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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82화 (82/241)

82화. 수련 (3)

에우리우스는 잠시 고민 끝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귀공에게 어떤 심법을 전해줘야 하나 고민했네. 이래 봬도 꽤 많은 심법을 알고 있거든.”

자부심에 찬 표정으로 에우리우스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내공심법은 기본적으로 하나밖에 익힐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에우리우스는 어쩐지 여러 개의 심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나, 결정했네. 그중 최고이자, 최강. 우리 기사단에 전해져 내려오는 ‘청랑심법’을 알려주기로 말일세.”

“……그래도 되는 겁니까?”

호진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되물었다.

아까 전 에우리우스가 내공심법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그는 내공심법을 남들에게 보여줘선 안 되는 비밀처럼 말했었다.

그런데 제국 기사단의, 그것도 최고의 심법을 알려준다니 뭔가 불안했다.

“될 걸세. 아마도. 으하하하하!”

“…….”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괜히 배우고 탈이 나면 곤란한데. 나중에 제국과 적대적인 세력과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호진은 눈 딱 감고 그냥 배울까, 고민하다 문득 이전에 얻은 보상을 떠올렸다.

“아, 스승님. 잠시 이것 좀 봐주시죠. 혹시 이것과 잘 맞는 심법은 없습니까?”

호진도 무협지 정도는 읽었기에,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내공에는 영약. 호진은 마침 그 영약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Naga)의 내단.

시스템의 설명에 의하면 틀림없는 영약이다.

호진이 아는 무협지 지식에 따르면 내단은 성질에 따라 익힌 심법과 궁합이 잘 맞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이게 사람이 먹어도 되는 건지도 잘 모르니까.’

겸사겸사 확인해봐서 나쁠 건 없을 듯했다.

“음? 그게 뭔가?”

잠시 호진이 건넨 내단을 들고 지켜보던 에우리우스는 이내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이, 이건? 아니지…….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게 진짜라면 왜 이곳에?”

혼자 중얼거리는 에우리우스를 보며 호진은 뺨을 긁적이다 설명했다.

“아훅 쉬툭의 대족장을 베고 얻은 겁니다.”

“……뭐라?”

“모르십니까? 아훅 쉬툭에는 4개의 부족을 이끄는 대족장이라는 자가 있는데…….”

“아니! 당연히 그건 알고 있네!”

호진의 말을 자른 에우리우스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내가 묻는 것은 귀공이 어떻게 녀석을 쓰러뜨렸냐는 말일세! 강신한 녀석은 대륙 백대고수에도 들 터인데!”

“……고작 100명 안쪽이요?”

그렇게 강한 녀석이 100명 안에 드는 정도라니.

호진이 놀라 중얼거렸으나, 에우리우스의 반응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고……작? 이제 내공심법을 배우는 녀석이 백대고수를 고작이라고…….”

“스승님이 녀석보다 강하지 않으십니까?”

“……그, 그럼. 당연한 걸 묻지 말게나.”

에우리우스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이에 호진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스승님.”

“으, 응?”

“스승님은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리셨지요?”

“……크흠.”

갑자기 헛기침을 하는 에우리우스.

‘아닌 모양이군.’

눈을 피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적어도 백대고수 안에 들지 못한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직접적인 실력은 기습당했을 때 말고는 못 봤는데…… 설마.’

호진의 눈이 점점 게슴츠레 헤지자 에우리우스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우…… 우리 푸른 늑대 기사단은 황궁의 첩보를 담당하고 있네. 나는 황제 폐하의 그림자이자 황궁의 어둠. 알겠나? 실력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이 말일세.”

“아, 예.”

호진이 짧게 고개를 끄덕하자 에우리우스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 믿는다면서 표정이 왜 그런가? 진짜네. 내가 백대고수에 이름은 못 올렸지만 마음만 먹으면…….”

“아, 믿습니다.”

호진의 성의 없는 대답에 시무룩해진 에우리우스가 말했다.

“귀공이 못 믿는 것도 내가 스승으로서 부족한 탓인 게지. 제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으니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이에 호진은 태도를 바꿔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저는 정말 스승님을 믿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게 믿음을 더 주시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 내가 어찌해야 믿음을 가지겠는가?”

호진의 말에 에우리우스는 크게 반색했다.

‘참 한결같네, 이 사람.’

이에 호진은 엷게 웃으며 답했다.

“절 잘 이끌어주시면 됩니다. 우선 내공심법은 무엇이 좋겠습니까?”

사실 호진은 에우리우스의 말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설령 그가 대족장보다 약자라고 할지라도 배울 점은 분명히 있었다.

지금 호진은 배움이 절실한 상황.

성장이 없다면 도저히 철벽공 빌헬름을 잡고, ‘얼굴 없는 자’를 처치할 자신이 없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지.’

지금은 에우리우스를 구슬려 최대한 도움을 받아야 할 때였다.

“오오! 그래, 심법이라. 확실히 이 내단은 굉장하네. 엄청난 음기가 느껴지는군.”

잠시 고민 끝에 에우리우스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굉장한 내단인 것은 사실이나. 먹으면 위험할 수도 있네. 나가의 내단을 사람이 먹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 정말 먹을 텐가?”

“……먹겠습니다.”

시스템이 먹지 못할 것을 보상으로 줬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감시자의 눈’으로 본 아이템 설명에는 복용의 제한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울리는 심법이 있지.”

“그게 뭡니까?”

“한때 유적지에서 익힌 내공 심법이네. 고대 이종족들이 익혔던 심법이네. 기록에 쓰인 대로라면 나가의 내단과 조화가 매우 좋을 걸세.”

“……?”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지.’

호진은 황당한 표정으로 에우리우스를 쳐다봤다.

멀쩡한 사람에게 이종족이 익히는 호흡법을 배우라니.

“이종족의 심법을 익힌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반박을 했다.

이에 에우리우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종족의 내단을 먹겠다는 것은 말이 되고?”

“…….”

“그래도 구결의 내용이나 호흡하는 방식에 인간들이 익히는 것과 차이는 없다네.”

찜찜했지만 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천천히 안전하게 성장하기보단 가진 수를 다 이용해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나가의 내단은 그 ‘아난타’에게 피해를 입히고 얻은 최고의 보상이다.

다소 위험이 있지만 감수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내단을 먹기로 한 이상, 심법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알려주시죠.”

“좋아. 자, 구결은 간단하네. 잘 들어보게.”

에우리우스는 가볍게 숨을 들이켜고 단숨에 구결을 호흡에 따라 일정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만약 어떤 이가 선한 신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에게 귀의한다면,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며, 불도 타지 않고, 독으로 중독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에게도 해를 입지 않으니 천수를 누리리라. 임종의 때가 다가오면 그 직전 아난타, 카인, 시스, 세쿤탈리. 샤카하, 이자리온, 얀, 릴리가 사람과 사람이 아닌 형상으로 나타나시어 설법하니, 다섯 가지의 가장 높은 진리를 깨우치어 죽음도 두렵지 않으리라.”

잠시 정적이 흐르고 호진이 입을 열었다.

“이건…… 기도문이군요.”

“‘최초의 여덟 선신’이라 불리는 신들을 위한 기도문이지.”

에우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애초에 심법은 구도에서 파생된 행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네.”

“……그렇군요.”

“역시 모시는 주신이 걸리나 보군. 지금이라도 청랑심법을 익히겠는가? 청랑심법은 여신 릴리를 섬기는 구결로 이루어져 있다네.”

“그건…….”

‘릴리’도 문제지만, 호진은 ‘울타’와도 계약을 맺은 관계다.

하물며 자신이 신격을 지녔기에 자칫하면 뭔가 잘못될지도 몰랐다.

대답을 망설이던 그때.

머리 위로 익숙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호진은 반가운 나머지 벌떡 몸을 일으킬 뻔했지만, 간신히 참고 에우리우스에게 말했다.

“잠시, 잠시만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편하게 하게. 충분히 고민해보고 다시 말하게나.”

에우리우스에게 허락을 구하고 몸을 일으킨 호진은 대망루에서 잠시 걸어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하늘에서 부드럽게 하강한 익숙한 부엉이 한 마리가 호진의 팔에 내려앉았다.

“울타 님!”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거라.]

그녀의 청량하지만 차가운 목소리에 호진은 금방 기분이 진정됨을 느꼈다.

“알겠습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마침 잘됐습니다.”

[상황은 알고 있느니라. 나도 힘이 없으니 짧게 하자꾸나. 그 기사단장이 알려준 심법을 익히도록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다만 네가 다른 신을 찬양하는 행위는 단순한 구결이라 할지라도 내 정체성에 해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빠르게 구결의 내용을 바꿔준 울타는 지친 듯 눈을 깜박였다.

“다 외었습니다. 한데 많이 피곤하십니까?”

[원래라면 한동안 정양하느라 못 나와야 정상이다. 네가 이쪽 세계로 온 덕에 잠시 찾아왔을 뿐. 이만 가보겠느니라.]

울타는 할 말이 다 끝나자마자 하늘을 향해 활공했다.

“인사는 하고 가시지…….”

호진은 섭섭해하기도 잠시, 금세 몸을 돌려 에우리우스에게 돌아갔다.

새롭게 익힌 구결을 시험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기 때문이었다.

“표정을 보니 마음은 굳힌 듯하군. 으하하하!”

“예. 저는 여덟 선신의 구결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군. 좋네. 귀공이 익힐 심법은 나한심법(羅漢心法)이라 하네. 기록되어있기로 신의 길을 걷는 자의 심법이라 하더군.”

“마음에 듭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게나.”

에우리우스는 빠르게 호흡법과, 체내에서 느껴야 하는 혈 자리들을 설명해줬다.

이에 호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좌선의 자세를 취했다.

에우리우스가 알려준 호흡에 따라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초감각을 사용, 자신의 체내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만약 어떤 이가 나의 이름을 듣고 귀의한다면,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며, 불도 타지 않고, 독으로 중독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에게도 해를 입지 않으니 천수를 누리리라. 임종의 때가 다가오면 그 직전 아난타, 카인, 시스, 세쿤탈리. 샤카하, 이자리온, 얀, 릴리가 사람과 사람이 아닌 형상으로 나타나 설법하니. 다섯 가지의 가장 높은 진리를 깨우치어 죽음도 두렵지 않으리라.’

오만하다.

구결을 외면서도 이래도 되는 건지 망설임이 일 정도로.

신을 의미하는 구절에 자신을 집어넣었다.

여덟 선신은 신성하게 취급해주되, 자신의 대리자로 배치한 형식의 구결.

호진은 여덟 선신에게 힘을 빌려오되 구속되진 않으니 신들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이미 결정한 길. 내가 걸어야 할 길이다.’

호진은 머리와 감정을 비우고 정(靜)을 유지했다.

그리고 구결을 몇 번 반복하자 하복부 쪽에 뜨거운 감각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몸에 퍼진 같은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氣).

기운들은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호진의 몸을 각자의 위치에서 순환했다.

자연 상태에서의 기의 흐름은 구결이 반복됨에 따라 천천히 인위적인 흐름으로 변해갔다.

하복부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파문은 몸으로 천천히 퍼져나갔다.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여들기를 반복하며 흐름은 작은 원의 형태를 띠었다.

흐름에 힘을 주지 않음에도 자연스레 회전하는 원.

원은 점점 그 형태로 고정되다 어느 순간 작게 응축되어 작은 구(球)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른바 무협지에서 말하는 ‘단전’을 만든 것이다.

‘됐다.’

호진이 구결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떴다.

“음?”

붉은 하늘빛에 호진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주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새벽의 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어났나?”

뒤에서 들려오는 에우리우스의 목소리에 호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아, 예. 감사합니다. 지켜주고 계셨군요. 생각보다 시간이 흘러 놀랐습니다.”

호법을 서고 있던 에우리우스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별거 아니네. 그나저나 엄청난 집중력이군. 12시간 동안 심법을 운용할 줄이야.”

“예?”

호진이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묻자,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12시간 말일세. 그래서 어떻게, 기가 이제 느껴지나?”

일출이 아니라 일몰이었다니.

호진이 충격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아, 단전을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습니다……. 12시간이라니, 너무 오래 걸렸네요.”

“……뭘 만들어?”

“단전…… 그러니까 하복부에 기의 구체?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

에우리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천재들조차 보름은 해야 될까 말까 한 일을 하루 만에 성취한 호진.

그런 그가 오래 걸렸다며 시무룩한 걸 보니 혼란스러움이 가중됐다.

이런 그를 지켜보며 호진은 조용히 자책했다.

‘실망하셨나. 하긴, 기초단계에서 이렇게 시간을 쓰다니.’

그렇게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두 사람은 한참이나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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