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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73화 (73/241)

73화. 하얀 가면 (2)

“으아아아아아악!”

춘필은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연사로 놓은 총은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잠시 후, 총알이 떨어진 총에선 달칵달칵 방아쇠 당기는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다.

─스륵

그와 동시에 문에 끼인 동현의 팔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문 너머 동현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곤죽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미 바닥에 질펀하게 흩뿌려진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우직 우지직

놈이 끼워 넣은 팔 탓에 닫히지 않던 성문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다.

그러자 문에 꼈던 동현의 팔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완전히 절단된 팔에서 울컥 흘러나온 선혈이 주벽의 벽과 바닥을 적셨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던 춘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봤다.

눈이 동그래진 경비 둘도 얼이 나간 채 바닥을 구르는 팔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죽…… 은 건가?’

춘필은 하관이 날아가고도 자신을 부르던 동현의 모습을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감각 때문인지 쉽사리 진정할 수가 없었다.

‘문도 굳게 닫혔고.’

문을 확인한 춘필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경보음을 듣고 무장한 전투 인원들과 골렘들이 성문과 성벽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지원 병력도 왔어.’

이제 됐다.

춘필이 안도하자 그 분위기를 느낀 경비들도 그제야 진정하며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방금 동현이 형 아니었어요?”

“야 이 녀석아, 방금 그게 동현이겠냐.”

경비 중 나이가 조금 있는 여자가 동현이를 형이라 부르던 남자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곤 춘필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고생하셨어요.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춘필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막았네요.”

“……칭찬은 됐네. 나 살자고 핏덩이에게 총을 쏜 거야.”

정찰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동현의 모습이 머리에 스쳤다.

구역질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여자는 날 선 대답에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레 춘필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젠 괜찮으니까…….”

─우지직

흡사 마른 장작이 부러질 때 날 법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다음 순간 춘필의 얼굴에 뜨거운 피가 흠뻑 쏟아져 내렸다.

벽에서 돋아난 정체불명의 손.

레고 인형처럼 뽑혀나간 여성의 머리.

머리를 잃고 쓰러져 꿈틀거리는 몸뚱어리.

“……아?”

춘필은 순간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어 눈만 끔벅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춘필의 눈은 이 상황이 발생한 원인을 좇아 움직였다.

생존을 위한 그의 본능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다.

분명 사람의 손 모양이지만 붕대가 칭칭 감긴 팔은 께름칙했다.

문제는 팔이 아니었다.

이내 팔이 솟아난 벽면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사람의 형상이 피에 젖은 벽을 뚫고 솟아났다.

녀석은 마치 벽에 튄 피가 깊은 웅덩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레 벽에서 기어 올라왔다.

그렇게 완전히 밖으로 나온 녀석은 천천히 몸을 돌려 춘필을 향했다.

목 위가 텅 비어있는 녀석.

다름 아닌 방금까지 춘필이 총을 갈겨 너덜너덜하게 만든 놈이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혹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지독한 악몽을 말이다.

춘필은 이 악몽에서 깰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일 리가 없지.’

얼굴에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피의 질감과 비릿한 피 냄새.

이게 꿈일 리가 없다.

춘필은 슬그머니 허리에 찬 탄알집에 손을 가져다 대며 발을 뒤로 뺐다.

그러거나 말거나 괴물은 돌연 얼마 안 남은 목 윗부분을 잡아 뜯어냈다.

그러곤 손에 달랑거리며 들고 있던 여자의 머리를 자신의 목에 가져다 꽂았다.

‘저게 뭐 하는 짓……?’

의문을 품기도 잠시.

여자의 얼굴이 경련하듯 움직이더니 뻐금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이젠 괜찮으니까…….”

방금 전 여성이 죽기 전에 내뱉었던 마지막 말이다.

토씨 하나 음절 하나 틀리지 않은 녀석은 제자리에 서서 뭔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손을 맞부딪히곤 다시 말을 뱉었다.

“괜찮아요. 이젠 괜찮으니까…….”

괴물은 목소리에 위로하는 따듯한 느낌마저 담아냈다,

“씨발.”

나지막하게 욕을 지껄인 춘필은 재빨리 탄알집을 뽑아 총에 끼워 넣었다.

괴물은 그 모습에 기대된다는 듯 더 해보라는 듯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러나.

“혼자 많이 놀아라.”

춘필은 총을 쏘는 대신 냅다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괴물은 춘필이 도망쳤다는 걸 깨닫고 씩씩거렸다.

그러곤 바닥에 주저앉은 어린 경비를 향해 다가갔다.

“아, 아저씨! 추, 춘필이 아저씨!”

도망치던 춘필의 귀에 경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멍청한 놈. 그 상황에 주저앉아있으면 어쩌라고.’

춘필은 녀석과 같이 죽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춘필…… 춘필 아저,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ㄹ…….”

─우직

또다시 들려오는 파육음을 애써 무시한 춘필은 마주 뛰어오는 지원 병력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캠프 경비를 위한 헌터들과 총을 든 군필자들, 그리고 골렘들까지.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손쉽게 상대 가능한 병력들이다.

“저 괴물 보이지? 가서 시간을 끌어. 가능하면 죽이고.”

“예! 아저씨는요?”

“사람들 피난시키고 올게. 버티기만 해.”

“알았습니다.”

지원 병력은 고개를 끄덕이곤 정문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춘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미쳤다고 여길 다시 와?’

상대는 괴물이다.

이지를 아득히 벗어난 괴물.

춘필이 캠프의 안쪽으로 달려가자, 이미 사람들은 대피를 마친 듯 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캠프에 지어진 대피소들은 뚫지 못할 것이다.

대피소 중 유일하게 불안한 곳은 이호진이 은신처로 사용하라던 식량 창고이긴 한데…….

‘녀석이 은신처로 정한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내가 숨을 곳도 아니고.’

어차피 춘필이 대피할 장소는 미리 준비해둔 다른 곳이었다.

식량 창고의 은신처는 주로 헌터들의 가족들이 배정을 받았다.

호진에 대한 신뢰 때문인지, 그 허름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헌터들과 그 가족들은 묵묵히 그 말을 따랐다.

상부상조라고 할까.

다른 시민들은 애초에 대피소로 지어진 방공호를 선호한 만큼 트러블은 없었다.

자신도 마찬가지고.

남들이야 다들 정해진 장소로 잘 피했을 것이다.

지금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춘필도 서둘러 대피소로 가려던 그때, 공동화장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소, 손 들어!”

이에 춘필이 화들짝 놀라 총을 겨누자, 자그마한 뭔가가 빠릿하게 손을 치켜올렸다.

반쯤 열린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아이였다.

‘어라, 쟤는 분명…….’

“주연이. 주연이 맞지?”

잠시 고민하던 춘필이 총을 내리며 물었다.

아이는 놀란 듯 왕방울 같은 눈으로 춘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소리 들었지? 빨리 대피소로 가.”

“……오빠가요. 에에엥 소리가 나면요. 저기로 가랬어요.”

주연이는 손을 들어 식량 창고를 가리켰다.

다행히 멀진 않은 거리.

“그래, 어서 가.”

주연이를 떠나보내려던 것도 잠시 춘필은 아이를 붙잡고 말했다.

“얘야. 혹시 나중에 호진이 삼촌 만나면 이것 좀 전해주렴.”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에 무언가 휘갈겨 적은 춘필은 아이의 손에 종이를 쥐여 줬다.

“주연이는요. 호진이 삼촌 알아요.”

춘필은 헤헤 웃는 주연이의 등을 슬쩍 밀며 말했다.

“그래, 믿고 맡기마. 이제 뛰어.”

말을 잘 듣는 주연이는 뒤뚱거리면서도 식량 창고를 향해 잘 뛰어갔다.

주연이가 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춘필이 자신의 대피소로 피하려던 그때였다.

춘필은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소리가 안 나.’

방금까지도 정문에서 들려오던 총소리와 욕설 섞인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지금 대피소로 피하긴 늦었다.’

식량 창고.

지금 당장 피할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춘필은 재빨리 식량 창고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작 30m도 안 되는 거리,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달려 창고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춘필은 우뚝 멈춰 섰다.

이상했다.

그 괴물이 정문의 사람들만 죽이고 돌아갔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쥐죽은 듯 적막이 흐르는 게 맞나?

사위가 끔찍할 정도로 고요했다.

춘필은 총을 고쳐 잡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춘필이 아까까지 서 있던 공동화장실의 뒤에서 무언가가 중얼거리며 걸어 나왔다.

“괜찮아요. 이젠 괜찮으니까…….”

아까전의 따듯한 음성대신 고장 난 기계음처럼 늘어지고 기괴한 목소리.

자세히 보니 목 부분에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 탓인 듯싶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식량 창고로 숨으면 살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식량 창고의 손잡이를 잡으려던 춘필은 문득 깨달아버렸다.

왜?

왜? 자신을 안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걸까.

총소리가 멈춘 시점은 아마 주연이가 식량 창고에 들어선 그 무렵이다.

‘어쩌면 녀석은…….’

괴물은 여전히 천천히 다가오며 기괴하게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이젠 괜찮으니까…….”

그렇게 다가오던 녀석은 춘필의 바로 앞에 우뚝 섰다.

춘필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녀석을 마주 봤다.

잠시 춘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녀석은 돌연 여자의 목을 뜯어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다른 젊은 헌터의 머리를 목에 붙였다.

그리고.

“이젠, 도망 안 가? 도망 안 가? 도망, 안 가? 도망, 가. 도망. 도망가.”

괴물은 대놓고 춘필에게 자신의 의도를 드러냈다.

‘못 봤구나.’

녀석은 주연이를 보지 못했다.

즉, 대피소의 위치를 몰랐다.

어쩌면, 놈은 자기 힘으로는 식량 창고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춘필이 식량 창고로 도망간다면 그거야말로 녀석이 원하던 결과일 터.

춘필은 놈이 뜯어서 쓰레기처럼 내던진 여자의 머리를 내려다봤다.

여자의 감사하던 표정이 떠올랐다.

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그래서 춘필은 다른 걸 내뱉기로 했다.

“엿이나 처먹어라, 이 괴물 새끼야.”

“…….”

괴물에 붙은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춘필은 가까스로 창고를 향해 손을 뻗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어차피 이제 와 죽음을 피할 순 없다.

그렇다면 멋있게라도 죽고 싶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것.

그게 자신이었다.

춘필은 덜덜 떨리는 몸을 견디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이라도 몸을 돌려 식량 창고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힘조차 없었다.

그 사실이 한편으론 다행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마지막은 그렇게 못나진 않았나.’

춘필은 자신도 모르게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를 입에 담았다.

그것도 잠시.

─우지직

춘필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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