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늪지대 공성전 (1)
리자드맨들의 본진이 있는 덕정산의 초입.
정비를 마친 마니산 캠프의 병력과 정규군은 빠르게 이곳까지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걸어 올라가야겠어요.”
정찰을 하고 온 예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갈수록 길이 험하고 좁아서 장갑차나 두돈반 같은 차량들이 오르기 어려워요.”
“역시 그런가.”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선 연대장에게 말했다.
“이쯤에서 차량들은 아까 전 대학교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알았네.”
연대장은 별다른 말 없이 호진의 의견을 수용했다.
─덜컹 덜컹
잠시 후, 수십 대의 차량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떠나갔다.
이를 잠시 지켜보던 호진과 사람들은 다시 묵묵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인해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다.
길게 자란 양치류 식물이 무릎까지 와 닿았다.
땅 위까지 솟은 구불거리는 나무뿌리들은 자꾸만 이동을 방해했다.
이곳이 한국이 맞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차를 끌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호진이 중얼거리자 박 순경도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 이 모양이면 차를 돌리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근데 호진이 형, 원래 강화도가 이랬던가?”
용재가 앞을 가리던 커다란 나뭇잎을 잘라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여기가 아마존도 아니고 이렇게 나무들이 자랄 리가 없지. 아마 게이트와 리자드맨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와, 형 나 이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쥬라기 공원이랑 똑같아.”
용재의 말을 들은 호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울창한 숲에서 금방이라도 랩터나 티라노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호진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지, 박 순경과 용재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던 찰나.
─부스럭
뒤에서 나는 인기척에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호박색의 눈과 날카로운 발톱이 번쩍이는 공룡이 있었다.
“으아악!”
“헉!”
용재와 박 순경이 놀라 물러나고, 호진도 잠시 움찔했다.
공룡, 아니 하야를 타고 있던 연대장이 놀란 듯 물었다.
“무, 무슨 일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진은 살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연대장은 나이도 있고, 각종 지병이 있는지라 하야를 빌려준 상태였다.
울창한 숲에서 보는 하야의 모습은 순간 놀랄 만했다.
하필 용재가 공룡 이야기로 긴장감을 끌어올린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렇기도 했고.
“그보다 이곳엔 무슨 일입니까?”
연대장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이보다 뒤인 본대였다.
호진과 일행들이 있는 이곳은 정찰을 제외하면 가장 선두에 속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급히 출발하느라 전하지 못한 게 있어서 그렇네.”
“어떤 거죠?”
호진의 물음에 연대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군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상대는 카멜레온을 닮은 리자드맨들이었다네.”
“카멜레온이요?”
“그래. 카멜레온. 녀석들이 멀리서 독침을 쏴대는데. 열 감지 장치조차 통하지 않으니 속수무책이더군. 자네들이라 해도 놈들을 만나면 꼼짝없이…….”
“엎드리세요!”
호진은 말을 하던 연대장을 급히 하야의 몸에서 끌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검을 뽑아 날아드는 독침들을 빠르게 튕겨냈다.
“모두 무사해?”
호진의 물음에 방패를 들어 올린 박 순경은 엄지를 들어 보이며 답했다.
“다 막았습니다!”
“잘하셨어요! 용재야, 너는?”
호진의 물음에 용재도 박 순경과 마찬가지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를 확인한 호진은 그 즉시 눈을 감고 초감각을 발동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자신을 기점으로 한 주위 공간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왼쪽 나무 위에 둘. 그 아래 바위 위에 하나. 수풀 속에 다섯. 오른쪽, 정면, 뒤에도 있군.’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전부 합해 스물넷.
하지만 확실히 초감각이 아닌, 눈으로 놈들을 찾으려 했다면 한 놈도 찾지 못했을 정도로 위장술이 뛰어났다.
이런 녀석들이 꾸준하게 들러붙어 독침을 계속 쏴댔다면, 피해자가 수백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적의 위치를 특정한 호진은 세차게 발을 굴렀다.
이미 인간의 신체를 아득히 초월한 호진은 눈 깜짝할 사이 적들의 앞에 도착했다.
“끼엑?”
위장이 발각된 것에 당황한 리자드맨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게 녀석의 단말마였다.
호진은 마치 잡초를 베듯 검을 휘둘러 그 주위에 있던 녀석들을 베어 나갔다.
무언가 이상을 감지한 다른 녀석들이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이미 감각에 잡힌 녀석들은 호진을 따돌릴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잠시 후.
호진은 숨어서 부들부들 떨던 녀석의 머리에 검을 박아 넣고 숨을 돌렸다.
“후우.”
동시에 감시자의 눈의 눈을 발동하자 녀석의 상태창이 눈에 떴다.
─띠링
「카멜레온 리자드맨」
「종족: 리자드맨」
「특징: 은신과 독침을 다루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극에 달한 은신술로 모습은 물론 소리와 냄새마저 숨긴다.」
이를 본 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정찰부대가 놈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 만도 했다.
호진이 일행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연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놈들을 만나면 꼼짝없이…… 뭐라 하셨던가요?”
“허, 허허허허허. 아닐세.”
호진이 살짝 웃으며 묻자, 연대장은 허탈해하며 웃을 뿐이었다.
이때 용재가 갑자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쳐다보자 용재는 덤덤하게 자신의 목에 꽂힌 독침을 뽑아냈다.
“저건?!”
이를 본 연대장이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그것은 부대의 군인 수백의 목숨을 앗아간 놈들의 끔찍한 독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대장이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고 침음을 흘리던 찰나, 용재는 고개를 좌우를 흔든 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으아. 이거 생각보다 저릿저릿하네. 그래도 견딜 만하다. 호진이 형도 츄라이?”
여유롭게 스트레칭하는 용재를 보며 연대장은 턱을 쩍 벌렸다.
“이게 무슨……. 지금 독침을 맞은 거 아닌가?”
“맞는데요? 아, 연대장님은 각성자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보네요. 각성자는 원래 이런 독 정도는 다 견딜 수 있어요. 자, 이거 봐요.”
이번에는 도끼로 자신의 팔뚝에 상처를 내는 용재.
상처가 벌어지면서 선혈이 흘러내렸지만,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이를 지켜보던 연대장은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이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입을 열었다.
“그건 너만 그런 거라고, 이 트롤 자식아.”
호진이 용재한테 핀잔을 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연대장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 그. 그렇지. 그렇겠지. 모두가 저런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층 정신을 수습한 연대장이 호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친구 정말 대단하군. 난 자네도 저렇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
호진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연대장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자네도 저렇게 상처가 낫는다고?”
“…….”
거짓말하기도 조금 그랬던 호진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허! 허허허허허허허허.”
이번에도 역시 웃음을 터트린 연대장은 힘없이 하야 위에 올라탔다.
잠시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듯한 연대장.
그런 연대장을 보며 호진이 용재를 노려보며 작게 소곤거렸다.
“너 때문에 놀라셨잖아.”
“……아니, 난 자랑 좀 하려 한 거지. 그나저나 형은? 내가 보기엔 형 때문이야.”
“뭐 임마?”
둘의 티격대는 모습을 보던 박 순경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보기엔 둘 다 문제였다.
‘하여튼 주변에 저런 괴물들밖에 없으니 각성자 할 맛이 안 나요.’
두 사람을 지켜보는 박 순경은 오늘따라 혀 뒤쪽이 썼다.
***
그 뒤로도 몇 번의 기습이 있었다.
하지만 정찰을 철저히 한 덕에 피해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수로 덤벼온 적들은 거의 전멸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늪지대와 그 늪지대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요새가 나타났다.
“미쳤군.”
“알고 있었지만 미쳤네요.”
“동감이에요.”
일행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요새를 바라봤다.
수십 미터 폭의 늪지대.
그 가운데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은 얼핏 봐도 7~8m에 달했다.
그 흉벽 뒤로도 땅을 다져 올리고 거대한 벽들로 이중 방벽을 세워 놓았다.
“혹시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호진의 말에 연대장이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내가 보여줄 시간이군. 다들 지켜보게나.”
박격포병 수십 명이 순식간에 81mm 박격포를 설치했다.
잠시 후.
[화력지원 장교가 명령을 하달한다.]
[하늘소 하달된 좌표로 고폭탄 발사]
“하나 포 발사 둘 삼!”
“둘 포 발사 둘 삼!”
.
.
.
“열 포 발사 둘 삼!”
─텅
순식간에 열 발의 폭탄이 요새로 날아가 폭발했다.
하지만.
“…….”
“…….”
호진이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요새를 바라봤다.
도대체 성벽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걸까.
폭탄이 직격했지만 성벽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대장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땀을 찍어냈다.
“이거, 박격포로는 어림도 없겠군요. 포탄의 숫자도 한계가 있을 거 같고요.”
“……미안하네.”
“아뇨,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호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들었다.
“잠시만 대기해주시죠.”
이내 하야에 올라탄 호진은 요새를 살피며 뛰어다녔다.
놈들의 요새를 보고 어딘가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마니산 캠프도 이 녀석들의 작품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개량을 한 상태지만, 구조물의 기반은 놈들의 것을 바탕으로 했다.
‘분명 이 요새도 놈들이 지은 거라면 이 정도 위치에 숨겨놨을 텐데.’
요새의 사각지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찾던 호진의 눈이 반짝였다.
‘찾았다.’
호진의 시선 끝에 있던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물이 졸졸 흐르는 수구문(水口門)이었다.
튀어나온 벽의 구석에 위치해 잘 눈에 띄지는 않는 구조였지만, 확신하고 찾았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곳이 요새 공략의 첫 발판이 될 것이다.