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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18화 (118/241)

118화. 아울레의 후예 (1)

─드르르륵

배수로를 막고 있던 정화조가 바닥에 끌리며 소리를 냈다.

적막함이 내려앉은 도시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네요.”

“낮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놈들은 밤에 움직이거든요.”

아르바흐가 답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약간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전처럼 숨지 않고 일행들의 앞에 섰다.

호진은 자신과 나란히 선 아르바흐를 보며 옅게 웃음 지었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28살이면 호진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왠지 동생 같았다.

“혹시 모르니 조용히 움직이겠습니다.”

호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수신호를 보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호진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벌써 도시의 외곽이 보였다.

긴장했던 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아르바흐는 걱정했던 자신이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호진 님은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신다. 명예를 알고 실력도 뛰어난 지도자다.’

존경할만한 인물이었다.

아르바흐는 자신이 호진을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지도자로서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드려야겠어.’

그렇게 마음먹던 순간이었다.

저 멀리, 걸어가는 방향에 무언가 햇빛에 비춰 반짝였다.

회색 건물의 외벽에 붙은 금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어쩐지 익숙한 생김새.

‘저건…….’

아르바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생각할 새도 없이 다리가 움직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갑자기 뛰쳐나가는 아르바흐를 향했다.

순식간에 목표했던 것에 가까워진 아르바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한 채, 시체를 바라봤다.

“이건…….”

어느새 뒤따라온 구르드가 침음을 삼켰다.

그러자 호진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구르드는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무겁게 입을 뗐다.

“아달바흐 님과 함께 남아 싸웠던 근위대다. 저자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아달바흐 님의 무구 ‘크잣티라엘’. ‘황금 망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무기지.”

“……유감이군.”

무기를 들고 왔다는 건, 무기의 주인이 죽었다는 의미.

아마 저 근위대는 저 무기를 아르바흐에게 전하기 위해 게이트를 넘었을 것이다.

아르바흐는 비틀거리며 근위대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보물이라도 되듯 망치를 꼭 껴안은 근위대.

아르바흐가 망치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

호진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곳은 대로변이었다.

무언가를 지키며 죽어가는 자가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눈에 띄는 장소.

무엇보다 죽은 난쟁이의 모습이 약간 어색했다.

분명 몸에 난 상처는 큰데 흘린 핏자국은 없다.

‘……누군가 끌고 온 거다. 이곳까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호진은 급히 소리쳤다.

“함정입니다!”

“예……?”

망치에 손끝을 막 갖다 댄 아르바흐가 멈칫했다.

‘성공했나……?’

호진이 숨을 죽이며 사방을 둘러보던 그때, 무언가 호진의 눈에 띄었다.

회색의 건물을 뒤덮은 하얀 거미줄에 미세한 진동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시작점은 망치에 매달려있는 한 가닥의 가느다란 거미줄.

“들켰습니다! 빨리 이곳에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비명이 호진의 말을 끊었다.

─끼이이이이이익

녹슨 쇳소리를 닮은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일행들의 몸과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이어 미세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얀 거미줄을 타고 검은 파도가 밀려들었다.

수백, 아니 수천은 될 것으로 보였다.

너끈히 인간의 배는 될 법한 크기의 거미들이 턱을 딱딱 부딪치며 거리를 좁혀왔다.

이미 도망가기 늦은 것을 깨달은 구르드가 커다란 도끼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전사들은 시민들을 보호하라! 바룩크툼! 이온!”

““아후!””

도끼창을 든 난쟁이 전사들은 순식간에 노약자들을 둘러쌌다.

그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믿음직했지만…….

노도와 같은 기세로 밀려드는 거미 괴물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입이 말랐다.

거미들의 전력에 비하면, 난쟁이 전사들은 한 줌 먼지와 같은 전력이었다.

호진조차 몰려드는 적의 수를 눈으로 헤아리기 바빴다.

사방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다.

대양 위에 표류하는 작은 돛단배처럼, 호진의 일행을 거미들이 둘러쌌다.

“키이이이익!”

“키리리리릭!”

거리를 좁혀오는 거미들을 보며 호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크기도 생김새도 모두 각양각색인 저 거미 떼가 얼마나 강한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난쟁이들을 보호하며 싸우는 건 분명 버거운 일일 것이다.

“길을 열겠습니다. 비무장한 인원들은 다리를 향해 뛰십시오.”

강화대교가 육안으로 보였다.

그곳까지 가면 성역이 있다.

보이지 않는 장막이 이 괴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줄 터였다.

호진은 스킬 ‘위엄’을 발동했다.

그러자 호진들을 둘러쌌던 거미들이 일제히 머리와 배를 바닥에 떨궜다.

마치 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짓누르기라도 하듯, 꼼짝도 하지 못하는 녀석들.

호진과 눈이 마주친 구르드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바룩크툼의 전사들은 나를 따라서 길을 연다.”

““아후!””

쐐기 모양을 한 난쟁이 전사들은 서슴지 않고 거미 떼 사이로 몸을 날렸다.

위엄에 짓눌린 거미들은 변변한 저항도 못 한 채, 도끼창에 머리가 쪼개져 죽었다.

구르드는 도끼를 휘두르며 나아가다 문뜩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곤 이내 일그러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붉은 수염 에우두르. 자네가 전사들을 이끌고 길을 열게.”

“맡겨주시게. 모두 전진한다. 바룩크─ 툼!”

““아후!””

난쟁이들이 도시의 외곽, 다리를 향해 전진했다.

그 행렬에서 이탈한 구르드는 다시 돌아왔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은 아르바흐에게 다가갔다.

아르바흐는 아까 망치를 건드린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달바흐의 아들 아르바흐!”

─움찔

아르바흐의 어깨가 들썩였다.

숨이 거칠었고 눈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겁먹은 자의 모습이었다.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르드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실제로 아르바흐는 나아지고 있었다.

다만 아직 모자랐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하지만 괴물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도 시시각각 몰려들고 있었다.

아직까진 호진이 보인 믿을 수 없는 신위에 옴짝달싹 못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붙잡아둘 수는 없을 것이다.

구르드는 손을 올렸다.

한 번도 때려본 적 없는 도련님이지만.

지금은 후려쳐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 했다.

어깨까지 올린 손바닥을 뻗으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네…….”

호진은 구르드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황금 망치에 매달린 거미줄을 단검으로 툭 하고 잘라낸 후, 망치를 들어 아르바흐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자 아르바흐는 여전히 떨리는 눈으로 호진과 눈을 마주쳤다.

“괜찮습니다. 지켜보십시오. 부친께서 남기신 이것과 함께.”

호진의 미소를 본 아르바흐는 몸에 떨림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전투를 앞두고도 어떤 두려움이나 근심도 느껴지지 않는 호진의 시선은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마치 ‘너도 나처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아르바흐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망치에서 전해져오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호진은 몸을 돌려 거미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수가 너무 많았다.

일행들이 지금도 열심히 수를 줄여주고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위엄의 효과도 풀릴 것이다.

벌써 거미 중에서 강한 녀석 몇몇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그 시간 동안 호진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무언가를 찾던 호진의 시선은 어느 순간 딱 멈췄다.

“거기 있었네.”

호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건물 위에서 호진을 내려다보는 한 존재가 스스슥 몸을 움직였다.

1m는 훌쩍 넘을 8개의 다리를 다각거리며, 가느다란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반인반수.

하반신은 거미의 형상이지만 상반신은 남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흔히 만화에서 말하는 ‘아라크네’라 불리우는 괴물의 모습이다.

상체가 남자라는 것은 조금 다르지만.

저것이야말로 이 무리의 대장이 분명했다.

‘이끄는 대장을 쓰러트리면 싸움은 끝나기 마련이지.’

무리를 짓는 괴물들은 우두머리가 죽으면 대체로 사기가 떨어지고 혼란에 빠지곤 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외에 방법이 없었다.

호진이 녀석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려 할 때였다.

“울그렉 이후트의 첫 번째 아이……. 녀석이 쫓아왔군. 아달바흐 님도 놈에게 당한 건가.”

구르드는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이에 호진은 구르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뭔가 아십니까?”

“지금이라도 아르바흐를 데리고 도망가거라. 내가 시간을 끌어볼 테니.”

“……?”

호진이 대답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보자 구르드는 한숨을 쉬고는 이어서 설명했다.

“고대신이 가장 총애하는 봉사자. 즉 사도라는 말이지.”

그 말에 호진의 눈은 크게 떠졌다.

사도라니.

‘저놈이 샴과 같은 존재라고?’

경각심이 생겨났다.

정말 사도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존재가 분명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가 상대할 테니 상황이 불리해지면 도망가시죠.”

“가능성이 있다니……. 자네, 사도가 뭔지 알긴 하나?”

호진은 상대를 향해 나아가며 답했다.

“압니다. 아마 구르드 님보다 더 잘 알 겁니다.”

호진은 다가오는 거미 괴물을 바라봤다.

녀석은 사납게 웃으며 호진과 거리를 좁혀왔다.

그 걸음걸이에서 분노와 즐거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가까워진 녀석은 문뜩 호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구나. 내 동생들을 죽인 게.”

“말을 할 줄 아나 보네.”

의외라는 호진의 말투에 인상을 찡그린 녀석은 재차 입을 열었다.

“나는 울그렉 이후트의 첫 번째 아이. 울그렉 단탈렉트. 미천한 인간들이 언어를 습득하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흠, 수천 년은 살았겠군.”

“물론이지. 영광인 줄 알도록.”

단탈렉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뿌듯한 듯 말했다.

여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난쟁이들이고 인간들이고 부들부들 떨며 목숨을 구걸했으니까.

죽음 앞에 필멸자들은 그저 자신들이 믿는 신과 부모를 부르짖을 뿐이었다.

그들의 목숨을 손에 쥐고 흔드는 자신은 전능한 신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단탈렉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호진을 바라본 그때였다.

뭔가 이상했다.

눈앞의 인간의 표정에는 두려움도 절망도 깃들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굳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기대하던 반응을 보지 못한 단탈렉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너 내 이름을 듣긴 한 거냐? 내가 울그렉 이후트의…….”

“총애받는 첫 번째 아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거잖아. 이 마마보이야.”

호진이 피식 웃으며 단탈렉트의 말을 끊었다.

마수는 순간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눈앞의 인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이 장남이라는 거냐. 내가 다 부끄럽네. 수천 년 동안 살아오며 자랑할 게 그것뿐이라니.”

“너…… 그 입을 찢어 혀를 뽑아주마.”

단탈렉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반면 호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나는 네 수천 년의 생의 종결점을 찍어주마.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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