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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85화 (85/241)

85화. 수련 (6)

─스스스슷

검은 뱀이 어둠 속으로 모습을 숨겼다.

호진은 여유롭게 웃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와라.”

소리도, 냄새도 없고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적이지만 딱히 두렵진 않았다.

호진은 그저 검을 편하게 늘어뜨려 쥐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뒤에서 서릿발 같은 살기(殺氣)가 순식간에 호진을 덮쳤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린 호진은 검을 뻗었다.

낡고 이가 나간 검에는 유형화된 기(氣)가 흔들림 없이 덧씌워져 있었다.

“쉬이이이이익!”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든 검은 뱀은 위협하듯 쇳소리를 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캉!

이번에도 녀석의 송곳니와 검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금속음에 공동에 울려 퍼졌다.

하나, 이번에 호진은 그 공격을 버티지 않았다.

녀석과 부딪치는 순간 발에 힘을 뺐고, 동시에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키이이이!”

검은 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전력으로 뒤쪽의 벽을 향해 호진을 밀어붙였다.

이에 호진은 속절없이 밀려나 빠른 속도로 벽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벽과 부딪치기 바로 직전.

호진은 송곳니와 맞부딪치던 검의 힘을 풀고 녀석의 힘을 뒤쪽으로 흘렸다.

검은 뱀의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자 몸은 절로 옆으로 비켜났다.

마치 빠르게 흐르는 급류 옆, 냇가에 떠오른 꽃잎 한 장처럼.

공격을 흘린 호진은 빠르게 지나치는 녀석의 거체에 검을 휘둘렀다.

옆에서 횡으로, 위에서 종으로, 다시 옆에서 사선으로.

호진은 검이 뱀의 몸을 벨 때의 충격을 이용해 몸을 튕기듯 수 차례 녀석의 몸을 베었다.

그러고는.

─쿵!

거대한 굉음과 함께 공동이 작게 흔들렸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검은 뱀이 공동 벽에 머리를 들이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신 움직이지 않았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묘역의 수호자, 검은 뱀을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의 격이 상승합니다.」

「보상이 인벤토리에 수납되었습니다.」

「이화접목(移花接木)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검은 뱀이 죽자 어두웠던 시야 역시 천천히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빈 공동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짝짝짝짝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 너머로 에우리우스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굉장한 싸움이었네. 방금 설마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묘였나?”

“운이 좋았습니다.”

호진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손을 내저었다.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고작 한 번 보여준 걸 따라 할 줄이야.’

대련 중에 한 번 보여줬던 기술을 완전히 재해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에우리우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호진에게서 눈을 떼, 쓰러진 검은 뱀을 바라봤다.

축 늘어진 그 거체에는 수십, 수백에 이르는 검흔들이 남아있었다.

지난 7일간의 흔적들이다.

호진은 첫날 ‘절(切)베기’를 제외하면 3일째까지는 녀석의 몸엔 손도 대지 못했다.

4일째에는 단 한 번 반격에 성공을 했다.

5일째에는 다섯 번 공격받으면 한 번 꼴로 반격했다.

6일째에는 공격을 주고받으며 동등한 대결을 펼쳤다.

7일째에는…….

단 한 합.

단 한 번 공방의 결과가 이것이다.

검은 뱀의 몸을 뒤덮은 흉터들은 그 크기가 눈에 띄게 달랐다.

얇고 작게 난 상처들은 이전에 입은 상처들인 반면, 크고 깊은 검흔은 오늘의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일곱.’

그 짧은 사이 일곱 번의 검을 휘두르다니 믿기지 않았다.

‘장마철의 강에 물이 불어나듯 실력이 일취월장하는군.’

에우리우스가 호진의 성장을 곱씹으며 고개를 젓는 사이 호진은 검을 갈무리했다.

‘보상은…… 어디 보자.’

─띠링

「바실리스크의 송곳니」

「종류: 재료, 무기」

「정보: 상대의 시야를 빼앗고 마비시키는 중독효과를 지닌 송곳니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무기이나, 독이 마르지 않는 송곳니는 무기 제작에 있어 최고의 재료 중 하나로 손꼽힌다.」

‘나쁘진 않나?’

당장 써먹기에도 나쁘지 않고, 재료로서도 훌륭하다.

대충 공방에 던져주고 만들어달라고 하면 뭔가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다.

이제 남은 제한 시간은 8일하고도 한나절 가량.

녀석을 잡기 위해 투자한 시간치고는 살짝 아쉬운 보상이었지만, 진짜로 얻은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

“이젠 검에 두른 기도 흔들리지 않는군. 완연한 절정(絶頂)에 이르렀어.”

“스승님 덕분입니다.”

에우리우스의 칭찬에 호진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에우리우스와의 대련, 그리고 검은 뱀과의 생사를 오가는 결투.

두 경험은 호진의 실력을 가파르게 성장시켰다.

그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은 기(氣)의 활용으로, 이제는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자유롭게 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에우리우스는 이런 호진의 경지를 두고 절정(絶頂)이라고 불렀다.

모두 에우리우스의 지도와 가르침 덕분이었다.

“아니,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말이라도 고맙네. 으하하하!”

에우리우스는 쑥스러운지 슬쩍 투구의 바이저를 끌어내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호진은 고개를 돌려 공동의 한가운데 자리한 문을 바라봤다.

화려한 조각들이 양각된 커다란 문.

천천히 다가서서 살피자 문고리 역할을 위해 파인 홈 위로 수상한 장치들이 보였다.

호진은 혹시 움직일까 싶어 만져봤으나 장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뭔가 조건이 필요한 모양이군.’

문을 더 살펴보니 양각된 조각들 위에 태양 모양으로 홈이 파여 있었다.

마치 뭔가를 끼워 넣어야 할 것처럼 말이다.

자세히 보니 태양이라기에는 육망성에 가까운 모양이다.

어쩌면 이곳이 열쇠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호진은 그 모양을 머리에 새긴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제 뭘 하면 됩니까?”

호진의 질문에 에우리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네. 솔직히 자네가 이 짧은 시일 안에 이 모든 것을 해낼 줄은 몰랐거든.”

호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에우리우스와 대련이나 이어서 할까?’

아니, 그건 뭔가 조금 아쉬웠다.

역시 이제는 참아왔던 것을 할 차례였다.

“내단을 복용하겠습니다.”

“……정말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에우리우스는 한 달밖에 기한이 없다는 사실을 듣고는 내단 섭취를 뜯어 말려왔다.

아무리 내단과 상성이 좋은 나한심법이라 해도 한 달은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우선 아직 단전의 크기가 작고 여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한 경험의 부족도 큰 문제였다.

심법을 익힌 지 한 달조차 되지 않은 초보로서는 내단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리라는 게 에우리우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여신의 계시 말이군.”

단련을 시작하기 전부터 에우리우스는 서두르는 호진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괴물, 즉 공왕이 동료들을 해쳤다고 해도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여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니까.

그래서 호진은 30일의 시간제한에 대해 에우리우스에게 말하며 여신의 이름을 팔았다.

이것이 여신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 달 안에 공왕을 잡아야 한다는 계시가 있었다고 말이다.

이런 설명에 독실한 에우리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발 물러섰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답답한 듯 에우리우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리 계시가 중요하다고 한들 목숨보다 중요하겠는가?”

“빌헬름과의 대결도 검은 뱀과의 대결도 저에겐 모두 같은 시련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도울 수 있었지만, 주화입마에 빠지면 내가 도울 길이 없네.”

“괜찮습니다.”

에우리우스에게 주화입마에 대한 위험성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나 이제 와 결정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이제는 제법 단전의 크기가 커지고 안정되었음이 느껴집니다. 기운의 운용도 익숙하고요.”

“……결심이 확고하군. 하기사 확신이야말로 결과에 큰 영향을 주는 법이지. 언제 할 겐가?”

“지금 바로 복용하겠습니다.”

“호법을 서주도록 하지.”

에우리우스가 검을 움켜쥐며 호진의 뒤에 섰다.

“늘 감사합니다. 스승님.”

“개의치 말고 꼭 성공만 하게나.”

호진은 깊이 감사를 표한 뒤, 내단을 꺼내들었다.

검푸른색이 감도는 내단은 들고 있는 것만으로 주변이 서늘해졌다.

호진은 내단을 천천히 입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청량한 향이 머리와 코를 가득 채웠다.

기분 좋은 느낌도 잠시 날카로운 차가움이 입안에 가득 차올랐다.

“흡!”

그 감각에 흠칫 놀라던 그 순간 내단이 스르륵 녹아 사라져버렸다.

‘무슨……?’

호진은 급히 내단을 찾으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차가운 무형의 기운이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차는 중이었으니까.

“크으으으윽!”

목, 팔, 얼굴을 비롯해 온몸에서 푸른색 핏줄이 솟아올랐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와 주변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졌다.

장기들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에 호진은 급히 내공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멋대로 퍼져나가던 기운이 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하나둘, 단전으로 모여든 냉기를 급히 기를 이용해 둘러쌌다.

그러자 통증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한숨 돌렸나.’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잠잠해졌던 내단의 기운은 금세 다시 주변으로 냉기를 흘렸다.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호진은 심법을 계속 운용하여 내단의 기운을 둘러싼 기를 움직였다.

‘멈추면 얼어붙는다.’

끊임없이 뿜어지는 냉기는 몸 안에 흐르는 기를 얼어붙게 할 것이다.

얼지 않기 위해서는 기의 흐름을 빠르게 해야 했다.

유속이 빠른 강이 얼어붙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애당초 몸에 지닌 기가 바다처럼 커다랗다면 얼어붙지도 않았겠지만…….’

서둘러 일을 진행한 대가다.

호진은 빠르게 기를 일주천하며 차가운 기운은 밖으로 흘리고, 정순한 음의 기운만을 남겼다.

그 기운은 다시 냉기 속에 자리 잡은 조막만 한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거센 냉기의 흐름에도 단전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 기를 만들어냈다.

호진은 그 기를 이용해 일전의 행위를 반복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같은 행위를 반복했을까.

더 이상 냉기가 날뛰지 않았다.

단전에 정순한 기운으로 자리해 은은한 기운을 내뿜을 뿐.

모든 게 호진의 의지 아래에 있었다.

그때 반가운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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