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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94화 (94/241)

94화. 귀환 (3)

‘얼굴이 따갑네.’

캠프로 들어서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호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소란스럽던 공터는 어느새 호진들의 등장으로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기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호진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비켜섰다.

그렇게 비켜선 사람들의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이예은, 박 순경, 스미스와 수현까지.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호진이 그들에게 다가서자, 박 순경이 마주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끝난 건가요?”

손을 맞잡은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캠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러실 줄 알고 준비해뒀습니다.”

박 순경은 몸을 돌려 뒤쪽의 단상을 가리켰다.

호진은 한 차례 감사를 표하고 단상으로 올라섰다.

그러자 공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성벽 위의 사람들까지, 캠프 내 사람들의 면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건 정말 체질이 아니지만…….’

호진은 한 차례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이호진입니다.”

숨 막힐 듯한 적막이 흐른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기대가 담겨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엔 너무 긴 이야기긴 하지.’

호진은 가볍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단언했다.

“괴물은 죽었습니다. 캠프는 이제 안전합니다.”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호진이 떠나기 전, 단단히 경고했던 만큼 사람들의 긴장감은 최대로 고조되어 있었는데, 방금 선언으로 그것들이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서로 얼싸안았다.

누군가는 안심하며 웃어 보였고, 또 누군가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기껍게 지켜보던 호진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기운을 흘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를 향했다.

웅성거리던 소음은 점차 사그라들고 어느새 모두가 호진의 꾹 닫힌 입에 집중했다.

“우리는 한 달 전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호진은 눈을 돌려 공터에 선 한 중년 남자를 바라봤다.

거무죽죽한 얼굴을 한 남자는 허탈하게 웃다가 호진이 한 달 전의 일을 언급하자,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호진과 눈을 마주치자 약간 어깨를 떨었다.

남자는 호진을 향해 원망과 감사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지난번 캠프가 습격받았을 때, 아내를 잃은 헌터였다.

그가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저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노력했지만 부족했습니다.”

남자뿐만이 아니다.

낯빛이 좋지 않은 몇몇이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화가 난 표정으로 이를 악문 사람도 보인다.

모두 유가족들이다.

이런 이들의 모습을 조용히 눈에 담던 호진은 굳은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그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사람들의 시선에 의아함이 들어선다.

“그건 무책임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 그런 약속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호진의 목소리가 공터에 낮게 깔렸다.

조용히 말하는 듯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여러분은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한다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스스로를, 나아가 다른 사람을 지킬 사람들입니다.”

호진은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불안으로 흔들리던 사람들의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어렸다.

“어쩌면 캠프가 또다시 공격받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호진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그의 음성에는 억누른 분노가 한가득 어려,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얼마나 오래 걸려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 죗값은 받아내겠습니다.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약속입니다.”

호진은 피 묻은 공왕의 철가면을 들어 올렸다.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이 괴물의 잔해임을 알 수 있었다.

─짝

고요하던 광장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내를 잃은 중년의 헌터.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그의 얼굴에 결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호진의 뜻에 함께하겠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를 시작으로 박수 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종례에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우레와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캠프의 밤이 깊었다.

어디선가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모닥불에서 타오른 불싸라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호진이 없는 사이 찾아온 초겨울의 밤은 꽤나 싸늘했지만, 사람들은 춥지도 않은지 다들 야외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웠다.

“시끌벅적하네.”

“그러게.”

이를 지켜보던 호진과 용재는 술을 홀짝이며 엷게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용재는 나이프의 날을 갈고 있는 도훈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도훈이 아저씨도 그러지 말고 한잔해요.”

“술은 써서 싫다.”

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예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긴 건 느와르 영화에 나오게 생겼는데 의외네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좋지 못한 습관이다.”

도훈은 나지막하게 대답하며 조용히 주스를 따라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재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 저 아저씨는 주스만 마셔도 멋있냐.”

그 말을 들은 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두툼한 가죽 망토와 갑옷을 입은 도훈은 뭔가 거친 매력이 느껴졌다.

무심한 눈빛과 하관을 덮은 정리된 수염, 그리고 이국적인 외모가 그 매력을 극대화했다.

한참 그 모습을 구경하던 사이, 예은이 어깨를 으쓱하며 용재에게 말했다.

“왜, 너도 사람은 착하잖아.”

“……그거 왠지 욕 같은데요. 누나?”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해. 섭섭하게.”

“호진이 형. 이것 봐요, 이거. 이 누나가 평소엔 이런다니까요. 이러다 형 앞에만 가면 말수가 확 줄고. 분위기 잡고.”

“머, 뭐? 아니, 야! 내가 언제…….”

호진은 고개를 돌려 용재의 입을 틀어막는 예은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그녀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뭐지, 이거.’

경험상 둘 중 하나다.

자신과 엮인 농담에 기분이 상했거나…….

‘나를 좋아하는 거.’

물론 연애 경험 제로인 호진은 이런 상황에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줄 몰랐다.

호진은 머리에 전원이 꺼지고 굳고 몸의 관절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등에는 미적지근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끔찍한 적막이 잠시 흐르다가, 풋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진이 고장 난 로봇처럼 버벅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는 용재의 얼굴이 보였다.

“……너어.”

호진이 한마디 하려던 순간 고개를 돌린 예은도, 주스 잔을 내려놓은 도훈의 어깨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하하하하!”

“큼, 흐큽, 크흠.”

앞뒤로 터져 나오는 웃음들.

호진의 몸이 더 빳빳하게 굳자, 용재와 예은은 아예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소란이 커지자 캠프의 다른 사람들도 이쪽을 힐끔거리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진은 잔에 든 술을 목에 털어 넣으며 민망함을 삼킬 뿐이었다.

호진은 붉어진 목을 긁적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민망함이라…….’

이것도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너무나 익숙했던 감정들이 정말 오랜만에 겪는 것들처럼 반가웠다.

그렇게 웃음이 잦아들 때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이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호진이 삼초오오온.”

가장 앞에 달려오던 주연이가 호진을 보고 팔을 펼쳤다.

이에 호진은 반사적으로 팔을 벌리고 주연이를 안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우와!”

“진짜 이호진이야?”

“야 이, 바보야! 이호진은 반말이고! 이호진 님이라고 해야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주연이가 호진에게 작게 속삭였다.

“주연이가요. 삼촌이랑 친하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믿어 줬어요.”

‘아, 그런 거군.’

완벽히 이해했다.

‘왠지 오늘따라 조금 더 살갑더라.’

달려들 때는 언제고, 오랜만에 본 호진이 낯선 건지 약간 안절부절못하는 주연.

이를 지켜보던 호진은 그녀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웠다.

주연이의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맺혔다.

호진은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 주연이 친구들이구나? 이름들이 뭐니?”

“저, 저는 예림이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수호입니다!”

하나둘 인사하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들은 호진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진짜 주연이랑 친하신가 봐.”

“내가 주연이 말이 진짜라고 했잖아.”

아이들의 아이들다운 대화를 듣자 가볍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진이 웃자 아이들 몇몇이 우물쭈물했다.

이에 호진은 주연이를 다시 팔에 안고, 주저앉으며 아이들과 시선을 맞췄다.

“궁금한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저, 저기! 정말 다른 세계에 가보셨어요?”

가장 야무지게 생긴 예림이라는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해왔다.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물론이지.”

“우와아아아!”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그러면 마법도 있나요?”

수호라는 아이가 나뭇가지를 양손으로 꼬옥 움켜쥐며 물었다.

“그건…….”

호진은 대답을 망설였다.

신기한 거라면 많이 보기는 했다.

하늘에 불덩이를 만드는 도마뱀이나, 보이지 않는 칼날을 날려대는 화신.

다른 사람을 잡아먹고 능력을 따라 하는 괴물까지.

그런 것들을 마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아저씨가 잘 알아.”

호진은 급히 도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같이 무심하던 도훈의 표정에 당혹감이 어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그저 반짝이는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도훈은 툭 내뱉듯 대답했다.

“……있다.”

“와아아아아!”

도훈의 나지막한 대답에 아이들이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어떤 마법이요?”

이번에는 호진의 품에 안긴 주연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도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멈칫하다가, 호진을 힐끔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괴물을 반으로 깔끔하게 잘라 죽이는 마법이다.”

‘……나를 왜 보나 했다.’

호진이 어이없어하기도 잠시.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아이들의 표정에 금이 가더니 조금씩 일그러졌다.

이에 도훈은 당황하여 황급히 손을 저었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흐읍.”

마법을 기대하던 수호의 입에서 가장 먼저,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던 그때.

“마법으론 이런 게 되지.”

어디선가 밝은 빛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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