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하얀 가면 (3)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힘내시죠.”
호진의 말에 늑대에 탄 감시단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장갑차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호진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인 엉망인 도로조차 이젠 익숙하다.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캠프 주변의 풍경이 오랜만에 보는 듯 반가웠다.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거겠지.’
고작 2개월 정도지만 캠프는 이제 호진의 새로운 안식처로 자리매김했다.
비단 그것은 호진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캠프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상기됐다.
“아! 저 표지판! 진짜 다 왔네.”
“다 왔다니까요. 아까부터 제가 말했잖아요.”
“……그 아까가 30분 전이었잖아.”
박 순경과 용재가 투닥거리자, 헌터 1팀장 기서가 웃으면서 둘을 중재했다.
“아까의 기준이 다 다르긴 하죠. 그래도 정말 다 왔네요.”
“아직도 새신랑은 새신랑이네. 그렇게 아내가 보고 싶었어?”
헌터 중 나이가 조금 있는 아저씨 한 명이 놀리듯 물었다.
그러자 기서는 약간 부끄러운 듯 뺨을 긁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하루 못 봤을 뿐인데 힘드네요.”
“하이고. 나는 마누라 얼굴 안 보니까 좋기만 하구만.”
질문을 했던 아저씨는 괜히 물어봤다며 혀를 찼다.
그때 가만히 앉아있던 예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잡담에 귀 기울이며 미소 짓던 호진은 예은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팔 소리가 안 나요. 이쯤이면 캠프에서도 저희가 슬슬 보일 텐데요.”
“……그건 이상하군요.”
호진은 그 즉시 창문 밖으로 상체를 빼냈다.
그러자 옆에서 장갑차를 호위하며 달리던 도훈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호진이 상체를 조금 더 빼내자 비로소 캠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연기가 솟구치지도, 외벽이 허물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뭐지, 이 불안감은.’
호진의 가슴에는 기이한 불안감이 일렁였다.
간신히 잊고 있었던 찝찝한 기분이 되살아났다.
호진이 인상을 찡그리고 캠프를 바라보기도 잠시,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왜 도개교는 내려가다 말았지?”
올린 것도 내린 것도 아닌, 절반에 걸쳐있는 도개교.
뭔가가 잘못됐다.
“이카루스!”
“호오.”
하늘에서 따라오던 이카루스가 호진의 팔에 내려앉았다.
“먼저 가서 상황을 살펴줘.”
“호오. 호오.”
맡겨달라는 듯 날아오른 이카루스가 순식간에 캠프로 날아갔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일행들 사이에도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호진 님, 뭔가 잘못됐나요?”
기서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캠프 근처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원인은 하나뿐일 테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침착하세요.”
“네에…….”
순순한 대답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잔뜩 긴장한 채였다.
그런 그의 등을 아저씨 헌터가 툭툭 두들겼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단순히 기계가 오작동한 거겠지.”
“그, 그러겠죠?”
이젠 차 안에서도 내려가다 만 도개교가 보였다.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었다.
캠프에 거의 코앞에 도착해도 도개교와 성문이 열리지 않자, 캠프 안에 가족을 둔 이들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호진이 말했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절(切)베기’라면 도개교의 사슬을 끊기에 충분할 것이다.
만약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안 쓰는 편이 좋겠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호진이 문밖으로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덜컹 끼릭.
도개교가 서서히 내려가고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립니다!”
누군가가 외침에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역시 별거 아니었네.”
“뭐야, 경비를 제대로 안 선 건가?”
“누가 책임자더라? 춘필 아저씨? 아, 경비는 동현인가?”
긴장이 풀린 이들은 이를 갈며 이 사태의 주범을 찾아 이를 갈았다.
“…….”
반면 호진은 조용히 입술을 짓씹었다.
정말 경계를 게을리한 게 문제일까?
호진은 장갑차에서 내려 반쯤 열린 성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도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
점점 열리는 성문으로 안쪽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성문의 레버를 누르고 앉아있는 이카루스였다.
“뭐야? 왜 이카루스가 저러고 있어? 경비들은?”
누군가의 외침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아니, 대답해줄 필요가 없었다.
레버의 뒤쪽, 성벽과 딱 붙은 곳에 목 없는 시체 두 구가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아…….”
누군가는 숨을 삼켰고, 누군가는 무기를 뽑아 들었다.
다만, 기서를 위로했던 아저씨가 비척이며 호진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곤 쓰러진 여성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그를 보며 헌터들은 이를 뿌득 갈았다.
헌터들은 9할이 캠프에 가족을 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냉정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여보.”
“주, 주연이. 주연아!”
몇몇 이들이 거의 뛰쳐 들어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모두 멈추세요.”
호진이 내뱉은 말에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불길처럼 번지던 패닉도 사라졌다.
호진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감시단이 캠프 내부로 진입 및 상황 파악. 헌터들은 전투 태세로 대기합니다.”
헌터들과 달리 감시단은 캠프 내에 가족은커녕 지인도 없다.
즉,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상적인 상태라는 말이다.
“저, 저희도……!”
헌터들 중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에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말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 적이 캠프 내에 남아있다면 여러분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반면 여러분들이 간다고 해도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데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겠죠.”
“그럼…….”
“안전이 확인되면 신호하겠습니다. 그때 생존자 구출을 도우시죠. 그전까지는 대형을 유지하시고요.”
“……네.”
헌터들의 실망하는 눈초리가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이성을 잃은 이들의 상황 판단 능력을 믿을 수는 없었다.
감시단들이 캠프 내부로 흩어지던 찰나 예은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침입자는 한 명인 것 같아요.”
“한 명이요?”
호진은 ‘명’이라는 말에 힘을 줘 되물었다.
예은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족적을 보면 한 사람이에요. 아까 도개교 앞에서부터 사람의 족적이 이어져요. 여기까지.”
“캠프 사람일 가능성은?”
“없어요. 혼자만 족적이 너무 뚜렷해요. 몸무게가 1톤쯤 되는 게 아닌 이상, 호진 씨와 비슷한 근력을 지닌 사람이 힘줘서 달린 자국이에요.”
캠프 내에 호진과 비슷한 근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흔적은 어디로 이어지죠?”
“캠프 중앙 쪽이네요.”
“안내하시죠. 용재, 박 순경님. 본대를 부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호진은 예은과 함께 흔적을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현장이 나왔다.
정문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엔 골렘과 헌터, 그리고 총을 든 사람들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잔혹하게 죽어있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하나같이 머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잠시 뒤, 흔적이 이어진 곳은…….
‘식량 창고.’
호진은 흔적이 이어진 곳을 깨달은 순간 달려 나갔다.
은신처로 지정한 창고가 당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나올 터였다.
창고 앞에 놓인 시체 한 구.
눈에 익은 복장이다.
“춘필이 아저씨?”
잠시 멍하니 있던 호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몇 번이나 얼굴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눴던 사람의 죽음이었다.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그의 면모가 좋게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맡긴 일은 곧장 잘 처리하며 나름 요직에 앉혔다.
호진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에게 재수 없이 굴었지만 희한하게 사람들이 따르던 사람.
시민 대표 춘필.
‘대피명령권을 지닌 그가 만약 명령도 내리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죽었다면, 어쩌면 캠프가 전멸했을지도 몰랐다.
호진은 이를 소리 나게 깨물었다.
‘그가 이곳에서 죽어있다는 건,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이미…….’
호진이 비틀거리며 식량 창고 문을 열려고 하던 그 순간.
─끼익
식량 창고의 문이 오래된 문소리를 내며 빼꼼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호진이 삼촌?”
“주연이?”
“삼…… 초오온…….”
주연이는 돌연 울음을 터트렸다.
뒤이어 문이 더 열리며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호진을 보자 긴장이 풀린 듯 다들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살았어. 이제 산 거야…….”
그와 동시에 캠프의 이곳저곳에서 초록 연기가 올라왔다.
안전하다는 감시단의 신호다.
이를 확인한 호진은 주저하지 않고 헌터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목표는 하나, 생존자들을 확보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예은 씨는 감시단과 함께 캠프 경계를 서주세요. 골렘들도 데리고 가시고요.”
호진이 주연이를 달래주며 말하자 예은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물러났다.
한참을 훌쩍이던 주연이는 갑자기 꼭 움켜쥔 주먹을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뭐야, 주연아?”
“이거요오……. 저 아저씨가…… 쿨쩍… 삼촌 전해 주랬어요. 꼭이랬어요.”
주연이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곤 꼭 쥐고 있던 앙증맞은 주먹을 폈다.
그러자 꼬깃 접힌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마워 주연아. 아저씨도 고마워할 거야.”
“쿨쩍…… 헤헤.”
웃는 주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호진은 쪽지를 펴봤다.
「하얀 가면을 쓴 녀석이 당신을 찾았다. 한 달 후에 다시 그것이 올 거라고, 자신의 일을 망친 보답이라고 한다.」
「괴물은 정문 앞 숲에서 걸어 나왔다. 동현이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속았다. 다른 사람의 얼굴로도 갈아 끼울 수 있는 것 같다.」
「괴물은 빠르고 강하다. 총은 통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한다. 순식간에 나타나는 재주가 있는데, 피가 관련돼 있을지도.」
글은 급하게 적었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휘갈겨 적혀있었다.
하지만 간략하고 핵심적인 정보가 모두 담긴 글이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한 그에게 호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신처의 사람들도 하나둘 조용히 숨죽이며 묵념했다.
한동안 캠프에 정적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