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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98화 (98/241)

98화. 헌터관리국 (3)

“아, 저기 보이네요.”

청양 대표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양복 차림의 남자 셋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재심사를 책임지고 있는 심사인원들, 즉 헌터 관리국 소속 직원들이다.

보라는 심사는 보지 않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크흠.”

꽤 가까이 다가가도 눈치를 채지 못하자 청양 대표는 일부러 인기척을 냈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직원 하나가 흠칫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것도 잠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의 면면을 확인하곤 금방 긴장을 풀었다.

“뭡니까? 대표님. 뭐 놓고 가셨습니까?”

몸을 일으킨 직원은 비실비실 웃으며 청양 대표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저는…….”

“뭘 놓고 가긴 놓고 가. 딱 봐도 쫄아서 그냥 돌아온 거구만.”

청양 대표가 입을 열려던 찰나, 직원 중 거구의 남자가 자리에 앉은 채 비아냥거렸다.

그는 직원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B급 헌터이자 감독관이었다.

그의 말에 주위에 선 직원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 노골적인 비웃음에 청양 대표와 그 동료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감독관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다가섰다.

“표정들이 왜 그러십니까? 아 혹시 방금 대화가 들렸습니까? 이거 죄송합니다. 방금까지 이 친구가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그냥 돌아와서 그 얘기 중이었습니다.”

감독관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뒤에 선 직원이 고개를 까딱 숙였다.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대표의 얼굴은 한층 더 경직됐다.

굳은 청양 대표의 입에서는 까끌까끌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게 아니라…… 감독관님, 저희는 재심사를 포기하려고 합니다.”

“……예?”

청양 대표의 말이 의외인 듯 관리국 직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것도 잠시 감독관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는 곧바로 청양 대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요. 대표님! 세종 쪽 캠프에서 합치자고 그렇게 말씀드렸다는데, 진작에 이래 주셨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때 청양 대표가 감독관의 팔을 슬며시 밀어내며 말했다.

“세종이랑은 병합 안 합니다.”

“예?”

감독관의 표정이 팍 찡그려졌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웃음을 뚝 그쳤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다시 험악해졌다.

감독관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아니, 대표님. 세종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니까…….”

“있습니다.”

청양 대표의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감독관의 말이 끊겼다.

예상치 못한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감독관이 안면이 와락 찌푸려졌다.

“어이, 거기 뭐라 그랬어.”

“그분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어디…… 잠깐, 당신 누구야?”

그제야 감독관은 네 사람으로 시험에 들어갔던 이들이 지금은 다섯 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름한 차림의 젊은 남자.

감독관은 재빨리 그의 몸을 훑었지만 무기도 방어구도 없다.

헌터가 아니라는 의미다.

잠시나마 긴장했던 감독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존자신가 본데, 끼실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대표님! 대표님도 생존자가 있으면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생존자 아닙니다. 혼자도 아니고요.”

“뭔 소리…….”

감독관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거대한 늑대들을 탄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으악, 이거 징그러워.”

“자루에 담았으면 되는 일 아닌가?”

“안 돼요. 자루에 피 냄새 배면 안 빠진다니까요.”

시끄럽게 떠드는 그들의 양손에는 무언가가 주렁주렁 들려있었다.

“감염자들의 수급…….”

이들을 바라보던 감독관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당신들은 도대체?”

“이제 궁금하십니까?”

호진은 엷게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관리국에 전하세요. 이호진이 왔다고.”

사색이 된 감독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호진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

“와, 왔답니다, 주무관님!”

1팀의 신입이 허둥지둥 문을 박차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무전기를 들고 있던 주무관이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

“뭔 소리야, 그게.”

“아니, 그 사람이요! 전화하셨던.”

“누구 오기로 했었나, 오늘? 아, 부산 대표가 오늘이구나. 빨리 왔네.”

“그게 아니라…… 아무튼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빨리 나오세요.”

신입이 주무관의 외투를 챙기며 소리치자 주무관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이게 뭘 잘못 먹었나. 부산은 2팀이 나가야지. 너 어디 아프냐?”

“우리 쪽 담당이 왔으니까 이러죠!”

“……뭐?”

주무관은 신입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강화도요! 2주 뒤에 헬기 보내기로 한 강화도 대표가 아래에 와 있다고요!”

“그게 무슨……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야, 지금 관리국 출근한 사람 중 제일 높은 사람 불러와. 일단 나 먼저 내려간다.”

“예? 제가 어떻게…….”

신입이 얼을 타며 빳빳하게 굳어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주무관은 신입이 들고 있는 코트를 낚아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온 걸까.

설마 강화도에서 김포를 뚫고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전화한 게 바로 어제다.

A급 헌터들도 무리 지어 들어가야 하는 김포를 어떻게 지나온 걸까.

‘분명…… 무력 단체를 운영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제대로 읽지도 않고 던져놓았던 보고서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이런 젠장. 조금 더 제대로 봐둘걸.’

후회하기도 잠시 주무관은 머리를 굴려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것으로, 그것은 그들이 다수의 A급 헌터와 동일한 무력을 지녔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반면, 두 번째는 그들이 다른 세력의 힘을 빌리거나 다른 방법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배를 이용했다든가.’

생각해보면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 조금 더 그럴듯했다.

주무관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관리국 정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나가던 직원들도 걸음을 늦추며 힐끔힐끔 관리국 청사에 들어서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거대한 늑대와 함께 들어선 이들은 청사 안팎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놀라기도 잠시 주무관은 빠르게 그들을 살피고는 살짝 김이 새어버렸다.

‘수가 적어.’

김포를 뚫고 왔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숫자로는 무리였다.

주무관이 실망과 안도가 뒤섞인 감정을 느끼며 그들을 향해 다가서던 그때였다.

강화도 대표단이라 생각했던 이들 중 누군가가 주무관을 향해 인사를 해왔다.

“아, 주무관님!”

“감독관님?”

3팀 현장관리 감독관을 발견한 주무관은 이상한 걸 본 듯 눈을 깜빡였다.

‘저 사람이 왜?’

강화도 대표단 무리에서 왜 감독관이 나온 건지는 둘째치고 3팀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적어도 이렇게 반갑게 인사할 사이도 아니었다.

의문을 가지기도 잠시, 왠지 핼쑥해 보이는 감독관이 누군가에게 주무관을 소개했다.

“저, 대표님. 이쪽이 강화도 쪽 담당자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잠시만요.”

그때 무전기 넘어 들었던 목소리가 슬그머니 빠지려던 감독관의 발을 붙들었다.

허름한 차림의 젊은 남자, 이호진이었다.

무전기로 들었을 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다.

“아직 묻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호진이 말을 마치자 안 그래도 파리하던 감독관의 얼굴이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변했다.

마치 이럴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무관은 흠칫 놀랐다.

3팀의 감독관은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받는 헌터였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그가 누군가에게 꼬리 만 개처럼 순종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놀란 주무관에게 호진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강화도 대표 이호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관리국 1팀 이한 주무관입니다.”

주무관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순간 반으로 접힌 자신의 허리에 당황했지만, 이내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른 지방 대표들이라면 몰라도, 눈앞의 상대는 어떤 인물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황.

이럴 때는 깍듯할 필요가 있다.

‘신입이 봤으면 어이없어하겠군.’

지방 대표들에게 깍듯하게 하지 말라고 말한 게 어제였는데 말이다.

주무관은 허리를 펴며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대표님,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분명 길이 막혀있었을 텐데요?”

“그건…….”

이호진이 대답하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피식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수령님이라 부른다더니. 아, 농담이라고 했던가?”

성인 남성보다 거대한 도끼를 짊어진 남자가 늑대 위에서 뛰어 내려왔다.

남자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주무관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들어온 듯한 압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야?”

“목소리 들으면 안다. 이 사람이다.”

뒤이어 분명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그렇지 않은 여자와, 어딘가 거친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주억이며 앞으로 나왔다.

“어제 통화할 때랑 태도가 다르시네요?”

“그러게, 만나면 반으로 접어버릴라 했는데.”

주무관은 그제야 어제 자신이 통화할 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어제 일이 떠오른 주무관은 식은땀으로 와이셔츠를 축축하게 적셨다.

그는 압박감으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니라. 제가 어제는 몸이 안 좋아서…….”

“아~ 몸이 안 좋으시면 말을 그렇게 하시는구나. 막 한숨도 쉬고 비아냥도 거리고요?”

한층 더 강해진 기세에 호흡이 어려워졌다.

뼛속까지 시린 기운이 스며들어 이가 딱딱 부딪쳤다.

“죄, 죄송합니다.”

주무관은 혼신의 힘을 다해 허리를 꺾고 고개를 숙였다.

대충 보기만 해도 알겠다.

단 네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강화도 대표단.

이들은 지방 대표라며 거들먹거리던 여타 인물들과는 결이 달랐다.

한 명, 한 명이 명백한 강자들.

3팀의 현장 감독관이 쭈그러들어 있는 것만 봐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제는 내가 미쳤지. 괜히 신입 앞에서 가오 잡다가…….’

주무관은 입술을 꽉 물고 고개를 더 깊게 숙였다.

그때 가만히 있던 호진이 손을 올려 다른 이들을 제지했다.

“흥분하셨어요. 그만하시죠. 주무관님도 그만 허리 펴시고요. 다 지난 일입니다.”

호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을 짓누르던 기운이 일순 흩어져 사라졌다.

“허억.”

주무관은 그제야 숨을 들이켜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주무관이 진정하길 잠시 기다린 호진이 엷게 웃으며 물었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이 친구들이랑 먼저 왔습니다. 일정엔 문제가 없을까요?”

“무, 물론입니다!”

주무관은 허리를 빳빳하게 펴며 대답했다.

“풉.”

어디선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쪽으로 잠시 시선이 돌아간 주무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분들은 청양 대표단 아닙니까?”

3팀 감독관과 청양 대표단 그리고 강화도 대표단의 조합이라니.

주무관은 무슨 상황인지 짐작도 할 수 없어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맞습니다. 저쪽 관련해서 할 말도 있었는데, 보아하니 주무관님은 모르는 이야기 같군요.”

“저는 무슨 일인지 도통…….”

주무관이 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그 뒤에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야기는 나랑 하면 될 것 같은데.”

기름진 목소리, 쫙 빼입은 정장, 어설픈 턱수염까지.

1팀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3팀 김 과장이었다.

그 뒤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입이 서 있었다.

“여긴 보는 눈이 많군. 자리를 좀 바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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