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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30화 (130/241)

130화. 역병 (1)

호진과 일행들은 궁내관의 안내를 받아 제비궁이라 불리는 건물로 들어갔다.

제비궁은 갈리온이 머무는 왕성과는 떨어진 건물이었는데. 그래도, 그 이름에 걸맞게 화려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호진은 내관의 인사를 정중하게 받았다.

호진은 왕인 갈리온에겐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늘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르바흐는 내관이 떠나자 호진에게 물었다.

“왜 호진 님은 항상 존칭을 쓰시는 겁니까?”

“모든 사람들은 존중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몇몇 상황이나 인물을 제외하고는요.”

갈리온은 그 예외의 경우였다.

우선 약탈자들에게 습격을 종용한 인물이었고, 호진의 거래 상대였다.

호진을 아랫사람으로 보는 이와 동등한 거래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호진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존칭을 생략하며 거래에서 우위에 섰다.

호진의 설명을 들은 아르바흐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호진에게 직접 이유를 듣고 싶었다.

아르바흐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고 있었다.

둘이 이야기하던 사이 한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고기…… 고기다!”

“이건…… 음료수군. 술은 아니라 아쉽지만 먹을 만하다.”

방을 살피던 일행들이 멈춰 선 곳은 다름 아닌 음식들이 차려진 커다란 테이블 앞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일행들은 음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용재는 향신료와 꿀을 잔뜩 발라, 먹음직스럽게 구운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들고 뜯기 시작했다.

라임 같은 감귤류 과일이 동동 떠다니는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말이다.

이에 질세라 도훈과 구르드도 식사에 동참했다.

일행들은 갈증뿐만이 아니라 공복에도 시달려왔다.

호진은 일행들의 식사량을 제한했었는데.

이는 식량은 충분했지만 소화 활동 자체가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오랜 공복 뒤에 기름지고 칼로리 높은 식사는 소화기관과 간에 치명적이지만, 이미 초인의 반열에 든 일행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앞에 세 사람은 이미 전투적으로 그릇들을 비워나가고 있었다.

반면 예은은 가볍게 음료수만 들이키고는 몸을 돌렸다.

이를 지켜보던 호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디 가세요?”

“경계 근무 시작하려고요.”

그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조금 쉬시죠. 우선은 제가 신경 쓰고 있겠습니다.”

거래는 잘 마무리 됐다.

호진이 지켜본 갈리온은 약속을 어길 자는 아니었다.

혹시를 대비하는 것은 필요했으나, 우선은 휴식이 우선이다.

호진의 배려에 예은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러면 전 씻는 걸 먼저 해도 될까요?”

호진에게서 한발 물러나며 묻는 예은.

사막에서는 거의 씻지를 못했기에 냄새는 물론 먼지투성이다.

물론 다른 일행들도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혼자 여자인 이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입니다.”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예은은 빠르게 욕실로 모습을 감췄다.

“저희도 가서 먹죠.”

호진과 아르바흐도 뒤늦게 식사에 동참했다.

그렇게 식사와 목욕을 마친 일행들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사막을 횡단하는 내내 쪽잠을 잔 게 전부였기에,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직 비교적 상태가 좋은 호진만이 불침번을 자처했다.

거래가 좋게 끝났기에 아마 별일은 없을 테지만, 늘 조심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예상대로 별일 없이 하룻밤이 흘렀다.

갈리온과 휴식을 하기로 약조한 기일은 이틀.

일행들은 간만에 늘어지도록 휴식을 가졌다.

음식을 실컷 먹고, 낮잠도 푹 잤다.

불침번을 서느라 피곤했던 호진은 낮 시간 내내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꿀 같은 휴식이었다.

푹 잔 덕에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을 듯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호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서 방문을 열었고, 이를 본 용재가 기다렸다는 듯 호진에게 다가왔다.

“형, 지금 밖에 야시장 열렸다는데, 가볼래?”

“야시장?”

“응, 방금 예은 누나랑 도훈 아저씨가 나갔다 왔는데, 재밌는 게 많대.”

용재는 호진의 기분과 컨디션을 눈치채고 슬쩍 물어왔다.

듣자 하니 시장은 물물교환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했는데, 일행 중 호진만큼 교환할 게 많은 인물은 없었다.

호진은 누가 뭐래도 인벤토리의 소유자였으니까.

다들 호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른 일행들은 호진이 나가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의외로 호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아르바흐 님도 따라오시겠습니까?”

“저, 저도 말입니까?”

화들짝 놀란 아르바흐는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모습에 호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시장만큼 다른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하기 좋은 곳도 없죠.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럼…… 좋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아르바흐는 재빨리 대답하며 흘린 땀을 씻으러 욕실로 달려갔다.

남들이 쉬는 동안에도 홀로 단련을 쉬지 않던 아르바흐였다.

그런 그에게 호진은 잠깐이나마 휴식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

시장은 제법 활기를 띠고 있었다.

지하의 어둠 속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싱그럽게 울려 퍼졌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시장을 구경하는 아이.

축제 같은 분위기를 즐기는 젊은 남녀.

물건을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들까지.

꽤 오래간만에 보는 풍경에 호진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횃불은 밝게 타올라 지하도시의 광장은 어제보다 환하게 빛이 났다.

호진과 용재 그리고 아르바흐는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금방 주목을 끌었다.

이곳의 사람들과 생김새가 다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종족인 아르바흐가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진은 신경 쓰지 않으며 구경을 이어갔다.

“냄새가 좋은데, 저거 먹어볼까?”

“저, 저는 아무거나 좋습니다!”

호진은 숯불에 굽고 있는 알 수 없는 고기 꼬치를 3개 구매했다.

소금과 향신료로 간이 된 고기는 얼핏 양꼬치를 떠올리게 했다.

일행들이 평범하게 시장을 구경하자, 호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몇몇은 친근하게 다가와 어디서 왔는지, 먹고 있는 꼬치가 뭔지 묻기도 했다.

일행은 신분이나 정체는 적당히 둘러대며 나머지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어렵지 않게 시장의 분위기에 녹아든 일행들은 노점 음식을 몇 가지 더 사 먹으며, 물품들을 구매했다.

간이 천막과 말린 과일, 육포 같은 식량들부터.

몇 가지 쓸만한 무기들까지.

특히 호진은 새로운 검을 보며 어린애처럼 눈을 빛냈다.

“곡도는 처음이네……. 시미터, 아니 도신이 조금 더 길고 얇아. 기마용 검인가? 샴쉬르 쪽에 가까울지도.”

그런 모습에 아르바흐가 놀라며 용재에게 물었다.

“호진 님이 엄청 좋아하시네요.”

“놔두세요. 원래 무기나 갑옷만 보면 저래요. 한참 걸릴걸요.”

용재는 쯧쯧 혀를 차며 고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여태 초인 같은 모습만 보이던 호진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 사실이 아르바흐에겐 다소 위안이 됐다.

지도자로서 호진이라는 목표가 너무 거대했던 만큼, 부담감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후, 호진 일행은 제법 많은 물건을 구매했다.

하지만 돈이 모자랄 일은 없었다.

아쉬나학, 즉 사막제국의 법에 따라, 호진이 약탈자들을 제압하며 그들이 타고 있던 말과 낙타는 모두 호진의 소유가 됐다.

일부는 갈리온과의 거래로 돌려주고, 일부는 팔았으며, 일부는 데리고 있었다.

덕분에 물품은 넉넉히 구매했고, 낙타도 있으니 남은 사막은 그리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을 듯했다.

호진은 살짝 충만해진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시장도 어느새 막바지에 접어들었는지 문을 닫는 가게들이 제법 있었다.

“이만 돌아갈까?”

호진은 웃으며 용재와 아르바흐에게 물었다.

즉시 좋다고 대답한 아르바흐.

하지만 용재는 뭔가에 정신이 팔린 듯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

“뭐해?”

호진의 부름에 용재는 검지를 들어 올리며 쉬잇 소리를 냈다.

그러곤 눈을 찌푸리며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호진이 다가가자, 용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형, 저 사람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아?”

호진은 용재가 바라보던 방향을 바라봤다.

밝은 시장과 달리 응달진 골목길 안쪽.

희미한 빛조차 잘 닿지 않는 그곳에 두 사람이 서로 얽혀 있었다.

깡마른 사람 하나를 다른 사람 하나가 막아서고 있었다.

“이런 곳에 아는 얼굴이 있을 리가…….”

어깨를 으쓱하던 호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막아서고 있는 사람 쪽의 움직임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관절의 움직임.

저건…….

“수현이가 만든 인형?”

“아, 맞아! 어디서 봤다 했지!”

용재가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주먹으로 손뼉을 탁하고 쳤다.

‘실종된 수현이의 흔적이 왜 여기에?’

호진은 의아해하면서도 빠르게 인형을 향해 다가갔다.

“이거 놔주십시오.”

가까이서 보니 깡마른 사람은 이곳, 슈리카인이 분명했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붙잡고 있던 인형에게 말했다.

─끼릭 끼릭

하지만 인형은 꽤 필사적으로 그를 제지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호진이 조금 더 다가가며 묻자, 슈리카인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이분이 많이 취했나 봅니다. 절 잡고 놔주질 않으시네요. 치안대 좀 불러주시겠어요?”

“……제가 도와드리죠.”

인형이 취할 리가 없다.

심지어 인형들은 골렘처럼 고장 날 일도 없다.

어디까지나 수현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이니까.

호진이 남자를 경계하며 다가가던 중이었다.

─띠링

「정신 내성이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정신 내성이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호진은 반사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의 뒷목을 강하게 쳤다.

그러자 남자는 실 끊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남자를 저지하고 있던 수현의 인형은 그제야 호진을 봤다.

─우뚝

호진은 놀란 듯 굳어버린 인형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이 사람은 또 뭐고?”

그제야 인형은 정신을 차린 듯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호진은 뒤따라 온 일행들과 함께 인형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쓰러진 남자를 들쳐 메고 앞장서던 인형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한참을 들어갔다.

화려한 중심부와는 달리 완전히 낙후된 도시의 외곽.

그곳의 사람들은 초췌한 얼굴들로 기침만 해댈 뿐이었다.

‘전염병인가?’

호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순히 지하라 공기가 나쁘다기엔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호진의 팔을 낚아챘다.

“수현아?”

사라졌던 수현이었다.

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수현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저씨가 여길 어떻게 온…….”

울 것 같던 얼굴을 하던 수현은 돌연 이를 악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당장 이곳에서 떠나세요. 한시라도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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