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역병 (2)
“그게 무슨 말이야?”
호진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수현은 이럴 시간이 없다는 듯 호진의 소매를 잡고 끌었다.
“전염병이에요.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잠깐만. 이미 이곳에 머무른 지 하루도 넘었어. 천천히 설명해 줘.”
수현이 어떻게 여기 있고, 나아가 전염병에 대해 뭘 아는 것인지.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호진의 물음에 수현은 가볍게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곤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곤 졌다는 듯이 말했다.
“아저씨는 한결같네요. 일단 가요. 걸으면서 말해요.”
수현은 앞서 걸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몬스터들을 쫓다 사막에서 약탈자 무리를 만났어요.”
“몬스터를 얼마나 깊게 따라간 거야?”
호진의 황당하다는 물음에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시칸의 초입이었어요.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이었죠.”
‘거기도 충분히 깊게 들어간 거라 생각하지만.’
호진은 그 생각을 간신히 삼키곤 더 중요한 질문들을 이어 나갔다.
“왜 붙잡힌 거야? 상대가 강했어?”
“아뇨……. 그게…… 몬스터라면 몰라도, 상대가 사람들이다 보니…….”
수현의 대답에 호진은 머리를 짚었다.
수현은 오직 몬스터에 대한 증오심만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사람은 몬스터처럼 단호하게 대처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수현은 뛰어난 헌터지만 이런 부분에선 아직 무른 점이 있었다.
‘물론 아이가 살인을 가볍게 하는 쪽이 더 문제겠지.’
정확히 말하면 아이냐 어른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첫 살인을 별 거부감 없이 해버린 자신이 비정상인 것일 터다.
혀끝이 썼다.
잠시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수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이곳으로 끌려왔어요. 어떻게 기회를 봐서 탈출은 했는데…… 도무지 그 사막을 다시 건널 자신이 없었어요.”
“고생했네.”
호진은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현은 그 손을 거칠게 쳐냈다.
“……제 몸에 손대시면 안 돼요.”
“아, 맞다. 깜빡했네. 미안하다.”
그러고 보니 첫 만남 때도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마치 불에 댄 듯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리던 수현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호진이 사과하자 수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병이에요. 전염병. 사실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 것도 위험해요. 감염 경로가 뭔지조차 모르니까요.”
“병?”
“예,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종잡을 수 없는 병이예요.”
수현은 이빨을 뿌득하고 갈았다.
“시작은 기침같이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죠. 그러곤…….”
수현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멀쩡해져요.”
“……뭐?”
호진은 잘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수현은 재차 대답했다.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멀쩡해져요.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요.”
수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앞서가던 인형이 멈춰 섰다.
수현은 인형이 메고 있던 기절한 남자에게 다가가며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아니에요. 말이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제 눈에는 그게 보여요. 제 인형들과 움직임이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그 말에 호진은 수현의 인형들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어딘가 다소 어색한 관절의 움직임.
그러고 보니 기절시킨 남자도 비슷했던 것 같다.
수현은 기절한 남자의 옷깃을 당겼다.
“그리고 그렇게 아팠다가 일어난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어요.”
옷깃 안에서 뱀 모양의 문신이 드러났다.
“이렇게 문신이 생겨나요. 그리고 이렇게 일어난 사람들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길거리를 돌아다녀요. 그때부터였어요. 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된 건.”
“……숙주가 되는 거네.”
“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용재가 천천히 다가가 남자의 문신을 살폈다.
그러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본 적이 있어.”
“뭐?”
“나 이 문신…… 봤어. 망루에서 경비를 서던 덴버 아저씨 목에도 이 문신이 있었는데?”
기침과 문신.
호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사단에도 퍼진 건가?”
“……최소 몇 주 전이겠군요.”
“3주 이상 지났을 거야.”
“……끝났군요. 시리온 왕국에도 전부 퍼졌을 거예요.”
수현은 틀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치료 방법은 있을까?”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로서는 병을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잡아서 격리하는 게 전부였어요.”
“미치겠군. 용재야.”
머리를 헤집은 호진은 용재를 불렀다.
“나는 이곳의 왕을 만나러 갈 거야. 너는 도훈 아저씨랑 함께 왕국으로 돌아가. 제비궁에 ‘차원 이동문’을 열어줄게.”
“맡겨 줘.”
용재는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단과 시리온의 사람들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아르바흐는 구르드와 예은과 함께 왕궁으로 와요. 수현이는…… 지금처럼 조금만 수고해줘. 내가 치료법을 알아낼 테니까.”
“아저씨 말이라면 믿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현은 이미 병의 중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어지러움과 심한 탈력감으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병에 걸린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있었다.
그 끝에서 호진이라는 희망을 만났다.
정말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호진이라면 왠지 이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믿음과 달리 호진이라도 별다른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호진은 긴장을 숨기기 위해 입술을 짓씹으며 왕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손 놓고 멈춰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
용재와 도훈은 호진이 만들어준 차원 이동문을 넘었다.
“아무도…… 없네요.”
“조심해.”
도훈은 핸드건을 손에 든 채로 조심스레 신전의 문을 열었다.
해가 진 저녁 시간.
거리는 한산했다.
하지만 경비들이 횃불을 들고 돌아다니고, 불이 켜진 건물들 안에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에서도 기침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거리도 멀쩡해 보여요. 도훈 아저씨, 이거 우리가 뭔가 잘못 안 거 아닐까요?”
“너무 늦은 거일 수도 있다.”
용재와 도훈은 거리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몇 번이나 사람들의 목덜미를 살폈지만, 문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퍼지지 않았군.”
“전혀요.”
용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성에는 역병이 돌지 않은 거다.
“기사단은 확실하나?”
“……아마도.”
용재도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잘못 본 것이길 간절히 빌고 있었다.
“가보면 알게 되겠지.”
왕성을 벗어난 도훈은 곧바로 청랑을 찾았다.
왕성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청랑은 도훈이 부는 피리 소리에 곧바로 달려왔다.
“청랑. 오랜만에 보자마자 미안하지만 부탁한다.”
“크륵.”
청랑은 용재와 도훈을 태운 채 망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훈의 부탁 덕분일까.
도보라면 반나절이 걸릴 거리가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대망루의 입구에 내린 도훈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
용재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늘 두 명 이상의 보초가 망루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오늘은 망루의 문만 굳게 닫혀 있을 뿐,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지.”
평소와 달리 용재가 앞장서지 못하고 망설이자, 도훈이 망루의 문고리를 잡았다.
─덜컹
그러나 문은 조금 열리다 말고 무언가에 걸렸다.
도훈의 힘으로 밀어도 밀리지 않자, 용재가 가세했다.
그제야 꼼짝도 하지 않던 문이 스르륵 밀리기 시작하며, 가로막고 있던 것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문을 가로막고 있던 것은 거대한 석상이었다.
원래라면 망루 1층의 한가운데 장식되어 있어야 할 기사 형태의 석상이다.
“이게 왜 이런 곳에 있는…….”
석상을 밀어내며 불만을 토하던 용재가 입을 다물었다.
용재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신발에서 찐득한 소리가 났다.
말라붙은 피가 신발에 끈끈하게 묻어났다.
시체, 시체, 시체.
망루의 문 주위에는 온통 널브러진 시체가 가득했다.
기사단의 전투용 판금 갑옷을 착용한 기사들.
팔과 다리가 잘린 자도 있었고, 목이 분리된 자도 있었다.
용재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얼굴을 아는 이의 죽음은 오랜만이었다.
이를 너무 꽉 깨문 탓일까, 입에서 피 맛이 감돌았다.
익숙한 얼굴들이다.
용재를 지나친 도훈이 쓰러진 시체들을 살폈다.
갑옷을 통째로 베인 어떤 기사는 배에서 창자를 쏟아낸 채 죽어있다.
‘절단면이 예리하다. 검으로 벤 거야.’
상대는 최소 검에 기를 두를 수 있는 수준임이 분명했다.
애초에 기사단 전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실력으로는 부족했다.
도훈은 빠르게 쓰러진 시체의 수를 훑었다.
‘얼추 스물, 전멸인가?’
도훈도 이들과 제법 친하게 지냈었기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흔들리기엔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쓰러진 시체에 다가간 도훈은 목덜미를 들췄다.
그러자 뱀 모양의 문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확인한 도훈은 곧장 다른 시체들도 살폈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감염됐다. 전부.”
“…….”
용재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뿌드득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염자들의 증상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아픈 이후 일어나서 평범하게 행동하는 것.’
그 행동 원리는 기본적으로 병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그게 끝이었다.
용재는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병에 걸린 이들이 다른 이들을 해친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지도 않았다.
살아만 있다면 치료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혹여 기사단과 왕국의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죽은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살아날 수 없다.
용재는 찌푸린 얼굴로 도훈에게 말을 건넸다.
“이 사람들을 죽인 새끼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조용.”
도훈이 손바닥을 펴며 용재에게 말했다.
그러곤 눈으로 위층을 흘깃 가리켰다.
─슥 스륵 스슥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다가온다.’
용재는 재빨리 도끼를 틀어쥐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 내려왔다.
용재와 도훈이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용재가 정면을 맡고, 도훈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측면을 점했다.
모습이 드러나면 순식간에 제압할 셈이었다.
─저벅
그리고 그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용재는 도끼를 미끄러트리듯 스르륵 내렸다.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