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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01화 (101/241)

101화. 헌터 등급 심사 (3)

달싹이는 검은색의 부리.

검은 외형만큼이나 칙칙한 소리가 까마귀로부터 터져 나왔다.

“A급, 까악!”

“…….”

순간 좌중이 얼어붙은 듯 차갑게 얼어붙었다.

도훈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듯, 눈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 무표정한 도훈치고는 제법 커다란 감정 표현이었다.

“방금…… 뭐라고……?”

“A급……?”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 저 사람이 강화 대표인 거야?”

“아냐, 대표는 저기 정장 입은 사람이잖아.”

“그럼 뭐야……. 설마?”

현재 A급 전력을 지닌 캠프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을 통틀어도 50명이 채 되지 못하는 게 A급이라는 랭크의 위치였다.

각 캠프를 대표하는 대표들조차 B급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대표단 중 한 명이 A급이라니,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직원뿐만이 아니라 일행들조차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놀라지 않은 사람은 오직 호진뿐이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호진이 지닌 ‘감시자의 눈’은 상대의 전력을 분석하기에도 아주 좋은 능력이다.

간단한 정보들부터 현재의 컨디션, 습관, 대략의 강함까지.

이제는 별로 어렵지 않게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저 까마귀도 비슷한 능력인 거겠지.’

그렇기에 도훈의 등급 측정 결과를 예측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다음은……,’

호진은 눈을 돌려 그 옆에 예은을 바라봤다.

드루이드는 어느새 그녀 앞에 서서 새로이 주문을 외웠고, 까마귀의 입에서 재차 소리가 터져 나왔다.

“A급, 까악!”

“────!”

이번엔 정적 대신 비명과 닮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 한 번 A급이 나왔었기에 사람들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흥분을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청양 대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반면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과장의 표정에는 쩍하고 금이 갔다.

“다음은 나인가!”

용재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서며 다부진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고등학생같이 동글동글했던 예전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온몸이 근육으로 다져진 바바리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하, 이거 기대되는군요.”

말과는 달리 연속된 A급의 등장에 드루이드조차 마른침을 삼켰다.

A급 3명 이상을 보유한 캠프는 그리 많지 않았다.

A급은 수도권에 압도적으로 몰려있기에 더욱 그랬다.

수도권을 제외한 캠프 중 3명 이상의 A급을 보유한 곳은 오직 3곳뿐.

‘만약 이 남자조차 A급이라면 강화도는 일순 대한민국 캠프 중 한 손에 꼽히는 전력을 보유하게 된다.’

드루이드는 침음을 삼키며 날고기를 까마귀에게 먹였다.

“까악!”

한 차례 소리를 내지른 까마귀가 몸을 부르르 털었다.

그러고는 목을 빼 들더니 강당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쳤다.

“S급, 까악!”

“…….”

순간 쥐 죽은 듯 적막해진 강당.

사람들은 방금 들은 소리를 의심하듯 눈만 깜빡였다.

관리국에 상주하던 사회부 기자 한 명이 들고 있던 수첩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탁!

날카로운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지며 얼어붙었던 공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기도 잠시 강당은 금세 시장 바닥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S급의 탄생……!”

“이런, 미친 보도자료 준비해! 야, 저기 기자 누가 들여보냈어!”

“사령관님께 연락드렸어? 뭐? 안 받으시면 네 군 생활 끝나냐? 빨리 연결해, 새끼야!”

관리국 소속 헌터, 홍보팀을 비롯해 군인, 기자들까지.

각자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들 바쁘게 통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 총 다섯 명, 수도권을 제외하면 오직 두 명밖에 없다던 S급의 탄생이었으니까.

이 또한 어느 정도 예상했던 호진은 그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서울은 전화망을 복구했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그보다, 바쁘다 바빠.’

초조하게 다리를 떨거나, 오락가락하며 핸드폰을 붙잡은 이들.

스카웃 제의든, 동맹관계든, 인터뷰든 이유야 다양했다.

그런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용재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청양 대표는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감출 수 없는 기쁨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이제 강화도가 약하기 때문에 병합이 어렵다는 변명은 불가능할 테니까.’

반면, 과장은 시뻘게진 얼굴로 얼굴은 잔뜩 구기며 어디론가 급히 연락 중이었다.

어쩌면 김포의 S급이라는 그 대표에게 거는 전화일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손절이라도 하려는 걸까.

‘많이 늦었지.’

어깨를 으쓱한 호진은 드루이드 앞으로 가 섰다.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강당.

드루이드는 그런 강당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용재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놀라셨습니까?”

호진의 질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드루이드가 멋쩍게 웃으며 로브 속 머리를 긁었다.

“그럼 놀랐고말고요. 이거 한동안 한국이 들썩들썩하겠습니다. 대체 강화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슨 일이라…….’

그걸 짧게 설명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게이트가 터지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면 4권 정도는 너끈하게 나올 테니까.

“살고자 발버둥 쳤을 뿐입니다.”

호진은 그저 엷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까마귀와 눈을 마주쳤다.

저 까마귀가 자신에게는 무슨 등급을 줄까.

그것만은 쉽게 짐작되질 않았다.

용재보다는 높을 텐데, S급 위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난히 S급이려나.’

호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까마귀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럼 심사 잘 부탁드립니다.”

“까악!”

“어어, 얘가 왜 이러지?”

호진이 인사를 한 순간이었다.

까마귀는 놀란 듯 날개를 푸드덕거리기 시작했다.

진정시키려는 드루이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끝내 손을 뿌리치고 날아올랐다.

호진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까마귀는 드루이드가 의식을 치르지 않았음에도 뭔가에 홀리듯 말을 쏟아냈다.

“측정 불가급, 까악! 도망쳐라 까악! 까악!”

“……?”

측정 불가라니, 호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 순간까지도 까마귀는 계속해 소리를 내질렀다.

“까악! 측정 불가! 측정 불가! 까악! 도망쳐라 까악!”

마치 사이렌이라도 된 듯한 녀석의 비명에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럽던 강당에 정적이 감돌았다.

“측, 정…… 불가?”

드루이드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다른 직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들 눈만 멍하니 호진을 바라보기도 잠시, 몇몇이 새파랗게 질리며 들고 있던 핸드폰들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왜 그러십니까?”

호진이 갸웃하며 묻자 그제야 드루이드는 슬그머니 뒤로 걸음을 물리며 답했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대 등급은 S입니다. 아무리 강해도 S급. 그 이상은 없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그럼 제가 받은 거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드루이드의 말을 곱씹던 호진은 순간 눈이 커졌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등급?’

설마.

안 좋은 가설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그럴 리가.’

하지만 안 좋은 예감은 피해가는 법이 없었다.

“측정 불가 등급. 그건 괴물들에게만 주어지는 등급입니다.”

드루이드가 낮게 그르렁거리며 기운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치…… 그 거대한 고래처럼요.”

그 말을 끝으로 드루이드의 흉포한 기운이 절정에 달했다.

금방이라도 짐승으로 변신이라도 할 기세다.

무슨 상황인지 눈치를 보던 호진의 일행들도 그제야 무기들을 뽑아 들고 기세를 끌어올렸다.

반대로 강당의 다른 헌터들이 각자 무기를 빼 들고 호진들을 둘러쌌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진은 짧게 고민에 빠졌다.

‘까마귀 녀석.’

녀석이 자신을 괴물로 판단한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헌터들은 여신의 봉사자들인 반면, 자신은 울타의 봉사자이다.

‘하물며 스스로 격을 지니기까지 했지.’

아마 까마귀는 여신 혹은 선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일 터다.

호진의 시선에 닿은 까마귀는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푸드득 날개를 떨고는 드루이드 뒤로 숨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울타는 분명 고대신이었고, 자신이 만난 고대신의 추종자들은 솔직히 대부분 맛이 가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까마귀를 붙잡고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설득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바로 증명하는 것이다.

호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다.

그 순간.

─띠링

「스킬 ‘위엄’이 발동됩니다. 주변 500m 안의 중립, 혹은 적들이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 본인이 지닌 격에 따라 저항할 수 있습니다.」

─쿵

드루이드와 호진들을 제외한 강당의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감히 눈조차 들어 올리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무슨…….”

끌어올린 기세를 모두 잃어버린 드루이드가 새하얘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호진을 노려봤다.

아니, 그건 이미 노려본다고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과 황당함뿐이었으니까.

호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런 드루이드를 조용히 응시했다.

적대감은커녕 흥미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그 시선에 드루이드는 압도적인 무력감과 격의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호진은 실시간으로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과한데.’

물론 이런 효과를 노리고 쓴 것은 맞았다.

사람들을 모두 제압한 뒤, 해치지 않는다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무력만큼 효과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단도 없다.

하지만…….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그냥 겁이나 주거나 대화가 더 잘 먹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스킬에 전부 쓰러지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뭐 원하던 결과를 얻었으니 됐나.’

그러나 이내 호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손을 쓰고자 했으면 이런 관리국 하나쯤 지워버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괜한 오해들은 그만둬주시죠.”

호진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위엄’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던 사람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널브러졌다.

비단 일반인들이 아니라 헌터들, 심지어 S급이라 불리는 드루이드조차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저앉은 드루이드는 아까보다 훨씬 침착하고 자조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긴, 측정 불가급에게 무슨 수로 이길까요.”

측정 불가급은 저지할 수 없는 재앙.

악의를 지녔다는 것을 빼면 자연재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 같은 외형에 까먹고 있었을 뿐, 눈앞의 남자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드루이드가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보자,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지었다.

“이제 대화를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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