삭할 수 있는 저 기술에 대항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용재는 자신의 도끼에 푸른 기운을 둘러 감쌌다.

그동안 꾸준히 단련해온 ‘청랑심법’으로 발현한 기운은 데미안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데미안의 표정에 약간 씁쓸함이 감돌았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상대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고.

둘의 무기가 격돌했다.

─카강 캉 쾅

어둠 속에서 무기가 쉴 새 없이 부딪치며 불꽃이 튄다.

번쩍이며 주변의 시야가 전멸하듯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이를 지켜보던 도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핸드건을 들고 두 사람의 신형을 쫓았다.

‘내가 끼기에는 무리다.’

기를 완벽히 다루는 둘의 싸움은 도훈이 끼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움을 주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금 도훈이 할 수 있는 것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나 있는 것뿐.

데미안의 검을 받아내던 용재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 정도였다고?’

예상보다 데미안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당장 단장인 에우리우스조차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부단장인 데미안의 강함은 예상을 한참이나 초월했다.

기술이나 육체적인 능력을 따지면 용재는 한참이나 데미안에게 부족했다.

용재가 간간이 따라붙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비슷해.’

데미안의 검은 호진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호진의 롱소드 검술에 중심이 되는 ‘리히테나워 검술’은 데미안의 검술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즈버크하우.

양쪽에서 검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몰랐으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용재는 도낏자루로 간신히 공격을 받아내며 물러나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칼날에 목 언저리와 도낏자루를 쥐었던 손이 베여 피가 흘러내렸다.

만약 몸에 두른 판금 갑옷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팔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거리가 벌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다.

데미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 늘었네. 강아지인 줄 알고 키웠더니 늑대였어.”

“닥쳐.”

용재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욕을 내뱉었다.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만 포기해.”

“그딴 말은 왜 하는 거야? 설마 머저리같이 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닐 거고.”

“…….”

“머저리였나 보네. 내가 그딴 선택을 할 거라고 믿다니.”

용재는 냉소하며 스크롤 하나를 뽑아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데미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믿은 거라면 네 실수다. 고작 스크롤 따위로 뒤집힐 차이가 아니야.”

스크롤에 내장할 수 있는 마법은 고작해야 등급이 낮은 하위 마법들뿐.

그런 공격 따위는 데미안이 뿜어내는 기에 가로막혀 근처조차 오지 못한다.

“보자고. 뭐가 튀어나올지.”

용재는 웃으며 스크롤을 찢었다.

‘믿는다. 호진이 형.’

일찍이 리자드 맨들과 전투 때, 호진이 자신은 쓸 일이 없다며 줬던 스크롤이다.

「거대 늪의 비전 스크롤」

「종류: 스크롤」

「정보: 거대 늪에 전해져 오는 주술서의 최상위 주술 중 하나가 담긴 스크롤. 사용 시 마나가 깃들며 안에 담긴 회로가 작동해 오래된 신비가 발동된다.」

찢겨나간 스크롤에서 매캐한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연기?’

용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대한 불덩어리나 바위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정작 나온 것은 뿌연 연기뿐이다.

이를 지켜보던 데미안은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용재를 보며 말했다.

“불발인 것 같군.”

“…….”

어쩌면 싸움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는데, 불발이라니.

용재가 이를 악물던 그때였다.

“……?”

“……?”

연기가 멈추질 않았다.

스크롤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연기는 어느새 건물의 내부를 점차 뿌옇게 덮기 시작했다.

“쿨럭!”

용재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기침을 손으로 훔쳤다.

그러자 손에 미지근한 무언가가 묻어났다.

“피……?”

그제야 손끝과 발끝이 서서히 저려오기 시작하고,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독이었다.

그 순간 무엇이 즐거운지 데미안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좋군. 이젠 정말 마음이 편해졌다. 끝까지 해보자고.”

뭐가 마음이 편해졌다는 걸까.

용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지랄 났군. 그냥 독이 아니야. 호진이 형! 이딴 걸 설명도 안 하고 주다니.’

자신의 중독 내성으로도 버틸 수 없는, 강력한 독이었다.

일반인들이라면 연기를 들이켠 순간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법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쿨럭, 쿨럭!”

데미안이 쉴 새 없이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데미안 수준의 기사에게 이 정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독은 흔하지 않았다.

용재가 원하던 대로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용재도 데미안도 무기에 기를 담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기를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계속해보든가.”

용재도 웃으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달려온 데미안이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에 비하면 너무나 느릿했다.

용재도 데미안도 이미 독을 너무 많이 흡입했고, 실시간으로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눈으로 좇기조차 어려웠던 전투는 어디에도 없었다.

두 사람은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휘둘러 상대의 공격을 쳐냈다.

시간이 없었다.

무기를 휘두르는 한 수, 한 수가 상대를 죽이기 위한 살초였다.

용재는 이곳에서 죽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좀 뒈져라!”

용재가 휘두른 도끼가 데미안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졌다.

‘됐다!’

느낌이 왔다.

롱소드로 막아내기엔 한참이나 무거운 공격, 최소 치명타였다.

─캉!

“……어?”

용재의 입에서 의문이 섞인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설마하니 여기서 ‘하프 소딩(Half─Swording)’을 쓸 줄은 몰랐다.

한 손으로는 검 자루를,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의 날을 잡는 파지법이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원래라면 막지 못했을 강공도 안정적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젠장, 검에 기를 두르지 않았다는 걸 깜빡했네.’

하프 소딩이라는 기술 자체가 검의 날을 손으로 잡아야 하는 만큼, 기를 사용하는 기사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를 두른 검을 맨손으로 잡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으니까.

용재는 침음을 토하며, 하프소딩을 한 채로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데미안을 바라봤다.

큰 공격을 했으면 그만큼 방어가 허술해지는 법이다.

막을 방법은 없었다.

─푸욱

흉갑과 어깨 갑옷 사이로 롱소드가 찔러 들어왔다.

용재는 물러나는 대신 이를 악물고 힘을 줘 도끼를 휘둘렀다.

이에 데미안은 황급히 검을 회수해 도끼를 막아냈다.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공격이었음에도 힘이 엄청났다.

데미안은 비틀거리며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용재의 마지막 힘을 짜낸 반격이었다.

용재는 끝내 무릎을 꿇었다.

이를 지켜보던 데미안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다가왔다.

“생각보다 더 제법이구나. 하지만 이제 슬슬…….”

─탕!

하지만 데미안의 말은 뒤에서 울려 퍼진 총성에 묻혔다.

데미안이 욱신거리는 통증에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커다란 구멍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비척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이상한 가면을 뒤집어쓴 도훈의 핸드건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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