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늪지대 공성전 (2)
─쾅! 콰광!
폭음과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요새 정면에 군대가 쉴 틈 없이 화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요란하네요.”
“그래야 합니다. 최대한 시선을 끌어야 하니.”
호진의 대답에 예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의 동쪽.
넓게 펼쳐진 초록색의 늪을 가로지른 호진과 일행들은 마침내 요새의 수구문(水口門)에 도착했다.
호진은 인벤토리에서 옷가지와 씻을 물을 꺼냈다.
“근데 생각보다 쉽게 건넜네? 난 해자인 만큼 깊지 않을까 했는데.”
용재가 오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이에 예은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답하곤 몸에 물을 끼얹었다.
“……충분히 힘들었어. 그나마 뱀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네.”
호진은 피식 웃었다.
‘늪지대 건너는 동안 뱀이랑 악어들을 베었다는 건 비밀로 해야겠다.’
가장 앞에서 늪지대를 가로지르던 호진은 초감각을 발동하여 다가오는 생물들을 모조리 베었다.
늪지대는 물 위에 이끼들이 뒤덮어서 그렇지, 수면 아래엔 꽤 흉악한 녀석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왜 웃어요?”
예은이 불안한 듯 묻자 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닙니다. 뱀을 싫어하시나 봐요.”
“파충류는 다 싫어요. 그래서 저 리자드맨들도 싫어요.”
“……하야가 들으면 상처받겠네요.”
“아앗.”
예은은 당황한 눈빛으로 호진의 목에 걸린 뿔피리를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방음이 잘돼서 이 안에 있는 동안 안 들리니까.”
“후, 다행이네요.”
예은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환복을 마저 마무리했다.
다들 정비를 마친 후, 호진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들어가서 할 일은 간단합니다. 성문 옆에 있는 장치를 이용해 도개교를 내리고 성문을 열면 됩니다.”
“확인!”
“이해했어요.”
둘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호진은 검에 기를 둘렀다.
‘목엽참(木葉斬).’
호진이 검을 휘두르자 철로 된 수구문(水口門)의 쇠창살이 두부 썰리듯 잘려나갔다.
호진을 선두로 성으로 진입한 일행들.
음습하고 질척이는 길을 따라 걷기도 잠시, 곧바로 성의 안쪽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건, 떨어지는 폭격을 피해 성벽 아래 모여든 수백의 템플가드들이었다.
이곳에서 인간을 볼 거라 상상도 못 한 템플가드들이 당황하던 그때.
늘 그렇듯 효시의 역할을 한 건 예은의 화살이었다.
예은의 화살은 호진조차 쫓기 어려운 속도로 적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템플가드들이 그제서야 허겁지겁 방패를 들어 올리는 동안, 이미 그들의 목전에 도달한 호진과 용재는 동시에 무기를 휘둘렀다.
─쾅!
─서걱
용재가 휘두른 황금색 배틀 엑스에 부딪힌 방패는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방패를 들고 있던 템플가드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반면, 호진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적의 방벽 사이로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아주 미세한 틈만으로도 호진은 검을 휘둘러 놈들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미세한 빈틈은 어느새 커다란 틈이 되고 호수에 이는 물결처럼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다리.
그다음에는 방패를 들고 있던 손.
마지막으로 머리를 양분했다.
한 놈이 허물어지니 양옆에 서 있던 녀석들도 무방비해졌다.
진형은 그렇게 점점 허물어져 갔다.
물론 수구문을 자를 때처럼 검에 기를 두르면 이렇게 번거롭게 협공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방패고 창이고 모두 분쇄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럴 경우 필요할 때 기를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호진은 최대한 간결하고 담백하게 템플가드들을 베어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베었을까.
소란을 듣고 적들의 증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못해도 방금 벤 적들의 2배 이상.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호진은 활짝 미소 지으며 입을 뗐다.
“개문(開門)!”
“으랏차!”
그 즉시 용재가 장치를 당기자 올라가 있던 도개교가 내려왔다.
호진과 일행들이 성문 아래에 도착한 것이다.
내려가는 도개교를 보며 증원을 온 녀석들이 매섭게 달려들었지만, 호진과 예은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용재는 이중, 삼중으로 잠긴 성문의 빗장을 걷어내고 성문을 열었다.
끝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용재의 머리 위에서 갑작스레 굉음이 울려 퍼졌다.
─드르르르르륵!
“으악!”
용재는 본능적으로 비명과 함께 황급히 뒤로 몸을 굴렸다.
다음 순간 용재가 서 있던 자리에 두꺼운 쇠창살문이 쿵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미치겠네, 저건 또 뭐야.’
호진의 캠프에는 없던 장치, 포트컬리스(Portcullis)였다.
이건 예상치 못했다.
그런 호진과 일행들을 비웃듯 끝도 없이 몰려온 적들이 성문 앞을 가득 메웠다.
“이제 어쩌죠?”
예은은 침착하지만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 우리 x된 거 맞지?”
“씁, 말 좀 예쁘게 해라.”
호진이 쓴소리를 하자 용재가 발끈해 대들었다.
“형은 지금 당장 죽겠는데 그런 말이 나와? 아무튼 꼰대 새ㄲ…….”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욕을 하던 용재는 문득 연신 울리던 폭음과는 다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엔 검은 물체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성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템플가드들도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봤다.
“쓸어버리시죠.”
호진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자, 상대가 지직 소리를 내며 응답했다.
[Aye, aye, sir!]
헬기에 올라탄 주 대위가 씨익 웃으며 기관포를 당겼다.
─드르르르르르르륵
기관포가 쉴 새 없이 불을 뿜고 하늘에선 빈 탄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템플가드들이 급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총탄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들 허물어졌다.
순식간에 일행들을 둘러싸고 있던 적들의 수가 반감하고, 이를 지켜보던 용재가 낮게 침음을 흘렸다.
“어…….”
“자, 이제 다시 말해보자. 용재야. 아까 뭐라고?”
“사…… 삼시 세끼?”
“…….”
싸늘한 적막이 흐르고 호진이 경직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쇠창살문 해결하고 올 테니까, 넌 여기 지키고 있어. 못 지키면 나중에 두 배로, 아니 삼시 세끼 처맞을 줄 알아.”
“일단 맞는 건 확정이구나…….”
시들시들해진 용재를 보며 예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진은 그런 일행들을 남겨두고 성문 위에 지어진 견고한 문루를 향했다.
대개 이런 포트컬리스(portcullis)의 기계장치는 문루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위치상 성문의 바로 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방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문루로 가기 위해선 성벽을 올라가야 했기에 호진은 하야를 소환해 계단을 찾아 내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성벽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냈다.
“워. 진짜 대단하네.”
적이지만 정말 준비성 하나만큼은 철저했다.
계단에는 이미 템플가드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쉽게 가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없었다.
아무리 전투용 헬기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용재와 예은이 성문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하야.”
“크르르릉.”
호진은 하야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창이 있는 방진을 향해 돌격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창은 최대한 없애볼게.”
호진은 대검 대신 성검을 뽑아 들었다.
“가자!”
“크르르륵.”
하야는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는 돌파.
적을 밀어내기만 해도 된다.
즉, 호진은 창머리를 자르는 데 집중할 뿐이다.
호진은 하야를 향해 뻗어오는 수십 개의 창날을 하나도 빠짐없이 쳐내고 베어냈다.
그러자 하야가 머리를 슬쩍 숙여 적들을 모조리 들이받으며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호진은 열심히 창을 쳐내고 하야는 적들을 들이받았다.
그랬을 뿐인데 하야의 머리와 가슴께에 치인 녀석들은 계단의 옆, 즉 성의 바닥으로 떨어져 움직이질 않았다.
운 좋게 바닥으로 쓰러진 녀석들도 대부분 하야의 발에 짓밟혀 죽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성벽 위에 도달했다.
텅 빈 성벽 위.
성벽은 방금까지 매섭게 포격을 받았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력을 쏟아부었던 덕에 적들도 성벽 위에서 물러난 것이다.
‘어라?’
그렇게 달리다 보니 금세 문루에 도착했다.
호진은 그곳을 지키던 녀석들을 마저 베고 기계장치를 당겼다.
그러자 서서히 포트컬리스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호진이 문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용재와 예은이 간신히 성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순간 잿빛의 무리가 반쯤 열린 문 안으로 뛰어 들어와 예은을 지나쳐 용재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쾅!
터져 나오는 굉음과 함께 성문 앞을 가득 메운 적들의 전열이 허물어졌다.
흑색 화약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핸드캐논들.
감시단의 등장을 시작으로 성문이 완전히 열리자, 군대와 헌터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이에 적들은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끊임없이 나오던 증원도 완전히 끊어졌다.
어쩌면 눈앞 적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될 것 같은 분위기에 호진은 길게 숨을 내쉬며 긴장으로 굳은 목을 풀었다.
‘남은 건 저번에 봤던 와이번을 탄 치프 정도인데.’
호진이 목을 꺾어 하늘을 바라본 그 찰나였다.
─콰직
하늘에서 추락하듯 떨어진 와이번 한 마리가 전투용 헬기의 꼬리를 움켜쥐듯 잡고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어 바퀴 돌던 헬기가 완전히 중심을 잃자 성벽으로 헬기를 내던져버렸다.
헬기와 잔해들이 큰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진 않았기에 헬기가 폭발하진 않았다.
느껴지는 기척으론 희미하지만 생명력도 감지됐다.
주 대위도 무사한 모양.
“안 그래도 네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호진이 웃으며 와이번에 탄 녀석을 노려보았다.
─띠링
「아훅쉬툭의 대족장」
「종족: 리자드맨」
「특징: 호수를 기는 여신의 신관이자 대족장.」
“뭐야, 치프가 아니라 대족장이었어?”
어쩐지 좋은 거 타고 다니더라.
호진이 피식 웃은 그때.
녀석도 호진을 발견하고는 거친 음성을 토해냈다.
“바라카이 나완!”
“반갑다는 거지?”
호진은 찢어지고 그을린 코트를 벗어 던졌다.
그러곤 안에 입은 흰색 와이셔츠의 소매를 천천히 걷어붙인 후 성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는 정말 최종장에 접어들었다.
전쟁을 끝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