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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69화 (69/241)

69화. 늪지대 공성전 (3)

“텟─ 킬라카!”

잠시간 호진과 시선을 교환한 놈은 곧장 와이번의 고삐를 당겨 수직으로 상승했다.

울창한 수림 위로 녀석이 모습을 감추자 호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온다.’

호진은 초감각으로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고 반격을 가하려다가 혀를 쳤다.

그러곤 재빨리 성벽 위로 몸을 굴렸다.

─쒜에에엑

거의 동시에 와이번의 갈고리 같은 발톱이 호진이 서 있던 공간을 갈랐다.

‘초감각을 따돌리는 속도라니, 어이가 없네.’

도저히 막거나 피하기 힘든 속도라, 아예 바닥에 구르는 게 답이었다.

호진이 기습을 간신히 피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를 파악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호진은 그저 본능에 따라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콰직!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뼈가 울렸다.

충격에 악다문 이에서 신음이 튀어나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슨…… 일이.’

다음 순간 절그럭 쇳소리를 내며 검과 맞부딪힌 거대한 철퇴가 회수됐다.

이후 펄럭이며 호진을 스쳐 날아가는 와이번의 꼬리에 호진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와이번은 허초……. 진짜는 대족장이었나.’

여유롭게 날아오른 대족장의 손에는 검은색의 거대한 철퇴, 정확히는 플레일(Flail)이 들려있었다.

도리깨를 닮은 그 무기는, 기다란 쇠사슬의 끝에 모닝스타를 닮은 쇳덩이가 달려있었다.

특이하게도 사슬 부분이 길게 늘어져, 사정거리가 검이나 창과는 비교가 불가했다.

저런 걸 검으로 막았다니.

와이번에 타고 있어서 무기를 휘두르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함정이었다.

‘어디 안 부러진 게 다행이네.’

─덜컥

“?”

왼쪽 어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빠지더니 힘없이 덜렁거렸다.

“장난하나…….”

잠시 욕이 튀어나오는 걸 간신히 억누른 호진은 심호흡을 했다.

‘그래, 아직은 오른팔도 멀쩡하고 무기도 멀쩡해. 진정하자.’

호진이 탈구된 왼팔을 끼우기 위해 검을 내려놨다.

그러자 검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적

호진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검에는 너무나 선명한 금이 가 있었다.

“시발.”

결국 욕을 내뱉은 호진은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꽤 멀리까지 날아간 와이번은 다시 이쪽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첫 번째 공격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다음 공격까지는 10초가 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욕을 하는 것조차도 사치인 상황.

호진은 숨을 삼키며 왼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곤 어깨를 단숨에 밀어 넣었다.

─우득

“흡.”

아찔한 통증에 침이 살짝 흘러내렸다.

하지만 심호흡을 하니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호진은 이어서 금이 간 성검을 빠르게 인벤토리에 회수하고, 정말 오랜만에 일본도 진검을 꺼내 들었다.

‘이것도 날이 많이 나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투 핸디드 소드를 꺼내 휘두를 수도 없는 일이다.

왼쪽 어깨만 무사했다면 사용했겠다만,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

검을 꺼내든 호진은 초감각을 사용하며 날아드는 와이번을 바라봤다.

역시 처음 공격에 비하면 느리다.

하지만 와이번의 까딱거리는 목이 호진을 노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굴러서 피하려 하다가는 녀석이 호진을 물어 챌 가능성이 컸다.

호진은 구르는 대신 발을 퉁겼다.

왼쪽에서 휘감듯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드는 녀석의 입을 피하자, 역시나 머리 위로 플레일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한 바다.

호진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굴려 플레일을 피해냈다.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안 당하지.’

대족장을 향해 웃어주려는 순간, 호진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공격을 했으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어야 할 녀석이 여전히 뒤에 있었다.

─콰드득

와이번이 날아오르는 대신 문루의 벽을 발로 짚고 멈춰 선 것이다.

‘당했다.’

이걸 위해 감속하며 날아온 것이다.

와이번에 올라탄 대족장은 회수한 플레일을 한 바퀴 회전시킨 후, 재차 호진을 향해 휘둘렀다.

호진은 아직 검조차 뽑지 않은 상황.

‘이거 진짜 뭣 됐는데.’

칼집째 들어 올려 날아드는 쇳덩어리를 막으려는 찰나, 호진의 몸이 무언가에 휙 하니 끌려갔다.

플레일이 아슬아슬하게 호진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호진은 자신을 낚아챈 존재를 확인했다.

‘하야.’

녀석은 호진의 옷깃을 문 채로 성벽의 끝을 향해 내달렸다.

“잠깐, 하야. 잠깐…….”

하야는 말릴 새도 없이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이 녀석 설마 날 수도 있던 건가.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봤지만…….

‘그럴 리가 있나.’

하하.

공중에서 웃기도 잠시, 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다.

─쿵!

큰 소리와 함께 성벽 아래로 떨어진 호진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젠장, 진짜 토 나올 것 같네.”

계속 반복된 충격으로 속이 메스꺼웠다.

그래도 10m도 넘는 곳에서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다친 곳이 없는 게 기적이었다.

하야가 자신을 떨어지는 순간까지 물고 있어 준 덕이었다.

“하야! 괜찮아?”

뒤를 돌아보자 하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녀석은 절뚝거리며 걸음을 뗐다.

이런 상태로 전투는 무리일 것이다.

호진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하야를 역소환했다.

“수고했다.”

이제는 호진의 차례였다.

아직 문루를 딛고 선 와이번은 호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족장이 재차 고삐를 당기자 와이번은 다시 한번 수직으로 상승했다.

처음에 봤던 그 공격이 올 거다.

눈으로도 좇기 힘들었던 낙하 공격과 뒤이은 대족장의 철퇴 공격.

어떡하면 좋을까.

피하는 것만이라면 가능하다.

이미 놈의 공격 패턴은 어느 정도 숙지했다.

다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빠른 공격이라…….’

문득 옛날 검도 대련에서 속공을 즐기던 녀석이 떠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를 치고 들어오던 상대에 몇 점이나 점수를 내줘야만 했다.

하지만 호진은 결국 녀석을 꺾었고,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카운터.’

머리를 내주고 상대의 허리를 가져가는 ‘받아 허리’로 호진은 속공들을 받아쳤다.

상대의 공격이 빠르고 강할수록 카운터에 당했을 때 받는 충격도 크다.

그리고 호진은 그 카운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호진은 왼손에 칼집을 쥐고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자연치유’ 덕분에 왼손도 이제 쓸 만큼은 움직였다.

‘실패하면 죽겠지.’

하지만 생사결에서 그렇지 않은 수가 하나라도 있던가.

모두 길게 늘어선 과정일 뿐, 그 수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결국 생과 사로 직결된다.

호진은 단순히 그 과정을 압축하여 한 합에 걸었을 뿐이다.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다행이라면 준비할 것도 없다는 걸까.

할 게 있다면 그건 그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호진이 해야 할 것은 오직 두 가지.

정확한 타이밍에 검을 뽑아, 적을 벤다.

오로지 그것에 집중하는 거다.

다른 것은 모두 비워냈다.

이것이 목숨이 걸린 전투라는 것도.

캠프의 일도.

호진 자신에 대한 것조차도.

초감각에 와이번이 감지되었지만 호진은 인내했다.

‘조금 더 기다린다.’

지금 칼을 뽑는다면 상대가 반응할 시간을 줘버리고 말 것이다.

조금 더.

조금 더.

와이번의 이빨이 호진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찰나.

‘지금.’

호진은 칼을 뽑아 들었다.

거합(居合).

─서걱, 쾅!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호진의 옆으로 거체가 거칠게 추락하며 거대한 굉음을 일으켰다.

호진이 돌아보자 목이 반쯤 잘려 나간 와이번의 시체가 내성의 벽에 처박혀 있었다.

부러지고 으스러진 놈의 양 날개와 기형적으로 뒤틀린 팔다리가 녀석의 상태를 말해줬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거합 LV8 → 거합 LV9」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거합 LV9 → 거합 LV10」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거합 LV.10에 검술의 묘리가 적용됩니다.」

「거합 LV.10이 절(切)베기 LV.1로 변환됩니다.」

‘뭔가 벨 때 느낌이 다르다 싶더라니.’

예상치 못한 보상에 호진이 입을 벌렸다.

무려 ‘검술의 묘리’가 발동했다.

‘검술의 묘리’로 얻었던 첫 번째 스킬은 무려 ‘초급 기(氣) 검술’이었다.

이번에 받은 스킬은 얼마나 강할까.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에라도 써보고 싶었지만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잠깐 쉬어야겠다.

이번에는 정말 아슬아슬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팔이 탈골됐을 때는 정말이지 아찔했었다.

호진이 무너져 내린 성벽의 잔해에 털썩 주저앉아서 다시 차분히 시스템 창을 확인하다가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여태 치프들을 죽일 때마다 뜨던 알림과 보상.

그게 없었다.

“설마.”

그 높이에서 그 속도로 추락했다.

당장 와이번만 해도 온몸이 비틀리지 않았는가.

그 위에 타고 있던 대족장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우르르륵

때마침 와이번의 몸이 들썩이더니, 대족장이 성벽의 돌가루를 털며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진짜 멀쩡하다고?”

그렇다면 호진에게 승산은 없었다.

아니, 남은 수가 몇 가지 있긴 하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여 줄지가 미지수였다.

터벅터벅 걸어 나온 녀석은 잠시 와이번을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뭐라고 중얼거린 후, 한 손에 들고 있던 플레일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곤 등에 메고 있던 검 한 자루를 빼 들었다.

길고 커다란, 화려한 조각들이 잔뜩 양각된 황금색의 양날 검.

보기에는 의장용처럼 보이는 검이었다.

“너 그거 설마 2페이즈냐? 아니지? 여기서 더 강해지면 양심이 없는 거지.”

호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족장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든 말든 대족장은 호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다다무 라후투. 글로리카. 쉬넨 툭. 아히.”

재차 중얼거린 녀석은 검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바닥에 대족장을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원을 그리며 나타났다.

이윽고 문양에선 찬란한 황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이다.

벤다면 지금밖에 없다.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띠링

[정신 내성이 ‘■■’에 일정수치 저항을 시도합니다.]

[정신 내성이 ‘■■’에 저항을 실패했습니다.]

[상태 이상에 빠집니다.]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침과 뒤섞여 턱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샴’을 목격했을 때와 같은 충격이다.

그러나 그때는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면 지금은 달랐다.

움켜쥔 손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움직여라. 움직여.’

가만히 당해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를 것이다.

그러기도 잠시,

─호오

어디선가 날아든 이카루스가 호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익숙한 음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구나, 나의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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