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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07화 (107/241)

107화. 심연을 유영하는 자 (3)

─팡

‘웜’의 몸체에 맨홀 뚜껑만 한 구멍이 뚫렸다.

괴물의 몸을 꿰뚫은 것은 한 자루의 창.

다가오던 놈들이 멈칫하고 섰다.

화력 부대와 놈들 사이에 ‘흑색창 부대’가 저지선을 만들었다.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화력 부대는 계속해서 측정 불가급에 집중해주시죠.”

경호 차장은 한결같은 침착한 태도로 창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에 국장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안개 속으로 숨으려 한다. 저지해!”

강화도에서 당한 군인들도 뭉쳐 있다가 한 번의 공격으로 전멸했다고 들었다.

측정 불가 괴물이 검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면 화력 부대는 산개해야만 한다.

뭉쳐 있다가는 전멸당하기 십상일 테니까.

물론 지금도 뭉치는 게 옳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놈이 또 다른 광역기술을 지녔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거리 특화의 화력 부대가 산개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지금으로서는 놈이 안개 속으로 숨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쪽으로.”

활이나 창을 다루는 이들은 예은이 쏜 궤적을 따라 그대로 쏘아댔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먹혀들었다.

눈이 좋은 그녀는 놈의 단단한 외피와 그렇지 않은 곳을 쉽게 구분해냈다.

─키이이익

옆에서 밀려드는 ‘웜’들은 경호 차장과 흑색창 부대가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찌르기 한 번에 ‘웜’은 치즈처럼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고작 스무 명이지만 모두 A급.

그들을 얕보거나 믿지 못하는 이들은 없었다.

덕분에 화력 부대는 쉬지 않고 측정 불가 괴물을 향해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국장이 주먹을 불끈 쥐던 그때였다.

“국장님! 전보입니다!”

“주문관? 여기는 왜 왔나! 빨리 돌아가게!”

국장은 드루이드가 펼친 방어막 밖으로 나온 주무관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C급밖에 안 되는 주무관이 끼어들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무관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근데 꼭 들으셔야 할 것 같아서요. 방금 중국 헌터 협회 측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로 3시간 전에 베이징이 저놈에게 무너졌답니다.”

“……뭐?”

국장의 표정은 미묘해졌다.

중국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게이트가 터지고 중국은 많은 영토를 잃어버렸지만, 그만큼 많은 헌터들을 양성해냈다.

그 대부분은 베이징을 비롯한 몇몇 대도시로 몰렸고, 그곳에 수비는 서울보다 두꺼우면 두꺼웠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 베이징이 무너졌다고? 고작 저런 놈한테?’

‘웜’들의 등장에 조금 덜해졌지만,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은 여전했다.

눈앞의 괴물은 측정 불가급이라 불리기에는 약해도 너무 약했다.

“다른 말은! 뭔가 추가적인 말은 없었나?”

“그게…….”

국장의 다급한 질문에 주무관은 멈칫 망설이다가 답했다.

“두 번째 머리를 조심하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도 잘 모르겠…….”

주무관이 대답을 끝맺기도 전,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우욱, 토 나올 것 같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국장이 급히 측정 불가급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미간을 구겼다.

알이나 양수를 찢듯, 샴의 지느러미 앞으로 무언가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것은 마치 막 태어난 태아 같았다.

피고름이 터져 나오고 살이 부글부글 끓었다.

혐오스럽고 역겨운 장면에 헌터들은 몸서리를 쳤다.

측정 불가급도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완전히 막을 찢고 나온 얼굴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을 들은 이들은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솟아오른 새로운 머리 하나.

기존의 머리보다 작아 마치 혹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본체와 똑 닮은 그 모습은 마치…….

‘샴쌍둥이 같군.’

국장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샴쌍둥이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두 번째 머리란 저걸 말하는 것 같군요.”

주무관은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며 말했다.

이에 국장은 여전히 표정을 구긴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쳤다.

“모두 방어막 안으로! 태세를 정비한다!”

전열이 흐트러진 것은 아니지만 탐색이 필요했다.

국장의 명령을 들은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방어막 안으로 물러날 준비를 하던 그때였다.

─■■■ ■■ ■■■■ ■

솟아난 머리에서 알 수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

“모두 조심하게!”

국장이 경고한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알 수 없는 경종이 울렸다.

국장은 반사적으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전력을 다해 주변에 얼음의 방벽을 세웠다.

“국장님?”

얼음 방벽에 들어오지 못한 일부 헌터들이 고개를 돌려 국장을 바라봤다.

다음 순간.

─쩌억

방벽에 금이 갔다.

동시에 방벽 밖에 서 있던 헌터들의 눈이 벌게지는가 싶더니, 불룩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물고기나 양서류를 닮았다.

국장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눈이 툭 튀어나온 방벽 밖의 헌터들은 일순 칠공에서 피를 쏟았다.

이윽고 부풀어 오르던 몸은 끝내 풍선이라도 된 듯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

끔찍한 적막이 흘렀다.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적막을 깬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비명이었다.

“끄아아아악!”

눈앞의 장면에 정신을 팔렸던 ‘흑색창 부대’ 중 한 명이 ‘웜’에게 잘근잘근 씹히고 있었다.

─서걱

이에 경호 차장이 급히 창을 휘둘러 웜을 처치하고 그를 구해냈다.

“정신 차려라, 지금 바로…….”

경호 차장은 품에 안은 남자에게 말을 건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웜’에게 다리가 뜯겨나간 남자의 동공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었나.”

경호 차장은 가볍게 혀를 차며 소리쳤다.

“부대 전원, 눈앞의 적에 집중해라. 먼저 화력 부대가 물러나면 우리도 천천히 방어막까지 물러난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색창 부대는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화력 부대원들은 그제야 허겁지겁 방어막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하던 국장이 쓰게 웃으며 경호 차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고맙네.”

그런 국장을 잠시 바라보던 경호 차장이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장님 잘못은 아닙니다.”

국장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미처 보호하지 못한 헌터들의 시신이 무너져가는 방벽 너머에 처참하게 흩어져있었다.

그 수가 못해도 열 명이 넘었다.

─으득

국장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더 이상 피해를 낼 수는 없었다.

“……!”

측정 불가급을 노려보던 국장의 표정이 변했다.

“부산 대표! 용재 군! 놈이 말하지 못하도록 막게!”

국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두 번째 머리가 재차 주문을 쏟아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그 공격이 또 오는 것이다.

막을 수 있는 이는 근처에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용재와 부산 대표.

이전의 공격으로 측정 불가급에게서 떨어져 나간 둘은 눈에 띄는 상처는 없지만, 분명 주문에 당해 속이 진탕이 됐을 터.

하지만 저 둘이 막지 않는다면 아직 방어막까지 도망치지도 못한 화력 부대가 위험했다.

‘아직 한두 번은 더 막을 수 있지만…….’

공격을 끊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았다.

“젠장, 말이 쉽지.”

국장의 말을 들은 용재는 투덜거리면서도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측정 불가급이 그 빌딩 같은 몸을 틀어 꼬리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목표로 했던 두 번째 머리가 순식간에 멀어지며, 거대한 꼬리가 날아들었다.

바닥을 쓸 듯 휘둘러진 꼬리는 현실감 없는 감각으로 점점 크기를 키우며 다가왔다.

위로 뛰어도, 뒤로 뛰어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

“X됐네.”

그렇게 용재가 중얼거리는 순간, 부산 대표가 강철 같은 몸을 부풀리며 달려들었다.

“으하하하! 와라!”

“저거 순 미친놈 아니야?”

용재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기도 잠시 부산 대표의 뒤를 쫓아 내달렸다.

용재도 어느새 신난 듯 웃고 있었다.

“내 포지션을 뺏길 순 없지!”

어느새 부산 대표를 따라잡은 용재.

두 사람은 동시에 주먹과 황금색 도끼를 휘둘렀다.

그 결과.

─쾅!

순식간에 날아간 두 사람은 국장을 지나쳐 방어벽 가까이 나가떨어졌다.

“괜찮나?”

국장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그 둘이 마지막에 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둘의 공격은 마치 게임의 패링처럼 작용했다.

휘둘러지는 꼬리가 완전히 속도가 나오기 전에 부딪치며 충격을 최소화한 것.

그럼에도 두 사람은 피칠갑을 한 채, 바닥에 구덩이를 만들며 처박혔다.

‘다른 S급이라면 죽었을지도 모를 치명상이지만…….’

왠지 저 둘은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두 사람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멀쩡……합니다. 쿨럭.”

부산 대표는 각혈을 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고 용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멀쩡한 게 다 죽었나. 삼도천에서 헤엄치다 온 기분이구만.”

“그래 보이는군. 자네들도 이만 물러나게.”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얼음벽을 세우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놈은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니까.’

새로운 머리는 준비가 끝났는지 재차 기묘한 음성을 쏟아냈다.

─■■■ ■■ ■■

국장이 재빨리 얼음 방벽을 세운 그 순간이었다.

─타닥

누군가 방벽 넘어 놈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세종 대표! 뭐 하는 짓인가?”

그건 다름 아닌 세종 대표였다.

아무리 S랭크라도 저 알 수 없는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세종 대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늦었어.’

돌아오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그가 뭔가 준비했기를 바랄 수밖에.

국장은 이를 악물며 세종 대표를 바라봤다.

달려 나가던 세종 대표는 돌연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허공을 가르던 검에서 어느 순간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서걱

그러자 검은색으로 된 문자가 끊어져 연기처럼 공중에 흩날렸다.

“무슨……?”

국장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세종 대표는 예상대로라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 정말이군요. 정말 벨 수 있어.”

평소같은 실눈이 아닌, 반개한 눈이 번쩍였다.

“……저 괴물은 제가 잡겠습니다.”

세종 대표가 손짓하자, 그를 따르는 헌터 수십이 말을 타고 뛰쳐나갔다.

“……개판이군.”

낮게 중얼거린 국장은 이를 악물고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경호 차장! 전선을 조금만 더 유지해주게. 화력 부대, 후퇴 중지! 세종 대표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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