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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05화 (105/241)

105화. 심연을 유영하는 자 (1)

“허억, 헉. 흐읍.”

참아왔던 호흡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깊이 매몰되었던 의식도 차차 돌아왔다.

호진은 이미 축축하게 젖은 옷을 벗어 던졌다.

“빡세네.”

토해내듯 중얼거린 호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검식 파편: 강신무(降神巫) : 9982/10000」

어느덧 숫자는 목표치에 다다라있었다.

이젠 몸에 익은 만큼 숫자를 채우는 것은 30분이면 충분할 터다.

문제는…….

─띠링

「1─3. 라멜의 사도 ‘심연을 유영하는 자 샴’의 서울 침공 저지하기. 예정 시간: 0분」

「습격이 시작됩니다.」

이미 퀘스트가 시작해버렸다는 것.

퀘스트의 알림이 울리는 순간, 컨테이너 안에 놓아진 무전이 시끄럽게 울렸다.

[치직, 서해에서 부천시 방향으로 칠흑의 미확인 물체 다수 이동 중.]

상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예정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작됐다.

“미치겠군.”

호진은 조용히 좌선을 한 채, 집중을 시작했다.

저 멀리 서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 한참이나 떨어진 곳임에도 아득한 공포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호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기운을 끌어올리고…….’

좌선한 채 구결을 읊으며 끌어올린 기운.

그것을 한순간 사방으로 퍼트렸다.

─우웅

컨테이너가 작게 진동하며 호진의 주위로 무형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잠시 후 호진은 무릎을 손으로 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호진은 손에 테이프를 감았다.

까지고 찢어진 손아귀와 손바닥에서 배어나는 피 때문이다.

이미 칼자루는 붉게 물든 피로 축축했다.

자연치유 스킬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연습량과 피로.

‘샴과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싸워야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작금의 호진이 지닌 역량으로는 전력을 다한다 해도 녀석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걸어볼 것은 강신무뿐이었다.

“조금만 버텨주라.”

3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시간이다.

그동안 호진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시라도 빨리 수련을 끝마치는 것.

─쉬익

한 차례 깊게 숨을 들이쉰 호진은 검으로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

[미확인 물체. 경로를 변경합니다. 도착 예상지점은 서울 남쪽, 관악산 인근입니다.]

“들었지? 강화 대표가 적어도 약속 하나는 지켰군.”

국장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용재와 예은 그리고 도훈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부산 대표가 미간을 모았다.

“강화도 대표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력하네요.”

“경호 차장?”

경호 차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렇지 않다면 괴물은 지금쯤 양천구나 구로구로 향했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겠지만.”

부산 대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세종 대표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다소 경직된 듯 보였다.

호진에게 잃어가던 신뢰를 되찾은 국장은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왜’가 아니네. 괴물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다소 시끄러워졌던 사람들의 시선이 국장에게 쏠렸다.

“놈이 이쪽으로 오는 덕분에 전력을 다할 수 있게 됐어. 어디 마음껏 날뛰어보라고. 다들 입만 살았던 건 아니겠지?”

“말 한번 섭섭하게 하십니다.”

부산 대표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맞부딪치자 손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른 S급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국장에게 답했다.

이런 그들을 지켜보던 용재가 옆에 서 있던 예은에게 속삭였다.

“다들 기세가 좋네. 뭔가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글쎄. 듣기로는 별다른 계획은 없던데. 뭐 각자 믿는 바들이 있는 듯하지만.”

둘의 이야기를 들은 용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 벌이라도 됐으면 좋겠네.”

이에 도훈은 궁금한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저들의 실패를 확신하는군. 왜지?”

“왜긴. 그야 당연하죠.”

용재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호진이 형이 놈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 중이잖아요. 수련 없이는 형도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인데, 여기 모인 사람들로 상대가 될 리가요.”

“그렇군.”

그 설명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예은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온다. 준비해.”

헌터들이 자리한 관악산 산속.

그곳을 향해 검은색의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

─콰광!

폭발음과 함께 땅이 진동한다.

[목표 지점 착탄…… 별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젠장.”

수도방위사령부의 이하균 중장이 입술을 짓씹었다.

다른 기계화 사단들과 공군의 지원에도 괴물은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각종 화포와 미사일에도 칠흑색의 안개 무리는 거침없이 나아갈 뿐이었다.

“귀신이랑 싸우는 기분이군.”

중장이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자네가 예상한 대로야. 정말 군대는 무의미한 건가?”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세현 대위.

호진과 강화도에서 함께했던, 샴을 목격했던, 부대의 유일한 생존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박격포의 폭탄이 괴물의 몸에 착탄하는 것을 봤습니다. 괴물이 그것을 인지하기도 했고요.”

주 대위는 헌터들이 모였다는 관악산 인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놈은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그렇다면 슬슬이겠군.”

“예, 그렇습니다.”

“놈이 헌터들과 너무 근접하면 곤란한데.”

“헌터들을 믿고 맡겨 보심은 어떠십니까?”

“또 그 얘기인가. 저번에 답하지 않았나. 아무리 헌터들이 최근 들어 강세를 보이곤 있다지만, 아직 순수 화력 면에서는 군대에 비할 바는 아니네.”

“그건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호진을 떠올린 주 대위가 입을 꾹 다물었다.

호진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인 그로서도, 이번만큼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상대가 그 괴물이었으니까.

밤을 더 짙은 어둠으로 물들이던 그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주 대위의 눈이 동태처럼 흐려지자 중장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또 저러는군.’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종종 저렇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럼에도 측정 불가급에 대해 전략적 조언을 해줄 수 있기에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괴물과 접촉했던 그의 말은 대개 맞았으니까.

예를 들면 검은색 안개와 함께 나타나며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어떤 물리적 타격도 입지 않는다는 것. 녀석을 보게 되면 상태 이상에 빠진다는 것.

그리고…….

[안개 속에서 움직임 발견. 측정 불가급으로 보입니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예측까지.

“전원 대기. 조금 더 지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대기한다.”

그렇게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고, 이내 무전기에서 재차 소리가 흘러나왔다.

[측정 불가급.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어서 무전기에 흘러나오는 유효 포격 좌표.

그것을 듣고 있던 중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차 범위가 너무 넓잖아. 거기 헌터들 있는 거 몰라? 사격 관제 레이더 다시 확인해.”

[치직…… 칙…….]

중장의 말에 관제를 담당하던 장교가 침묵한다.

그러기도 잠시 재차 무전기 너머로는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제 레이더 이상 없습니다. 측정 불가급 추산 크기 이백오십 미터입니다.]

“……뭐?”

버스의 길이가 대략 13m 남짓.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흰긴수염고래가 30m를 넘지 못한다.

아니, 생물이 문제가 아니라 63빌딩의 크기가 마침 250m다.

중장은 떨리는 음성을 간신히 숨기며 입을 뗐다.

“부대…… 전원 사격 개시.”

[전원 사격 개시. 확인했습니다.]

간만 보던 아까와 달리.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무수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중장은 조용히 손을 모을 뿐이었다.

***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덥혔다.

귀는 아까부터 먹먹했다.

국장은 밀려오는 분진에 눈을 찡그리며 끊임없이 작열하는 불꽃을 감상했다.

측정 불가급의 크기에 놀라기도 잠시.

사령관의 발포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측정 불가급의 모습은 분진과 연기,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거,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는 거 아닙니까?”

부산 대표가 턱이 빠질 듯 벌렸던 입을 다물며 물어왔다.

세종 대표는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대통령 경호 차장은 예상대로라는 표정이었다.

드루이드와 호진의 일행들만이 입을 다문 채 포화 속을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나도 모르겠군.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실 국장은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닌, 모든 헌터들이 마찬가지였다.

그 엄청난 크기도 크기였지만, 알 수 없는 존재감이 그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나마 국장인 자신이나 다른 S급들은 금방 정신을 차렸으나, 몇몇 헌터들은 지금도 호흡이 불편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만약 군부대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국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아마 이게 정부, 즉 경호 차장이 믿고 있던 수일 것이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정말 만약을 위한 대비일 뿐.

진짜 목표는 이 포격으로 측정 불가급의 숨통을 끊어내는 것일 터다.

만약 이렇게 측정 불가급을 처치할 수 있다면 계속 커져만 가던 헌터들의 영향력이 주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니 부디 그래줬으면 좋겠다.

작금의 헌터들은 저런 괴물들과 싸우기에는 아직 일렀으니까.

이곳에서 녀석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천만 인구가 몰려있는 서울이 무너진다.

‘그리고 대량 학살이 벌어지겠지.’

그런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깟 영향력 따위, 그까짓 무시 따위 얼마든지 당해줄 수 있었다.

국장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기묘한 울음소리가 산을 타고 퍼져나갔다.

고래의 울음소리를 닮은, 이유 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소리.

그 소리와 동시에 거대한 거체가 연기와 불꽃을 뚫고 올랐다.

이에 포격을 위해 다가오던 전투기 수 대가 급히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쾅

분명 회피에 성공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공중에서 폭발해버렸다.

날아오던 미사일들과 폭탄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무력하게 공중에서 터져나갈 뿐, 그 어떤 공격도 녀석을 건드리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국장은 씹어뱉듯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전원 전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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