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헌터관리국 (1)
서울 종로에 위치한 헌터 관리국.
출근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신입 한 명이 방금 통화를 끊은 주무관을 불안한 눈빛으로 힐끔거렸다.
그 시선을 느낀 주무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왜, 자꾸 힐끔거려. 할 말 있어?”
“아뇨……. 그게 방금 통화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까?”
“아, 난 또 뭐라고.”
주무관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너, 지방에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곳들이 몇 군데인지 알아?”
“네, 넵. 분명 42개까지 확인이 됐다고…….”
“그래, 그래. 잘 아네. 관리국에서도 처음에는 신경을 썼지. 처음 전화는 국장님이 직접 연락을 돌리실 정도였으니까.”
말을 하던 주무관의 입매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근데 그 결과가 황당했거든. 등급 측정을 위해 온 대표라는 사람들의 등급이 죄다 A급은커녕 B급도 간당간당했으니까. 왜 그 지난주에 왔던 청양? 거기서 온 대표는 C급이었다니까.”
“아, 들은 거 같습니다.”
신입은 입사 때 시끌시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원 요청이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도움이 될 리가 있나. 수도권에 모인 군대와 헌터들이 얼마나 많은데. 애초에 A급 이상의 헌터들은 대부분 서울에 모여 있고. 위에서도 지방 캠프에 대해선 아무런 기대 안 해. 그래서 지금은 국장님 대신 내가 이렇게 통화를 돌리고 있는 거 아니냐.”
“아.”
신입이 이해했다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곧장 뭔가 이상한 듯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정부에서는 캠프들을 못 건드리는 겁니까?”
신입의 말에 잠시 멈칫한 주무관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신입. 잘 들어. 어디 가서 그딴 소리 입에 담지도 마.”
“아, 예. 예. 죄송합니다.”
신입이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팍 숙이자, 그제야 주무관이 인상을 풀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들과 대립하는 게 어려워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왜……?”
“알잖아. 우리가 지원 요청을 하는 이유. 국토 회복도 보류하고 정부와 군대가 수도권에 콕 틀어박힌 이유 말이야.”
“……설마 진짜였습니까? 그 측정 불가급 괴물이요?”
주무관의 표정이 검게 물들었다.
“나도 가짜였으면 좋겠다. 근데 목격 정보가 너무 많아. 다 황당한 진술들뿐이긴 한데. 아무튼, 정부 입장에서는 그런 괴물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데 전력을 전국으로 분산할 수 없는 거지.”
“설마, 그럼…… 캠프들을 저대로 두는 게?”
“방치 중인 거야. 모른 척하고.”
주무관의 대답에 신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신입을 보며 주무관은 재차 무전기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캠프 대표들에겐 딱 이 정도 태도가 좋아. 너무 깍듯이 대해주면 지네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안다니까.”
“아, 넵.”
신입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다가 문뜩 예정에 들은 소문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런데 방금 통화한 강화도 캠프. 예전에 무슨 소문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 한 달 전에 그쪽에서 철수한 군대에서 보내온 서류들이 있긴 한데…… 그거 볼 시간이 어디 있어. 소문이야 원래 사람들이 힘들 땐 뭐라도 기대고 싶으니까, 만들어 내는 거지.”
주무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딱 그 정도야. 본인들이 뭐라도 되는 양, 어깨에 힘들 주고 다니지만. 까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이제 방해 말고 네 업무나 해라.”
“넵, 감사합니다!”
신입은 허리를 꺾어 인사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서류를 읽어 내리던 신입은 손을 멈추고 잠시, 예전에 들은 소문을 떠올렸다.
칼을 휘두르며 수천의 괴물을 베고, 군대도 어쩌지 못하는 괴물과 싸워 이기는 한 초인에 대한 소문을.
‘그것도 가짜였나…….’
너무 생생한 이야기라 가슴을 졸이며 들었는데…….
신입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역시 소문은 과장된 거겠지.”
***
“조심히 갔다 와.”
“네, 형! 걱정 마세요. 저는 괴물들만 많으면 어디든 좋다니까요.”
수현이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 대답과 함께 수십의 골렘들이 일사불란하게 걸음을 옮겨 차원 문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수현이 시리온 공국의 지원을 위해 파견된 것이다.
아무래도 공국에는 아직 괴물들을 비롯해 위험 요소들이 많은 반면, 수비 수단이 너무 적기 때문에 결정된 사항이었다.
원하진 않았지만 그쪽의 지도자가 된 이상,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출발해 볼까.”
호진의 말에 예은과 도훈, 그리고 용재가 차례로 대답하며 가방과 무기를 둘러멨다.
다른 인원들은 캠프의 수비를 위해 남기로 했다.
박 순경이 역시 자신만 미워한다며 매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역시 호진을 대신할 사람으로는 박 순경만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헌터들과 감시단.
웬만하면 이 두 전력도 가능한 캠프에서 뺄 생각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고.’
호진은 허리춤에 맨 검을 움켜쥐며 생각했다.
지금 자신은 캠프의 전부를 상대로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차이가 더 벌어졌다.
‘지원 요청이라 했지.’
아마 퀘스트창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라멜의 사도. ‘심연을 유영하는 자 샴’.
녀석과 연관된 일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상대가 녀석이라면 캠프의 전력을 아무리 데려가도 무의미했다.
믿을 건 성장한 스스로의 실력뿐이다.
호진은 각오를 굳혔다.
“형 근데. 요즘 하야는 괜찮아?”
“응, 다 나았더라. 안 그래도 오늘부터 다시 부르려 했어.”
대족장과의 싸움 때 다리를 다친 하야는 한 달 동안 정양한 덕에 깔끔하게 회복했다.
─삐이이이익
뼈 피리 소리가 울리자, 나무 그늘 아래 하야가 스르륵 빛 입자를 흩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부탁 좀 할게, 하야.”
낮게 그르렁거리며 대답한 하야는 스륵 몸을 낮췄다.
올라타자 하야의 심장박동 소리가 매끈한 비늘 위로 둥둥 울려왔다.
기분 좋은 공명감을 느끼던 호진에게 용재가 퉁명스럽게 물어왔다.
“치사하게 형이랑 도훈 아저씨만 타고 가는 거야?”
“그럴 리가.”
호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동속도도 소모되는 체력도 다를 텐데,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다.
마침 호진의 기감에 기다리던 녀석들이 잡혔다.
얼마 안 가 도훈을 태우고 있던 청랑도 뭔가 느낀 듯, 고개를 돌리고 낮게 그르렁거렸다.
용재와 예은의 고개도 그쪽을 향했다.
회색 늑대 두 마리가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용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맞아. 백랑에게 부탁해서 두 녀석을 더 빌려왔어.”
“우와, 역시 형이야!”
용재는 예전에 백랑을 한번 탄 이후로 가끔, 청랑을 탄 도훈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준비해줄 생각이었는데, 마침 딱 필요한 상황이 온 거였다.
“백랑이 싫어하진 않던가요?”
예은이 살짝 머뭇거리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녀석은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호진이 강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듯, 백랑은 그런 호진을 존중하고 있다.
아마 부탁만 한다면 직접 같이 싸워줄 것이다.
리자드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동맹은 유효했다.
덕분에 호진은 다시 한번 몬스터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됐다.
‘동료로 만들 수만 있다면…….’
경우에 따라 매우 강력한 아군이 될 수 있다.
호진이 가볍게 웃는 동안 모두 늑대에 올라탔다.
잠시 후.
다양한 모습의 기병 넷이 빠르게 강화대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이거 생각보다…….”
“조용하군.”
예은이 말꼬리를 흐리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호진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하면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김포는 감염자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어서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다리를 건너자마자 적이 득실거릴 거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거리는 휑했다.
황폐해진 도로와 무너져가는 건물들, 녹슨 자동차는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 소리를 냈다.
마치 버려진 유령도시를 보는 기분이다.
찝찝하지만 여기서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이동하겠습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주세요.”
“그런 말 안 해도 충분히 긴장돼.”
용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긴, 예상 가능한 것은 견딜만하다.
예상과 다른 것이 더 무섭지.
호진은 엷게 웃으며 선두로 시내에 진입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온다.”
호진의 기감에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적이 잡혔다.
─타다다닷
육상 선수 같은 자세로 허리를 펴고 달리는 녀석은 다리가 보이질 않을 정도로 빨랐다.
분명 사람의 형태이지만 하체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말의 다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러면서 상체는 평범하니 어른의 다리에 아이의 성체를 합성한 것처럼 괴이한 모양새였다.
무엇보다.
‘기?’
달려오는 녀석에게서 희미하지만 명백한 기가 느껴졌다.
‘어째서 이곳에 기를 다루는 감염자가 있는 거지?’
의문도 잠시 호진은 하야의 고삐를 당기며 마주 달려 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마치 손이라도 풀듯이.
─서걱
“키익?”
달리던 몸뚱어리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져 우당탕 굴렀다.
예상대로다.
기가 느껴지면 뭐 하나.
녀석의 움직임은 전투에 ‘ㅈ’도 모르는 초심자였다.
놈을 상대로는 기술을 쓰는 것조차 아까웠다.
검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낸 호진은 고개를 돌려 쓰러진 녀석을 바라봤다.
‘뭐였을까.’
녀석도 저쪽 차원에서 넘어온 걸까?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녀석이 입고 있는 찢어진 운동복들이 설명되질 않는다.
어쩌면 감염자들의 수가 줄어든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한 가지 가설이 호진의 머리를 스쳤다.
녀석들도 불사의 신의 봉사자들이니까 가능성은 충분했다.
“우선은…… 확인을 조금 더 해야겠네.”
아직은 가설을 입증할 표본 집단이 부족하다.
그리고 실험체들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놈들이 알아서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큰일 났네. 형, 어떡할까?”
천천히 늑대를 몰아 다가온 용재가 물었다.
용재의 목소리나 표정은 질문과 달리 매우 평온했다.
“알면서 뭘 물어봐.”
달려오는 선두의 괴물을 바라보며 호진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전부 짓밟아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