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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83화 (83/241)

83화. 수련 (4)

퀘스트 제한까지 남은 시간은 27일.

호진은 오늘도 에우리우스의 호법 아래 새벽 명상을 하며 단전의 기를 축적했다.

일찍이 기를 다뤄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아직 미약하기 때문인지 단전은 가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걸 반복해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호진은 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하나, 늦다.

오히려 기(氣)를 선명히 느낀 후로 자신과 싸웠던 빌헬름의 경지가 더 선명해졌다.

‘기를 익힌다면 가능성이 보일 줄 알았는데…….’

실력의 차이가 생각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호진은 혀를 찼다.

“으하하하! 귀공, 왜 그리 뚱해 있는 것인가?”

“아, 별거 아닙니다.”

심법을 마친 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는 호진에게 에우리우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럼 오늘도 수련을 시작해보세.”

“예, 오늘은 뭘 배우면 되는 겁니까?”

“기가 뭔지 느낄 수 있게 됐으니, 이제 다루는 법을 익혀야겠지.”

“준비됐습니다.”

호진은 대답에 에우리우스는 검지를 치켜들며 물었다.

“그럼, 첫 번째로 어떤 걸 익혀야겠는가?”

“기를 몸에 두르는 거 아닙니까?”

검기(劍氣)도 처음에는 검에 기를 흘려보내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몸에 적용한다면 이도 마찬가지일 터.

이런 호진의 대답에 에우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진의 목덜미가 따끔했다.

붉게 난 상처를 따라 슬그머니 배어나는 핏자국.

‘감시자의 눈.’

호진이 권능을 사용하자 그제서야 에우리우스의 검지에서 뻗어 나온 날카로운 형세의 기를 볼 수 있었다.

호진의 반응에 에우리우스는 웃음을 터트린 후 말을 이었다.

“자네의 그건 너무 대응이 늦는 데다가, 무방비해진다는 단점도 있지. 귀공은 오늘 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걸세.”

“어떻게 말입니까?”

“우선은 간단하네. 기를 눈에 집중해 안력을 높이는 걸세. 그게 가능해진다면 점차 비율을 바꿔가며 최소한의 기를 운용해 상대의 공격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응?”

호진의 대답에 에우리우스가 말을 멈췄다.

뭐가 됐다는 걸까.

에우리우스가 호진에게 고개를 돌리자 호진의 눈에 일렁이는 기(氣)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합니다. 이렇게도 보이는군요.”

호진의 태연한 대답에 에우리우스는 또다시 말을 잃었다.

‘이게…… 가능한가?’

마른 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가르치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호진의 재능이 뛰어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오늘 하루 종일 수련해야 기를 한곳에 모으는 게 최선일 것이라 여겼다.

눈앞의 남자는 에우리우스의 상식을 모조리 뛰어넘고 있었다.

“다음은 비율입니까? 흐음 아. 안 보인다. 오, 이 정도면 흐릿하게 보이고…… 이 정도가 좋겠군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열을 가르치면 백을 안다.

에우리우스는 처음으로 호진에게 기대감이 아닌 두려움을 느꼈다.

‘이자라면 어쩌면…….’

정말 여신의 자취를 쫓는 데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아니 갈 수 없는 곳에 은거한 여신을.

“스승님? 다음은 뭡니까?”

에우리우스는 호진의 질문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아! 훌륭하네. 귀공. 다음은…… 다음은 기를 몸에 둘러 공격과 방어를 해보도록 하지.”

“좋습니다.”

“방금 경험으로 기를 몸에 싣는 요령은 터득했을 테니 바로 실전으로 넘어가세.”

에우리우스가 몸에 기를 두르곤 천천히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다.

“막아보게.”

“얼마든지요.”

호진은 우선 날아드는 에우리우스의 주먹에 담긴 기의 총량을 눈으로 읽었다.

‘이 정도.’

그리고 그에 준하는 기를 왼손에 싣고 날아드는 에우리우스의 공격을 쳐냈다.

─쾅!

두 손의 기가 부딪치며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으나 정작 둘의 신체는 서로 닿지도 않았다.

에우리우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 공격을 해왔다.

다음은 다리였다.

에우리우스가 다리를 노리고 하단을 차려 하자, 호진은 정강이와 무릎에 기를 실어 막으려 했다.

그 순간.

─휘릭

궤도를 바꾼 발차기가 돌연 옆머리로 궤도를 비틀었다.

무릎을 축으로 비틀린 궤도는 브라질리언 킥을 닮아 있었다.

‘목표는…… 머리!’

마지막의 순간에 에우리우스의 공격을 파악한 호진은 재빨리 팔에 기를 실어 머리를 방어했으나, 약간 늦은 탓에 자세가 흐트러졌다.

─쾅!

“크윽!”

호진은 신음소리를 내며 뒤로 주욱 밀려났다.

하체에 기를 집중하느라 상체에 기를 모을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방어에 실패했다.

기를 제대로 두르지 못했던 팔뚝은 욱신거렸고, 팔뚝과 부딪힌 옆머리는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

잠시 공격을 멈추고 호진을 바라보는 에우리우스.

‘이걸 막다니……. 어디까지 성장할 셈이지?’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호진은 입술을 짓씹었다.

‘이 정도도 못 막다니. 실망하셨겠군.’

잠시간의 정적 후 에우리우스 먼저 말을 꺼냈다.

“방금 느꼈겠지만, 기를 운용할 때 한쪽에 너무 많은 기를 쏟는 건 꽤 위험하다네.”

호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그대로였다.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밸런스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호진은 자책하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계속 가르쳐주십시오.”

“으하하하! 매번 말하지만 귀공의 농담은 참 재미가 없다네. 이번엔 특히 별로였어.”

“……?”

왠지 웃고 있지만 화난 듯한 에우리우스의 몸에서 한층 더 흉흉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자, 더 빠르게 가네. 어디 막아보게나!”

“무슨…… 크윽!”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지만 호진은 변명할 틈도 없이 날아드는 권각(拳脚)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콰쾅!

날아드는 발차기를 양손을 교차해 막아낸 호진의 몸이 한참을 날아 바닥을 굴렀다.

이를 지켜보던 에우리우스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방금은 팔을 방어하느라 하체에 기가 풀렸네. 그러니 몸이 밀릴 수밖에. 오늘은 이쯤 하세.”

“……감사합니다.”

호진은 기진맥진하여 간신히 대답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한 체 호진은 방금 전의 공방을 곱씹었다.

단 한 번의 주먹도 뻗어보지 못했다.

그저 막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기본기에 차이가 나는 건가?’

물론 호진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격투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만약 검을 든다면 호진은 에우리우스를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직접 대면한 에우리우스의 기세는 의심했던 대로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찌 됐든 기의 운용과 활용, 그리고 격투술에 한해서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갈 길이 머네.’

호진이 몸을 일으키자 붉게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의 세계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소행성도 아니고 하루가 뭐 이리 금방 가는지.

물론 수련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빠르게 흐른 거겠지만, 자꾸 흘러만 가는 시간이 야속했다.

‘제 시간 안에 빌헬름과 싸울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까?’

호진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진 기분이 들어 길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후우.”

퀘스트 기한까지 15일 남은 이른 아침.

‘나한심법’을 운용하던 호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웅

처음에 만들었을 때에 비하면 2배 가까이 커진 단전에 호진은 엷게 미소 지었다.

이제는 하루 종일 기를 운용하며 에우리우스와 공방을 펼쳐도 지치지가 않았다.

“수고했네. 귀공.”

“스승님이야말로 늘 감사합니다.”

호진은 늘 그렇듯 호법을 서주던 에우리우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에 흐뭇한 웃음을 흘리던 에우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대련 말고 다른 걸 해볼까 하네.”

“예? 하지만…….”

호진은 말꼬리를 흐렸다.

어제는 대련 중에 에우리우스를 몇 번이나 가격했다.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을 때 아슬아슬한 차이로 패배했기에 아쉬움이 컸다.

“조금만 더하면 스승님에게 한판은 따낼 것 같은데 아쉽네요.”

“……내가 봐준 거라네. 귀공에게 맞은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하니 당황스럽군. 하하!”

에우리우스의 목소리가 가늘고 높아졌다.

이에 호진은 그의 건틀릿 낀 손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그 오른손 팔뚝. 건틀릿 아래에 붕대 감으신 것 같은데요. 어제 제가 때린 곳이요.”

“어…….”

손을 스윽 뒤로 물린 에우리우스가 띄엄띄엄 답했다.

“아, 이, 이게 어제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졌다네. 나이가 드니 밤눈이 영…….”

“아, 그러셨군요.”

터무니없는 변명이었지만, 물고 늘어질 생각이 없던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아무튼 오늘은 대련이 아닌 실전경험을 쌓아 볼 걸세.”

“어디서 실전경험을 쌓는다는 겁니까?”

이 근처에 적이라곤 별로 강하지 않은 감염자들뿐이기에 호진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따라와 보면 아네.”

호진의 질문에 간단히 답한 에우리우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우리우스의 등을 쫓아 걷기도 잠시.

“여기는…….”

의외의 장소에 호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네와 내가 처음 만났던 곳. 왕가의 묘역이네.”

에우리우스의 대답에 호진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풍경에 약간 반가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곳은 왜 온 겁니까?”

“말했지 않은가? 실전 경험이라고.”

“하지만 이곳의 감염자들은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누가 그런 잔챙이들을 상대하라 했나? 자네의 상대는 이 아래에 있다네.”

“예?”

눈으로 에우리우스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쫓자 천장이 뚫린 묘역의 입구가 보였다.

“……뭐가 있는 겁니까?”

“묘역의 수호자가 있지.”

“수호자라 함은…… 뭔가를 지키는 겁니까?”

“정확하네. 묘역에 위치한 어떤 문을 지키고 있다네.”

문이라.

뭔가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하나, 이런 호진의 생각을 읽은 듯 에우리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그 문은 들어갈 수 없네. 수호자를 처치한다 해도 문의 기관 장치를 열 수 없으니까.”

“……이런. 아쉽군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 잡담 그만하고 들어가 보게나.”

“좋습니다.”

호진은 망설임 없이 묘역의 깊숙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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