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심연을 유영하는 자 (4)
“목표는 두 번째 머리. 쏟아부어!”
국장의 외침에 화력 부대가 일제히 공격을 가했다.
불과 얼음, 화살과 창까지.
온갖 것들이 괴물을 향해 쏟아졌다.
그 순간.
─■■ ■■
사방으로 괴물의 읊조림이 퍼져나갔다.
─파사삭
불덩이는 힘없이 불티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얼음은 도중에 물이 되어 바닥에 물을 뿌렸다.
화살과 창은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마치 모든 공격이 무용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전원 내 뒤로 오십시오!”
세종 대표에겐 그런 괴물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서걱
이번에도 어김없이 검을 휘둘러 괴물의 공격을 무산시킨 세종 대표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을 따르는 헌터들과 함께 말에 올라탄 그는 빠른 속도로 괴물과 가까워져 갔다.
“또 벴어.”
그런 그를 바라보던 화력 부대의 누군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거의 다 가까워졌잖아. 어쩌면…….”
“어쩌면이고 나발이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이야. 성공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닥치고 활이나 쏴!”
국장의 명령에 의해 도망가지 못하고 붙잡혀있던 화력 부대에도 희망이 깃들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전부 쏟아붓게!”
국장도 같은 심정으로 힘을 쥐어짜 처음보다도 거대한 얼음 창을 만들어냈다.
이에 호응하듯 화력 부대 전원이 각자가 지닌 전력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그리고 그 공격은 꼬리 휘두르기를 준비하던 괴물에게 정확히 먹혀 들어갔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미처 주문을 외울 새도 없이 쏟아지는 공세에 측정 불가급은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가라아아아!”
“죽여버려!”
화력 부대는 쉴 새 없이 공격하면서 소리쳤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세종 대표는 거침없이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지금이다.’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배우고 익힌 검술들은 마상 전투가 아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익힌 일도류(一刀流)를 선보이기 위한 조건이었다.
말에서 뛰어내린 그는 검을 어깨 위로 치켜들었다.
‘준비는 충분하다.’
S급 정도 되면 호진이 그랬듯이, 이 세계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퀘스트들을 접하게 된다.
세종 대표는 이계의 신적인 존재들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며 확신했다.
언젠가 그들을 상대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를 악물고 연계 퀘스트에 돈과 시간 그리고 동료들의 목숨마저 걸었다.
그 결과 이 ‘아메노하바키리(天羽々斬)’를 입수할 수 있었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물건이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검만 믿고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은 아니었다.
세종 대표는 호진에게 패배한 후, 곧장 일본으로 가서 새로운 유파를 익혔다.
현대 검도의 모체가 된다는 북진일도류의 근원이자, 이토 잇토사이(伊東一刀斎)가 창시한 검술, 일도류가 바로 그것이었다.
신토류, 카게류와 함께 고류 3류라 불리는 일도류의 특징은 명확했다.
빠른 전후 이동을 통해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것.
검을 크게 휘두르지 않아 화려하진 않지만, 지극히 실용적이었다.
대회 검도를 수련한 세종 대표에게 꼭 필요했던 실전 지향의 검술.
단점이라면 기술의 동작들이 인간을 상대하는 데 특화됐다는 것이지만…….
세종 대표는 이미 수 개월간 수많은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며 자신만의 기술을 체득했다.
일찍이 천재라 불리던 그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자신의 기술들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그의 입이 달싹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일도류 절락(切落).”
한 줄기 벼락이 내려치듯, 세종 대표는 검을 휘둘러 거대한 적의 형상을 베어 내렸다.
─왈칵
길게 그어진 측정 불가급의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에 헌터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
한번 휘둘러진 검은 멈추지 않았다.
세종 대표는 빠르게 내달리며 거대한 몸에 빼곡히 검흔을 새겨 넣었다.
옆구리에서 시작된 검흔은 괴물의 지느러미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후우.”
검을 멈춘 세종 대표는 한 차례 물러나며 숨을 갈무리했다.
그가 지나온 길에 새겨 넣은 검흔들에서 구멍 뚫린 오크통처럼 붉은색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출혈량.
‘자연치유 능력인가?’
금세 저절로 지혈이 되는 모양새에 세종 대표는 눈을 가늘게 뜨며 턱을 쓸었다.
그러곤.
─피식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예상과 다를 게 하나 없군.”
세종 대표가 중얼거리는 그 순간이었다.
““핫!””
우렁찬 소리와 함께 그와 함께 달려온 기수들이 창을 내질렀다.
정확히는 ‘나기나타’라 불리는 창으로 일본식 언월도에 가까웠다.
창대 끝에 달린 길고 예리한 창날은 적을 베는 동작에 특화되어 있다.
별다른 명령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서걱
사전에 얘기해둔 대로 이들은 세종 대표가 남기고 지나친 상처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물어가던 살들이 터지며 멎어가던 피들이 재차 터져 나왔다.
세종 소속 A급 헌터들은 카타나를 휘두르며 아예 상처의 크기를 더욱 키웠다.
“이딴 게 신이라니, 웃기지도 않습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세종 대표가 측정 불가급을 향해 다가섰다.
이대로면 생각보다 더 쉽게 전투가 끝날 듯했다.
그러던 그때 세종 소속 헌터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세종 대표의 눈에도 이상한 형상이 포착됐다.
자신이 베고 지나온 옆구리.
벌어진 상처 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투구를 뒤집어쓴 것 같은 외형.
은백색의 단단해 보이는 외골격이 기사의 예장용 투구를 떠올리게 했다.
살을 헤집고 나와서인지 붉은 피가 머리에 흠뻑 묻어났다.
‘세 번째 머리?’
측정 불가급의 몸체를 찢고 등장한 괴물의 모습을 보고 다들 혼란에 빠졌다.
누가 봐도 본체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두 번째 머리와는 달랐다.
생긴 것도 본체와 닮지 않았을뿐더러, 크기도 너무 작았다.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정도.
그래서였을까.
“죽어라!”
세종 소속 헌터들은 겁도 없이 타고 있던 말을 몰아 놈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세종 대표가 문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물러나세요!”
두 번째 머리는 괴상한 능력을 지녔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머리’에게도 무엇인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헌터들이 그 말을 채 듣기도 전.
─콰직
측정 불가급의 몸체 안에서 튀어나온 창 한 자루가 섬광을 흩뿌렸다.
“……!”
붉은 피가 대지를 적셨다.
단 한 번의 합.
세종 대표조차 창이 뻗어진다는 사실만을 인식했을 뿐, 몇 번이나 휘둘러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전열에서 달려들었던 헌터들이 조각나 공중에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잠깐 사이 몇 번이나 휘두른 거지?’
세종 대표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세 번째 머리는 상반신을 빼내고는 이어 완전히 몸을 빼내어 땅을 디뎠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세 번째 머리의 모습은 마치 중세의 기사와 닮아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회백색의 외피를 파츠처럼 몸에 두르고 있었으며, 숨구멍인지 눈구멍인지 알 수 없는 투구의 여섯 구멍에서 푸른색의 빛이 형형하게 빛을 내뿜었다.
그런 녀석의 주변을 나기나타와 카타나를 든 세종 헌터들이 둘러쌌다.
세종 대표 직속의 헌터들.
모두 근접전에 특화된 정예들이다.
그들 전부와 싸운다면 세종 대표 본인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헌터들이 잠시 버텨주는 사이 합류한다면, 저 괴물을 상대로도 승기가 있을 터.
“잠시만 버티십시오! 제가…….”
말에 올라타려던 세종 대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일이.’
머리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고가 정지했다.
그저 망막에 비친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새겨질 뿐이었다.
‘세 번째 머리’가 처음 한 걸음을 뗐을 때였다.
녀석을 둘러싸고 있던 나기나타의 창대들이 엿가락처럼 후두둑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그 틈을 타 A급 헌터가 카타나를 휘둘렀지만 놈의 손에 가볍게 가로막혔다.
마치 장난감 칼이라도 막는 듯한 여유로움.
‘세 번째 머리’가 휙 하니 검을 잡아당기자 A급 헌터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공중에 떠오른 A급 헌터가 오체분시가 된 것은 떠오른 후일까, 그 전일까.
알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조각난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세 번째 머리를 둘러싸고 있던 헌터들의 절반이 죽어 나갔다는 사실이다.
마치 양 떼에 뛰어든 늑대, 물개 떼를 쫓는 범고래와 같았다.
그 뒤로 벌어진 학살은 더 끔찍했다.
사탕을 입에 넣고 천천히 굴리듯, 녀석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헌터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학살했다.
세종 대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눈앞의 그것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세종 대표는 자신이 괄시하던 괴물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극심한 공포는 경외심에 가까웠다.
어느덧 모든 헌터들을 죽인 세 번째 머리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스윽
세 번째 머리는 그를 잠시 보다가 지나쳤다.
이에 세종 대표는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다가, 문뜩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세 번째 머리가 자신을 지나친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를 신봉자라고 여긴 겁니까.”
그 사실을 깨달은 세종 대표는 수치심을 느끼기도 잠시, 안심할 수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렇게 가만히 있는 편이 옳았다.
그는 그렇게 계속 살아남아 왔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동료를 희생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힘없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배급을 가장 먼저 줄였다.
나중엔 다른 캠프에서 온 사람들을 노예처럼 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주변의 악평에도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왜 이번에는 이렇게 기분이 엿 같은 걸까요.”
세종 대표는 축 늘어트리고 있던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뒤돌아 걸어가던 세 번째 머리를 향해서.
휘두른 검이 놈의 목에 다다를 때까지도 녀석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서걱
깔끔한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됐나?’
얼굴에 화색을 띠기도 잠시, 무언가 이질감이 들었다.
소리와는 달리 손에 베는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뭔가 이상…….
“어?”
입에서 의문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검을 쥔 두 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완전히 절단된 팔꿈치의 절단면에서 폭포수처럼 피가 흘러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세종 대표는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입에 다물어지지 않았다.
벌어진 입에서 자꾸만 침이 흘러내렸다.
그것도 잠시, 점차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 고통은 흐려져 가고, 후회만이 짙게 남았다.
고작 이렇게 죽기 위해 지금껏 아등바등 살아온 걸까.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 두 번째 머리가 새로운 주문을 영창하는 게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본대를 향하는 세 번째 머리가 보였다.
대열을 무너트리고 도망치는 화력 부대와 망연한 표정의 국장, 그리고 이를 악물고 전열을 유지하는 경호 차장도 보였다.
모두 죽을 것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사실이 왠지 사무치고 허무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한 남자였다.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줬던, 지금의 냉철한 자신을 만들어낸 남자.
어쩌면 자신은 저 남자처럼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조금 늦었네요.”
“당신…….”
세종 대표는 잔뜩 쉬어 메마른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폐가 타는 듯했다.
그럼에도 말해야만 했다.
“남은 사람들…….”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저 말뿐인 약속이지만 왠지 믿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진 시야 속, 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 좀 빌리겠습니다. 쓰던 검이 부러졌거든요.”
그거 힘들게 얻은 건데.
입을 열 수 있었다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줬을 거다.
“그러니까 남은 건 전부 맡기고 푹 쉬십시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빌려주지 못할 것도 없다.
세종 대표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아까부터 힘겹게 붙잡고 있던 의식을 어둠 속으로 천천히 눕혔다.
그렇게 두려웠던 어둠이 이제는 왠지 아늑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