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방랑자들 (1)
─타닥
회색 늑대가 갈라진 아스팔트를 박차자 돌이 튀었다.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 사이로 예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왼쪽으로 몰아!”
“젠장, 알았다고.”
‘말이 쉽지.’
용재는 나지막하게 꿍얼거렸다.
“키이이이이익!”
족히 일백에 달하는 감염자 무리가 용재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에 용재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도끼를 휘둘렀다.
─쾅!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와 살점이 용재의 몸을 빼곡하게 뒤덮었다.
내장들이 잔뜩 얽힌 모양새는 끔찍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방불케 했다.
“이거 진짜 엿 같아.”
용재가 욕을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선두가 완전히 박살 나며 주춤했던 후열이 용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몇 놈은 아예 피로 미끈거리는 용재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이를 드러냈다.
─콱.
“……?”
분명 깨물었는데도 눈앞의 인간이 무표정하게 자신들을 내려다보자, 감염자들이 이상하다는 듯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쇠를 그렇게 씹어대면 이 나간다. 이 멍청이들아.”
용재가 착용한 건틀릿과 각반은 특수한 강철로 된 것.
고작 사람 이빨 따위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용재가 건틀릿을 휘두르자 몸에 들러붙은 감염자들의 골통이 터져나갔다.
누런 뇌수와 피가 튀고, 몇몇은 압력을 못 이긴 듯 눈이 튀어나왔다.
“그래, 왼쪽이고 나발이고 다 덤벼라. 여기서 다 죽여줄 테니.”
용재가 흉흉한 기세로 말하자 어느새 완전히 멈춰 선 감염자들이 움찔 뒤로 물러났다.
감염자들은 이성이 없어 공포를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 녀석들이 용재 앞에선 겁이라도 먹은 듯 쭈뼛대고 있었다.
“뭘 눈알을 굴리고 있어. 이리 와.”
용재가 거침없이 다가서며 손을 까딱이자 움찔하며 물러나는 녀석들.
결국 놈들은 차마 용재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늑대를 탄 예은과 도훈이, 정면에는 용재가 있으니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용재와 대치하던 무리의 선두는 왼쪽에 난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가 뛰기 시작하자 뒤에 감염자들은 그저 따라 달릴 뿐이었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 왼쪽으로 꺾어져 달리는 감염자들은 대략 백여 마리.
그들이 달려 도착한 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꽤 많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남자를 향해 감염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젠 정말 지척이다.
감염자들은 방금까지 당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눈앞의 먹이를 보고 기뻐했다.
남자를 찢고 씹어서 입에 넣을 생각에 침을 질질 흘렸다.
가장 선두에 감염자가 남자를 향해 손을 내뻗던 그 순간이었다.
─덜컥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관절이 녹슬어버린 톱니바퀴처럼 완전히 멈춰 섰다.
선두에 선 녀석은 뒤룩거리며 눈을 굴려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자신을 무심히 응시하는 건조한 시선.
감염자는 눈앞의 남자를 본 순간 깨달았다.
그는 지루해하고 있었다.
“크, 륵?”
일순간 본능이 온몸에 경고했다.
도망쳐야 한다고.
그것은 생각을 하고 내린 판단이 아닌, 생물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몸은 도망치기는커녕 돌연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마치 위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짓누른 것처럼.
“이만 쉬어라.”
남자는 낮게 읊조리며 자신을 향해 한발 다가왔고.
─서걱
다음 순간,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감염자들의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
“수고하셨어요.”
늑대를 타고 도착한 예은이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 호진을 향해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여러분 덕분에 처리하기 쉬웠습니다.”
호진의 말을 증명하듯 바닥에 도열한 감염자들의 머리.
골목길을 메운 그 머리들은 반듯하고 깔끔하게 베여 있었다.
마치 목을 베이기 기다리는 사형수들처럼.
정작 호진에게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예은은 티는 내지 않았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적들을 이렇게 간단히 처리하는 것은 지금 이 땅의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예일 것이다.
“그래, 수고는 내가 했지. 누나.”
그때 둘의 뒤에서 용재가 옷에 묻은 붉은 살점을 털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호진은 미안해하며 반대쪽 어깨를 털어줬다.
“고생했다.”
“됐어. 내 직업이 애초에 이 모양인데 뭘. 조금 찝찝한 거 빼면 나름 재밌기도 하고.”
호진의 말에 용재는 기분이 풀린 듯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도훈 아저씨는?”
“곧바로 정찰하러 갔지.”
예은의 대답에 용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우리가 한 중간쯤 왔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호진의 대답을 들은 용재는 한숨을 토했다.
이곳은 김포의 시내.
호진들은 이전과 달리 김포 골드라인을 따라 김포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국장과 약속한 대로 김포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생각보다 감염자가 많아.”
“어디서 이렇게 계속 기어 나오는 건지.”
호진은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감염자들은 예상대로 점점 변화하고 있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해졌다. 그리고…… 녀석들이 공포를 느껴.’
그것만큼은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여전히 ‘불사의 신의 봉사자’라는 타이틀을 들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데 저쪽 세계에서 봤던 ‘불사의 신의 봉사자’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이곳의 감염자들도 원래는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
즉,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뭔가의 개입으로 결속이 약해지고 있는 건가?’
호진이 입술을 짓씹던 중 멀리서 도훈이 다가왔다.
“뭐 좀 있었어요?”
“아니, 이 근처는 이상하게 감염자가 적다. 방금 정리한 걸로 얼추 정리된 모양이야.”
“벌써요?”
도훈의 말에 다들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못해도 두세 번은 더 반복해야 정리가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뭔가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까진 모르겠다.”
호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밀집도가 낮은 지역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화도 주변에도 감염자는 적어.’
예전에는 군인들이, 지금은 캠프의 헌터들이 정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곳에서도 누군가 놈들의 수를 줄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이 근방을 조금 더 수색하겠습니다.”
“……오늘 안에 집 가기는 글렀네.”
호진의 선언에 용재는 한숨을 터트렸다.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감염자들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물며 수색까지 더해진다면 최소 반나절은 더 지나야 할 터다.
용재는 투덜거리면서도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와 공원을 훑어보던 용재는 무언가 기이한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둥근 둠 형태의 철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마치 벙커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중세 유럽에서나 볼법한 고풍스러운 양식 탓에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저게 뭔…….”
용재가 중얼거리며 건축물로 다가가던 순간이었다.
─틱
무엇인가 발아래에서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용재는 소리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충격과 함께 부유감이 느껴졌다.
침착하게 상황을 살핀 용재는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건?”
움직일 수 없게 몸을 옥죄이는 거대한 그물망.
용재는 그 속에 갇혀 전봇대 위로 솟아올라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그물을 찢어보기 위해 힘을 줘 봤지만 소용없었다.
기를 사용해도 꼼짝하지 않는 그물에 용재는 혀를 찼다.
“이러고 있는 건 너무 꼴불견인데. 이걸 호진이 형이 보기라도 했다가는…….”
“너 뭐하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오는 목소리.
“양반은 못되겠네.”
용재가 꿍얼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호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기도 잠시 호진은 이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덫에 빠진 거야? 형이 아무거나 주워 먹고 다니지 말랬지.”
“……내려주기나 해. 그보다 조심은 형이 해야지.”
덫에 걸렸는데도 반응이 없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버려진 덫이거나, 용재를 미끼로 다른 일행들을 노리는 것이다.
─펑!
용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진을 향해 거대한 그물 두 개가 날아들었다.
호진이 그것들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자 용재가 소리쳤다.
“뭐해! 피해!”
하지만 호진은 끝내 그물에 뒤덮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바룩크툼! 이온!”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고풍스러운 건축물에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하관 전체를 덮은 덥수룩한 수염.
움직일 때마다 금속음을 내는 철갑옷들.
그리고 무엇보다 짜리몽땅한 키까지.
호진의 눈이 반짝였다.
‘난쟁이.’
판타지 하면 빠질 수 없는 종족이다.
도끼창을 든 수십의 난쟁이들이 호진과 용재를 에워쌌다.
호진의 허리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난쟁이들은 키는 작지만, 커다란 위압감을 뿜어냈다.
무엇보다 인간의 1.5배는 될 것 같은 어깨 둘레가 굉장히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신기했지만, 이대로는 붙잡히고 말 것이다.
호기심과 반가움에 위험을 초래할 생각은 없었다.
호진은 창을 들이밀며 다가오던 난쟁이들을 바라보며 머리 위에 덮인 그물들을 걷어냈다.
그러자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그물들이 허물처럼 쉽게 벗겨졌다.
이를 지켜보던 용재도.
난쟁이들도 모두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멈춰 섰다.
‘언제 자른 거지?’
용재는 호진이 검을 뽑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호진은 애초에 갇힌 적이 없었다.
호진은 그물이 날아오던 시점에 절 베기를 사용해 그물들을 잘라놨었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대로 몸을 덮치게 둔 것은 함정을 판 이들이 다가오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호진의 계획은 정확하게 통했다.
난쟁이 무리는 놀라기도 잠시, 그중 화려한 투구를 눌러쓴 백색의 수염을 지닌 난쟁이가 소리쳤다.
“적이 우리를 속였다! 바룩크툼의 전사들이여, 도끼를 높이 들어라!”
““아후!””
도끼창을 세운 난쟁이들이 호진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거대한 위압감이 그들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스킬 ‘위엄’이 발동됩니다. 주변 500m 안의 중립, 혹은 적들이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 본인이 지닌 격에 따라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난쟁이들이 침음을 삼키던 그때였다.
호진은 빙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자,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군요.”
“……너희 인간들은 이런 걸 대화 준비라고 하나?”
나이 든 난쟁이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소리쳤다.
호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쪽도 다짜고짜 우리를 그물로 가두지 않았습니까.”
“그건…….”
난쟁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어물거리자, 호진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탓하는 게 아닙니다. 안전을 도모하는 건 당연하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군.”
난쟁이가 고개를 주억이자 호진은 위압을 풀었다.
“이젠 정말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