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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97화 (97/241)

97화. 헌터관리국 (2)

─촤악

또 한 차례 뿜어져 나온 선혈이 아스팔트를 축축하게 적셨다.

용재가 어깨에 도끼를 두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쉽네.”

허세가 아니었다.

용재는 기를 다루는 감염자들을 쉽게 상대했다.

아니, 정확히는 유린에 가까웠다.

같은 기를 다루는 상대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을까 싶지만, 싸우는 모습을 보면 쉽게 답이 나왔다.

육체적 스펙이 비슷하면 뭐 하겠는가. 전투적인 센스 부분에서 놈들은 못 봐줄 정도였다.

“너…… 도대체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야.”

예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용재를 노려봤다.

용재와 달리 예은은 꽤 고전했다.

예은도 초감각을 익혔지만, 아직 기를 다루지 못하다 보니 기를 다루는 상대가 벅찬 듯했다.

점점 익숙해지는 듯 이젠 곧잘 상대하지만, 그래도 용재나 호진이 아니었으면 벌써 몇 번이나 위험했을 거다.

예은의 반응에 용재는 후후 소리를 내며 낮게 웃으며 답했다.

“조금 깨달아 버렸달까?”

“너 그 말투…… 아니, 말투가 문제가 아니구나. 여자 친구는 다음 생에 만들어야겠다, 용재야.”

예은이 질겁하며 말하자 용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정도야?”

“그 정도야.”

용재는 시무룩해진 상태로 무기를 점검했다.

‘이참에 저놈의 중2병 좀 고쳐졌으면 좋겠는데…….’

호진은 기꺼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괴물을 뒤쫓아 죽이고 돌아오는 도훈이 보였다.

도훈도 기를 아직 못 다루기는 하지만, 핸드건이라는 무기와 청랑 덕에 괴물들을 상대로 우위를 보였다.

용재의 도움으로 청랑심법도 익혔으니, 조만간 기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전투력이 부족한 건 예은인데, 그래도 원거리와 정찰이라는 특기가 있는 만큼 팀에 충분히 도움이 됐다.

‘그래도 적합한 내공심법을 익히게 도와주면 좋겠지.’

다음에 에우리우스를 만나면 부탁을 해봐야겠다.

전체적인 전투를 조망한 호진은 기분 좋게 웃으며 하야의 고삐를 당겼다.

돌아선 호진의 뒤로 셀 수 없는 감염자들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감염자들은 예상한 대로였다.

놈들은 분명히 전부 이곳의 감염자들이다.

기를 쓸 수 있는 녀석도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펙이 이전보단 훨씬 높았다.

그리고 공국에서 만났던 녀석들이 그랬듯, 생전의 익혔던 기술들을 바탕으로 기를 활용하는 모양이었다.

‘뭐 그래봤자 감염자였지.’

불사의 신의 봉사자였던 왕실 기사 이상으로 위험한 녀석은 없었다.

문제는 놈들이 강해진 수단이다.

줄어든 감염자들과 강해진 소수의 감염자들.

도출한 답은 간단했다.

‘경험치.’

놈들이 서로 상잔하며 경험치를 얻고 강해진 것이라면 현 상황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자기들끼리 죽이고 강해지는 괴물들이라니.

이놈들만 그러는 걸까? 아니면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문뜩 불안해진 호진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조용히 고삐에 힘을 줬다.

***

호진들은 빠르게 시내를 주파했다.

마주치는 적을 분쇄하며 내달린 지도 30분, 어느새 김포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슬슬 끝이 보이네.”

호진이 중얼거리기도 잠시, 어디선가 고함과 금속음이 흐릿하게 들려왔다.

“이건?”

“동쪽 방향 6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교전이에요.”

용재가 고개를 갸웃하자, 예은이 동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역시 이예은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정찰 성능은 레이더와 비견될 정도다.

“가보죠.”

“잠깐!”

호진의 말에 용재가 손을 들고 물었다.

“아까 감염자들끼리 싸우는 거일 수도 있다며.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감염자들이 싸우고 있는 거라면 호진의 이론이 더 확실해지는 것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호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을 이었다.

“가서 보고 사람이면 돕고, 감염자들끼리 싸우고 있다면 전부 죽여.”

“쉬워서 좋네.”

용재는 웃으며 타고 있던 늑대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 뒤를 세 사람이 뒤따랐다.

그렇게 달려간 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감염자들이 보였다.

나름 대치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감염자들이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절망과 공포를 즐기는 중이었다.

“뭐야, 사람이네.”

용재가 혀를 차자 예은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실망한 거야?”

“괴물들끼리 싸우는 걸 보고 싶었지. 괴수 대전은 남자의 로망이라고.”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표정을 지어 보인 예은이 수세에 몰린 사람들을 힐끔 보며 말했다.

“그런 것보다, 저 사람들을 구해주면 멋있지 않을까?”

“어?”

“왜,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용재는 홀린 듯,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목울대가 울렁였다.

“형, 누나, 아저씨. 제가 갈게요.”

그 눈빛이 너무 형형해 호진도 차마 말릴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대신 사람들이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그땐 당연히 막아줘야지!”

용재가 실시간으로 멀어지며 대답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호진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왜 굳이 용재에게 그런 말을……?”

“재밌잖아요.”

“……?”

어쩌면 예은은 용재의 ‘사용법’을 익힌 것일지도 모르겠다.

호진은 잠시 도훈과 시선을 교차한 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느낀 것이지만, 그녀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용재는 사람들과 대치 중인 감염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러들 나게. 여기는 내가 상대하겠네!”

“키이이익……?”

“어어?”

용재의 난입에 감염자들과 사람들 모두 당황에 빠졌으나, 감염자들은 빠르게 용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용재는 도끼를 마주 휘둘러 감염자의 상체를 아주 으깨버리며 소리쳤다.

“어림도 없네! 으하하하!”

‘누구야 저건.’

호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용재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다.

마치 에우리우스나 쓸 법한…….

아, 에우리우스나 쓸 법한 말투가 아니라 그냥 에우리우스의 말투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던 걸까.

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그대로 감염자들을 지나쳐, 뒤쪽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호진과 일행들이 하야와 늑대들을 타고 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물었다.

“누, 누구?”

“아, 헌터입니다. 지나가던.”

딱히 숨길 필요는 없지만,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웃기다.

호진의 간단한 대답에 네 사람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그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저희도 헌터입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야, 헌터였나?’

기감으로 플레이어인 줄은 알았지만, 국가에 소속된 헌터인 줄은 몰랐다.

이들의 실력으로는 감염자들과 싸우기에 무리가 있다.

정보가 부족했던 걸까?

호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곳에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아…….”

네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질책하려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호진이 조금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되묻자 대표인 남자가 부끄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 저희는 청양의 피난소를 운영하는 대표단입니다. 제가 대표고요.”

조금 놀랐다.

남자는 기껏해야, 강화도의 일반적인 헌터들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헌터관리국에서 등급 측정을 하면 식량과 무기를 지급해준다는 말을 듣고 서울로 왔는데…… C급, 정확히는 C+라는 등급을 주더군요. 그러더니 저희 피난소는 최소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면서 세종에 있는 캠프와 합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호진은 남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의 남자가 대표로 있는 캠프라면, 이곳의 감염자 네다섯 마리만 캠프를 덮쳐도 전멸할 터였다.

캠프를 합치라는 명령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청양에는 기껏해야 고블린들이 전부고…… 무엇보다 저희가 일궈놓은 터전을 놓고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종 캠프로 간다고 해서 그곳에서 우리를 반겨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재시험 요청을 했습니다.”

“그 재시험이…….”

“네, 이곳에서 감염자들 목을 10개 이상 베어오는 거였습니다.”

호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헌터 관리국은 무슨 생각인 거지?’

이 사람들의 실력으로 지금 이곳에 오는 건 자살행위다.

이건 둘 중 하나였다.

관리자가 이들에게 엿이나 먹어보라는 생각으로 임무를 줬거나, 아니면 몬스터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캠프의 병합을 촉진하려 했거나.

후자면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줄 인원이 주변에 있어야 하는데, 아닌 걸 보니 전자인 듯했다.

‘마음에 안 드네. 헌터 관리국.’

호진이 얼굴을 찌푸리자 맡은 편에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제,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아, 아닙니다. 그냥 뒤쪽이 시끄러워서요.”

뒤쪽에선 소란을 듣고 추가로 몰려온 감염자들로 인해 시끌거렸다.

실제로 아까부터 거슬렸다.

“으하하하!”

특히 용재의 웃음소리가 말이다.

‘저놈, 저거 언제 철들려나.’

호진은 용재가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도끼를 휘두르며 감염자들을 난도질하는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호진의 시선을 따라 용재의 모습을 지켜보던 청양 대표가 안심한 듯 숨을 토해낸 뒤 말했다.

“아, 다행입니다. 저는 제가 뭔가 실수한 줄 알고……. 그나저나, 수도의 헌터님들은 다르긴 다르네요. 이제 알겠습니다. 세종 캠프는 소문이 안 좋아서 무작정 거절했는데, 다른 곳이라도 알아봐야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데 한 가지 정정을 드리자면, 저희는 수도 쪽 헌터가 아니라…….”

호진이 대답하려던 그때, 뒤에서 용재가 앗 하고 소리를 흘렸다.

감염자 한 마리가 용재의 옆을 지나쳐 이쪽을 향한 것이다.

“저, 저!”

청양 대표와 사람들이 도망치지도 못한 채 굳었다.

그리고 뭔가 번쩍거렸다.

─찰칵

호진이 허리에 패용한 검집에 검을 꽂아 넣음과 동시에 뒤쪽에서 피 분수가 일었다.

정확히 세로로 갈라진 감염자가 힘을 잃고 꼬꾸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도 못한 채,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선 청양 대표.

그런 그에게 호진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강화도에서 온 강화도 대표 이호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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