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03화 (103/241)

103화. 대비 (2)

괴물이 쳐들어오기까지 3일이 남은 오후의 정오.

헌터 관리국은 혼란에 휩싸여있었다.

직원들은 쏟아지는 전화를 붙잡고 쉼 없이 씨름하고 있었고, 수많은 헌터들이 속속히 집결하기 시작했다.

국장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국장은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청사 입구가 소란스러운 까닭이었다.

“왔군.”

현재 헌터 관리국에 모여 있는 S급 헌터는 총 셋.

국장과 드루이드, 그리고 호진과 같은 날 도착했다가 붙잡힌 부산 캠프 대표였다.

그리고 지금, 나머지 두 명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옅은 희망이 감돌고 있었다.

“꽤 분위기가 좋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부산에서 천천히 올라올 걸 그랬습니다.”

부산 대표가 섭섭하다는 듯 말하자, 국장이 쓰게 웃었다.

“그래도 자네가 저들보다 빨리 왔을걸?”

지원을 요청한 게 언제인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그 와중에 등장은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보면 저 둘이 이미 괴물을 잡은 줄 알겠군.’

국장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원을 와줬는데 안 나가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나가 봐야겠네. 자네는?”

“저는 됐습니다. 뭘 굳이 그렇게까지.”

국장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은 부산 대표를 뒤로하고 밖으로 향했다.

서둘러 나왔음에도 밖으로 나오니 이미 수십 대의 차량들이 청사로 줄지어 들어온 후였다.

이윽고 까만 정장 차림의 인이어를 찬 사람들이 세단에서 줄줄이 내리고 있었다.

내린 이들은 주르륵 나열하여 통로를 만들고 그 끝에 한 여자가 차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장 차림을 한 여자.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그녀는 낮은 굽의 구두를 딸각거리며 국장을 향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국장님.”

“정말 오랜만이네. 명색이 서울 소속 헌터인데, 어떻게 부산 대표보다 보기가 어렵나?”

국장이 넌지시 말하자, 여자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자리를 못 비우는 이유.”

“…….”

그녀가 자리를 못 비우는 이유야 너무 잘 알고 있다.

대통령 경호 차장.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게 그녀였으니까.

“그야…… 잘 알고 있네만.”

괜히 핀잔을 줬다가 본전도 못 건진 국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경호 차장은 나름 1급 공무원인 데다가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

아무리 현재 관리국 국장의 위상이 높다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가 국장에게 존대를 해주는 것도 소속의 장에 대한 예우일 뿐이다.

“이것도 시간을 많이 낸 거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알았네, 내가 실언을 했어.”

국장은 칙칙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에 경호 차장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마지막인가요?”

“아니, 아직 한 명 안 왔네만…… 양반은 못 되는 것 같군.”

청사 벽 넘어 말들의 발구름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청사의 입구로 세종 캠프를 상징하는 문양이 걸린 깃발이 펄럭였다.

깃대를 든 기수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말에 올라탄 기마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두에 선 한 남자.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뒤섞인 일본식 갑주, 요로이를 걸친 그는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생김새도 화려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첨예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그를 바라봤다.

“예상대로 세종 대표였군요.”

“그렇다네.”

국장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세종 대표가 와줄 줄은 몰랐기에 국장은 심란한 기분이었다.

여태껏 정부의 지원요청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던 그다.

이번에도 지원요청을 무시하면 캠프의 자치를 불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었다.

주변의 세력을 흡수한 세종 캠프의 위세는 그런 협박에 흔들릴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이지?’

국장은 복잡한 심정을 숨기며, 어느새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온 세종 대표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먼 길 와줘서 고맙네.”

타고 있던 말을 멈춘 세종 대표.

면갑을 껴서 눈밖에 보이지 않던 그의 갑옷 사이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맙기는요. 섭섭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턱과 뺨을 가리던 면갑을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순간 날카롭던 기세가 수그러들더니 그의 눈이 여우처럼 휘었다.

“당연히 도우러 와야죠. 국장님.”

“그런가? 하하. 그동안은 조금 바빴나 보군그래.”

국장이 은근슬쩍 비꼬았지만, 세종 대표는 조금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찌나 바쁘던지. 그래도 다 국장님이 이해해주신 덕분에 문제들을 잘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국장은 고개를 주억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실눈을 뜨고 무해한 표정으로 웃어대는 이 남자의 속을 도통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상대하기 껄끄럽다고 할까.

잠시 경호 차장과 인사를 나눈 세종 대표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입을 뗐다.

“그나저나 오는 길에 들었는데, 이번 계획에 핵심이 저희가 아니라던데요.”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서늘한, 먹이를 노리는 뱀 같은 눈빛이다.

이에 국장은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나?”

측정 불가급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달했지만, 호진에 대한 정보나 세부적인 계획은 아직 전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들었습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그보다 그분을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그건…….”

국장이 거부하려던 찰나였다.

“저도 궁금하군요. 정보부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측정 불가급의 헌터가 탄생했다고요.”

분위기가 넘어가 버렸다.

둘이 동시에 같은 걸 원하면 국장 입장에서는 딱 잘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수련 중이라네.”

“저런……. 그러면 나오길 기다리죠. 언제쯤 나오시나요?”

“그건 나도 모르겠네.”

“……어째서죠?”

세종 대표는 처음으로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가 그런 표정을 보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기에, 평소의 국장이라면 한 방 먹였다며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답하는 국장의 표정은 칙칙하기 그지없었다.

“나도 10일째 못 보고 있거든.”

***

“뭐 좀 들리나?”

“아니요.”

걱정스러운 국장의 질문에, 예은은 문에 가져다 댄 귀를 떼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팔짱을 낀 도훈은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 방음장치라도 되어있는 건가?”

“아니. 내진 설계, 충격 완화용으로 지었을 뿐. 방음 효과가 있지는 않네.”

호진이 단련실에 들어간 지 12일이 지났다.

가능하면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제 예정된 습격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하루.

“쓰러진 건 아니겠죠?”

주무관이 걱정스럽다는 듯 묻자, 도훈과 예은이 시선을 교환했다.

평소였다면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겠지만, 무려 12일이다.

이렇게까지 모습을 안 보인 적이 없기도 하고, 당장 내일이 습격이 예정된 날이다.

둘이 대답을 망설이자 주무관과 국장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안 되겠네. 열어보지.”

“…….”

잠시 망설이던 도훈과 예은은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용재가 있었다면 뭔가 답을 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용재도 다른 단련실에 틀어박힌 지 오래였다.

국장이 단련실의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쩌적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장치가 얼어붙더니 부서져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눈을 비비며 믿지 못한 그 모습에도 예은과 도훈은 덤덤할 수 있었다.

그동안 더 신기한 것도 너무 질리게 봐온 탓이었다.

“그럼 열겠네.”

국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문고리를 당겼다.

끼익, 소리와 함께 밀려 나간 문 넘어 단련실 안쪽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둑한 조명 아래 검을 든 호진이 서 있었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람들이 들어왔음에도 호진이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한데요. 우선 가까이 가서…….”

주무관이 한 발 움직이려는 그 순간이었다.

─스륵

호진이 마치 바닥의 모래를 쓸 듯, 발을 끌며 움직였다.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검은 움직이지 않는다.

검을 쥔 손과 다른 손이 하늘을 향해 뻗어지더니 손가락이 순서대로 접힌다.

그러더니 제자리에서 통통 뛰더니 빙글빙글 돌며 움직인다.

회전을 멈춘 순간 검을 좌우로 휘감으며 빠르게 돌리고 다시 어깨에 올린다.

그러곤 고개를 까딱이며 미끄러지듯이 걸음을 옮겼다.

“저건…….”

주무관이 그 동작을 홀린 듯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곤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검무군.”

“검무요?”

“검을 이용한 춤이지. 한데 저걸 왜…….”

국장은 말꼬리를 흐리며 침음을 삼켰다.

호진의 동작은 분명 신비롭고 고아했지만, 그것뿐이지 특별한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기도 잠시, 국장도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홀린 듯 호진의 검무를 바라봤다.

숙련된 요리사, 화가, 가수, 청소부들의 일들을 볼 때 느껴지는 감탄과 비슷했다.

호진의 검무는 마치 평생 검무를 한 사람의 동작과도 같은 숙련돼 보였으니까.

사뿐사뿐 밟는 걸음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마치 나비처럼 움직이던 움직임은 어느새 폭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했다.

그 동작을 보다 보면 들릴 리가 없는 음악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몸이 떨릴 정도로 커다란 북소리와 빠르게 현을 타는 가야금의 소리.

고조되는 부분에서는 깨갱거리는 꽹과리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휘몰아치던 동작이 어느새 잦아들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뚝, 동작이 멈췄다.

그제야 국장은 참아왔던 숨을 토해냈다.

시끄럽게 귀를 울리던 소리는 애초부터 없었기에 주변은 적막에 젖어있다.

그때 멈춰선 호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스읍, 하아…….”

숨을 깊게 들이쉰 호진의 입가에는 뜨거운 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 열기가 국장이 서 있는 입구까지 훅하고 끼쳐 오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호진의 시선이 형형하게 빛이 났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국장이 긴장한 채 기운을 끌어올리던 그 순간이었다.

“국장님? 예은 씨랑 도훈 씨까지 무슨 일입니까?”

호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아…….”

‘착각이었나.’

민망해진 국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걱정이 돼서 들어왔네만. 자네 괜찮은가?”

“멀쩡합니다. 그보다 며칠 남았습니까?”

호진의 질문에 국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하루 남았네. 준비는 충분한가?”

호진의 표정에 난처함이 스쳤다.

그 모습에 국장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아직 모자랍니다. 시간이 더 필요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